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의 임무
할 클레멘트 지음, 안정희 옮김 / 아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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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드 SF가 무엇인고 하니..

   제가 상당히 싫어하는 표현이 "공상과학"입니다만 여튼 SF를 그렇게 번역을 하니 "공상과학"은 아무래도 과학적 지식에 기반을 둔 픽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이언스지에 논문으로 실릴 테지요. 과학이라는 요소 외에도 "공상"이라는 요소가 크게 작용을 하다 보니 과학은 무늬만 있고 "공상"만 가득한 SF 소설도 무척 많습니다. 심지어 무척 재미지지요.

   원래 과학은 파고들수록 전문분야라 우리 일반 독자가 완전히 이해해가며 읽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SF 소설 팬들은 "그렇다 치고 읽기 신공"을 적극 사용합니다. 이런 방식의 책 읽기는 독서의 재미는 물론 독자의 정신건강까지 책임지기 때문에 무척 유용합니다. 게다가 작가의 심신의 안정까지 지켜주니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통상 우리는 이런 유의 유도리가 넘치는 SF 소설을 말랑말랑하다 하여 소프트 SF라고 분류합니다.

   이런 형태의 SF 소설에서 조금 벗어난 계열의 SF 소설이 있다면 바로 할옹의 "중력의 임무"같은 하드 SF 소설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하드SF 소설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두어 가능하면 인간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과학적 지식과 법칙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기본적인 태도를 견지합니다. 그 와중에 스토리의 재미까지 있어야 하니 과연 하드한 소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의외로 재미 터지는 하드 SF의 매력.

   미리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렇다 치고 읽기 신공"을 활용하면 그 어떤 하드 SF를 가져다 놔도 즐겁게 읽을 수 있기는 합니다. 물론 이 작품에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과학적 지식들을 이해하고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검증해보기까지 한다면 하드 SF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을 테지만 말입니다.

   실제로 저자는 후기에서 자신과 독자와의 승부인 것처럼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글을 완성한 시점부터 오류가 있어도 전혀 수정을 할 수 없지만 시간은 독자 편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의 소설에 언급된 과학적 기반에서 오류를 발견해 낼 것이기 때문에 독자에게 무조건 유리한 시합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에 어떤 과학적 오류가 있는지에는 전혀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이 소설이 재미있게 읽어지는가 아닌가가 중요할 따름이지요. 하드 SF 소설을 읽는 진정한 자세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여러 가지 스트레스 요소를 가지고 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이론적 가설과 설정에 대해 장황하게 과학적 설명을 늘어놓는 저자 후기는 완전히 스킵 하시라고 강력히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참, 이 소설은 메스클린 이라는 행성에 도달한 인간과 그곳 생명체 간의 협력을 통한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외계인과 인류가 인격적으로 협력한다는 점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작가의 설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읽는데 어려움이 꽤 있는데 극 초반만 잘 넘기면 갈수록 흥미가 배가되는 상당히 좋은 구조의 소설이었습니다.

   무척이나 오래전에 발간된 소설임에도 당시 출간된 여타 SF 소설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훨씬 이론적으로 탄탄하고 정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읽는 재미까지 충분하니 과연 감탄하며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학 이론에 경기하시는 분이라면 반드시 "그렇다 치고 읽기 신공"을 초반부터 들이대셔야 더욱 부담 없이 재미지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호불호는 있겠지만 매력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무척 만족스러워하실 소설이군요.


#3. 할옹은 또 누구신고...

   이 작품이 저자 할 클레멘트는 년식이 무시무시합니다. 무려 1922년 생이십니다. 이 양반 작품을 찾아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SF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특히 국내에 소개된 경우) 주류인 소프트 SF보다는 하드 SF가 주전공이고 거의 대부처럼 여겨지고 있는 양반입니다. 

   저자가 천문학을 전공하였고, 화학까지 공부한 데다가 그 유명한 SF 그랜드 마스터 "아이작 아시모프"와 무척이나 절친했던 배경을 생각해보면 SF를 잘 쓰는 것은 물론이고 년식으로도 SF계의 화석 수준임을 대충 가늠할 수 있습니다.

