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여자 ㅣ 밀리언셀러 클럽 137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1. 남자는 '못먹어도 고다', 험프리 보가트식 하드보일드가 빛나는 미스터리 소설


   남자와 여자의 사랑법에 대한 차이를 흔히 화성인 Vs 금성인으로 표현하곤 합니다. 그만큼 남녀의 사랑법에는 차이가 큰 법인데, 보통 남자들의 사랑법은 이런 식이라고 합니다.


- 사랑에 아주 쉽게 빠진다 : 지나가는 여자의 향기와 뒷모습만으로도 사랑에 빠진다.

- 사랑에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 그만큼 뜨거운 반면에 빨리 식는다

- 이별앞에서 울지 않는다 : 이별을 아쉬워 하지만 또 다른 사랑을 준비하느라 바쁘고 울고 있을 새가 없다.


   그런데 적다보니 이거 진짜 일반화된 이야기들이 맞나 의심이 갑니다. 내 스스로도 전혀 동의가 안되고 주변의 남자들이 이런가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식의 정의는 남성에게 상처가 많은 여성이(?) 만든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노 료이치의 [환상의 여자]에 등장하는 남자주인공 '스모토 세이지'는 위의 정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물입니다. 잠시 만났던 한 여성(그것도 심지어 불륜녀)을 5년이 지난 후에도 전혀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남자입니다.


   5년만에 잠시 스치듯 만난 그녀, 그리고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 죽음에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음을 발견하는 주인공은 사건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진상을 파헤치는 험난하고 복잡한 과정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나갑니다. 그 결과로 맞닥드린 진실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대면하고 받아들이며 결국은 원하는 진실에 이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끝없이 달리고 달리다 맞고 다치고 죽을 뻔하는 위험에 처하기도 하는  주인공의 활극을 그린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 로드노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뽑을 만합니다. 재미있게도 보통 하드보일드 주인공들은 나름 주먹질도 곧잘하곤 하는데(아니면 총이라도 들고 다닌다) 우리의 주인공은 검도도 하고 건강에 이상도 없는데도 상대가 주먹쓰는 사람들이다보니 계속 얻어터집니다. 그래서 좀더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장점도 있습니다.


   단순히 미스터리가 등장하고 그것이 풀려가는 과정과 결말이 흥미롭다기 보다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사랑의 맹목성과 이기적 태도, 언듯 이해할 수 없는 끈질긴 모습, 그러니까 '도데체 이렇게 까지하는 이유가 뭔가?' 하는 생각이 날만큼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모습, 자신에게 생소한 어둠의 세계와의 조우,  사랑의 본질에 대한 고뇌 등의 일련의 과정은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

#2. 어그러진 사랑의 짧은 환상, 그 회복을 위한 눈물나는 투쟁에서 배어나는 인간의 속성

 


​   주인공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사건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폭력조직들의 파워게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맹목적으로 사건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채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필요만 채워왔다는 후회, 적어도 5년이상 지속해왔던 그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항상 내가 보고싶은 대로밖에 보지 않았던 것이다. 딱딱한 껍질 속에 너무나도 부드러운 웃음을 지닌 여자. 하지만 그 웃는 얼굴 속에서 나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을 뿐이다. 누구에게서 아무것도 기대받지 않는, 마음 놓을 수 있는 곳, 기대받고 있는 것은 단지 일정한 시간뿐. 내가 그곳에 있은 것뿐. 그것은 내가 멋대로 그리고 있었을 뿐인 곳이었다." p.403


"나와 만났을 때 그녀는 고독했다. 그전부터 계속 고독했고, 나와 만났을 때도 고독했고, 그리고 나와 함께 보내고 있어도 또한 고독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고독을 몇 분의 1만큼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 자신만을 밀어붙이려 했을 뿐."p549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녀를 둘러싼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계속해왔던 고민이 깔끔하게 해소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자신이 귀만 남아서 이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흘러 들어오는 말을 정리하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바라서 안 것임에도 불구하고 비겁하게도 후회감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중략) 이것이 당신이 알고 싶었던 사실이라는 녀석이지. 이만큼 들었으면 만족하시나?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어진 내게 가오루코는 다시 한 번 "만족해?"라고 도발하는 듯이 물었다." p.662~3


   그녀의 주변에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야 받게 된 그녀의 편지를 통해 죽음 직전 그녀의 진심을 뒤늦게 읽게되는 주인공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일어났던 혼란을 어떻게 정리할지 ​마음을 어느정도 정하게 됩니다.


