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습속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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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놈만 죽도록 패서 결국 잡아들이는 집요함을 만나다.

 

   [시간이 습속]은 셀 수없을 만큼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낸 세이초옹이 유일하게 속편으로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점과 선]에서 보여주었던 도리카이와 미하라의 주거니 받거니 콤비 플레이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속편인 만큼 [점과 선]에서 보여주었던 운송수단을 이용한 알리바이 깨기가 좀더 본격화되어 등장하는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작부터 사건정황 설명하자마자 용의자를 딱 찝어서 시종일관, 끝날 때꺼정 갸만 막 뚜들겨 패는 것입니다. 하 근데 맞는 놈이 그러거나 말거나 실실 웃어요. "어차피 알리바이가 있어 날 못잡아가잖아? 맘대로 하셔요^^" 이라고 버티더란 말입니다. 이게 읽는 사람도 참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열받게 합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범인은 누구일까? 따위의 생각은 하덜말어. 이라믄서 범인은 어차피 저놈이라니깐 하며 잡아들일 결정적인 단서를 하나 둘 모아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계속 머리속으로 온갖 추리를 다 하고 증거와 알리바이를 맞춰가며 확인을 해나가서 결국은 잡아내고 말더란 말입니다.아따 징하고 독하다. 별로 돈도 안되는거... 여튼 끝나는 순간까지 달리고 달리고 달리는(사실은 주로 머리로만 달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달리는 거지만) 로드 미스터리가 되더란 말입니다.(요즘 볼 수 있는 하드보일드랑 비교하면 큰일납니다. 완행열차와 KTX의 차이가 될 갭니다.) 

 

 

#2. 시원하게 쭉쭉 읽히는 가독성인데 책장 넘김은 더딘 경험이라..

 

   [시간의 습속]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가독성입니다.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점과 선]에서 이미 주요 인물인 도리카이와 미하라를 잘 알고 있어서인지 캐릭터에 적응할 필요도 없다보니 시작! 하면 벌써 엄청난 가속도로 쭉쭉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웃기는게 내 머리속은 계속 책을 읽고 있는데 정작 책장은 늦게 넘어가는 부분이 자꾸 생깁니다. 주인공 미하라가 주어진 정황과 비행기나 열차시간,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계속 추리를 합니다. 그러면 저는 미하라 옆에 앉아서 듣고는 훈수를 두고 있는 것이지요. 미라하가 한참을 추리하며 생각하는 것이 적혀있는 부분을 읽으면서 '아따 이양반 참으로 답답하네, 그게 아니지. 거기서 제 3자가 대신 타고 가서 갸가 하고 중간에 만난거지. 에헤이 참나..' 뭐 이러느라 진도가 안나가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죠. 그리곤 뒤에 제 예상이 맞아 떨어지면 '거봐라 거봐 그걸 생각 못 하나? 빨리빨리 가봐' 이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중반부 넘어가서는 미하라를 훈수 두기를 포기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전혀, 조금도 생각 못했던 변수가 등장하면서 멘붕에 제대로 빠졌습니다. '에..또... 이것이 뭐다냐... 아우 모르것다. 포기. 포기.' 하는데 미하라와 도리카이는 묵묵히 변함없이 추리하고 확인하고 찾아내는 일을 뚝심넘치게 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저 어떻게 되어가나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되어버립니다. '아, 내가 깝치기에 이 트릭은 너무 정교해...' 이런 상황이 되 버린거죠. 아.. 대단한 것들...


 

#3. 우리의 관습을 파고드는 시간 문제를 결국 파헤치다...

 

   "습속"이란 습관이 된 풍습을 말합니다. 이 시간의 관습성이 철저히 준비한 트릭을 정교하게 지지해 주어 그것을 파헤치는데 엄청난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이러한 편견과 선입관들을 깨고,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읽는 사람도 꼼짝없이 주인공들과 같이 알리바이의 완벽성에 갖혀버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속이 터지지요.


