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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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험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초기 단편집

   정이현 작가는 딱 봐도 제 취향은 아닐 듯한 작품들을 써왔기 때문에 아내가 여러권 사둔 것을 보고도 한번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The Closet Novel"에서 단편을 만난 기억은 있군요. 그러다 정이현 작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을 들으면서 부터였습니다. 작가의 목소리로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뭍어나는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 같은 것에서 호기심을 느끼기도 했고,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성향상 순서를 지키는 걸 좋아하다보니 일단 젤 먼저 발표된 작품이 뭔가 찾아보았습니다. 등단작이 포함된 단편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다행이 집에 있었습니다. 제목이 뭔가 거창한데 싶어서 확인해보니 1985년 제크린 살느맨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사람이 쓴 동명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더군요. 영국식 사랑과 성, 결혼 등에 대해 쓴 작품인 듯 한데, 역시나 오마주 아니면 패러디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단편집에 여러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각 작품마다 실험적인 포맷이나 서술방식이 다양하게 담겨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첫 표제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으면서는 뭔가 약간은 어설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당선을 위한 작위적 설정과 전형적인 캐릭터의 조합이 문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작품이 이어질수록 일단 다른걸 다 떠나서 재미있더군요. 읽는 재미가 있고, 읽고 나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만한 작품이어서 문장력이 대단하거나 주제의식이 어마어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품성과 대중성의 그 중간 어디즈음을 잘 포지셔닝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이후 작품들도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고 한국소설작가로써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2. 정이현 소설의 여자, 여자...

   특히 작가의 소설에 특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여성" 등장인물 들의 여성성입니다. 이미 십수년이 지나버린 작품이라 지금에 와서야 너무 당연한 상황이 그 당시 여성들에게는 금기시되거나 터부시되는 부분이 많았을테니 그런 전 근대적인 여성들의 불합리한 삶의 여러부분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간섭하고 나선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대놓고는 조금 그렇고  살짝 삐딱하게 꼬아서 한마디 해보자꾸나 하는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등장하는 여성들마다 시대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조금씩 서로다른 모습으로 비껴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보다는 오히려 덜 진보적이긴 하지만 굳이 당시의 통념에 비추어보면 사회가 부여해놓은 바람직한 여성상을 살짝 비꼬며 오히려 실리를 챙기는 매우 전략적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꽉막힌 꼰대라 그런지 몰라도 매우 통쾌하거나 시원하게 사회를 풍자하는 정도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단히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비교적 효과적이고 그럼직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설속의 인물이 그럴법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상당히 좋은 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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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위성과 문학성의 사이...

   일단은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는 장점은 이 작가의 단편에서 놓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작위성, 사건 전개의 작위성은 조금씩 느껴져서 작가가 전반적으로 작품에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주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장치를 구성해서 펼펴놓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직 여물지 않은 초기작이라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인지, 작가의 작풍인지 어떤지는 좀더 읽어봐야 알일이지만 그것으로 문학작품의 문학적 역할을 잘 한다고 보아야할지 어떨지는 정확히 감이 안옵니다. 저야뭐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니까 더 그렇죠. 꼼꼼히 따져서 '작위적이다' 혹은 '문학적 장치니 좋다'라고 딱잘라 말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니까 말입니다.

   첫 소설집인 이 작품을 읽고나서 보니 여튼 두어권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으로봐서 소설을 재미있게 쓰는 기본적인 미덕은 가지고 있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름 베스터셀러를 쓰는 국내 작가들틈에 늘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 제 취향과 무관하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줄 아는 작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증명을 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이 작품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여럿 있었지만 참고인 진술서 형식으로 쓰여진 [순수]같은 작품이나 저로써는 조금 생소했던 이인칭 시점을 사용한 [무궁화] 같은 작품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순수]는 남편이 사고인지 고의인지 알 수없는 애매한 사고로 죽고 경제적 이득을 챙긴 여주인공이 재혼하고 또 남편이 죽고, 재재혼하고는 또 남편이 죽어나가는데 정작 본인은 순수해서 벌레한마리도 못 죽인다고 담담하게 진술하는 내용인데, 꼭 비슷한 내용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세이초옹의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에서 느꼈던 느낌이 들어서 신선했습니다.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동성애를 다룬 [무궁화]에서도 주인공의 절절한 감정을 세밀하게 잘 표현해주고 있어 작가의 능력을 어느정도 옅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 직면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전혀 다른 주제의식과 소재로 신선한 이야기를 썼을지 궁금합니다. 다음 작품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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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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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조인간 로봇의 기원