"가슴의 아픔이 당분간은 낫지 않겠다는 것을 깨달은 한편, 나는 또 하나의 사실도 깨달았다. 자신의 마음에 억지로 마무리를 지을 필요 따위 없었다. 억지로 잊어버리려고 애쓸 것도, 그녀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 것도, 하물며 안녕을 고하려고 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내 안에 살아 있다. 울고 싶으면 울고, 몸부림치고 싶으면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내 안에서 죽어버린 누군가가 계속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는 결코 사라지지는 않고, 조금씩 멀어져 갈뿐이다. 그렇게 지독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눈을 감고 바라기만 하면 언제든 그녀를 만날 수 있다." p685

​

   저는 이런식의 결착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3. 어쩌면 치명적인 약점이 될지도 모를 치밀하고 섬세한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동기 



   한 남자의 대 활극이자 모험담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 [환상의 여자]는 주인공의 심리묘사와 독백, 각종 정보들을 정리하고 판독하는 과정들을 촘촘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지나치게 디테일하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과유불급이라고 이런 디테일한 묘사와 전개를 받아들이는 독자의 성향에 따라서는 상당히 지루해지거나 흥미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반 정도 들어서면 슬슬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 부인도 아니고 처자식도 있는 사람이 술집 여자와 불륜을 저질렀던 일인데 오히려 잊고 싶고, 묻어버리고 싶은 기억인 것이 상식적이지 그 여자가 누구인지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찾고 싶어한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하는 의문 말입니다. 주인공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라고 받아들이면서 이야기에 끌려가지만 한 순간 근본적인 이 활극의 동기가 납득이 안되면 이 책을 읽는 리듬이 바로 무너지게 되는 작품입니다. 게다가 700페이지에 달하는 긴 내용이기까지 하니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30대 중반의 남성이 자신의 과거와 화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런 과정과 그속에서 갈등하고 의지를 불태우는 과정들이 무척이나 공감이 되고 대리만족이 되었습니다. 한 남자의 악착같은 노력이 섬세하게 묘사되는 이 작품은 끈적끈적한 하드보일드의 진수를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마치 나의 분신이 책속에서 끝없이 돌아다니며 진실을 알려고 하는 느낌이 들어 너무 몰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한 여자의 죽음 뒤에 감춰진 사실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과정도 미스터리적 요소를 충분히 만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빈틈없이 잘 짜여져 있어 그것 만으로도 무척 훌륭한 작품입니다. 저에게는 역시 성인 남성이 주인공인 1인칭 소설이 제 취향에 잘 맞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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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개척자 ㅣ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7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안태민 옮김 / 불새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1.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작품적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극히 미국적인 SF 대작..


   믿고 보는 SF의 그랜드마스터 하인라인 선생님의 [우주의 개척자]는 상당히 미국적인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미국의 개척자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각각 배우자가 없고 아이가 있는 남녀가 합쳐진 가정의 성장기 남자 아이가 화자입니다. 아무래도 이런 조건이다보니 가정문제가 덩달아 끼어드는데,  이 부분 때문에 더욱 성장소설 같은 늬앙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미 우주 왕복선이 활발하게 여러별들로 왕복을 하고 있던 시기, 지구 인구의 수용한계가 넘어서는 상황에서 목성의 위성인 "가니메데"로 이민을 떠나 그곳에 정착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짧게 요약된 스토리를 대하면 벌써 영국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던 메이플라워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미국이 영국과의 식민지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독립전쟁을 벌여 독립을 쟁취하는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게다가 미국에 이주한 이주민들은 그곳에 버젓이 토착 인디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뚝만 박으면 내땅이라고 우기며 땅을 넓혀갔던 것까지 막 중첩되어 떠오릅니다.


   미국의 이런 개척사와 하인라인의 [우주의 개척자]의 이야기는 거의 평행이론이라 할 만큼 닮아 있습니다. 그저 미국의 초기 역사의 배경을 우주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심지어 우주 이민자들을 "가니메데"로 옮겨줄 우주선의 이름도 '메이플라워' 호니 말다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개척지에 도착해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이 자영농이 되어 돌덩어리인 땅을 농지로 만들어 작물을 재배하는 일입니다. 미국인들의 개척정신과 땅따먹기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또 하나의 특징은 소설에 등장하는 과학적 이론이나 표현들이 그다지 신선하거나 놀랍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소설이 1953년 작인데다가 SF계의 그랜드 마스터 님이시니 얼마나 많은 후배 작가들이 영향을 받아서 이 이론들을 접목하고 발전시켰겠습니까? 그런데도 이 소설이 여지껏 살아남아 출간된 것을 생각하면 하인라인 선생이 우주의 개척자는 아닐지라도 SF의 개척자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오래되도 너무 오래된 이 소설이 지금 시점에서 읽으면 식상할 수도 있는 내용들이지만 그 당시의 과학수준이나 환경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우주여행에 관한 이론들은 지금도 거의 실현되지 않고 있지만 전혀 생뚱맞게 들리지 않는 것은 과학적 이론들이 탄탄하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읽히기 보다는 '아, 그런가보다..' 정도의 설득력은 충분히 있다는 의미입니다. 엉뚱한 이야기이지만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조리기구 "퀵소"같은 것은 흥미롭습니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쓸 당시는 전자레인지가 발명되지 않았을 시절인데 이 "퀵소"라는 조리기구는 딱 지금의 전자레인지 같은 역할을 합니다.