"인간은 절대 틀림없다고 믿어버리면 언젠가 그것이 마음에 맹점을 만듭니다. 착각하고 있으니까 바로잡을 생각조차 들지 않지요. 이 점이 무서운 겁니다. 아무리 괜찮다고 믿었어도 다시 한번 그 믿음을 깨뜨려볼 일입니다."p83

 

   이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는 일본의 1960년대 특징들을 재 미지게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창 지금이라면 거의 CCTV나 위치추적 등으로 다 해결될 일을 일일이 쫒아 다니면서 조사하게 됩니다. 얼마전 개봉했던 "감시자들"에서 처럼 온갖 CCTV를 장악해서 행적을 추적하면 이정도 알리바이야 금방 깨지는 것이죠. 그 당시 시대적 한계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읽어야 더욱 재미지고, 또 한편으로 아, 그땐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필름 카메라로 트릭을 쓰는 장면에서는 '으응? 필름 카메라로 그런 것도 가능한거였어? 희한하구만'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알라바이 깨기를 위해 시작부터 미하라는 그리 유력하지도 않은 용의자 미네오카를 '뭔가 의심스럽다, 석연치 않다. 왠지 범인이 확실한거 같다' 등의 이유로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의혹이 다 해결되어도 다시 의심하고 찾아내고를 반복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좀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확실한 근거도 없는 용의자를 계속 물고 늘어지는게 가능할지요. 빨리 다른 방향으로 수사를 전환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이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데 상부에서는 여러가지 상황을 다 용인해줍니다. 이 지점이 조금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습속]은 상당히 기분좋게 읽고 감탄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더욱 세이초옹에게 팬심이 강해지는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출간될 "10만분의 1의 기적"을 또 기다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작품 자체가 다음 작품의 셀프 뽐뿌가 되는 세이초옹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참, 전 북스피어, 모비딕의 세이초월드 시리즈 표지를 너무도 좋아합니다. 어여 오라~~ 컴컴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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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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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시절 읽던 책을 떠올리게 해주는 주옥같은 소년문고 추천사들


   미야자키 하야오옹의 책이 나왔다고 하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확인했던 것이 '하야오옹에 대한 책'인가? '하야오옹의 책인가' 였습니다. 타인이 하야오옹에 대해 쓴 책이 아니라 하야오옹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이책은 하야오옹이 직접 쓴 책인듯 해서 선듯 고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읽고보니 직접 썼다는 이야기는 반만 사실이라고 해야겠지만요. (인터뷰를 글로 옮긴 형식입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어린이들이 읽으면 좋을 소년문고 명작 50선을 추천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절반의 목적이 느껴지지만 말이죠 ) 하나하나 추천사를 읽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나는 어린시절에 왜 동바처럼 동네를 뛰어다니기만 했던가? 제대로 읽어본 책이 별로 없구나..' 하는 한탄이랄까? 뭐 그런 생각이죠.  


   이 추천사들을 읽다보니 단순히 내용에 대한 언급보다 애니메이터로서의 시각이 들어간 삽화에 대한 언급이 많아 신선했습니다. '아, 역시 애니메이터라 보는 관점이 다르구나'하며 특이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것말고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무슨 책이 소개되어 있는지, 어떤 내용인가는 중요치가 않았습니다. 그저 하야오옹이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었을 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복잡한 전개없이 간단 명료하고 담백한 노인의 혜안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거기에 부드럽고 따뜻한 시각이 더해져서 한층 정감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책을 펼쳐 들자마자 '쩍' 소리를 내며 겉표지가 갈라져 무슨 일인가 하고 보았더니 겉표지를 벗겨낸 책 상태가 소위 누드제본이라고 말하는 책등 노출방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투박하지만 고풍스럽고 전통방식의 책같은 느낌마저 주고 있는 것입니다. 흠... 그래서... 좀... 심심한 책입니다. 

 


 

#2.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소장 할 만한 책...이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을 애정하는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브리의 중심인 미야자키 하야오옹을 애정하는 분들도 많구요. 이런 책이 출간되는 것만 봐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샀으니까요. 크흠. 저에게 이 책을 소장하는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그동안 이양반이 만들어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행복했던 것에 대한 예의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반가움이 아닐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호평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던 호감도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솔직하게 책 자체만 놓고 본다면 완성도는 상당히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아, 리뷰가 이렇게 진행되면 안되는데...에라 모르겠다.) 


   뭐랄까? 편집된 책의 내용을 놓고보면 뭔가 일관성이 없어서 한권으로 엮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조금은 들었습니다. 굳이 구성을 언급하자면 이렇습니다.

