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포드케인 ㅣ 불새 과학소설 걸작선 14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안태민 옮김 / 불새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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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관절 화성의 포드케인은 누구란 말인가?

   불새의 근작인 "화성의 포드케인"은 불새출의 SF 그랜드 마스터 '로버트 A.하인라인'의  수많은 장편 중 중기 정도에 위치하는 소설입니다. 저도 하인라인 횽님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워낙 계속 언급하는 "달을 판 사나이" 한권으로 이 작가의 매력에 푹 빠져서 계속 찾아 읽게 되는 형국입니다. 

   불새 출판사의 라인업에 국한되게 보자면 이 작품은 초기 "달을 판 사나이(The Man Who Sold the Moon, 단편, 1950)" 이후 "우주의 개척자(Farmer in the Sky,장편,1953)"를 지나 "화성의 포드케인(Podkayne of Mars, 장편, 1963)"에 이르게 됩니다. 국내에 출간된 하인라인의 장편이 대부분 절판이 된 상황에서 불새가 지속적으로 하인라인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달을 판 사나이"에서 인류가 달 여행에 성공하고 지구와 달 사이를 왕복하기 시작하면서 "우주의 개척자"로 넘어가면 원제와 같이 '하늘의 농부'시대 즉, 화성에 사람들을 보내 화성을 개척하고 인류가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 "우주의 개척자" 내용이 새록새록 생각이 나는군요. 여튼 이 작품 "화성의 포드케인"의 시대적 배경은 화성 개척 후 많은 시간이 지나 금성도 개척합니다. 그래서 지구, 화성, 금성, 꼽사리 달까지 인류가 우주여행을 주기적으로 하는 시대에 이르러 등장하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래서 화성의 포드케인은 대관절 누구냐? 일단 주인공 이름인데 소녀예요. 화성에서 태어난 화성소녀고 예쁘고 머리가 좋은데다가 착하기까지한 소녀입니다. 이 소녀는 화성의 정치적 실력자 상원의원인 친척 톰 아저씨와 소녀의 남동생이자 포드케인보다 훨씬 더 머리가 좋은 클라크와 함께 화성에서 금성을 거쳐 지구까지 다녀오는 우주여행을 떠납니다. 이 소설에서는 지구까지 가지 못하고 금성에서 일종의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긴 합니다만. 

   포드케인은 화성의 성인으로 어려운 일에 처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성 포드케인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지은 이름입니다. 지구로 치자면 이름을 '마더 테레사'로 지은 격이죠. 


#2. 화성의 포드케인이 우주선과 금성에서 겪는 생소한 경험을 다룬 이야기

   이 소설이 어떤 의미에서 지어진 것인지 읽는 내내 궁금했습니다. '왜 하필 소녀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소녀가 겪을 수 있는 일이 국한될 확률이 높으니까요. 사실 천재 동생 클라크가 주인공이었다면 더 재미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이 소설이 SF지만 의외로 미스터리 같은 느낌이 날 수 있었던 것은 화자가 소녀인 포드케인이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뭔 짓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시각으로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으니 독자입장에서 답답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상황을 지속할 수 있어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효과를 주거든요.

   소설의 전체 내용상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는 포드케인이 지구로 가기 위한 우주선을 타는 과정, 두번재는 우주선에서 겪는 여러가지 일의 디테일한 재미(우주 방사선 문제라거나, 인종차별 문제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금성에서 겪는 미스터리한 모험담 등입니다. 

   이 세가지 이야기에서 작가가 상상해서 설정해놓은 화성의 환경이나 지구와 금성간의 관계 문제, 화성의 문화 등에 대한 묘사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여기에 지구-금성-화성 간 삼각비행을 하는 우주선의 존재와 우주여행의 디테일한 내용전개도 볼 만한 내용입니다. 화성 소녀 포드케인은 꿈이 우주비행사입니다. 그러다보니 화자의 관심에 맞게  우주선내 생리와 선장을 비롯한 항해사들의 업무나 의무 등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요 내용이 의외의 재미가 있습니다. 

