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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의 캔버스
하라다 마하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평점 :

#1.
최고의 가독성과 독특한 소재가 결합된 미술 미스터리 대작
오랜만에 별점을 개봉하게 만드는 작품을 만났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가장 의미있는 미스터리 소설을 꼽으라면 여전히 세이초옹의 "잠복"이
되겠습니다만 제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을 꼽으라면 앞으로도 이 작품 "낙원의 캔버스"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김사장님이 왜 이 작품을 끌어안고서 자신의 최대 기대작이라 아끼고 아낀다고 누누이 얘기했었는지 읽으면서 확실히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사실 애초에 끌리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미술계의 현황이나 형편이 어떤지도 전혀
모르는데다가 미술 사조나 미술가에 대한 이해도 전혀 없는 저로써는 그림을 둘러싼 미스터리라는 소재자체가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매우
디테일하다는 평도 부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에 읽게 되었는데 한번 읽기시작하자 그야말로 놓을 수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가독성도
좋았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서 마무리가 될지 너무 궁금해서 끊기가 힘들었습니다. 미스터리적 특성을 냉정히 따지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결론이다보니 뒤통수를 탁치는 그런 반전이 있는 소설은 전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드라마가 살아있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
이야기를 끌고 가는 신선한
방식,
디테일을 유지하는 자전적 내용의 결합
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작품과 그 작품을 그린 작가인 앙리 루소, 그리고 저 유명한 파블로 피카소에 얽힌
신비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 그림에 닮긴 비밀을 풀기 위한 과정에서 작가 당시의 시절을 보고 남긴 듯한 옛 이야기가 마치 액자소설처럼 이야기속
또 하나의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그러니까 "현시점 - 과거 - 대과거의 이야기1 - 과거 - 대과거의 이야기2 ~~~ 과거 -
대과거의 이야기7 - 과거 - 현시점"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진 양괄식 수미상관구조입니다. 대과거의 이야기3을 중심으로
대칭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사실 성경속 인물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방식에 무척이나 자주 쓰이는 구조로 구전되기 좋은
방식입니다. 달리 말하면 가독성이 좋은 구조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런 구조를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속에 얽힌 사연을 풀어나가는데 매우 용이한 구조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런 구조에 독자도 쉽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따라 갈 수
있습니다.
미술관과 전시회, 미술품, 콜렉터들의 세게 등 미술과 관련되어 다양하게 연관된 조직과 개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매우 현실적이고 디테일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허술한 부분을 찾기 힘들만큼 정교하고 현실감있게 묘사되는 전개는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작가의 경험에 근거한 이야기다보니 실감이 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면서 배경을 제가 속한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로
한정지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실감나게 쓸 수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게 됩니다.
이 소설속에 중요한 포인트로 등장하는 대과거의 이야기 일곱가지는 화자가 이 소설의 주요 작품을 그린 작가 앙리 루소와 주변인물, 피카소
등의 사연을 매우 사실감있게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이 대과거의 이야기가 와닿았는데 이야기속에 등장하는 루소나 피카소의 미술을 대하는
태도랄까? 목숨도 부질없이 여기는 창작에 대한 숭고한 열정이랄까? 이런 것들에 상당히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술가의 열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렇게 가슴 뜨거운 경험을 하게 하는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과거의 이야기는 마치 '피카소의 색"과 같은 피카소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나 반 고흐의 인생에 얽힌 작품들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고, 작품속 주인공인 팀 브라운이 느끼는 감정에 고스란히 공감할 수 있어서 마음이 떨렸습니다. 최근에는 사실 책을 읽으면서 가슴
설레는 경험을 하기 힘들었던 만큼 이 작품에 느끼는 감정을 특별한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환영받기 힘든 장르적 한계
그렇다면 저에게 남은 의문은 이런 것입니다. '일본에서 출간해서 엄청난 반향과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많이 팔리고 상도 수상한 이
훌륭한 작품이 국내에서는 왜 이다지도 안팔린 것인가?' 또한 '나는 왜 늘 이렇게 독자들이 외면하는 작가와 작품을 읽으면서
좋다고 감탄을 하고 자빠졌단 말인가?' 입니다. 이렇게 가슴뛰게 재미있고 훌륭한
작품이 이렇게 냉담한 반응을 받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소재가 미술과 미술작품이고 형식은 미스터리인 독특한 결합이라는데서 한계가 있는게 아닌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게 비약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미술"을 좋아하는 독자가 "미스터리"를 동시에 좋아하지 않거나, 미술과 미스터리를 동시에 믹스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거나 미술 미스터리 자체가 생소해서 불편하거나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저도 이 책을 처음 대할 때 비슷하게 느꼈던 막연한
불편한 감정이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국내에 장르소설 자체가 주류가 아니다보니 장르소설을 읽는 독자자체가 거의 매니아나 덕후로 비쳐지는데 사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다양하게 독서를 즐기는 경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되는 것은 소수자의 설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미스터리라는 것도 나름의
양식이 있고 법칙이 있습니다. 질서랄까? 작가와 독자간의 익숙해져 있는 약속이 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일반적인 그런 약속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부분이 있어요. 벌써 주인공 직업부터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와 공간 자체가 익숙하지 않잖아요. 읽을 책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이 책을
굳이 읽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형국이다보니 의외로 이야기 중간 즈음에 살짝 지루하게 느낄 수가 있어요. 저는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했지만 중반에 '아, 이쯤에서 좀
지루하게 여길 독자들도 꽤 있겠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의외로 미스터리적 요소가 약해요. 극적인 강력함이
좀 약하다보니 저처럼 이야기속 이야기에 감흥이 크지 않은 경우는 그냥 그저그런 미스터리 소설로 평가할 확률이 무척 높은 것입니다.
극적이고 자극적인 본격 미스터리를 많이 접하지 않은 저로써는 미스터리적 요소도 상당히 적당했고 등장인물의 내면묘사도 충분했다는 생각입니다.
전체적인 소재나 전개, 디테일도 훌륭했고 특히 작품속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예술작품에 대한 열정, 그리고 애정과 집념, 작품을
보존하려는 노력 등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