#2.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러니한 특징이 돋보이는 SF


   다른 SF 작가들의 글을 별로 접해보지 못해 어떻다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하인라인 선생의 SF는 그야말로 딱 Science Fiction입니다. 통상 SF에 원플러스 원처럼 끼어드는 환타지가 거의 없습니다. 이 부분이 저에게는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SF에서 과학적이고 이론적인 내용에 설득력을 부여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 환타지를 접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와쿠와쿠족이라는 우주의 생명체가 와서 만들어줬다."라고 하면 세상 누가 "와쿠와쿠족이 그걸 어떻게 만드냐?"라고 따질수가 있겠습니까? 만나본 적도 없는데.. 뭔가 미심쩍지만 그렇다치고 읽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하인라인의 [우주의 개척자]에는 미지의 존재가 전혀 등장하지 않(막판에 미지의 존재가 만든 물건은 등장함)습니다.


   개척지 우주 "가니메데"로 떠나기 위해 우주선이 발사되는 순간부터 벌써 돌아가겠다고 싸우는 사람이 등장하고, 지구나 달을 구경하기 위해 창가를 독점하고, 우주선 선장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막무가내 인원들이 등장합니다. 그 와중에 우주선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자치기구를 만들어서 규칙을 정하고 우주여행기간 동안 생활수칙을 만들고 서로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비단 우주선을 통한 우주여행이 아니더라도 인간세상 어디를 들여다봐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설정과 묘사들이 이 작품의 리얼리티를 유지해줍니다.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 인간세상인데 지금보다 미래의 이야기다.' 이런 인식 말입니다. 


   지구에서 떠날때는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황금빛 약속을 해주지만 막상 "가니메데"에 도착한 사람들은 현실의 매서움에 당황합니다. 그러나 곧 그곳의 일원이 되어 무책임한 지구와 이곳 "가니메데"사이의 엄연한 입장차이를 확인하게 됩니다. 서로를 위해 자급자족을 실현해 독립하고자 본토를 적대시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개척 당시 미국과 영국의 대립이 떠오르게 합니다. '인간사 어디가나 똑같구만'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개척지인 "가니메데" 내의 문제에서도 선 이주민과 후발 이주민과의 소유물 차이에서 오는 빈부격차, 갈등에 대한 설정들이 무척이나 현실적입니다. 먼저 농지를 일구고 그 생산수단을 발판으로 지속적으로 땅을 넓혀가는 초기 이주민과 위원회에 큰 빚을 진채로 거친 돌과 큰 바위 밖에 없는 황무지를 개간해야하고 정해진 기간내에 개간한 농토를 갚아야 하는 후발 이주민간의 간극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생산수단의 소유 유무 때문에 도저히 격차를 좁히기 힘든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와 비교해도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런 문제는 적어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한 끝없이 지속될 문제라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

 

   하인라인의 [우주의 개척자]에 나타나는 이런 당면 현실과 그 속에서 가진 것없이 맨몸으로 부딪히고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가족의 이야기는 세계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이 가장 부유하고 번창하며 개척자 정신이 빛났던 1950년대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로 치면 IMF 이전 한창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던 1980년대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나라도 한창 안정된 직장보다는 벤처창업 등의 새로운 도전과 개척을 추구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해 주었던 작품입니다. 다만, 화자가 어린 아이이다보니 서술 내용을 완전히 공감하기에 방해가 된 건 사실입니다. 작가의 의도는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달을 판 사나이"때처럼 성인 남성이 주인공이자 화자였다면 더욱 공감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3. Home..

 

   이 작품에서 주요한 테마 중 하나는 "Home", 고향입니다. 인간이 개척자 정신을 폼내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용기와 동시에 가지게 되는 근원적인 마음은 고향으로의 회귀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돌아갈 고향을 잊는 인간은 자신 본연의 기반을 잊는 것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누리기도 하지만 도전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 그리고 도전 중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돌아갈 고향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고 다시 나아갈 힘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미 떠나온 개척지가 각자의 새로운 고향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태어난 후세는 그 곳이 실질적인 고향이 되는 것이지요. 이 작품에는 이러한 고향에 대한 향수, 의미, 새로운 의미부여 등이 깊이있게 표현됩니다.

 

"아빠, 우리는 왜 이곳에 왔을까요?" "으음.. 네가 원해서 온 거잖니. 기억 나지 않니?". "저도 기억은 해요." "뭐, 네가 이곳에 온 진짜 이유, 근본 이유를 말해보자면 아마 네 후손들에겐 굶주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겠지. 지구는 이미 너무 인구가 많으니까. 빌" 나는 하늘의 지구를 다시 쳐다보고 말했다. "아빠, 제가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인생에는 하루 세 끼를 풍족하게 먹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만 한다는 걸요. 분명 이곳에서는 먹는 건 풍족할 거예요. 이곳에서는 당구공에서도 풀이 자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곳으로 온 것이 후손들에게 좋은 결정이 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들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이제야 제 실수를 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p183

 

   지구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진 목성의 한 위성에 마련된 개척지에 도착하고 우리의 고향과는 전혀 다른 환경을 몸소 접한 주인공 빌은 단지 먹고사는 문제만으로 인간이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자연재해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이겨냅니다. 그리고 자신이 서있는 바로 그곳이 새로운 고향임을 인식합니다.

