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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카렐 차페크 지음, 김희숙 옮김 / 모비딕 / 2015년 4월
평점 :

#1. 인조인간 로봇의 기원
카렐 차페크의 [로봇(R.U.R)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은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편안하게 부르고 받아들이는 로봇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전세계에 널리 알린 바로 그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지 않는 체코 출신입니다. 대표적인 체코작가는 밀란 쿤데라, 프란츠 카프카 같은 작가지만 저는 그다지 좋아라 읽은 적은 없으므로 그냥 스리슬적 넘어갑니다.
저는 인조인간 로봇하면 "마징가~~아~~젯!!!"이 먼저 떠오르고 인조인간이라는 수식어를 빼고 "로봇"이라고 하면 금속과 전기부속품에 저닉배선으로 이루어진 딱딱한 산업용 로봇 같은게 떠오릅니다. 근데 이 작품속에 등장하는 로봇은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하고 똑같은 생화학, 유기질로 이루어진 복잡한 개체예요. 딱 터미테이터에 등장하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연기한 T-800 같은 수준입니다. 그러니까 안드로이드의 초기모델 정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피부조직까지 다 있지만 딱히 노화는 되지 않아요. 피부조직과 유사한 물질을 만들어 발랐다고 봐야겠군요. 터미네이터2에서 흐물거리면서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던 T-1000 같은 개념까지는 작가의 상상력 속에 포함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인간이랑 가장 유사하게", "인간의 존재와 역할을 대신하는" 철학적 부분을 중시한 결과일 갭니다.
여튼 인간을 대신한 유사인간이 존재한다는 설정은 차페크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상당히 구체화 시켰다는 것과 정확히 로봇이라는 단어로 정착을 시켰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기술이 나와도 결국 표준화되어 전세계에 널리 쓰여지는 기술이 살아남는거니까요.
정작 중요한건 작가가 로봇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기술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분명 SF인데 기술적인 가능성에 대한 고려가 없어요. 이 양반 그냥 상상력만 풍부해서는 전형적인 "그렇다 치고 넘어가기, 만들수 있다고 보고 얼렁뚱땅 마무리하기" 신공을 시전합니다. 굉장히 뻔뻔해요. 본인은 SF라고 생각한 것 같지도 않아요. 사이언스 픽션인데 사이언스가 없어... 읽어보면 그냥 철학적인 픽션이예요. PF라고 해야할까 봅니다. 로봇을 미친듯이 만들어내고 사람처럼 고민도 하고 스스로 생각도 하는 지경에 이르는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을 못해요. 그냥 로슘이라는 과학자 부자가 발명했어. 우린 그냥 누런 똥종이 몇장에 적어놓은 제조법을 읽고 대량생산해서 팔아먹자. 돈도벌고 울랄라~~~ 이런 이야기라니까요...
#2. 희곡.. 재미지다..
책을 받고 순간 당황했습니다. 희곡이더라구요. 등장인물 소개에 배경무대 설명, 지문과 대사로 이루어져있어요. 서막, 1막, 2막 이렇게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 이런거 취급안하는데... 라고 생각하고 일단은 뭔 이야기일지 궁금해서 읽어봤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가독성이 무척 높습니다. 심지어 줄을 자주 바꿔서 그런지 금방 넘어가요. 지문이 가끔 나오고 해서 그런지 등장인물들의 움직임과 표정이 보이는거 같아 더욱 집중하기 좋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작품이다보니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표현법과 많이 달라서 어색한 느낌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연극을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장점도 있습니다.
소설과는 다른 매력이 있네요. 저처럼 문장구조나 문학적 으로 어떠니 이런거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희곡이 오히려 더 적합한 거 같습니다. 훨씬 극적이고 읽는 재미가 있어서 희곡의 매력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드라마 대본집 같은 것도 읽어보면 아주 흥미로울 것 같네요.
#3. 100년의 간극, 아직도 멀고먼 로봇왕국
이 작품이 1920년도에 발표되었으니 벌써 근 100년이 흘렀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인간에 근접한 안드로이드 로봇은 여전히 어렵긴 하겠지만 기술의 진보는 그래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속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수많은 로봇이 생산되어서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해주는 일은 앞으로도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보입니다. 기술도 기술이지만 이를테면 경제논리가 걸림돌인 것이죠.
앞서 설명드린바와 같이 이 작품에서 저자는 난 모르겠고, 그렇다치기 신공으로 모든 기술적,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완전 눈뜬 장님입니다. 경제학적 개념은 아예 없거나 무시하고 있고, 기술적인 문제도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죠. 우선 발명만 하면 로봇이 몇십만대가 뚝딱 만들어지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는데 이거 미칠 노릇입니다. 사람의 피부와 조직을 생산하기 위한 원재료는 누가 갖다줍니까? 수많은 로봇 바디를 위한 금속 원재료는 또 어떻구요. 잘 묘사는 안되어 있지만 섬에 있는 발전소의 생산동력은 뭘로 충당합니까? 사람에 근접한 로봇을 만들기 위한 소프트웨어는 누가짜서 넣어주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기술적인 부분을 하나도 모르고 오로지 죽은 로슘의 낡은 종이 몇장에 의존해서 안드로이드를 만든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게 말이되어야 말이지 완전 빵구같습니다. 만약 종이에다 프로그램 코딩소스를 적어놓은다고 하면 도데체 몇장이 필요할까요? 상상이 안될 지경입니다...
정작 이 작품의 의의와 관심은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풀어내고 있는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을 닮은 존재, 인간의 역할을 대신해줄 존재가 만들어졌을 때의 인간과 로봇의 관계의 역학적 문제, 진보적인 로봇의 출현에서 파생될 인류의 문제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녹아있어 깊이가 있는 것이죠. 흥미롭게 읽으면서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접근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과거 시점에서의 고민이라 지금에 와서는 너무 초보적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그런 것처럼 우리도 이제 와서는 100년 전에 이정도 상상력과 디테일이면 매우 훌륭하다... 치고 읽어주면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