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 자르기 Fired K-픽션 13
장강명 지음, 테레사 김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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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픽션 시리즈 13번째 작품

저는 K-픽션 시리즈는 처음입니다. 막상 읽으려고 보니 생소한 구성입니다. 한페이지는 국문으로 한페이지는 영문으로 쓰여있는 한영 혼용버전이군요. 전체 페이지가 120페이지도 채 안되는 얇은 책인데 판형 자체가 작습니다. 여기에 양면기준 40페이지가 채 안되는 짧은 단편 소설 한편이 수록되어 있어요. 소설 한 작품에다가 작가노트, 해설, 비평까지 함께 수록되어 있는 토탈 패키지입니다. 특이한 구성이네요.


#2. 국내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는 독특한 시각

"알바생 자르기"는 장강명 작가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이 짧은 소설은 중소기업의 사장과 여과장, 여과장의 남편, 그리고 비정규직 알바생이 주요 등장인물입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새삼 새로울 것도 없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다루는 소설이라하면 떠오르는 기본 플롯이 있습니다. 만화 '미생'의 장그레처럼 비정규직 주인공이 등장하고 철벽같은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는 가운데 겪는 어려움, 분노, 좌절, 그리고 희망이죠. 이런 방식은 매우 일반적이지만 안정적이고 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화법입니다.

이 작품은 그런 방식의 화법에서 철저하게 벗어나 있습니다. 화자 자체가 사장도 아니고 알바생도 아닌 중간층 과장이예요. 비정규직 알바생 혜미는 분명 사회적 약자이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속에서는 "잘라야 할, 잘라 마땅한"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알바생 혜미는 조직이 요구하는 사회적 소양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하고 지극히 부족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국계 본사에 인정받고 싶어하는 어딘가 철없어 보이는 "꼰대"사장의 모습도 비판적 시각으로 나타내고 있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모두까기의 형태로 묘사되는 캐릭터들이 가득한 답답하고도 불편한 소설입니다.


#3. 장강명 작가 작품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

장강명 작가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사실 우리 사회의 폐쇄성, 왜곡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철저히 숨기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현실 말입니다. 아직도 뉴스가 사실, 진실 만을 말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이상 이런 태도는 계속 유효하겠지요.  이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 기자출신의 작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까발리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기는 것만 같아요. 과연 작가가 까발리는 현실이라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만 어쨌거나 감추기보다는 보여주기를 선택한 것만으로도 주목받아 마땅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계속 발표해오는 소설을 살펴보면 "인간 본질에 대한 고찰보다는 인간들이 이룬 사회 현상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라고 할 수 있어요. 시대에 부합하고 공감을 일으키는데 매우 유리한 이런 방식의 접근은 화제성 가득한 문제작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오늘 날까지 회자되는 많은 명작 고전이 대체로 "인간의 본질" 문제를 다룬 것을 생각해보면 시대적 특징이 시대적 한계가 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전이라고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제가 이런 표현을 하는 것도 좀 우습기는 합니다.

한편으로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작가는 항상 계급을 나누고 계급간의 대립을 그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구분과 시각이 상당히 적절하고 균형이 잡혔다는 생각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을 수 있지만 저자의 시각은 작품을 끌고 나가는데 매우 중요한데, 대체로 공감을 받는 것으로 미루어 치우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저자가 균형이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 어떠냐와 상관없이 작품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무척 많습니다. 독자가 소설을 대할 때 선입관을 모두 버리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거룩한 태도를 가지고 읽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각자의 입장과 시각을 가진 상태에서 자기 편한데로 소설을 읽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작품은 늘 논란이 일어나고 이슈가 되는 것이죠.

저자가 그런 반응을 노리고 이런 형태의 글을 지속해서 쓰는 것이라면 개인으로써는 현명한 태도이기는 하나 소설가의 소명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소설이 어떠해야 한다라고 강제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태도입니다만 독자 입장에서 소설과 기사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소설에서 조금은 진일보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특종"을 터트리는데에 그 목적이 있는 기사는  기자가 지향해야하는 성공적 글쓰기 입니다. 이 과정에서 공부도 필요하고 통찰력도 필요하며 치열한 취재도 해야겠지요. 그러나 소설은 많은 사람에게 반향을 일으킬 "특종"에서 그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던지기만 하고 해석이나 판단은 독자가 알아서 하라는 방식은 좋은 소설의 종착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문제를 다루고 고발하는 소설은 필연적으로 프로파간다는 포함할 수 밖에 없는 것도 한계입니다. 어쩌면 그런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또한 작가적 의무를 회피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작가가 '인간의 본성을 고찰'할 필요는 없습니다. 장강명 작가는 이미 국내에서 나름의 확고한 역할과 자리를 잡은 인상입니다. 이 작품 역시 장강명 작가의 역할에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기본적으로 단순명쾌한 문장에 가독성이 좋고, 독특한 시각으로 읽기에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강명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고 있고 애정을 가진 제 입장에서는 지금보다는 좀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쪽으로 방향을 잡아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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