 

"태양의 빛줄기는 이제 농장의 집들의 지붕 꼭대기까지 닿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검게 보이던 <고요의 호수> 수면 위로 퍼져나가 호수를 보라색으로, 그리고 다시 파란색으로 변화시켰다. 이곳이 내가 사는 별이며, 이곳이 내 고향이었다. 나는 이곳을 절대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p256

 

로버트 A. 하인라인의 1953년작 [우주의 개척자]는 시대적 한계로 인해 가부장적인 가정의 묘사, 현재시점에서는 다소 진부한 이론, 다분히 미국적인 발상과 전개 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SF의 명작임은 분명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환타지가 쏙 빠진 오리지날 SF의 매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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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금지, 에바로드 - 2014 제2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연합뉴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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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덕들의 세계를 들여다 보다


   이 책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수림문학상 심사위원이셨던 정이현 작가님이 진행중인 팟캐스트 낭만서점에 소개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하도 독특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정주행해본 적이 없던 "에반게리온"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과 고액의 비용을 들여 별 대단할 것도 없는 스탬프 랠리를 국제적으로 참여하는 청년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에서도 풍기듯이 오타쿠 들을 위한 소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읽기전에 준비해야할 사전 작업이 좀 있었습니다. 먼저, 이 책의 발단이 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을 봐야했습니다. 몰라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재미는 있을거라 예상은 했지만 어차피 뭐가 되었건 잘 알고 보는 것과 모르면서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일단 전편을 준비는 했는데 초기작인 TV판 시리즈만 겨우 보았습니다. 그림이 훌륭한 것도 아니었고 나름의 고민과 철학이 묻어 있었습니다만 그야말로 오타쿠적인 내용이다보니 이나이에 저를 뒤흔들거나 빠져들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13세 소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년식이 너무 많이 된 것도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들에게 감정이입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이 소설의 발단이 된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아야 했습니다. 에반게리온 오덕인 두 청년이 앞서 설명한 4개국 스탬프 랠리를 참여하는 과정을 제작한 다큐멘터리 [에바로드]가 바로 그 문제의 영상이었습니다. 작가는 이 다큐와 다큐의 주인공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해서 사실 7 : 상상 3의 황금비율로 [열광금지, 에바로드]라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다큐를 안보고 이 책을 읽는 건 어불성설이었습니다. 네이버 VOD로 서비스 중이어서 2000원을 지불하고 다큐를 보았습니다.


에바로드

감독
박현복
출연
박현복, 이종호, 양승석
개봉
201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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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다큐였고, 충분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오덕이 생소한 제 입장에서는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한편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면서 잘 봤습니다. 이런 저런 준비과정을 거치느라 사다놓고 꽤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의 애니메이션도 보고, 다큐도 보고, 소설도 읽으면서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해 눈을 떠서 좋았습니다. 배움이란 시기도 한계도 없는 것이지요. 오덕들의 세계를 조금 들어다보고 그들을 통해 저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게 되어 아주 유익했습니다. 이 책은 쉬지않고 한번에 읽었을 만큼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오덕들의 세계에 슬쩍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2. 오덕이란 무엇인가?


   오덕이라하면 '다섯가지의 덕'을 떠올리시는 분은 참으로 고상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지금의 오덕은 '오타쿠' 또는 '오덕후'의 준말입니다. 오덕후는 특별한 의미, 이를테면 "자신의 덕을 두텁게 하자" 뭐 이런 훌륭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편하게 발음하고 쓰다보니 파생한 단어입니다. 아무 의미없습니다. 굳이 뜻을 더한다면 "국산", "토종 오타쿠" 정도의 의미를 더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적으로는 오덕이나 덕후라고도 부릅니다. 그렇답니다. 제 주변엔 이런게 오덕이니 덕후니 이런 단어를 써서 바로 알아들을 분이 별로 없습니다.


"'덕'이라는 단어를 이런 식으로 활용한다. 덕심=오타쿠들의 심리. 덕부심=오타쿠들의 자부심. 덕질=오타쿠 활동. 덕력=오타쿠인 정도. 덕친=오타쿠 친구. 양덕=서양인 오타쿠. 밀덕=밀리터리 오타쿠. 탈덕=오타쿠이기를 그만둠" p9

  

