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금지, 에바로드 - 2014 제2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연합뉴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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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덕들의 세계를 들여다 보다


   이 책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수림문학상 심사위원이셨던 정이현 작가님이 진행중인 팟캐스트 낭만서점에 소개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하도 독특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었지 직접 정주행해본 적이 없던 "에반게리온"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과 고액의 비용을 들여 별 대단할 것도 없는 스탬프 랠리를 국제적으로 참여하는 청년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에서도 풍기듯이 오타쿠 들을 위한 소설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읽기전에 준비해야할 사전 작업이 좀 있었습니다. 먼저, 이 책의 발단이 되는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을 봐야했습니다. 몰라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재미는 있을거라 예상은 했지만 어차피 뭐가 되었건 잘 알고 보는 것과 모르면서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일단 전편을 준비는 했는데 초기작인 TV판 시리즈만 겨우 보았습니다. 그림이 훌륭한 것도 아니었고 나름의 고민과 철학이 묻어 있었습니다만 그야말로 오타쿠적인 내용이다보니 이나이에 저를 뒤흔들거나 빠져들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13세 소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년식이 너무 많이 된 것도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들에게 감정이입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않겠습니까?


   다음으로 이 소설의 발단이 된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아야 했습니다. 에반게리온 오덕인 두 청년이 앞서 설명한 4개국 스탬프 랠리를 참여하는 과정을 제작한 다큐멘터리 [에바로드]가 바로 그 문제의 영상이었습니다. 작가는 이 다큐와 다큐의 주인공들을 대상으로 취재를 해서 사실 7 : 상상 3의 황금비율로 [열광금지, 에바로드]라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다큐를 안보고 이 책을 읽는 건 어불성설이었습니다. 네이버 VOD로 서비스 중이어서 2000원을 지불하고 다큐를 보았습니다.


에바로드

감독
박현복
출연
박현복, 이종호, 양승석
개봉
2013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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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다큐였고, 충분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오덕이 생소한 제 입장에서는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한편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면서 잘 봤습니다. 이런 저런 준비과정을 거치느라 사다놓고 꽤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문제의 애니메이션도 보고, 다큐도 보고, 소설도 읽으면서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해 눈을 떠서 좋았습니다. 배움이란 시기도 한계도 없는 것이지요. 오덕들의 세계를 조금 들어다보고 그들을 통해 저 자신의 욕망을 돌아보게 되어 아주 유익했습니다. 이 책은 쉬지않고 한번에 읽었을 만큼 흡입력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오덕들의 세계에 슬쩍 들어갔다 나왔습니다.




#2. 오덕이란 무엇인가?


   오덕이라하면 '다섯가지의 덕'을 떠올리시는 분은 참으로 고상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지금의 오덕은 '오타쿠' 또는 '오덕후'의 준말입니다. 오덕후는 특별한 의미, 이를테면 "자신의 덕을 두텁게 하자" 뭐 이런 훌륭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편하게 발음하고 쓰다보니 파생한 단어입니다. 아무 의미없습니다. 굳이 뜻을 더한다면 "국산", "토종 오타쿠" 정도의 의미를 더할 수 있겠습니다. 일상적으로는 오덕이나 덕후라고도 부릅니다. 그렇답니다. 제 주변엔 이런게 오덕이니 덕후니 이런 단어를 써서 바로 알아들을 분이 별로 없습니다.


"'덕'이라는 단어를 이런 식으로 활용한다. 덕심=오타쿠들의 심리. 덕부심=오타쿠들의 자부심. 덕질=오타쿠 활동. 덕력=오타쿠인 정도. 덕친=오타쿠 친구. 양덕=서양인 오타쿠. 밀덕=밀리터리 오타쿠. 탈덕=오타쿠이기를 그만둠" p9

  