 

1. 50권이나 되는 초반 소년문고 추천사

2. 어린시절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생각을 담은 에세이 약간

3. 뜬금없는 동일본대지진 이후를 언급하며 짧게 등장하는 일본에 대한 평가와 차기작 홍보성 발언모음 


   흠, 1과 2는 어느정도 엮어서 풀었다고 해두어도 무관하겠지만 3번은 좀 뜬금없기는 합니다. 이쯤에서 다시 밝히자면 저는 하야오옹의 팬입니다.(굳이 한번 더 강조하자) 그래도 이 책은 소챕터 하나하나 뜯어서 읽으면 알찬 내용들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책 한권을 놓고 볼때는 좀 엉뚱하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이걸 다 합쳐도 여백의 미를 충분히 살린 170페이지 밖에 안되는 책입니다. 그나마 50권의 추천사마저 빼고나면 100페이지도 채 안되는 내용이란 말입니다. 제 기대에 못미치는 내용이었기에 좀 아쉬웠습니다. 

 

 

#3. 일본의 미래를 전망하는 그의 시선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다..


   세번째 파트인 "3월 11일 후에"이르러서는 일본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에서 느껴지는 염려와 걱정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어 좋았습니다.


"돌연 역사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가 막이 오른 것입니다. 일본만이 아닙니다. 파국은 세계적 규모가 되었습니다. 대량 소비 문명이 확실한 종말의 제1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제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바람이란 상쾌한 바람이 아닙니다. 무섭고 요란하게 지나가는 바람입니다. 죽음을 안고 독을 품은 바람입니다. 인생을 뿌리째 뽑으려는 바람입니다."p146


  그리고 조국 일본에 대해서도 걱정합니다.


"아무도 현실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p157


   이런 통찰과 자기고백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거의 의심없이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에 대한 통찰과 우려는 공감하지만 조금더 생각해보면 그의 차기작 '바람이 분다'를 위한 홍보용 멘트가 아닐까 의심이 조금은 드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바람이 분다'가 논란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보지 않아서 뭐라 언급하기가 힘듭니다만 이 책의 말미와 연결되는 그 작품을 통해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과연 '바람이 분다'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옹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4. 책으로 가는 문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나에게 책으로 가는 문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야오옹은 책과 친해지게 되는 결정적인 책 한권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책을 꼭 만났으면 하고 바라는 듯 합니다. 저를 책으로 인도해 준 가장 큰 영향은 여러번 밝혔듯이 제 아내였습니다. 책을 대하는 태도는 거의 대부분 아내에게 전수받고 학습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아내와 차별화가 발생한 결정적인 지점이 바로 세이초옹의 "잠복"이었던거 같습니다. 미스터리를 3류 장르소설이 아니라 진지하게 읽게 되는 계기가 된 책입니다. 그래서 다음책으로 "시간이 습속"을 읽었습니다. 역시나 감탄했습니다. 흠...여러분에게 책으로 가는 문은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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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강 -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87
김선희 지음 / 사계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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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의지와 무관하게 점점 옥죄어오는 현실 앞에선 여린 영혼

 

   "영원의 아이", "가족사냥", "애도하는 사람"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텐도 아라타는 성장기에 가족 때문에 힘들었던 체험 때문에 '가족이란 것이 마냥 행복을 주고, 서로를 지지하는 아름다운 공동체'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표현하고자 소설을 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뭐랄까?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바로 가족이 아닌가 하는 섬뜩하지만 상황에 따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소설속에 구체화한 것이죠. 좀 충격적인 방식을 써서라도 말입니다. 실제로 가족이라는 것은 내가 원해서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물론 결혼을 통한 가정을 이루는 상황은 어느정도의 자유도를 허락한다고 볼 수있겠습니다만 내 아버지, 어머니를 자판기에서 동전 넣고 선택하듯이 뽑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여기 [더 빨강]의 주인공 '나'도 동일한 상황입니다. 평범한 학생인 주인공이지만 사고로 머리를 다쳐 7살 지능이 된 아버이와 가족 부양을 위해 치킨집을 운영하게 된 어머니, 그리고 치킨집 배달을 돕는 형 때문에 방과후에는 고스란히 철없는 동생같은 아버지를 양육(?)해야하는 답답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당연히 경제적인 여유는 없을 분더러 언제 집이 헐리고 비워줘야 할지 모르는 재개발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보상비는 이미 치킨집을 꾸리는데 써버리고 없습니다. 나중에는 믿었던 형마저 주식에 손을 대 엄청난 빛만 떠 안기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건조하게 쓰여진 이 상황은 정작 본인에게는 생각보다 미칠 듯이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긴 터널도 언젠가는 빠져 나간다는 희망으로 지날 수 있는 반면 주인공에게 주어진 이 상황은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크게 나아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치 않는 상황도 괴롭지만 그 상황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현실앞에 처하게 되면 정말 숨막히는 공포가 되는 것입니다.