   그러니까 무언가에 빠져있는 것을 "덕"이라고 해야하나 싶습니다. 그밖에도 어떤 계기로 덕질에 입문하게 되는 경우를 "입덕", 덕질을 쉬는 경우를 "휴덕", 덕질은 그만두는 경우를 "탈덕"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밖에 부적절한 "씹덕"이니 "씹덕후" 뭐 이런 나쁜 표현도 있나 봅니다. 이런 덕에 관련된 내용을 하나하나 알아가니 놀라운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런거죠. 그동안 모르던 은밀한 무언가를 조금씩 엿보는 기분같은거? '나도 오덕기질은 있는데..'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어차피 책에 관련해서는 뒤늦게 오덕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시도 합니다. 아직은 초보지만 덕력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노여사는 서서히 탈덕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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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에 가장 좋았던 단어가 바로 '덕업일치'였습니다. 그러니까 덕질을 하는 대상이 바로 직업이 되는 환상의 경지죠.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서 오덕질을 해오다보니 유명해지거나 전문가가 되어서 그대로 직업으로 연결되어서 덕질로 밥을 벌어먹는 상황 말입니다. 책을 좋아해서 읽다가 급기야 책을 만들어서 돈을 벌거나, 소설이나 에세이 또는 전문서적을 써서 전업작가가 되는 것이죠. 아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 버리면 즐겁게 계속 할 수 있을지의 문제 때문에 덕업일치가 좋은거냐 안좋은 거냐에 논란이 있을 수는 있는데 기본적으로 직업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버려서 전전긍긍하지 않는다면 좋은일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돈이 안되도 입에 풀칠할 수만 있다면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고 얼마 안되는 시간에 힘들게 덕질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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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처럼 크게 치우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어릴때 뭔가 대책없이 덕질을 좀 해볼껄 그랬나?'하는 ​생각을 종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책의 내용에 많이 몰입했습니다.


 


#3. 열광금지, 에바로드! 그는 왜 오덕이 되어 덕질을 하는가?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이 소설이 에반게리온에 빠진 청년의 행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그래서 스탬프 랠리에 대해서는 언제 나오나 싶었는데 정작 작가의 관심은 주인공이 오덕질을 하게 된 근본 원인부터 그것이 한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에 주목하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전형적이지 않지만 결국 주인공의 성장스토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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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그는 오덕이 되어 덕질을 일삼는 것일까요? 그것도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전세계 그 많은 에반게리온 오덕들 중 유일하게 혼자만 4개국 순방 스탬프 랠리를 성공한 것일까요? 중간에 보면 회사에서 중요한 마감일이니 휴가를 쓰지 않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상사의 압박에 '휴가 결재 해주지​ 않으면 사표를 쓰겠다.'라는 결심까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에반게리온 스탬프 랠리가 뭐라고 말입니까? 회사까지 때려치울 결심을 하고 내 생돈을 써서 통장을 바닥내면서까지 악착같이 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 이유는... 역시나 각자가 읽어보셔야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작가의 의도와 힌트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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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성장과정과 가정사, 그리고 주변환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열정을 불태울 일자리도, 환경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기득권층의 울타리만 점점 높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가 성장할 때에 비하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낭만따위는 생각도 못할만큼 세상에 편입하려는 혹독한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리잡기가 너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기성세대의 선택이자 책임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다른 모양새로 살아가는 젊은 인생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무척 가혹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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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광금지, 에바로드]의 주인공은 어려운 형편속에 때로는 방황도 해가며 악착같이 살아온 자신의 20대에 무언가 보상을 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지나온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30대를 맞이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속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선언하는 과정을 겪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탬프 랠리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저는 독립 저예산 다큐멘터리 제작감독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스스로도 자신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굳게 닫힌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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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명 작가가 소설속에서 인물의 세밀한 내면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원래 원작인 다큐멘터리 [에바로드]는 실제로 두명의 청년이 각자 영상제작과 OST를 나눠 맡았고 스탬프 랠리도 두명이 함께 떠납니다. 그러나 소설화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인생여정과 내면의 변화, 갈등과 고뇌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을 한명으로 설정하고 두 사람을 적당히 섞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참으로 적절했다는 생각입니다. 주인공이 원작처럼 두명이었다면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읽다보니 금방 결말에 도달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이 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적당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에 깊이 있는 주제의식과 적절한 내용진행이 무척이나 좋았던 맘에드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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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세계 편 (반양장) - 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 편 ㅣ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채사장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왜 지대넓얕이 인기인지 알 수 있는 필수 인문학 입문서


   '아들러 심리학'과 함께 단연 출판계의 화두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읽었습니다. 읽다보면 과연 인문학 서적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너무나 쉽고 명료하게 읽혀서 놀라울 정도입니다. 장르소설을 읽는 듯한 대단한 가독성이야 말로 이 책의 인기 비결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왜 이렇게 쉽게 읽어지는가를 따져보고 싶어집니다. 우선 저자인 "채사장"이 누구인가 궁금합니다. 저보다 훨씬(?) 어린 저자 "채성호"씨는 대학시절에 하루에 한권씩 책을 읽을 정도로 독서를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다독가군요. 평범한 회사원에서 갑자기 책을 집필하셨던 모양인데 집필이 먼저인지 팟캐스트 [지대넓얕]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은 지난해 12월에 출간되었고 팟캐스트는 지난해 봄부터 시작했으니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팟캐스트를 들어보면 상당히 상식이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학입시 논술 강사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책이 전반적으로 가독성이 좋은 구어체로 쓰여있습니다. 딱딱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 '읽는 행위'에 있어서 탁월한 장점입니다. 또한 강의록이라 해도 좋을 만큼 설명이 명쾌하고 단순합니다. 구구절절 디테일한 내용을 완전히 생략하고 단순화시켜 독자가 딱 필요한 핵심만 읽고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마치 입시학원에서 "자, 밑줄 쫙~~. 이 내용만 외우세요. 이것만 기억하면 절대 틀리지 않아요."하고 알려주는 듯 한 느낌입니다.