   그러니까 무언가에 빠져있는 것을 "덕"이라고 해야하나 싶습니다. 그밖에도 어떤 계기로 덕질에 입문하게 되는 경우를 "입덕", 덕질을 쉬는 경우를 "휴덕", 덕질은 그만두는 경우를 "탈덕"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밖에 부적절한 "씹덕"이니 "씹덕후" 뭐 이런 나쁜 표현도 있나 봅니다. 이런 덕에 관련된 내용을 하나하나 알아가니 놀라운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런거죠. 그동안 모르던 은밀한 무언가를 조금씩 엿보는 기분같은거? '나도 오덕기질은 있는데..'하는 생각도 들고 말입니다. 어차피 책에 관련해서는 뒤늦게 오덕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시도 합니다. 아직은 초보지만 덕력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노여사는 서서히 탈덕의 경지에 이르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이중에 가장 좋았던 단어가 바로 '덕업일치'였습니다. 그러니까 덕질을 하는 대상이 바로 직업이 되는 환상의 경지죠.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서 오덕질을 해오다보니 유명해지거나 전문가가 되어서 그대로 직업으로 연결되어서 덕질로 밥을 벌어먹는 상황 말입니다. 책을 좋아해서 읽다가 급기야 책을 만들어서 돈을 벌거나, 소설이나 에세이 또는 전문서적을 써서 전업작가가 되는 것이죠. 아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 버리면 즐겁게 계속 할 수 있을지의 문제 때문에 덕업일치가 좋은거냐 안좋은 거냐에 논란이 있을 수는 있는데 기본적으로 직업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버려서 전전긍긍하지 않는다면 좋은일이라고 봅니다. 솔직히 돈이 안되도 입에 풀칠할 수만 있다면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고 얼마 안되는 시간에 힘들게 덕질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처럼 크게 치우치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어릴때 뭔가 대책없이 덕질을 좀 해볼껄 그랬나?'하는 ​생각을 종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이 책의 내용에 많이 몰입했습니다.


 


#3. 열광금지, 에바로드! 그는 왜 오덕이 되어 덕질을 하는가?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이 소설이 에반게리온에 빠진 청년의 행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그래서 스탬프 랠리에 대해서는 언제 나오나 싶었는데 정작 작가의 관심은 주인공이 오덕질을 하게 된 근본 원인부터 그것이 한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에 주목하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전형적이지 않지만 결국 주인공의 성장스토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는 오덕이 되어 덕질을 일삼는 것일까요? 그것도 상당한 비용을 들여서 전세계 그 많은 에반게리온 오덕들 중 유일하게 혼자만 4개국 순방 스탬프 랠리를 성공한 것일까요? 중간에 보면 회사에서 중요한 마감일이니 휴가를 쓰지 않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상사의 압박에 '휴가 결재 해주지​ 않으면 사표를 쓰겠다.'라는 결심까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에반게리온 스탬프 랠리가 뭐라고 말입니까? 회사까지 때려치울 결심을 하고 내 생돈을 써서 통장을 바닥내면서까지 악착같이 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 이유는... 역시나 각자가 읽어보셔야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작가의 의도와 힌트만 있을 뿐입니다.

   선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성장과정과 가정사, 그리고 주변환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는 젊은이들이 열정을 불태울 일자리도, 환경도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기득권층의 울타리만 점점 높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재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가 성장할 때에 비하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낭만따위는 생각도 못할만큼 세상에 편입하려는 혹독한 노력을 함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자리잡기가 너무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기성세대의 선택이자 책임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다른 모양새로 살아가는 젊은 인생에 대한 "평가의 잣대"가 무척 가혹하기도 합니다.

   [열광금지, 에바로드]의 주인공은 어려운 형편속에 때로는 방황도 해가며 악착같이 살아온 자신의 20대에 무언가 보상을 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지나온 과거와 이별하고 새로운 30대를 맞이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속에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선언하는 과정을 겪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스탬프 랠리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저는 독립 저예산 다큐멘터리 제작감독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순간, 스스로도 자신이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굳게 닫힌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장강명 작가가 소설속에서 인물의 세밀한 내면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원래 원작인 다큐멘터리 [에바로드]는 실제로 두명의 청년이 각자 영상제작과 OST를 나눠 맡았고 스탬프 랠리도 두명이 함께 떠납니다. 그러나 소설화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인생여정과 내면의 변화, 갈등과 고뇌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주인공을 한명으로 설정하고 두 사람을 적당히 섞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참으로 적절했다는 생각입니다. 주인공이 원작처럼 두명이었다면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읽다보니 금방 결말에 도달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이 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적당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에 깊이 있는 주제의식과 적절한 내용진행이 무척이나 좋았던 맘에드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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