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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습속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1. 한놈만 죽도록 패서 결국 잡아들이는 집요함을 만나다.
[시간이 습속]은 셀 수없을 만큼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 낸 세이초옹이 유일하게 속편으로 만들었던 작품입니다. [점과 선]에서 보여주었던 도리카이와 미하라의 주거니 받거니 콤비 플레이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속편인 만큼 [점과 선]에서 보여주었던 운송수단을 이용한 알리바이 깨기가 좀더 본격화되어 등장하는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작부터 사건정황 설명하자마자 용의자를 딱 찝어서 시종일관, 끝날 때꺼정 갸만 막 뚜들겨 패는 것입니다. 하 근데 맞는 놈이 그러거나 말거나 실실 웃어요. "어차피 알리바이가 있어 날 못잡아가잖아? 맘대로 하셔요^^" 이라고 버티더란 말입니다. 이게 읽는 사람도 참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열받게 합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범인은 누구일까? 따위의 생각은 하덜말어. 이라믄서 범인은 어차피 저놈이라니깐 하며 잡아들일 결정적인 단서를 하나 둘 모아가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 계속 머리속으로 온갖 추리를 다 하고 증거와 알리바이를 맞춰가며 확인을 해나가서 결국은 잡아내고 말더란 말입니다.아따 징하고 독하다. 별로 돈도 안되는거... 여튼 끝나는 순간까지 달리고 달리고 달리는(사실은 주로 머리로만 달리거나 다른 사람들이 달리는 거지만) 로드 미스터리가 되더란 말입니다.(요즘 볼 수 있는 하드보일드랑 비교하면 큰일납니다. 완행열차와 KTX의 차이가 될 갭니다.)
#2. 시원하게 쭉쭉 읽히는 가독성인데 책장 넘김은 더딘 경험이라..
[시간의 습속]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바로 가독성입니다. 흡인력이 대단합니다. [점과 선]에서 이미 주요 인물인 도리카이와 미하라를 잘 알고 있어서인지 캐릭터에 적응할 필요도 없다보니 시작! 하면 벌써 엄청난 가속도로 쭉쭉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웃기는게 내 머리속은 계속 책을 읽고 있는데 정작 책장은 늦게 넘어가는 부분이 자꾸 생깁니다. 주인공 미하라가 주어진 정황과 비행기나 열차시간, 그리고 주요 인물들의 증언을 토대로 계속 추리를 합니다. 그러면 저는 미하라 옆에 앉아서 듣고는 훈수를 두고 있는 것이지요. 미라하가 한참을 추리하며 생각하는 것이 적혀있는 부분을 읽으면서 '아따 이양반 참으로 답답하네, 그게 아니지. 거기서 제 3자가 대신 타고 가서 갸가 하고 중간에 만난거지. 에헤이 참나..' 뭐 이러느라 진도가 안나가는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었죠. 그리곤 뒤에 제 예상이 맞아 떨어지면 '거봐라 거봐 그걸 생각 못 하나? 빨리빨리 가봐' 이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중반부 넘어가서는 미하라를 훈수 두기를 포기하고야 말았습니다. 제가 전혀, 조금도 생각 못했던 변수가 등장하면서 멘붕에 제대로 빠졌습니다. '에..또... 이것이 뭐다냐... 아우 모르것다. 포기. 포기.' 하는데 미하라와 도리카이는 묵묵히 변함없이 추리하고 확인하고 찾아내는 일을 뚝심넘치게 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그저 어떻게 되어가나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전락하게 되어버립니다. '아, 내가 깝치기에 이 트릭은 너무 정교해...' 이런 상황이 되 버린거죠. 아.. 대단한 것들...
#3. 우리의 관습을 파고드는 시간 문제를 결국 파헤치다...
"습속"이란 습관이 된 풍습을 말합니다. 이 시간의 관습성이 철저히 준비한 트릭을 정교하게 지지해 주어 그것을 파헤치는데 엄청난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이러한 편견과 선입관들을 깨고, 흐름을 거슬러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보니 읽는 사람도 꼼짝없이 주인공들과 같이 알리바이의 완벽성에 갖혀버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속이 터지지요.
"인간은 절대 틀림없다고 믿어버리면 언젠가 그것이 마음에 맹점을 만듭니다. 착각하고 있으니까 바로잡을 생각조차 들지 않지요. 이 점이 무서운 겁니다. 아무리 괜찮다고 믿었어도 다시 한번 그 믿음을 깨뜨려볼 일입니다."p83
이 책을 읽는 묘미 중 하나는 일본의 1960년대 특징들을 재 미지게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창 지금이라면 거의 CCTV나 위치추적 등으로 다 해결될 일을 일일이 쫒아 다니면서 조사하게 됩니다. 얼마전 개봉했던 "감시자들"에서 처럼 온갖 CCTV를 장악해서 행적을 추적하면 이정도 알리바이야 금방 깨지는 것이죠. 그 당시 시대적 한계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읽어야 더욱 재미지고, 또 한편으로 아, 그땐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필름 카메라로 트릭을 쓰는 장면에서는 '으응? 필름 카메라로 그런 것도 가능한거였어? 희한하구만'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알라바이 깨기를 위해 시작부터 미하라는 그리 유력하지도 않은 용의자 미네오카를 '뭔가 의심스럽다, 석연치 않다. 왠지 범인이 확실한거 같다' 등의 이유로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의혹이 다 해결되어도 다시 의심하고 찾아내고를 반복합니다. 이 과정 자체가 좀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확실한 근거도 없는 용의자를 계속 물고 늘어지는게 가능할지요. 빨리 다른 방향으로 수사를 전환하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이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데 상부에서는 여러가지 상황을 다 용인해줍니다. 이 지점이 조금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습속]은 상당히 기분좋게 읽고 감탄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더욱 세이초옹에게 팬심이 강해지는 작품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번에 출간될 "10만분의 1의 기적"을 또 기다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작품 자체가 다음 작품의 셀프 뽐뿌가 되는 세이초옹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참, 전 북스피어, 모비딕의 세이초월드 시리즈 표지를 너무도 좋아합니다. 어여 오라~~ 컴컴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