   또한 중요한 내용을 두번 세번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중간요약에 마무리 요약까지 그렇지 않아도 단순화된 핵심을 여러번 반복하는 동안 독자는 자기도 모르게 내용을 소화하게 됩니다. 거기다 더 이해하기 쉽도록 중간 중간 단순화된 도표와 그림으로 이해를 더욱 돕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주욱 읽고 '뭔 내용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싶으면 본인의 이해력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이렇듯 심각한 것을 피하고 쿨하게 즐기기를 좋아하는 한편, 한가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을 여유가 없는 바쁜 생활 패턴의 현대인들에게 안성맞춤인 책인 것입니다.




#2. 먼저 숲을 보며 대강의 지형을 파악한다. 지형을 알고 내가 어디 서있는지 알아야 지적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이 책을 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지적인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이 세상이 돌아가는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일이 너무 복잡하고 어렵고 난해하게만 느껴지고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어쩔 수 없이 연예인의 가십이나 드라마, 영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름의 교양을 가지고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상식이 필요합니다.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지적인 대화에 목말라 있거나,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 복잡하다고 느끼거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현실적 제약으로 독서할 여유가 없거나, 대학에서 교양 수업을 듣기 전에 기초적인 지식을 얻고 싶거나, 미술관에 가면 무엇인가를 이해한 듯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거나, 가난하면서도 보수 정당을 뽑고 있거나, 정치는 썩었다고 습관적으로 말하면서도 뉴스는 사건 사고와 연예,스포츠 부분만 보거나,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불안 하지만 어디서부터 생각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p9 


   이 세상에는 사고를 체계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사를 A부터 Z까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으로 느끼고 부모와 학교로부터 학습받은 내용 중 일부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늘 노출되어 있는 미디어에서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며 별다른 비판과 노력없이 세상을 인식하며 살고 있지요. 하지만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이 모여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등을 명확한 관점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 또한 명료한 판단기준을 마련할 필요도 있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정확한 기준으로 나누고 단순화하여 전체적인 숲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뿔뿔히 흩어져 있던 점과 같던 지식 덩어리들을 일련의 흐름으로 꿰뚤어 선과 선으로 이어줍니다. 그리하여 전체적인 지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독특한 상황인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주체적으로 현 체제에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유익한지, 변화를 꾀하는 것이 유익한지 판단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매우 독특한 세계임을 아는 것, 내가 사는 세계가 지금까지의 인류 전체가 살아왔던 평균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모습은 아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 독특한 세계가 발 딛고 서 있는 독특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왜곡된 '세계'에 서 있는 왜곡된 '나'를 이해하는 것. 이것이 지적 대화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다." p105





#3. 가벼운 인문학 서적의 한계인가? 인문학 서적의 필수 요소인가?


   요즈음 가벼운 인문학 입문 서적이 유행이다 보니 전통적인 인문학 서적을 출판해 오던 출판사 관계자나 인문학자 분들의 걱정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가 인문학적 소양이 많거나 전문가였다면 개탄을 금치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문학이 인간들의 세상사를 이해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전제하에 작금의 현실은 깃털처럼 가벼움의 대 범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흐름에 저같은 사람도 일조를 하고 있고 말이죠.


   하지만 트위터를 필두로 다양한 SNS가 유행을 하고 카톡같은 메신저 프로그램이 통화를 대신하며 깊이있는 서적보다는 웹툰이 더 익숙한 이 시대에 '옛날에는 말이야...'류의 타령은 이미 한귀로 흘릴 정도의 가치도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저런 현실을 따지다보면 가벼운 인문학 입문서라고 하는 이 책마저도 묵직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편으로는 가벼움을 개탄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시대의 젊은이들은 가벼우나 신속하고 깊이는 없으나 유머와 위트는 넘칩니다. 게다가 의외로 깊이 고민하고 사색하는 일단의 무리들도 심심치 않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가벼움의 시대라고 단정짓는 것도 성급한 일반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예전보다 깊이있는 인문학 서적이 안팔리기는 안팔리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 예전은 정확히 언제를 지칭하는지 궁금합니다. 한 때 인쇄만 하면 찍는 족족 팔려나가던 전성기가 있었다라는 말을 풍문으로는 들었으나 점차 책이라는 매체 자체가 힘을 잃은 것이지 단순히 인문학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기야 제가 학창 시절에는 일년 사시사철 라디오에서 책 광고가 쏟아지던 시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과 같은 거시적인 인문학 입문서는 과연 우리의 인문학적 소양을 하향평균화시키는 부정적 역할을 하는 것인가 따져볼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인문학 입문서 없이 정통적인 인문학 서적이 계속 출간된다고 가정하면 인문학적 소양을 깊이있게 길러줄 수는 있을 것인가 따져보아야 합니다. 저부터도 책을 펼쳐 들었다가 잠들기를 반복하지 않겠습니까?


