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과 사회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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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험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기는 초기 단편집

   정이현 작가는 딱 봐도 제 취향은 아닐 듯한 작품들을 써왔기 때문에 아내가 여러권 사둔 것을 보고도 한번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The Closet Novel"에서 단편을 만난 기억은 있군요. 그러다 정이현 작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을 들으면서 부터였습니다. 작가의 목소리로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뭍어나는 작가의 생각과 가치관 같은 것에서 호기심을 느끼기도 했고, 작품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저의 성향상 순서를 지키는 걸 좋아하다보니 일단 젤 먼저 발표된 작품이 뭔가 찾아보았습니다. 등단작이 포함된 단편 소설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다행이 집에 있었습니다. 제목이 뭔가 거창한데 싶어서 확인해보니 1985년 제크린 살느맨이라는 이름도 생소한 사람이 쓴 동명의 책 제목에서 따온 것이더군요. 영국식 사랑과 성, 결혼 등에 대해 쓴 작품인 듯 한데, 역시나 오마주 아니면 패러디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단편집에 여러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각 작품마다 실험적인 포맷이나 서술방식이 다양하게 담겨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첫 표제작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으면서는 뭔가 약간은 어설프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당선을 위한 작위적 설정과 전형적인 캐릭터의 조합이 문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작품이 이어질수록 일단 다른걸 다 떠나서 재미있더군요. 읽는 재미가 있고, 읽고 나서도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만한 작품이어서 문장력이 대단하거나 주제의식이 어마어마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품성과 대중성의 그 중간 어디즈음을 잘 포지셔닝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이후 작품들도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고 한국소설작가로써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2. 정이현 소설의 여자, 여자...

   특히 작가의 소설에 특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여성" 등장인물 들의 여성성입니다. 이미 십수년이 지나버린 작품이라 지금에 와서야 너무 당연한 상황이 그 당시 여성들에게는 금기시되거나 터부시되는 부분이 많았을테니 그런 전 근대적인 여성들의 불합리한 삶의 여러부분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간섭하고 나선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입니다. 대놓고는 조금 그렇고  살짝 삐딱하게 꼬아서 한마디 해보자꾸나 하는 느낌입니다.

   그리하여 등장하는 여성들마다 시대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에서 조금씩 서로다른 모습으로 비껴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따지고 보면 오늘날의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나 가치관보다는 오히려 덜 진보적이긴 하지만 굳이 당시의 통념에 비추어보면 사회가 부여해놓은 바람직한 여성상을 살짝 비꼬며 오히려 실리를 챙기는 매우 전략적인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제가 꽉막힌 꼰대라 그런지 몰라도 매우 통쾌하거나 시원하게 사회를 풍자하는 정도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단히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비교적 효과적이고 그럼직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설속의 인물이 그럴법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상당히 좋은 싸인입니다.


#3. 작위성과 문학성의 사이...

   일단은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는 장점은 이 작가의 단편에서 놓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의 작위성, 사건 전개의 작위성은 조금씩 느껴져서 작가가 전반적으로 작품에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주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장치를 구성해서 펼펴놓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아직 여물지 않은 초기작이라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인지, 작가의 작풍인지 어떤지는 좀더 읽어봐야 알일이지만 그것으로 문학작품의 문학적 역할을 잘 한다고 보아야할지 어떨지는 정확히 감이 안옵니다. 저야뭐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니까 더 그렇죠. 꼼꼼히 따져서 '작위적이다' 혹은 '문학적 장치니 좋다'라고 딱잘라 말할 필요까지는 없는 거니까 말입니다.

   첫 소설집인 이 작품을 읽고나서 보니 여튼 두어권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으로봐서 소설을 재미있게 쓰는 기본적인 미덕은 가지고 있는 셈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름 베스터셀러를 쓰는 국내 작가들틈에 늘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면 제 취향과 무관하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줄 아는 작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미 증명을 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이 작품집에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 여럿 있었지만 참고인 진술서 형식으로 쓰여진 [순수]같은 작품이나 저로써는 조금 생소했던 이인칭 시점을 사용한 [무궁화] 같은 작품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순수]는 남편이 사고인지 고의인지 알 수없는 애매한 사고로 죽고 경제적 이득을 챙긴 여주인공이 재혼하고 또 남편이 죽고, 재재혼하고는 또 남편이 죽어나가는데 정작 본인은 순수해서 벌레한마리도 못 죽인다고 담담하게 진술하는 내용인데, 꼭 비슷한 내용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세이초옹의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에서 느꼈던 느낌이 들어서 신선했습니다.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동성애를 다룬 [무궁화]에서도 주인공의 절절한 감정을 세밀하게 잘 표현해주고 있어 작가의 능력을 어느정도 옅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 직면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전혀 다른 주제의식과 소재로 신선한 이야기를 썼을지 궁금합니다. 다음 작품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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