   카렐 차페크의 [로봇(R.U.R)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편안하게 부르고 받아들이는 로봇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전세계에 널리 알린 바로 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지 않는 체코 출신입니다. 대표적인 체코작가는 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 같은 작가지만 저는 그다지 좋아라 읽은 적은 없으므로 그냥 스리슬적 넘어갑니다.


   저는 인조인간 로봇하면 "마징가~~아~~젯!!!"이 먼저 떠오르고 인조인간이라는 수식어를 빼고 "로봇"이라고 하면 금속과 전기부속품에 저닉배선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산업용 로봇 같은게 떠오릅니다. 근데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로봇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하고 똑같은 생화학, 유기질로 이루어진 복잡한 개체예요. 딱 터미테이터에 등장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연기한 T-800 같은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안드로이드의 초기모델 정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피부조직까지 다 있지만 딱히 노화는 되지 않아요. 피부조직과 유사한 물질을 만들어 발랐다고 봐야겠군요. 터미네이터2에서 흐물거리면서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던 T-1000 같은 개념까지는 작가의 상상력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이랑 가장 유사하게", "인간의 존재와 역할을 대신하는" 철학적 부분을 중시한 결과일 갭니다.  

 

   여튼 인간을 대신한 유사인간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차페크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상당히 구체화 시켰다는 것과 정확히 로봇이라는 단어로 정착을 시켰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기술이 나와도 결국 표준화되어 전세계에 널리 쓰여지는 기술이 살아남는거니까요.

 

   정작 중요한건 작가가 로봇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기술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분명 SF인데 기술적인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없어요. 이 양반 그냥 상상력만 풍부해서는 전형적인 "그렇다 치고 넘어가기, 만들수 있다고 보고 얼렁뚱땅 마무리하기" 신공을 시전합니다. 굉장히 뻔뻔해요. 본인은 SF라고 생각한 것 같지도 않아요. 사이언스 픽션인데 사이언스가 없어... 읽어보면 그냥 철학적인 픽션이예요. PF라고 해야할까 봅니다. 로봇을 미친듯이 만들어내고 사람처럼 고민도 하고 스스로 생각도 하는 지경에 이르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을 못해요. 그냥 로슘이라는 과학자 부자가 발명했어. 우린 그냥 누런 똥종이 몇장에 적어놓은 제조법을 읽고 대량생산해서 팔아먹자. 돈도벌고 울랄라~~~ 이런 이야기라니까요...


 


#2. 희곡.. 재미지다..


   책을 받고 순간 당황했습니다. 희곡이더라구요. 등장인물 소개에 배경무대 설명,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져있어요. 서막, 1막, 2막 이렇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 이런거 취급안하는데... 라고 생각하고 일단은 뭔 이야기일지 궁금해서 읽어봤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가독성이 무척 높습니다. 심지어 줄을 자주 바꿔서 그런지 금방 넘어가요. 지문이 가끔 나오고 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보이는거 같아 더욱 집중하기 좋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작품이다보니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표현법과 많이 달라서 어색한 느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연극을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장점도 있습니다.

 

   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네요. 저처럼 문장구조나 문학적 으로 어떠니 이런거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희곡이 오히려 더 적합한 거 같습니다. 훨씬 극적이고 읽는 재미가 있어서 희곡의 매력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드라마 대본집 같은 것도 읽어보면 아주 흥미로울 것 같네요.

