[eBook] [합본] 크루즈 살인사건 (전3권/완결) 크루즈 살인사건
권영인 지음 / 라떼북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1. 기대를 훨씬 상회하는 완성도


   사실 저는 이런 식의 대놓고 "~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은 잘 안 읽습니다. 어차피 "누군가에 의해 살인이 일어났고 또 다른 누군가가 해결한다. 알고 보니 누가 범인이고 이런 식으로 범죄를 저질렀더라 신기방기하지?" 이런 형식이지 않습니까? 저는 어떤 사건을 얼마나 정교하게 안 들키게 저질렀는지 뭐 그런 것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는 편이라 대놓고 살인사건이라는 추리 미스터리는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이 작품은 사실 블로그 이웃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읽을 생각을 전혀 안 했을 겁니다. 일단 추천을 받았으니 예의상 읽어보기 시작한 작품인데 이거 의외로 대박입니다. 이북이라 정확한 분량은 모르겠으나 읽은 시간으로 생각하면 어지간히 두꺼운 추리소설보단 더 많은 분량인 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넘치고 읽는 내내 매력이 있었어요. 제목에 비해 훨씬, 엄청 괜찮은 작품이었단 말이죠. 그리고 이 작품 하나로 권영인이라는 국내 작가의 역량과 작가적 특성도 어느 정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약간이 아쉬움도 있어서 흥분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별을 반개는 뺐습니다. 마냥 좋다고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2. 살인사건인 듯, 미스터리 인듯 아닌 듯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


   제목은 대놓고 살인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내용은 좀 다른 쪽으로 주력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크루즈선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전체 이야기를 이어가는 뼈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스토리에는 오히려 다른 곳을 향하고 있어요. 실제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인간의 근본적인 악함, 빈부격차와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의 문제, 사회 전반적인 제도적인 문제와 약자, 소수자의 인권보호 등 다양한 문제를 다루어주고 있습니다. 작가가 무척이나 세심하게 이 포괄적인 문제들을 하나의 틀안에 잘 정돈해서 표현하고 있어요. 사회파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광범위한 문제들이기는 합니다만 작가의 의식이 상당히 잘 드러나면서도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역량은 훌륭합니다.


   이렇다 보니 사건의 진행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아요. 마치 "왕좌의 게임"에서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각 인물들이 챕터를 이루어 갑니다. 챕터마다 각 인물들의 입장과 시각에서 하나의 사건을 점층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죠. 이런 방식은 초반에 다소 산만할 수도 있고, 독자가 의아해할 소지가 있지만 전반적인 작품의 외연이 넓어지고 입체적인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결말 부분까지 다 읽고 보니 작가적 특성 때문에 이런 방식의 전개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훌륭하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이런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빨려 들어 집중력을 잃지 않을 만큼 가독성도 훌륭하고 호기심을 끝까지 자극하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인 형편상 앉은 자리에서 연속적으로 오래 독서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계속 끊어 읽었는데도 이야기가 잘 이어지고 계속 더 읽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어요.


   장점일지 단점일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추리 미스터리에 흔히 볼 수 있는 스피디한 전개와는 거리가 있는 작품입니다. 오히려 사건의 전개가 무척이나 더디게 진행됩니다. 그 대신 각 등장인물 개개의 스토리와 인격, 특징 등을 섬세하게 배열하고 있어요. 자칫 지루해질 위험이 있는 이런 구성이 이 작품 속에서는 무척이나 유의미하게 작용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지루하지 않았고 계속 흥미를 끌 수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완급조절도 좋았네요. 한 예로 살인사건인데 갑자기 중반 즈음에 로맨스 소설 같은 느낌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이건 뭔가? 너무 나간 거 같은데?'라고 생각할 무렵 갑자기 반전이 생기면서 상황이 급변하는 국면 전환이 딱 이루어지더란 말입니다. '중간쯤 지루해졌다'라는 결론을 내리기 직전에 딱 생긴 변화라 적당한 타이밍이었습니다.


   또 한가지 특색이라면 추리 미스터리 장르임에도 각 인물들을 둘러싼 각양각색의 사랑에 대한 입장과 감정을 진중하게 접근하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이 작품을 즐겁게 읽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작가의 특징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아마도 다른 작품을 읽어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좋게 느꼈습니다만 추리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는다면 이 부분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습니다.



#3. 이거슨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에게 저자는 애정을 과하게 보이는 모습이 느껴져요. 단역 한 명까지도 과거와 인격을 부여하고 정성껏 설명하거든요. '대사 없이 슥 지나가는 엑스트라로 쓰기 싫은 모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모두에게 친절과 배려가 돋아요. 이런 형국이다 보니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졸 길어집니다. 그래서 후반으로 갈수록 독자가 좀 지칠 우려가 있어요. 한 명 한 명 다 챙기려다 보니 이야기가 끝날 듯 끝날 듯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죠. 이게 조금 과하다 싶습니다.


   캐릭터를 최대한 살릴 인물과 과감히 생략할 인물을 잘 선택하고 집중하는 편이 조금 더 대중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다 중요하단 말은 누구도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 비슷하니까 말입니다. 이렇게도 스피디한 시대에 이런 식의 전개를 너그럽게 허락할 독자가 얼마나 될까 하는 걱정이 조금 들었습니다. 꼰대 같은 저는 겨우겨우 참을 만 했습니다. 그 정도로 전반적으로는 재미졌으니까 말입니다.


   또 하나는 개념 찬 저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작품에 담고 싶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약간 계몽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이 있어요. 이야기 전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주제의식이 드러나야 하는데 저자가 설명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과하게 드러납니다. 꼭 전하고 싶은 거죠. 이게 조금이라도 과하면 독자는 부담스럽기 마련입니다. 주제 전달은 사건을 통해 은유적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문학의 미가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장르소설에 걸맞게 너무 무겁지 않게 가야 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문제는 제목입니다. 저자의 작품 스타일과 내용을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무지 제목이란 말입니다. 아직까지 지명도가 없고, 출판사도 이북쪽에서는 방귀 꽤나끼는 전문출판사인 듯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북으로 출간만 하고 홍보고 마케팅이고 완전 저자에게 떠맡기는 듯한 느낌의 출판사네요. 이렇다 보니 제목을 쉽고 직관적이고 자극적으로 뽑기 마련입니다. 누가 지나가다가 슬쩍 봐도 추리소설이니 추리소설 좋아하는 독자는 읽겠지.. 하는 식의 제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은 현실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사실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인 건 맞기 때문에 "크루즈 살인사건"이라는 제목도 잘 못 뽑은 제목은 아니라고 할 수는 있는데, 이런 제목은 거의 애거서 크리스티 시대 때 통하던 스타일 아닙니까? 좀 더 함축적이고 작가의 스타일에 맞는 매력적인 제목을 뽑았어야 더 좋았는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작품은 여하튼 무척 재미있고 특색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저는 합본을 구매했는데 3권 합본 값이 심지어 정가 4천원입니다. 더욱이 별도 구매하면 1권은 무료예요. 의심이 많으신 분들은 1권을 무료로 읽어보시고 괜찮으시면 2,3권을 구매해서 읽어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습니다. 여하튼 몇 가지 호불호를 만들만한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히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선 지명도 있고 마케팅 능력이 있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조금 늘어지는 부분을 스피디하고 심플하게 줄이고, 과감히 버릴 건 버리는 방식으로 편집을 하고 제목도 멋지게 뽑아서 종이책으로 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냥 이북으로 읽히고 잊히기엔 상당히 아까운 작품이자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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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12-2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거 이북 절찬되었던데 이유가 있나요? 문제가 있으니 절판돠엇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