   한편 금성에 도착해서는 전혀 생소한 금성의 환경과 문화에 대한 기록이 지속되는데 지구, 화성, 금성의 환경, 역사, 문화의 차이를 비교해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포드케인 일행이 겪게되는 위험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3. 이 작품에 나타난 논쟁적 부분, 그리고 다른 버전의 결말을 읽는 재미

   단지 우주를 여행하는 내용만으로 보면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하인라인 옹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애초에 톰 아저씨가 우주여행을 동행하는 이유가 화성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대표자 입장이다보니 정치적 입장이 다른 세력이 존재하고 이들 때문에 목숨을 위협받는 등의 에피소드가 추가되는 것이죠. 사실은 현실 세계에서 존재하던 정치적 세력 문제라던가 이런 것들을 그대로 소설속에 옮겨 이식해 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위기 절정에 해당하는 금성에서의 에피소드는 지구-화성-금성간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을 극적으로 잘 드러내주는 일입니다. 그리고 화자인 포드케인은 계속 동생 클라크를 양아치, 돌아이 취급을 하고 있지만 이 부분이 반전 포인트입니다. 사실 클라크만 모든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고 마지막에 마치 "잭 리처"처럼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부분의 결말이 버전이 세개나 존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인라인이 고집했던 하인라인 버전이 비교도 안되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어린 독자들을 고려해서 매우 매우 순화된 결말 버전을 원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실제 당시 출간된 출판사 편집버전 결말을 읽어보면 참 심심하고 두리뭉실하게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투표로 결정했다는 세번째 버전도 있는데 두번째 버전이랑 큰 차이가 없더군요. 

   일단 이 작품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여러가지 재미가 있을 수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 출간당시 주 독자층이었던 소년 소녀들이 아니라 그런지 다른 작품보다는 재미가 덜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결론(하인라인 버전)은 몰아치기로 중간의 지루함을 털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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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캔버스
하라다 마하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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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고의 가독성과 독특한 소재가 결합된 미술 미스터리 대작

   오랜만에 별점을 개봉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가장 의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꼽으라면 여전히 세이초옹의 "잠복"이 되겠습니다만 제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앞으로도 이 작품 "낙원의 캔버스"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김사장님이 왜 이 작품을 끌어안고서 자신의 최대 기대작이라 아끼고 아낀다고 누누이 얘기했었는지 읽으면서 확실히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사실 애초에 끌리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미술계의 현황이나 형편이 어떤지도 전혀 모르는데다가 미술 사조나 미술가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는 저로써는 그림을 둘러싼 미스터리라는 소재자체가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매우 디테일하다는 평도 부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읽게 되었는데 한번 읽기시작하자 그야말로 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가독성도 좋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서 마무리가 될지 너무 궁금해서 끊기가 힘들었습니다. 미스터리적 특성을 냉정히 따지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결론이다보니 뒤통수를 탁치는 그런 반전이 있는 소설은 전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드라마가 살아있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이야기를 끌고 가는 신선한 방식, 디테일을 유지하는 자전적 내용의 결합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작품과 그 작품을 그린 작가인 앙리 루소, 그리고 저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에 얽힌 신비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 그림에 닮긴 비밀을 풀기 위한 과정에서 작가 당시의 시절을 보고 남긴 듯한 옛 이야기가 마치 액자소설처럼 이야기속 또 하나의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현시점 - 과거 - 대과거의 이야기1 - 과거 - 대과거의 이야기2 ~~~ 과거 - 대과거의 이야기7 - 과거 - 현시점"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진 양괄식 수미상관구조입니다. 대과거의 이야기3을 중심으로 대칭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사실 성경속 인물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식에 무척이나 자주 쓰이는 구조로 구전되기 좋은 방식입니다. 달리 말하면 가독성이 좋은 구조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구조를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속에 얽힌 사연을 풀어나가는데 매우 용이한 구조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구조에 독자도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미술관과 전시회, 미술품, 콜렉터들의 세게 등 미술과 관련되어 다양하게 연관된 조직과 개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매우 현실적이고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허술한 부분을 찾기 힘들만큼 정교하고 현실감있게 묘사되는 전개는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작가의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다보니 실감이 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배경을 제가 속한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로 한정지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실감나게 쓸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게 됩니다.