 


 

#3. 100년의 간극, 아직도 멀고먼 로봇왕국


   이 작품이 1920년도에 발표되었으니 벌써 근 100년이 흘렀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인간에 근접한 안드로이드 로봇은 여전히 어렵긴 하겠지만 기술의 진보는 그래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속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수많은 로봇이 생산되어서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해주는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이를테면 경제논리가 걸림돌인 것이죠.

 

   앞서 설명드린바와 같이 이 작품에서 저자는 난 모르겠고, 그렇다치기 신공으로 모든 기술적,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완전 눈뜬 장님입니다. 경제학적 개념은 아예 없거나 무시하고 있고, 기술적인 문제도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죠. 우선 발명만 하면 로봇이 몇십만대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이거 미칠 노릇입니다. 사람의 피부와 조직을 생산하기 위한 원재료는 누가 갖다줍니까? 수많은 로봇 바디를 위한 금속 원재료는 또 어떻구요. 잘 묘사는 안되어 있지만 섬에 있는 발전소의 생산동력은 뭘로 충당합니까? 사람에 근접한 로봇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누가짜서 넣어주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기술적인 부분을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죽은 로슘의 낡은 종이 몇장에 의존해서 안드로이드를 만든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게 말이되어야 말이지 완전 빵구같습니다. 만약 종이에다 프로그램 코딩소스를 적어놓은다고 하면 도데체 몇장이 필요할까요? 상상이 안될 지경입니다...

 

   정작 이 작품의 의의와 관심은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풀어내고 있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을 닮은 존재, 인간의 역할을 대신해줄 존재가 만들어졌을 때의 인간과 로봇의 관계의 역학적 문제, 진보적인 로봇의 출현에서 파생될 인류의 문제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녹아있어 깊이가 있는 것이죠.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접근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과거 시점에서의 고민이라 지금에 와서는 너무 초보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그런 것처럼 우리도 이제 와서는 100년 전에 이정도 상상력과 디테일이면 매우 훌륭하다... 치고 읽어주면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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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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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에서 개인으로 변화의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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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명 작가하면 기본적으로 개인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적 패턴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적 모순, 그리고 그 모순에 의해 고통받는 개인의 다양한 반응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독자가 한 작가의 특징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행위지만 아무래도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나 작풍을 염두에 두고 읽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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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강명 작가의 신작 “그믐,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는 소설입니다. 일단 작가의 관심이 개인으로 이동된 듯한 느낌을 받는데, 큰 틀에서보면 어떤 프레임을 통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은 변함이 없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가에서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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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지고 보면 소설의 주인공이 학창시절 우발적으로 살인을 벌이는 발단 자체가 집단 따돌림이라는 사회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당사자와 피해자의 모친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핵심이 됩니다. 장강명 작가의 작품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느낌은 애정하는 작가의 롱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 기쁜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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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이 받는 상처와 그 치유의 방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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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과거 집단 따돌림으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고의였던 우발적이었던 상처에 대한 리액션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대가를 치룹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이 일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받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피해자의 어머니입니다. 이 여자는 아들이 남자에게 줬던 상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회피하면서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만 주목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남자의 주변을 멤돌게 됩니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남아 비정상적 행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는데, 남자의 일을 성실하게 방해한다거나 남자에게 아들같은 애정이 있다는 비정상적 표현을 계속하는 식입니다. 정신병리적인 이상행동을 계속하는 이 여자의 태도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스스로 억울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갖는 어쩌면 일반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만보면 정상적인 삶은 살아내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집착하느라 인생을 소비하는데, 이 또한 삶의 한 방법고 자신의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고 마냥 욕하고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 여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상처를 터트리고 마는데 독자입장에서 참으로 열받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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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경우는 이런 여자의 입장까지 배려해서 이후에 여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앞일까지 안배하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작품에서 남자는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데, 이게 상당히 비인간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 앞날을 예견하는 남자가 내내 차분하고 평온해 보이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점입니다. 이 지점이 무척 환타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적어도 제가 아는 상식에서 인간이 남자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든 자신을 변호하고 보호하는 쪽으로 행동하겠지요. 설령 여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갈등과 고뇌를 겪을 것입니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하고 심지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듯한 숙연함은 이 소설 최대의 환타지적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는 물론 모두가 이런식으로 속죄해야한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속세에 찌든 독자인 저는 아련하면서도 굉장히 화가나는 결론으로 마무리 된 작품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장강명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가 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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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의 쐐기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박진세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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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87분서 시리즈의 재미란..