 

 

#2. 성장소설의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한 책

 

   국내 소설은 대체로 가족이 아무리 콩가루라도 결국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이 상황에 익숙해지고 극복해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그려주는 것이 성장소설의 일반적인 규칙입니다. [더 빨강]의 경우도 여러가지 변수와 여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기존 패턴을 변함없이 이어갑니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점차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여지없이 깨닫고 한단계 성숙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매우 전형적입니다.

 

   다행히 이런 전형성에도 이 소설이 식상하지 않은 것은 그 속에 흥미로운 설정들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7살 지능이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흥미롭습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 아버지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해줍니다. 원래 현실의 무거운 무게감 앞에 말없고 때로는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아버지가 동심을 회복했을 때 오히려 가족과 집을 지키려는 본능을 보여주는 설정이 의미심장합니다. 또한 성장기의 성에 대한 상상과 해소법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부분이나, 매운것을 좋아하는 클럽에 우연히 들어가서 고생하는 모습, 자살여행 해프닝 등은 이 소설을 지루할 틈 없이 만들어 줍니다.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하고도 충실한 책입니다.

 

 

#3. 그래도 가족 

   더 빨강에 나타난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성장기를 대변하는 느낌입니다. 그 중 원치않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은 그럭저럭 무난하게 자라나거나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지랄총량의 법칙에 의해 주어진 지랄을 최대한 성장기에 땡겨쓰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그것도 아니면 아예 가족을 버리다시피 하고 독립을 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장기에는 과도한 부모님의 관심과 간섭, 또는 지나친 무관심 때문에 힘들어하게 됩니다. 그리고 커다란 원을 그리듯이 나이가 들고 아이가 생기면 그렇게도 욕하던 내 부모님과 닮아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욕하면서 닮는 것이 바로 부모의 모습이지요. 잘났거나 못났거나 결국은 또 대를 이어 가족을 이루어갑니다. 그렇게 서로 부족하고 흠 많은 모습을 떠 안고 상처를 주고 받으며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렇게 원망하고 탓할 대상이 있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입니다.

 

 강렬한 성장소설 [더 빨강]은 우리가 공감할 만한 성장기의 문제를 아주 썩 잘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금방 읽어집니다. 초반에는 '이거 뭐 썰렁한 성장소설인가?' 했다가 점점 빠져들어가 읽었고 감동도 있었고 지난 저의 성장기를 돌아보게 해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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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적게
도미니크 로로 지음, 이주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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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기대를 이렇게 저버리다니...

 

   솔직히 남들은 다 좋다는데 저혼자 이 책을 막 심하게 까는게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듭니다. 제목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실망이 컸습니다. 이를테면 다들 재미지고 좋았다는 영화 설국열차를 보고 매우, 굉장히, 아주, 심하게 커다란 실망을 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설국열차는 적어도 제 기준에선 아주 졸작이었죠. 영화리뷰는 안하는 제가 뭐라도 좀 한마디 쓸까 하는 충동이 제법 많이 든 영화였습니다.(영화 리뷰 안한다고 책리뷰에다 우회상장하는 거 맞음) 할말이 무척 많은 영화였는데 가장 크게 실망한 부분은 뭐랄까? 현실을 비판하거나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면 뒷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심정만 대변하려고 하지 말고 앞쪽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로 대변되는 상류층 사람들이 실제로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뼈저리게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지에 대한 고찰도 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습죠. 영화에서는 파마나하고 사우나나 하고 약에 취해있는 골빈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의 직진성에 대한 설정 탓에 잘가다가 마지막 문을 앞두고 뜬금없이 주인공과 송강호가 마주 앉아서 옛날 이야기나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게 그 상황에 할 이야기들입니까? 그 영화는 시간의 직진성 설정 때문에 회상신이 없죠. 그러다보니 할 수 없이 시점이 과거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저 마음도 안맞고 심지어 언어도 다르게 쓰는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황당하게도 주저 앉아서 수다스럽게 '옛이야기 들어보아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설명 안하고 넘어가면 이야기가 설득력이 없어지거든...여튼 중요한 것은 제가 설국열차에 실망한 이유는 영화 자체가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한껏 기대했던 부분을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지극히 적게]도 마찬가지 이유로 좀 읽다보니 매우 매우 심하게 실망한 책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생소한 프랑스식 에세이가 어떨지 무척이나 설레고 기대를 했었단 말이지요. 막상 읽다보니 프랑스는 개뿔, 왜 일본이 들어가 있는거냔 말입니다.