   이 소설속에 중요한 포인트로 등장하는 대과거의 이야기 일곱가지는 화자가 이 소설의 주요 작품을 그린 작가 앙리 루소와 주변인물, 피카소 등의 사연을 매우 사실감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이 대과거의 이야기가 와닿았는데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루소나 피카소의 미술을 대하는 태도랄까? 목숨도 부질없이 여기는 창작에 대한 숭고한 열정이랄까? 이런 것들에 상당히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의 열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렇게 가슴 뜨거운 경험을 하게 하는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과거의 이야기는 마치 '피카소의 색"과 같은 피카소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나 반 고흐의 인생에 얽힌 작품들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고, 작품속 주인공인 팀 브라운이 느끼는 감정에 고스란히 공감할 수 있어서 마음이 떨렸습니다. 최근에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가슴 설레는 경험을 하기 힘들었던 만큼 이 작품에 느끼는 감정을 특별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환영받기 힘든 장르적 한계

   그렇다면 저에게 남은 의문은 이런 것입니다. '일본에서 출간해서 엄청난 반향과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많이 팔리고 상도 수상한 이 훌륭한 작품이 국내에서는 왜 이다지도 안팔린 것인가?' 또한 '나는 왜 늘 이렇게 독자들이 외면하는 작가와 작품을 읽으면서 좋다고 감탄을 하고 자빠졌단 말인가?' 입니다. 이렇게 가슴뛰게 재미있고 훌륭한 작품이 이렇게 냉담한 반응을 받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소재가 미술과 미술작품이고 형식은 미스터리인 독특한 결합이라는데서 한계가 있는게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비약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독자가 "미스터리"를 동시에 좋아하지 않거나, 미술과 미스터리를 동시에 믹스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거나 미술 미스터리 자체가 생소해서 불편하거나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저도 이 책을 처음 대할 때 비슷하게 느꼈던 막연한 불편한 감정이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국내에 장르소설 자체가 주류가 아니다보니 장르소설을 읽는 독자자체가 거의 매니아나 덕후로 비쳐지는데 사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다양하게 독서를 즐기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되는 것은 소수자의 설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미스터리라는 것도 나름의 양식이 있고 법칙이 있습니다. 질서랄까? 작가와 독자간의 익숙해져 있는 약속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일반적인 그런 약속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부분이 있어요. 벌써 주인공 직업부터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와 공간 자체가 익숙하지 않잖아요. 읽을 책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이 책을 굳이 읽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형국이다보니 의외로 이야기 중간 즈음에 살짝 지루하게 느낄 수가 있어요. 저는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했지만 중반에 '아, 이쯤에서 좀 지루하게 여길 독자들도 꽤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의외로 미스터리적 요소가 약해요. 극적인 강력함이 좀 약하다보니 저처럼 이야기속 이야기에 감흥이 크지 않은 경우는 그냥 그저그런 미스터리 소설로 평가할 확률이 무척 높은 것입니다.

   극적이고 자극적인 본격 미스터리를 많이 접하지 않은 저로써는 미스터리적 요소도 상당히 적당했고 등장인물의 내면묘사도 충분했다는 생각입니다. 전체적인 소재나 전개, 디테일도 훌륭했고 특히 작품속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예술작품에 대한 열정, 그리고 애정과 집념, 작품을 보존하려는 노력 등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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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생 자르기 Fired ㅣ K-픽션 13
장강명 지음, 테레사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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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픽션 시리즈 13번째 작품

저는 K-픽션 시리즈는 처음입니다. 막상 읽으려고 보니 생소한 구성입니다. 한페이지는 국문으로 한페이지는 영문으로 쓰여있는 한영 혼용버전이군요. 전체 페이지가 120페이지도 채 안되는 얇은 책인데 판형 자체가 작습니다. 여기에 양면기준 40페이지가 채 안되는 짧은 단편 소설 한편이 수록되어 있어요. 소설 한 작품에다가 작가노트, 해설, 비평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는 토탈 패키지입니다. 특이한 구성이네요.


#2. 국내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독특한 시각

"알바생 자르기"는 장강명 작가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 짧은 소설은 중소기업의 사장과 여과장, 여과장의 남편, 그리고 비정규직 알바생이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새삼 새로울 것도 없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다루는 소설이라하면 떠오르는 기본 플롯이 있습니다. 만화 '미생'의 장그레처럼 비정규직 주인공이 등장하고 철벽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가운데 겪는 어려움, 분노, 좌절, 그리고 희망이죠. 이런 방식은 매우 일반적이지만 안정적이고 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화법입니다.