   [살의의 쐐기]는 제가 읽은 87분서 시리즈 중 다섯번째 작품입니다.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는 참 묘한 작품이예요. 사실 명성에 비해 막상 읽어보면 거뭐.. 그냥 심심~~~ 하거든요. '의잉?? 뭥미??' 이런 기분이 든단 말입니다. 가장 먼저 읽었던 작품이 아마도 [조각 맞추기]였던 거 같은데, 지금 다시 읽으면 아주 재미지게 읽을 것 같지만 그 당시 첫작품을 읽을때는 87분서 시리즈에 대한 정보도 없고 적응도 안되어서인지 그냥저냥 그랬습니다. 막 하드보일드도 아니고, 심장을 움켜질만큼 쫄깃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섭기를 하나, 잔인하지도 않고, 사회풍자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술에 술탄듯 물에 간장탄듯' 하더란 말입니다.

   두번째 작품도 마찬가지였어요. [노상강도]는 사실 내용상 잔인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읽다보니 그냥 심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별로 평도 안좋게 했던거 같네요. 등장인물도 배경도 다 생소해서 그랬던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87분서 시리즈 특유의 그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컸던 거 같네요. 최근에 나왔던 [마약밀매인]과 [사기꾼]을 읽을때는 좀 익숙해졌던지 다른 분들보다 좀더 재미있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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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이 시리즈를 여러권 읽어보신 분이라면 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실 듯 합니다. 읽을수록 읽는 재미가 있는 묘한 시리즈예요. 여튼 피니스아프리카에에서 출간한 87분서 시리즈가 총 6권인데 이중에 [살의의 쐐기]와 [킹의 몸값]만 읽지 않고 뒀던 이유는 상대적으로 시리즈 중에 수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맛난 걸 아껴두는 심정으로 미뤘던 것이죠. 이제야 메인요리를 먹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살의의 쐐기]를 읽었습니다. 역시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다는 평가를 받을만 하군요. 하지만 작품을 읽는 순서가 바뀌었다면 평가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98분서 시리즈는 한작품 한작품을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마치 시리즈 자체가 한 작품인냥 읽는 것이 더 재미지게 읽는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2. 처음 느껴보는 긴박감.. 생소하면서도 희한한 재미..

   솔직히 이 작품 [살의의 쐐기]를 읽으면서 다섯권째만에 내용전개상 긴박감과 긴장감이 처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전에는 읽으면서 '아무리 오래된 작품이라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쫄깃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그래도 꾸역꾸역 계속 읽어오게 되었던걸 보면 나도 모르는 묘한 재미와 매력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지만 여튼 막 스피디하면서 긴장감 넘치는 쪼임이 거의 없었죠. 심지어 주인공 카렐라가 총에 맞아 나자빠질때조차 '어?' 하는 정도의 의아함이 있었을뿐이었을 정도였을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근데 아무래도 희한한 인질극과 밀실추리가 병행되면서 놀라움이 있었어요. '뭐야? 87분서 시리즈도 긴장감 조성하는거야?'하는 마음에 에드 멕베인 옹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싶었습니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하면서 말입니다. "그래 하면 되잖아요? 왜 이렇게 안썼던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곁드려 주고 싶더군요.