 

 

#2. 큰 범주에서 본다면 일본식 자기계발서가 아닐까요?

 

   이 책은 도미니크 로로 라는 독특한 느낌의 이름을 가진 여자분이 쓰신 책입니다. 이미 비스무리한 책으로 유명세를 얻으신 분인 듯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미니멀리즘 전도서"입니다. 미니멀리즘은 사전적 의미로 "되도록 소수의 단순한 요소로 최대 효과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책도 이런 미니멀리즘 정신에 정확히 부합하는 내용들로 꽉꽉 채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식 디테일한 자기계발서 기법이 가미되어 있고, 선불교의 사상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일본에서 오래 거주하셨고 일본 선불교에 정통했기 때문이겠지요.

 

   이를테면 이런 느낌입니다.

 

Q : 이 책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A : 아, 불필요하고 번잡한 것들을 다 걷어내고 가장 유용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A : 그렇습니다. 덜어낼수록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Q : 그 밖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요?

A : 네, 가볍게 소유하고 소식하며 운동하는 습관을 갖자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A : 네, 샴푸만 쓰고 올리브 오일로 두피 마사지를 하고 좋은 빗, 립스틱, 향수 등등을 좋은 것 하나만 쓰자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A : 네, 말을 아끼고 진실한 친구 몇명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A : 복잡한 감정에서 벗어나고 머리를 가볍게 하자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3.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에서 오는 식상함

 

   제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미니멀리즘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이 책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들은(미용분야에 관련된 일부분 내용을 제외하고) 분명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실제로 강연, 인터뷰, 책 혹은 설교 등에서 들어보았던 내용들이 많습니다.(거의 다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맺음말에 등장하는 부분조차 어디선가 들어본 낯익은 이야기입니다.

 

 "영혼의 무게는 약 1그램이라고 한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도록 하자." p.258

 

    제가 너무 아쉬웠던 것은 내용 자체가 좀 너무 식상하고 익숙한 내용들의 나열이라는 점입니다. 뒤통수를 똭 때리는 '아!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맛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좀 건방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시작은 매우 좋아서 '음~~~' 했다가 중언부언 같은 느낌에 '그래서? 그래서?' 하다가 '이게 다야?'하고는 끝나더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챕터마다 담겨있는 내용 자체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로 귀결되기는 하지만 각각이 소중한 실천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지혜이자 행복의 첩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류의 내용에 생소하시다면 아주 좋은 잠언서 내지는 지혜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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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개정증보판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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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마음에 착 달라붙는 제목짓기의 힘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는 헤르만 헤세라서 궁금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사실 책의 제목 때문에 흥미가 생겼던 책이었습니다. 소설이 아닌 것은 알겠는데 저는 당연히 몰랐고, 어느분도 이런 제목으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있었단 사실을 아는 분이 없더군요. 실제로 이 제목은 헤르만 헤세가 붙인 제목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다보면 어딘가에서 이 문장이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처럼 맨 마지막 문장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했습니다만 끝까지 책속에 이 문장이 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 책 제목에 자꾸 신경이 쓰인 이유는 "밀고"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네이버 책에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그리움"이란 단어를 제목에 사용한 시나 에세이는 무려 6,885건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밀고"라는 단어를 제목에 사용한 시나 에세이는 214건 이었습니다. 그만큼 흔하게 책제목에 쓰이는 단어가 아니란 뜻이지요. 그래서인지 희귀성이 주는 매력인지 몰라도 "밀고"라는 단어의 묘한 뉘앙스 때문에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라는 네이밍은 참으로 탁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더욱 잘 지어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사실상 입에 착 감기지는 않는 어색한 문장일 수 있지만 적어도 마음에 착 달라붙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이 앞으로 더 사랑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 물론 취향에 따라 제목이 마음에 안 들수도 있습니다. 우리 노여사처럼...(개취는 중요하니까 일단 의견이 다를 경우를 생각해서 도망갈 길을 열어두겠습니다) 