이 작품은 그런 방식의 화법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있습니다. 화자 자체가 사장도 아니고 알바생도 아닌 중간층 과장이예요. 비정규직 알바생 혜미는 분명 사회적 약자이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속에서는 "잘라야 할, 잘라 마땅한"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알바생 혜미는 조직이 요구하는 사회적 소양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고 지극히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국계 본사에 인정받고 싶어하는 어딘가 철없어 보이는 "꼰대"사장의 모습도 비판적 시각으로 나타내고 있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모두까기의 형태로 묘사되는 캐릭터들이 가득한 답답하고도 불편한 소설입니다.


#3. 장강명 작가 작품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

장강명 작가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사실 우리 사회의 폐쇄성, 왜곡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철저히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현실 말입니다. 아직도 뉴스가 사실, 진실 만을 말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이상 이런 태도는 계속 유효하겠지요.  이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 기자출신의 작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까발리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기는 것만 같아요. 과연 작가가 까발리는 현실이라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만 어쨌거나 감추기보다는 보여주기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주목받아 마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계속 발표해오는 소설을 살펴보면 "인간 본질에 대한 고찰보다는 인간들이 이룬 사회 현상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라고 할 수 있어요. 시대에 부합하고 공감을 일으키는데 매우 유리한 이런 방식의 접근은 화제성 가득한 문제작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오늘 날까지 회자되는 많은 명작 고전이 대체로 "인간의 본질" 문제를 다룬 것을 생각해보면 시대적 특징이 시대적 한계가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전이라고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제가 이런 표현을 하는 것도 좀 우습기는 합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작가는 항상 계급을 나누고 계급간의 대립을 그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구분과 시각이 상당히 적절하고 균형이 잡혔다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을 수 있지만 저자의 시각은 작품을 끌고 나가는데 매우 중요한데, 대체로 공감을 받는 것으로 미루어 치우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균형이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 어떠냐와 상관없이 작품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무척 많습니다. 독자가 소설을 대할 때 선입관을 모두 버리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거룩한 태도를 가지고 읽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각자의 입장과 시각을 가진 상태에서 자기 편한데로 소설을 읽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은 늘 논란이 일어나고 이슈가 되는 것이죠.

저자가 그런 반응을 노리고 이런 형태의 글을 지속해서 쓰는 것이라면 개인으로써는 현명한 태도이기는 하나 소설가의 소명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어떠해야 한다라고 강제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태도입니다만 독자 입장에서 소설과 기사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소설에서 조금은 진일보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특종"을 터트리는데에 그 목적이 있는 기사는  기자가 지향해야하는 성공적 글쓰기 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부도 필요하고 통찰력도 필요하며 치열한 취재도 해야겠지요. 그러나 소설은 많은 사람에게 반향을 일으킬 "특종"에서 그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던지기만 하고 해석이나 판단은 독자가 알아서 하라는 방식은 좋은 소설의 종착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문제를 다루고 고발하는 소설은 필연적으로 프로파간다는 포함할 수 밖에 없는 것도 한계입니다. 어쩌면 그런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또한 작가적 의무를 회피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작가가 '인간의 본성을 고찰'할 필요는 없습니다. 장강명 작가는 이미 국내에서 나름의 확고한 역할과 자리를 잡은 인상입니다. 이 작품 역시 장강명 작가의 역할에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 단순명쾌한 문장에 가독성이 좋고, 독특한 시각으로 읽기에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강명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고 있고 애정을 가진 제 입장에서는 지금보다는 좀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쪽으로 방향을 잡아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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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멋진 신세계 ㅣ 서문문고 4
헉슬리 지음 / 서문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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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스압주의,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드신 분은 굵은 글씨만 읽으셔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아, 친절하다...)


#1. 세대를 넘어서는 인간문명의 탐구자 올더스 헉슬리

 

   자꾸 "멋진 신세경"으로 읽어지려는 소설 "멋진 신세계"는 독자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수작입니다. 최근에 소담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번역에 대해 말이 많았었죠. 마침 블로그 이웃 한분이 한번 직접 확인해보라며 보내준 특정 부분의 번역이 너무 터무니 없고 말이 안되서 다른 버전을 찾다가 서문당이라는 곳에서 오래전에 출간된 버전이 이북이 있길래 표지가 심히 구리지만 한번 읽어보자꾸나 했습니다. 이 버전도 여러모로 불안하기는 했는데 결과적으로 발번역이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내용이 좀 어려워서 번역이 까다로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당신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까?" 뭐 이런 식의 초등학교 교과서 영어에서나 나올 법한 번역이니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헤깔려 가면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과는 틀리는 그 어떤 표준을 취한다면," 이런 표현 보세요.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도 모르는 번역자를 채용한 출판사도 문제고 말입니다. 번역을 시켰으면 감수를 해야지 이거야 원...

