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강 -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87
김선희 지음 / 사계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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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의지와 무관하게 점점 옥죄어오는 현실 앞에선 여린 영혼

 

   "영원의 아이", "가족사냥", "애도하는 사람"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텐도 아라타는 성장기에 가족 때문에 힘들었던 체험 때문에 '가족이란 것이 마냥 행복을 주고, 서로를 지지하는 아름다운 공동체'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표현하고자 소설을 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뭐랄까? 경우에 따라서는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 바로 가족이 아닌가 하는 섬뜩하지만 상황에 따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소설속에 구체화한 것이죠. 좀 충격적인 방식을 써서라도 말입니다. 실제로 가족이라는 것은 내가 원해서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물론 결혼을 통한 가정을 이루는 상황은 어느정도의 자유도를 허락한다고 볼 수있겠습니다만 내 아버지, 어머니를 자판기에서 동전 넣고 선택하듯이 뽑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여기 [더 빨강]의 주인공 '나'도 동일한 상황입니다. 평범한 학생인 주인공이지만 사고로 머리를 다쳐 7살 지능이 된 아버이와 가족 부양을 위해 치킨집을 운영하게 된 어머니, 그리고 치킨집 배달을 돕는 형 때문에 방과후에는 고스란히 철없는 동생같은 아버지를 양육(?)해야하는 답답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당연히 경제적인 여유는 없을 분더러 언제 집이 헐리고 비워줘야 할지 모르는 재개발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보상비는 이미 치킨집을 꾸리는데 써버리고 없습니다. 나중에는 믿었던 형마저 주식에 손을 대 엄청난 빛만 떠 안기고 집을 나가버립니다. 건조하게 쓰여진 이 상황은 정작 본인에게는 생각보다 미칠 듯이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긴 터널도 언젠가는 빠져 나간다는 희망으로 지날 수 있는 반면 주인공에게 주어진 이 상황은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크게 나아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치 않는 상황도 괴롭지만 그 상황이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는 현실앞에 처하게 되면 정말 숨막히는 공포가 되는 것입니다.

 

 

#2. 성장소설의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한 책

 

   국내 소설은 대체로 가족이 아무리 콩가루라도 결국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원치 않는 상황에 놓인 주인공이 이 상황에 익숙해지고 극복해가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그려주는 것이 성장소설의 일반적인 규칙입니다. [더 빨강]의 경우도 여러가지 변수와 여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기존 패턴을 변함없이 이어갑니다. 몇가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점차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여지없이 깨닫고 한단계 성숙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매우 전형적입니다.

 

   다행히 이런 전형성에도 이 소설이 식상하지 않은 것은 그 속에 흥미로운 설정들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7살 지능이 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도 흥미롭습니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 아버지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해줍니다. 원래 현실의 무거운 무게감 앞에 말없고 때로는 폭력을 휘두르게 되는 아버지가 동심을 회복했을 때 오히려 가족과 집을 지키려는 본능을 보여주는 설정이 의미심장합니다. 또한 성장기의 성에 대한 상상과 해소법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부분이나, 매운것을 좋아하는 클럽에 우연히 들어가서 고생하는 모습, 자살여행 해프닝 등은 이 소설을 지루할 틈 없이 만들어 줍니다.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하고도 충실한 책입니다.

 

 

#3. 그래도 가족 

   더 빨강에 나타난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성장기를 대변하는 느낌입니다. 그 중 원치않는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타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은 그럭저럭 무난하게 자라나거나 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지랄총량의 법칙에 의해 주어진 지랄을 최대한 성장기에 땡겨쓰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그것도 아니면 아예 가족을 버리다시피 하고 독립을 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성장기에는 과도한 부모님의 관심과 간섭, 또는 지나친 무관심 때문에 힘들어하게 됩니다. 그리고 커다란 원을 그리듯이 나이가 들고 아이가 생기면 그렇게도 욕하던 내 부모님과 닮아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욕하면서 닮는 것이 바로 부모의 모습이지요. 잘났거나 못났거나 결국은 또 대를 이어 가족을 이루어갑니다. 그렇게 서로 부족하고 흠 많은 모습을 떠 안고 상처를 주고 받으며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렇게 원망하고 탓할 대상이 있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도 하면서 말입니다.

 

 강렬한 성장소설 [더 빨강]은 우리가 공감할 만한 성장기의 문제를 아주 썩 잘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금방 읽어집니다. 초반에는 '이거 뭐 썰렁한 성장소설인가?' 했다가 점점 빠져들어가 읽었고 감동도 있었고 지난 저의 성장기를 돌아보게 해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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