 

 

 

#2. 100년의 시간차를 무색하게 만드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관조로의 초대

 

   헤르만 헤세는 저와 정확히 100년의 나이차가 나는 사람입니다. 100년전의 유럽에 살았던 헤르만 헤세와 100년 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저와 무슨 공통점이 있겠습니까만은 이 책에 실려있는 헤세의 자연과 인간,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그리고 그것들은 너무나 감성적으로 세세하게 묘사한 글들은 저를 100년전 헤세가 거닐던 푸르른 자연 속으로 초대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그의 옆에 딱딱하고 키낮은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자연에 대한 감상들, 세상을 바라보는 헤세 특유의 따뜻한 시선들을 잔잔히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감각적이고 섬세하고 너무나 소탈한 표현들이 갖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헤르만 헤세가 살아내었던 100년 전의 세상은 평화를 사랑하는 그가 있기엔 참으로 혹독한 시기였던 거 같습니다. 조국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던 때였으니 말입니다. 반전주의자 인지 평화주의자인지 정의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자연과 평화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 만약 내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처럼 나라 사이에 경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이 세상에는 아마 전쟁도 없고 국경 폐쇄도 사라질 것이다. 경계보다도 더 혐오스럽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것은 마치 전쟁터의 장군들, 혹은 대포들과 같다. (중략) 전쟁이 벌어졌던 수년 동안 우리 같은 방랑자들에게 그런 경계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감옥 같은 것이었던가! 그것들은 악마한테나 가 버리기를!" p.61

   

   또 그는 구름과 정원, 숲, 숲속의 작은 길, 나무, 나비, 계절, 고향 등을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막연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 하나의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상을 가지고 있고 깊은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표현들을 대하고 있으면 저 스스로 '아, 나는 무슨 나무토막 감성인가?'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이래서 제가 시를 안 읽습니다. 정신만 멍해지거든요... 킁.

 

 

#3. 수채화를 그린다고 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삽화의 매력

 

   이 책의 책장을 넘겨 가면서 또 한가지 계속 마음에 남았던 것은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삽화였습니다. 삽화가 너무나도 글과 잘 어울려서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림에 대한 이해는 딱히 없으니 기술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느낌과 분위기가 제 옷을 입은 듯하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헤르만 헤세가 수채화를 그리는 장면에 대한 묘사를 읽었습니다. '아, 이양반 그림 그리잖아. 것도 수채화!' 그제서야 저의 살얼음처럼 얇은 배경지식을 한탄했습니다. 아놔. 이 책에 삽입된 삽화는 바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었습니다. 아 그르니 자기 글이랑 이렇게 잘 어울리지 원 참! 그렇습니다. 이 삽화로 인해 이 책의 분위기와 감동은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입니다.

 

 

#4. 그 외에 해야할 말말말...  

 

   애초에 잭 제목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 제목은 편집자가 직접 지으신 것 같습니다. 아님 말고.. 여튼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부재는 사실 좀 뜬금 없을 수 있는 주 제목이 책 잡힐까봐 살떨리는 마음으로 살포시 붙여준 표현이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렇더라도 부제를 빼고 읽어도 제목은 참 잘 어울립니다.

 

   이 책 자체는 헤르만 헤세가 직접 편집한 하나의 완성된 책이 아닙니다. "나비에 대하여"랄지, 헤르만 헤세 전집 중 일부랄지 뭐 이런저런 글들에서 이 책의 흐름에 맞는 글들을 발췌해서 엮은 글이 하나의 완성된 책이 된 경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전반적인 흐름이 부드럽습니다. 편집자가 고생을 많이 했다는 뜻이겠지요.

 

   딱 두군데서 오탈자가 있었던 것이 옥의 티였기는 합니다. 이런 건 책읽는 소소한 재미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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