 

  그나저나 이 작품을 읽고나니 도대체 이런 소설을 써낸 올더스 헉슬리라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인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보건데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저자에 대해서 조금 알 할 필요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살림지식총서 247 - 올더스 헉슬리 : 오만한 문명과 멋진 신세계"라는 책을 추가로 읽었습니다. 소책자이니 읽은 김에 약간 소개를 드리자면 올더스 헉슬리에 대한 전체적인 이야기와 일생, 주변인물, 전반적인 여러 작품에 대한 줄거리 등을 간략히 수록하고 있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할아버지부터 온 가족이 지식으로 똘똘 뭉친 식자 가족들이었습니다.

 

"헉슬리 가문의 전통은 진리와 선의 궁극적 가치를 최고로 인식하여, 고차원적인 사유 속에서 검소하지만 정열을 가지고 살면서 넓은 지적 관심, 끊임없는 절차탁마, 격물치지의 정신으로 지적인 업적을 쌓고 솔직하면서 도덕적 용기를 가지고 살자는 것이었다."

  

   이런 뭔가 어마무시한 집안에서 학자적 삶을 온몸으로 배우며 자라난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할아버지부터 아버지도 과학분야에 깊은 조예가 있었고, 특히 진화론을 널리 알리는데 노력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어머니쪽도 만만치 않아서 인문학적인 전통을 어머니쪽을 통해서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둘째형이 자살을 했으며, 본인은 몸이 좋지 않았는데다가 눈은 거의 멀지경이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저런 불운한 경험들의 충격으로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살림지식총서에 따르면 올더스 헉슬리의 기본적인 입장과 태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과 우주에 대한 끊임 없는 구도자적 자세로 어마어마한 지식을 동원, 삶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규명하려는 작가적 임무에 평생 동안 충실하였다. 현대문명이 지나친 과학기술의 발달로 균형을 잃어버릴 때 어떤 비인간적인 세계가 벌어지는지 천재적 예언가의 눈을 가지고 진단하였고 서양의 사상과 기계 문명중심사상은 결국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간다는 엄중한 경고를 하면서 동양의 사상과 전통적 지혜에서 대칭적 치유책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시대정신을 올바르게 읽어 대안을 제공하는 그의 예언자적 혜안과 통찰력은 제학문과 인간사에 대한 절차탁마의 탐구정신과 실험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2. 멋진 신세계에 나타나는 디스토피아적 과학문명과 이를 극복하려는 시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올더스 헉슬리는 아버지쪽으로부터 받은 과학적 소양과 어머님 쪽에서 받은 인문학적 소양이 잘 융합되어 과학문명의 파괴적인 본질을 인문학적 고찰로 해결해보려는 기본적인 태도가 이 작품에 잘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디스토피아적 과학문명을 이루는 근간이 되는 기술적 기반이 바로 포드 자동차의 대량생산체제에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10대 시절부터 등장한 포드사의 자동차 생산 체계는 혁신적이라 할만한 생산기술이었고 이에 대해 헉슬리는 깊은 인상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이로부터 성장한 포드사의 대량생산체계와 이 회사에서 마치 부품처럼 일하는 근로자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런 방식의 과학기술의 발달이 미래의 인류를 결정지을 것으로 예견 했던 모양입니다.

 

   실제로 작품의 초반에 설명되는 인간의 등급에 따른 세부적인 분류체계와 각 등급에 맞게 대량생산해 내는 시스템이 초기 포드 자동차의 자동생산 시스템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부분이 한편으로는 지금에 와서 이 소설을 읽는 현대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허술해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금 같으면 그저 프로그래밍된 자동제어시스템으로 관리자외 인공이 거의 투입이 안되는 체계로 갈 터인데 당시에 그런 것을 상상하기에는 너무도 오래전이라 각 제작 공정마다 사람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모든 재료와 공정을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이 단순작업이기 때문에 이 작업에 투입되는 사람은 멍청하고 딴 생각안하고 단순작업만 하는 등급이 매우 낮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을 처음부터 습성훈련을 시켜서 딱 계획된 일만 하고 딴생각은 아예 안하도록 만드는 세상이 포드님이 만드신 미래상입니다.