   전문적인 지식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워밍업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에서는 완전 문외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많은 현대인들에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중간에 연결다리 역할을 하는 안내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쉽게 개괄적인 부분을 소개해줄 안내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저같은 경우도 이 책을 읽다보니 전체적인 개념을 위해 생략된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더란 말입니다. 그리하여 기회가 된다면 좀더 디테일한 역사적인 사실을 찾아보고 싶고, 인상적이었던 미디어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책을 사서 읽어보고 싶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작해서 인문학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쌓아가는 접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같은 사람은 이정도 수준의 지식도 충분하지 얼마나 인문학을 깊이 공부해야 합니까? 우선은 이책부터 읽고 봅시다. 그러면 향후에 어떤 책들을 읽어서 지식을 더 쌓아갈지 고양있는 현대 지식인이 될지 갈길이 보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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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물 이야기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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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만나는 에도시리즈, 의외로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인문학적 소양도, 역사적인 배경지식도 전무한 저에게 일본 에도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에도시리즈"는 그 단어자체만으로도 범접하기 힘들 것만 같은 위화감을 조성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표지가 워낙 예쁘고 북스피어 책이다보니 왠만큼 성의를 갖추는 정도는 구입을 했습니다만 여전히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에도 시리즈라는 위압감 외에도 미미여사나 게이고 같은 작가는 워낙 다작하시니 뒤늦게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된 저로써는 엄두가 안난다고나 할까? 그런 이유로 기피하는 것도 있었더랬죠.


   여튼 언젠가는 읽기는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던차에 북스피어 홈페이지를 통해 [맏물 이야기]로 퀴즈를 냈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는 '아, 이참에 그럼 한번 읽어나 볼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렇게 읽게 된 에도시리즈 첫번째 작품이 바로 음식 미스터리라는 묘한 장르인 이 작품 [맏물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이 작품이 흥미를 끌었던 이유는 사실 제목 때문입니다. '맏물이라니 그게 뭐야? 가뜩이나 범접하기 어려운 에도시리즈인데 제목마저 생소하구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책을 넘겨볼 것도 없이 앞, 뒤 표지만으로도 충분히 궁금증이 해결되었습니다.


"맏물이란 과일, 푸성귀, 해산물 따위에서 그해의 맨 처음에 나는 것으로, 이걸 먹으면 '수명이 75일 늘어나기 때문에 길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중략) 사건 해결의 실마리는 서민들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맏물'에 있다!"


   뒷표지의 이 소개글만 읽어도 이 작품을 어떻게 읽을지 가이드가 되더군요. 참으로 친절한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에도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예전에 한번 찾아본 적이 있어 피상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그런 교과서적 지식은 이 책을 읽는데 딱히 도움이 안될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서민 실생활에 밀착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 뻔하지 않습니까? 디테일한 내용들이 나올거란 거죠. 용어가 생소하겠지만 일단 읽어나 보자 하고 펼쳐들었는데 의외로 읽어가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외국소설을 읽을 때 괴로운 부분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등장인물 이름입니다. 길고 비슷비슷한 이름이 여럿 등장하면 그놈이 그놈인지 그놈이 딴놈인지 첨 나온 놈인지 무지하게 헤깔려서 흐름을 놓치기 일수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맏물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상당한 이점이 있었습니다. 9개나 되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각 편마다 내나 그놈이 그놈.. 똑같은 주인공이 이야기의 중심을 딱 잡고 있습니다. 절대 주인공 '모시치'와 그 아내, 모시치의 두 부하 '이토키치'와 '곤조' 그리고 '유부초밥집 주인' 정도가 고정으로 출연합니다. 이건 왠만한 로봇만화의 공식과 비슷합니다. 이를테면 마징가Z가 되었건 그랜다이져가 되었건, 매칸더V가 되었건 여튼 늘 고정 주인공이 출연해서 적을 섬멸하는 스토리가 아닙니까? 침략해오는 적만 계속 바뀌는 구조죠. [맏물 이야기]도 사건을 의뢰하러 오는 사람과 사고친 사람, 숨기는 사람 등등이 바뀔 뿐이지 결국 중심 인물들이 북치고 장구치는 방식입니다. 이런 연작구조는 잡지에 한 편씩 연재하는 방식이다보니 아주 적합한 구조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재미있게도 매 편마다 주인공들이 등장할 때마다 "이 사람은 이런저런 사람이다~~"라는 설명이 계속 반복됩니다. 책 한권에서 인물소개가 9번이나 들어가 있다는 말이죠. 이 비슷한 인물 소개가 나올 때마다 재미있더군요. 후후.. 어쨌거나 두꺼운 책인데 등장인물 때문에 스트레스를 안받아도 되니 무척 좋았습니다.