   후기에 보니 이 작품이 시리즈 열두번째 작품이라고 되어있어요.([킹의 몸값] 후기에는 [킹의 몸값]이 열번째고, [살의의 쐐기]가 그 전전작품이라고 되어있어서 그렇게 따지면 여덟번째 작품인 건데 아무래도 저자의 인터뷰 내용을 발췌한 열두번째 작품이라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는것도 같고) 여튼 원래 세작품만 쓸려다가 인기가 좋아서 늘리고 늘리고 한건데 한 12번째 쯤되자 이제 '에이 뭐 이런 설정으로도 한번 써볼까?' 하고 쓴거 같습니다. '이것만 쓰면 너무 단순하니 밀실트릭도 좀 써먹어 볼까?' 이런 생각도 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시리즈 면면을 살펴봐도 에드 멕베인이 아주 치밀한 사람은 아닌거 같아서 말이죠..ㅋㅋ



#3. 시리즈를 읽는 소소한 재미

   이 시리즈는 특유의 유머코드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상황에 따른 유도리있는 유머와 재치를 중시하는 저같은 사람은 이런 미쿡씩 개그에 익숙치 않아요. 전혀 익숙해지지도 않고... 그들만의 코드가 이해는 되는데 용서는 안되는 그런 심정입니다. 웃긴답시고 등장인물이 유머를 막 구사하는데 '아... 왜에.. 도데체 왜 그러는데...'라고 면박을 주고 싶어지죠. 정말 다행인 것은 대체로 작품속 주변 인물들이 이런 저질 유머를 서로 안받아주는 웃긴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는 거죠. 어쩌면 서로 서로 면박주거나 무시하는 작품속 상황들이 오히려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 작품의 경우는 중간중간 폭팔물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인데 한명 두면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등장해서는 상황을 부드럽게 해보려고 썰렁한 농담을 던지는데 그게 차암~~~ 드럽게 재미없죠. 그나마 그 상황이 기가차서 웃기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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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히려 이런 썰렁 멘트보다는 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사건의 전개로 웃음을 자아냅니다. 일단 기본이되는 두가지 설정. 첫째, 경찰서, 심지어 강력반 사무실이 더 심지어 여자한명에게 점령당해서 폭팔물 위협도 받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희한한 인질극 비스무리한 것의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시리즈 전체의 비중 갑 주인공 스티브 카렐라를 기다립니다. 두번째, 스티브 카렐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살로 보이는 밀실살해사건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경찰서로 돌아오지 않다가 결국 해결해내죠. 그리고는 의기양양 등장하는데(등장전에 다행히 강력반 사무실은 정리가 됩니다.) 이 난리에도 그 핵심 주인공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천하태평을 떨어죠. 이 상황이 무척 웃깁니다. 역시 스티브 카렐라의 매력이 +10정도 올라가는 상황이 되죠.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카렐라의 벙어리이자 귀머거리 장애를 가진(그러나 드럽게 예쁜) '테디'. 이 부부의 애정행각도 볼만 합니다. 아내와의 약속도 잊고 일에 몰두하는 카렐라를 전혀 나무라지 않고 사랑하는 테디의 모습은 거의 테디가 아니라 "테레사"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숭고합니다. 경찰들과 범죄자가 우글거리는 87분서 이야기 전체에 방부제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이 작품을 읽고보니 이제는 카렐라와 테디가 처음 만나는 시리즈 첫작품인 "경찰 혐오자"를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군요.

   참, [살의의 쐐기]에서 쐐기란 단어는 사실 경찰서를 점령한 여인이 카렐라에게 가지는 극한 적대감이나 살의가 형사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전혀 변하지 않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고 이해를 하고 먼저 정리를 해버렸는데 마지막에 보니 밀실트릭을 깨는 중요한 요소가 되더라구요. 의외로 일차원적인 제목에 살짝 멘붕이 왔습니다.

   참참, 에드 멕베인이 웃긴 것이 사건 전개 중심으로 이야기를 막 전개해나가요. 근데 딱 첫문단과 이야기가 환기되는 중간 중간에 한번씩 뜬금없이 순문학 흉내를 냅니다. 그 외 그런거 있잔습니까? 자연이라던가, 계절의 변화 등등을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하면서 분위기를 잡는거 있죠? 그런 문장들을 꼭 넣어요. 습작쓰는 작가 지망생들이 소설을 쓰면 꼭 그렇게 되잖아요. 뭔가 신춘문예스러운 문장들 말입니다. 이 아저씨도 그런게 있어요. 저같은 사람이 느낄만큼 촌스럽거나 의도적이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시리즈 다섯권째에서 드디어 이 시리즈의 재미를 알았습니다. 킹의 몸값도 읽어봐야겠어요.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되네요. 이 시리즈가 얼마나 더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읽으면 읽을수록 더 재미가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맛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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랫맨
미치오 슈스케 지음, 오근영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1. 정교함, 그 애틋한 정교함...