   인간마저도 정해진 TO에 따라 정해진 수량만큼 각 등급별 스펙에 딱딱맞는 외모조차 똑같은 형태로 찍어내는 거죠. 이게 또 읽다보면 혀를 차게 됩니다. 과거에 등장한 SF소설들의 가장 큰 한계가 그러하듯이 이 소설에서도 각 공정에 종사하는 수많은 등급낮은 인간들을 생산해 내기 위해 이들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인력이 엄청나다는 문제가 있어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랄까? 일일이 사람손이 가야 공정단계가 진행되는 자동같은 수동시스템이다보니 그런거죠. 한명 만드려고 한명을 투입하는 시스템. 그냥 안키우고 말지 싶은 상황말입니다. 잘 읽어보면 멍청이 하나 키우려고 들어가는 노력과 인력과 시간이 엄청나 보인단 말입니다. 게다가 각 단계마다 투입되는 자재, 원재료, 에너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과거의 SF들은 그들이 생각해낸 기술과 문명을 이루기 위해 지구의 자원을 어떻게 짜내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부분을 상당부분 외면합니다. 그냥 어디서 공짜로 퍼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

   여튼 이런 포드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한우 등급 같은 최 상위 알파 플러스 등급들이나 철학적인 고민을 하고 그러지 대부분은 그냥 주어진 시간 8시간 노동하고 끝나면 또 아무생각없이 "소마"라는 일종의 최음제를 매일 지급받고 멍때립니다. 한달에 한번 충분히 자극을 주고, 자유롭게 성관계를 막 갖기도 하도록 해서 욕구불만을 해결합니다.


   이런 사회에요. 위대하신 포드님이 만드신 사회가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인간성 말살 사회같은 디스토피아가 나쁘다고 경고를 해야하는데 저자는 이부분을 지적하기 위해 자연인으로 태어난 "야만인" 존을 등장시킵니다. 존은 포드님의 문명사회에서 벗어난 인디언 문명 사회에서 자라면서 세익스피어 소설을 읽고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인간적인 유일한 존재입니다.


   저자의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존은 여러가지 지지부진한 여러가지 사건을 보내고 소설의 말미에 포드님의 대변인이라 할 수 있는 총제 몬드와의 대화를 통해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의 말살 사회와 인간답게 사는 인문학적 철학을 가진 삶을 사는 세상에 대해 비교하고 있습니다. 포드님이 만드신 과학문명에서의 인간들은 사실, 진리, 미, 종교적 신념등을 포기하는 대신 오로지 "행복"만을 담보하는 세상입니다. 행복이라는 것이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다보니 고민하지 않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욕구를 풀고, 스스로 만족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죠. 태어날 때부터 딱 정해진 것 외에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도록 세뇌되었으니 오히려 각자가 행복하다고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인간다움을 가진 "야만인" 존은 불행해도 좋으니 고통도 느끼고 사랑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하며, 신을 의지하기도 하는 자유의지적인 인간이 되기를 원하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혼자만 외따로 떨어져서 외로운 생활을 시작합니다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실은 마지막 결말에서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저자의 생각이 완성되기를 바랬는데 약간 애매하게 끝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나타나는 저자의 과학적 고찰과 이를 인문학적 시각으로 극복하려는 태도는 그 옛날 근 80~90년이나 이전에 발표된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움을 넘어 당황스러울 지경입니다.


 

#3. 국내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힘든 한계

 

   이 소설은 어마어마한 주제의식과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국내 독자들이 아주 재미지게 읽어재끼기 힘든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시작부터 야심차게 설명하고 포드적 인간 등급분류 체계에 입각한 대량 자동화 생산과 그 시스템의 부분 자체가 지금의 독자들에게 그다지 신선하지 않고 너무 복잡하기만 하고 흥미를 끌기 어렵습니다. 그다지 오~~ 하는 감탄을 자아낼 만한 시스템도 아니고요. '오~ 포드님 맙소사..' 그나마 저처럼 SF 자체에 관심과 애정을 가진 사람이나 뒷 이야기가 궁금해서라도 '이 설정을 잘 이해해야 다음 전개를 이해할 수 있어!' 라며 의지적으로 읽어지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중간부분에 계속 나오는 포드적 세계에서의 생활상 역시도 그다지 흥미진진하거나 나도 모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가독성 좋은 요소가 없어요. 그러다보니 어찌 어찌 초반을 잘 넘긴 사람이라도 중반에 가서 나가떨어지고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 포드님 맙소사.' 저도 이 중반의 지지부진함을 참지 못하고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다가 다시 읽기 시작했으니 말입니다. 다행히 기본적으로 취향에 잘 맞는 분이 아닌 이상에야 후반까지 계속 읽을 가능성이 높지 않은 책인 듯 합니다.