   또 한가지 좋았던 점은 "옮긴이의 주석"이었습니다. 에도시대의 독특한 용어들이 수없이 등장하다보니 이게 뭔소리인고?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필연적으로 집중력과 흥미도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역사물의 한계일텐데 으응? 하는 용어가 나올 때마다 역자의 주석이 바로 달려있으니 사전찾을 일없이 옆에서 대신 찾아서 읽어주고 있는 듯한 상황이어서 읽어나가는데 지대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옮긴이 김소연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어디어디, 핫슨(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상차림 가운데, 장국과 함께 맨 먼저 나오는 안주 요리)은 '별미 설 음식'이라니~~(중략) "다음에 나온 '국화잎 가이시키(음식을 담는 그릇에 까는 것)'라는 건? 아아, 삶은 달걀인간."(중략) "다음에 나온 국도 도밋국으로, 도미 쓰쿠네(생선을 다져서 으깬 어육이나 닭고기를 갈거나 저민 고기 등에 계란,녹말 등을 갈아 섞어 둥글게 만들어 기름에 튀긴 요리)에 색깔을 내고~~"p340


   이렇게 모를만한 단어만 나오면 바로바로 주석을 달아 주시니 편히 읽을 수 밖에요. 부담스러웠던 에도시리즈를 접하고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라고 선입관을 깨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바로 이 주석이 아닐까 합니다. 어렵지 않네요. 계속 읽어봐도 좋을.... 아니.. 계속 사모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마츠모토 세이초 Vs 미야베 미유키


   이 연작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히 세이초옹이 떠올랐습니다. [맏물 이야기]속에 담긴 작품을 세개쯤 읽었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 이거슨 무언가 세이초옹의 향기가 풍긴다..'싶은 생각말입니다. 그러면서도 '아, 이거슨.. 한편으로는 무척 다른 느낌이구나'하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세이초옹의 역작 '잠복'이 단편집이라 [맏물 이야기]를 읽을 때 가장 떠올랐는데 마츠모토 세이초하면 다들 잘 아는 바와 같이 미야베 미유키가 스승이라고 할 만큼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대선배이자 개인적으로는 저를 미스터리의 길로 인도해준 은인같은 분이신데 말입니다. '잠복'의 신선한 충격은 그보다 훨씬 재미있는 소설을 많이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불가한 것입니다. 첫경험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세이초옹이 단순한 문제풀이식 미스터리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사회적 문제와 실상을 많이 담았기에 이야기속에 인간이 부각되고 그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인데, 미야베 미유키의 이 작품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비록 시대가 과거이기는 하나 결국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인간의 속성에 대해 잘 다뤄주고 있기에 좋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세이초옹은 상당히 남성미가 넘치고 박력이 있어서 한편으로는 무척 무심하고 건조해보이는 문체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미미여사의 이 작품은(읽은게 이거 뿐이라 미미여사의 작품은 이라고 도저히 못하겠다...) 상대적으로 무척이나 부드럽고 세심하면서 조금 더 세련된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내용상 두사람다 사회파로 분류하겠지만 세이초옹의 글이 읽고나면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것이 있다면 미미여사의 에도시리즈 중 이 작품은(아, 이거 비교자체가 무리일 정도로 성급한 일반화가 아닌가 계속 의심하고 회의하고 있음...) 깊은 여운은 없지만 따뜻한 느낌이 더 강하게 남는다고 해야겠습니다. 물론 미미여사의 현대물 중에는 엄청나게 충격을 주는 작품들이 꽤나 있지만 말입니다. 적어도 에도시대 이야기라면 조금은 더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풀어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3. 작품속에 녹아있는 따스함,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


   [맏물 이야기]의 각 단편들이 한결같이 따뜻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이유는 역시나 주인공 '모시치'의 됨됨이가 단단하고 바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담스럽지 않도록 편안하고 엉뚱한 모습도 보여주지만 중요한 판단앞에서 공정하고 정의롭게 하되 법이나 지침이 "인간"보다 앞에 있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역시나 인간사에 중요한 것은 '원칙'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도리'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주로 서민들에 의해 우주평화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를테면 감정적 불만과 그 해소)로 살인이 나고, 범죄나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자간의 알력다툼이나 정치권력 싸움이라면 긴장감 넘치기야 하겠지만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맛을 느낄 수는 없겠지요. 하루벌어 하루사는 서민들의 등장이 잦은 것이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또한 매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유부초밥집 가게주인님의 존재도 이 작품 전체의 스토리를 하나로 이어 통일감을 부여하고 각 스토리마다 매듭이 풀리는 중요한 지점 역할을 담당하므로써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도 사건을 풀어나가야할 주체인 '모시치'가 벽에 막히고 답이 안나올 때마다 이 유부초밥집에 들렀다가 결정적인 힌트를 얻어 돌아가곤 합니다.


   유부초밥집 가게주인이 대단할 만큼 음식솜씨도 좋게 설정되어 있지만 무엇보다 상당히 지혜롭습니다. 주인공에게 충분히 방향제시도 하고 결정적 힌트를 슬쩍슬쩍 던지기도 합니다. 이런 인물의 설정은 여러가지 이점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독자입장에서 작품을 읽어나갈 때 상당한 안정감을 주고 이야기속에 빠져들었을 때 의지할 만한 여지를 주는 존재라 좋았습니다.


   초창기에 쓰여진 6개의 이야기에 이어 별도로 이후에 쓰여진 작품까지 구성된 이 소설집은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미가 넘쳐 기분좋게 읽을 수 있어 더없이 좋았습니다. 이제 시작이라 아직 생소하지만 에도시리즈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하나 읽어나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첫 시작이 [맏물 이야기]라 의도치 않았지만 좋은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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