   저는 미치오 슈스케의 다른 작품을 만나보지 못해서 정확히 어떤 작풍을 가진 작가인지 모르는 가운데 이 작품 "랫맨"을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난 느낌은 스케일이 작고 촘촘한 가운데 밀도높은 정교함을 지닌 공예품을 찬찬히 감상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한정된 인물과 정해진 몇군데에서 반복되는 장소의 제한은 어쩌면 답답함을 의도한 것도 같습니다. 게다가 이 작품의 핵심을 이루는 공간은 아예 밀실트릭을 연상시키는 설정입니다.


   그런데 이 정교함이 '와... 정말 정교한게 짱이야..' 이런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 애틋함을 풍깁니다. 정교함을 통해 작가가 의도한 포석이 있는데 그 인도를 따라 놀라울 정도의 섬세한 장치들이 향하는 한 점을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이 애틋하고 애잔함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은 엄청 막연하고 '뭔소리야?' 하는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 거뭐, 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남습니다.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의 주제의식처럼 읽어도 저랑 전혀 다른 부분을 본다면 같은 책을 전혀 다른 면만 보고 착각하는 상황이 발생하겠지만 말입니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결국은 '사건과 진실은 하나인데 각자가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본다'라는 것이거든요. 게다가 각자 보고싶은 것만 보고 판단을 해버렸는데 어느날 돌아보니, 곰곰히 잘 생각해보니 사실은 내 생각은 완전 착각일 뿐이더라. 뭐 이런 이야기말입니다. 그런 경험이 많지 않던가요? 살면서 각자의 선입관과 잘못된 정보로 오판을 해서 일으킨 실수가 한두가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완벽하다.." 이런 사람 있으면 혼내줄꺼야...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동안 보아 온 것, 들은 것의 색채는 서서히 희미해진다. 어느 날 어디선가 가만히 서서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봤을 때, 징검다리 돌처럼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은 언제나 실수뿐이다." p299~300




#2. 전형적인 일본소설에서의 쿨한 설정들..속터진다...


   가끔 이런 관계설정의 작품을 읽다보면 좀 짜증이 납니다. 가족은 늘 뭔가 비밀이 있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적인 구성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뭔가 남달라요. 무관심하다거나,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다거나 학대한다거나 속이거나 이런저런 상황입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또 증상의 차이만 있지 어느 가족이나 이런 면이 다 있지 않겠어? 하고 이해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속에서 이런 모습을 너무다 아무렇지도 않게 쿨하게 전개해 나가면 좀 짜증이 나요.


   일본소설 중에는 이런 설정을 다중적으로 해놓는 경우를 많이 만나죠. 이 작품처럼 자매가 있는데 남자는 한명입니다. 이 남자는 언니를 사귀다가 뜬금포로 동생과 성관계를 막 가지죠. 그리고 동생은 언니와의 관계를 잘 알면서 언니와의 심리적 갈등 때문에 언니의 남자를 차지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냥 별다른 저항없이 그렇게 되요. 근데 또 세사람이 서로 그걸 말안해도 다 알아. 이쯤만 되도 거시커니한데 언니가 죽었는데 동생이 "슬프지 않아서 슬퍼요~~" 이런 멘트를 날려요... 남자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요.. 허어... 이거 뭐 '내가 다 이해한다. 나는 관대하다..'라고 정신승리를 해 가면서 읽어도 상황만 보면 개막장이죠. 다만 각자각자 캐릭터의 심리를 이해해가며 읽자면 또 이해가 안되는 상황은 아니야. 이게 골치 아픈 겁니다.