   후반에 이 책의 정수가 집약적으로 녹아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과연 그저 편안히 재미로 읽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녹녹치 않습니다. 저만 인문학적 소양이 없어서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후반에 세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들을 계속 인용하는 전개가 그리 읽기에 좋지는 않아요. 양측에서 주장하는 첨예한 내용의 대립 자체는 무척 훌륭하지만 그 방식자체는 매우 고전적이거든요. 이 작품이 고전이니까 당연하지만 말입니다. '오~ 포드님 맙소사..'


   초반과 중반과 후반의 약간의 지루함과 생경함만 잘 참아내면 정말 사회 인문학적 SF의 레퍼런스라고 할 만한 훌륭한 작품입니다. 단지 초중후반의 지루함만 잘 참으면 말입니다. 쉽사리 추천하기 만만치 않은 작품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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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하와이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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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형적인 기획 에세이는 이제 그만...

 
   일본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기획을 통한 책장사를 잘 합니다. 그만큼 시장도 크니까 이래저래 잘 팔리기도 하겠지요. 이 책은 유명작가 요시모토 바바나를 이용한 전형적 기획 에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잡지에 연재된 기획글을 단행본으로 옮겨 출간한 모양이예요. 책을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책 자체도 '이거 뭐 소책자인가?' 싶을 만큼 판형도 작고 엄청나게 얇습니다. 뭔가 완성된 책이라는 느낌이 안들어요. 책사면 끼워주는 사은품 샘플 북 같은 느낌이란 말입니다. 근데 책값은 여느 단행본 못지 않아요. 그만큼 작가가 대중적이니 요래 만들어도 충분히 팔릴 거란 계산이었겠죠. 아마도 예상한 만큼 팔렸을 겁니다. 저까지 읽은걸 보면 말입니다.
 
   그러나 알만한 큰 출판사에서 알만한 분들이 제발 이러지 맙시다. 이게 책이라는 완결된 한권으로 정말 충분한 내용이며, 분량입니까? 그나마 판형도 줄이고 편집도 널널하게 하고 사진도 끼워넣고 하니 겨우 겨우 150여 페이지라도 나오지 이건 뭐. 쫌 너무했다 싶습니다. "정말 쌍 욕기 절로 나옵니다....."라고 쓰려고 마음을 먹었었습니다.
 
 
#2. 그런데 내용이..
 
   이게 또 아이러니 아닙니까? 내용이 나쁘지 않아요. 작가가 굉장히 솔직 담백하게 썼어요. 물론 소설쓰는 사람답게 사소한걸 너무 감정과잉으로 쓰는 버릇은 있습니다. 근데 그런게 소설가죠. 그런 감수성이 이 작가를 그정도 위치에 올려놓았을테고, 그 감수성과 표현력을 이용해 이런 기획 에세이도 쓰는거 아니겠습니까? '뭐 이따구 하릴 없는 내용으로 책을 만들어?'라고 시작했다가 '그럭 저럭 읽은만 한걸...'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제가 요즘 정서가 메말랐나봅니다. 작가의 글을 읽는데 뭐랄까? 등따시고 배부른 아줌마가 이불이 좀 짧다고 힘들어하는 듯한 느낌이 좀 들었거든요. 아 먹고살기 힘들고 정신없는 세상에 훌라를 배우고 하와이를 오가면서 훌라를 추는 동료를 엄청 아름답다고 칭찬하고 뭐 이런 감정적 여유는 무척 사치스럽게 느껴졌거든요. 당신이 꿈만 같다고 얘기하는 하와이는 "수시로 다녀와도 부담이 없을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최소한이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계속 생겼습니다.
 
   완전 꼬인 제 마음을 걷어내고 읽으면 재미지게 읽을 만한 에세이입니다. 하지만 생기다만 듯한 전체적인 분량과 완성도는 좀 고민을 할 여지가 있는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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