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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평점 :

#1. 세계에서 개인으로 변화의 시도..
장강명 작가하면 기본적으로 개인이 모여 살아가는 공동체와 그 공동체를 이루는 사회적 패턴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구조적 모순, 그리고 그 모순에 의해 고통받는 개인의 다양한 반응에 관심을 기울이는 작가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독자가 한 작가의 특징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행위지만 아무래도 작가의 독특한 이력이나 작풍을 염두에 두고 읽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장강명 작가의 신작 “그믐,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관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는 소설입니다. 일단 작가의 관심이 개인으로 이동된 듯한 느낌을 받는데, 큰 틀에서보면 어떤 프레임을 통하더라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임은 변함이 없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가에서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소설의 주인공이 학창시절 우발적으로 살인을 벌이는 발단 자체가 집단 따돌림이라는 사회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그것 자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당사자와 피해자의 모친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핵심이 됩니다. 장강명 작가의 작품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느낌은 애정하는 작가의 롱런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 기쁜 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사람이 받는 상처와 그 치유의 방식에 대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과거 집단 따돌림으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고의였던 우발적이었던 상처에 대한 리액션이 살인으로 이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대가를 치룹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이 일로 인해 또 다른 상처를 받은 사람이 생겼습니다. 피해자의 어머니입니다. 이 여자는 아들이 남자에게 줬던 상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회피하면서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해서만 주목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남자의 주변을 멤돌게 됩니다. 상처가 회복되지 않고 남아 비정상적 행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는데, 남자의 일을 성실하게 방해한다거나 남자에게 아들같은 애정이 있다는 비정상적 표현을 계속하는 식입니다. 정신병리적인 이상행동을 계속하는 이 여자의 태도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스스로 억울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갖는 어쩌면 일반적인 태도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가만보면 정상적인 삶은 살아내지 못하고 가해자에게 집착하느라 인생을 소비하는데, 이 또한 삶의 한 방법고 자신의 선택이 아니겠습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고 마냥 욕하고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결국 여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상처를 터트리고 마는데 독자입장에서 참으로 열받는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이런 여자의 입장까지 배려해서 이후에 여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앞일까지 안배하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 작품에서 남자는 자신의 과오를 속죄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결국 죽음을 선택하는데, 이게 상당히 비인간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 앞날을 예견하는 남자가 내내 차분하고 평온해 보이는 태도로 일관한다는 점입니다. 이 지점이 무척 환타지 같은 느낌을 주는데, 적어도 제가 아는 상식에서 인간이 남자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든 자신을 변호하고 보호하는 쪽으로 행동하겠지요. 설령 여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엄청난 갈등과 고뇌를 겪을 것입니다. 나이에 비해 너무나 성숙하고 심지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듯한 숙연함은 이 소설 최대의 환타지적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는 물론 모두가 이런식으로 속죄해야한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속세에 찌든 독자인 저는 아련하면서도 굉장히 화가나는 결론으로 마무리 된 작품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장강명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가 더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