   또 있죠. 가까운 지인이 바로 옆에서 죽었는데 이 인간들 하나같이 쿨내가 진동해요. 엄청 당황하고 경황없어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생각해보세요. 내 지인이 죽었어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데 바로 옆 공간에서 어느새 끔찍하게 죽어있어. 근데 같이 본 친구가 갑자기. "아무것도 손대지마~~" 이라믄서 형사 흉내를 내고 자빠졌어.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널려있는 것들을 보고 이런저런 추리를 하고 지랄을 떨어요. 저같으면 벽집고 공중 3회전 후 쌍뺨따구를 날리고는 넘어지는 도중부터 뼈마디가 다 부러지도록 밟아주겠습니다.... 만은 이 작품안에서는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그들의 룰이니 따라가야지 뭐...



#3.  반전이 주는 재미... 쥐인간 이론... 


   이 작품이 대단한 점은 결국 반전에 있습니다. 저는 반전을 정말 좋아하지 않아요. 몇시간 동안 완전 몰입하도록 잔뜩 떠들더니 마지막에 갑자기 "다 뻥이야!!!" 이런 느낌 말입니다. 그럴꺼면 왜 그렇게 진지하게 얘기한거야? 하고 면박을 주고 싶어지거든요. 그러고보니 저는 정말 진지한 사람이군요. 가끔 만나는 어설픈 반전의 작품들은 허무맹랑합니다. 한참 떠들고는 "아, 갑자기 깨어보니 꿈이었구나.."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무책임함이라니요..


   별 다섯을 그냥 준게 아니지만 그 중 한개 쯤은 이 작품의 공들인 반전 몫이겠습니다. 소품격으로 끼어있는 연습실 밀실트릭 같은건 대충 누구나 눈치챌만한 스토리죠. 그러나 사실은 읽는 중에 '에이.. 범인은 누구구만...'하고 깨닫기는 힘듭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객관적인 서술보다는 등장인물의 시각과 감정. 그러니까 그 인물에 제한된 시각에 따른 서술만 제한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사실은 트릭이고 헤깔리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아 이양반이 범인아냐?'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만 정보가 없어요. 가능성만 있죠. 그래서 중요한건 누가 범인인가가 아닙니다. 범인은 있는데 각자가 엉뚱한 사람을 지목하고 각자 편한데로 행동하고 의심하고 추리하고 난리법석을 떨죠.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연습실 사건의 진상과 함께 마치 평행선처럼 동일한 성격의 사건이 하나 더 나오는데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이 이야기의 핵심사건입니다. 표면적으로 이 사건과 연습실 사건을 통해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랫맨"효과를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더 눈여겨 봐지는 것은 사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히메카와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프로이트의 쥐인간 이론입니다.


   저자가 책속에서 설명하는 "랫맨" 효과와 조금 다르게 프로이트 쥐인간 실험에서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오는 심리적 효과를 설명합니다. 아버지와 다른 선택으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 불안과 강박이 있었지만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결국 아버지와 같은 종류의 선택을 하고 마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정말 탁월합니다.


  


#4. 연습실과 공연장, 배출의 쾌감과 허무함...


   또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제한된 공간인 연습실에 계속 갖혀있는 주인공들, 작은 공연을 통한 배출, 그리고 계속 반복되는 상황에서의 허무함 등의 묘한 분위기를 상당히 잘 표현해주고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 무거운 느낌을 받게 만듭니다. 깔깔 웃으며 읽을 수 없고 읽고 나서도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개운하지 않은 뒷맛이 남습니다.


   심지어 반전의 반전을 거쳐 결국 주인공은 진실에 닿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된 진실의 순간마저 깔끔하고 속 시원한 쾌감 따위는 전혀 없어요. 진실을 대해도 그저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삶속에서 오해와 호해의 벽을 쌓아가며 살아가고 있구나. 겨우 죽을동살동 애를 써야만 한꺼풀 벗겨내고 수많은 껍데기 중 한가지를 볼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정도의 허망함과 마주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우.. 잘 읽었는데 찝찝해.. 대단한거 같은데 찝찝해... 나의 치부가 드러난것만 같아서 찝찝해... 리뷰가 너무 길어져서 찝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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