   에..또.. 저자의 이 작품 "중력의 임무"는 외계 행성에 인류가 도달해 생기는 에피소드를 그린 이야기인데, 이와 비슷한 설정의 소설을 여러 편 쓰셨던 모양입니다. 이 "중력의 임무"를 시작으로 "사절단?" 시리즈가 여러 편 있더군요. 완전 초창기 작품 "바늘"과 "아이스월드"등이 유명한 모양인데 국내에서는 아시모프나 아서 클라크, 너의 사랑 나의 사랑 하인라인 형님 등에 비해서는 완전 듣보잡수준인거 같습니다. 한글로 제대로 된 설명 페이지도 찾을 수 없으니 말입니다. 갑자기 "가라 흩어진 너희 몸들로"의 필립 호세 팔머옹을 설명하던 그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영문 페이지를 더듬거리며 읽던 기억 말입니다. 팔머옹은 여전히 듣보잡이시지만서도..

   국내에서 듣보잡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SF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국내 환경에서 SF 중에서도 덕후들만 좋아하는 하드 SF만 전문적으로 쓰는 분이니 말입니다. 물론 읽어본 게 없어서 그런지 아닌지 검증도 못했지만서도.. 여튼 이 분 작품이 좀 많이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무척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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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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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게 뭐지?' 싶은 중년 아저씨들의 지랄 발랄한 이야기

   천명관 작가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어낸다는 건 이 책을 통해서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나름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그에 걸맞은 요상한 결말로 마무리가 되는군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순간순간 발휘되는 위트와 엉뚱한 유머입니다. 소재나 서정은 꽤나 잔혹할 수도 있는데 읽는 내내 피식피식 웃게 되는군요. 마치 예전에 유행하는 조폭 코미디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사실은 설정이나 스토리가 무척이나 진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담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빠른 전개와 흥미로운 캐릭터의 파상공격의 힘이 아닌가 합니다. 짧은 스토리인데도 상당히 많은 캐릭터들이 계속 나타나요.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엉뚱합니다. 기똥차게 엉뚱하고 황당하고 바보 같기도 하고 그렇죠. 적잖이 찌질하기도 하구요.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입니다.
  

#2. 소재와 설정에서 오는 한계

   사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의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천명관 작가님을 잘 모르지만 왜 이런 소설을 쓰셨지? 왜 이런 글을 출간하셨지? 하는 건데요. 아무리 좋게 봐도 설정이나 스토리 전개나 사건들이 비현실적이기도 하고 식상하기도 하고, 한계가 명확한 소설이었거든요. 킬링타임 용이라고 하기엔 지나친 감이 있지만, 딱히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현대사회를 크게 풍자하고 있다고 하기도 애매한 작품으로 지금 시점에 책을 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냥 이런저런 소설을 쓰는데 '이번엔 조폭 유머 소설을 써 볼까?' 하고 생각하셨던 걸까요?

   그동안 소설의 최대 미덕은 읽는 재미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이 작품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하는 건 자기모순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순문학 쪽에 계신 작가로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런 의문이 든 것이 아닐까 싶긴 해요.

   재미는 있었으나 신선함은 떨어지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K팝스타 같은 데서 "노래는 진짜 잘하는데 올드하고 새로운게 없다"라는 평가를 할 때의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제 나름의 판단은 좀 더 유보해야 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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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으로 향하다 - 리암 니슨 주연 영화 [툼스톤]의 원작 소설 ㅣ 밀리언셀러 클럽 97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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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렌스 블록이 창조해낸 훌륭한 탐정 캐릭터 매튜 스커더

   오랜만에 매튜 스커더 시리즈 중 한 권을 읽었습니다. 유명한 시리즈가 대체로 그러하듯이 이 시리즈도 처음 접할 때보단 한 권 한 권 읽을수록 익숙하고 반가운 느낌입니다. 그마만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로렌스 블록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뿐 아니라 크게 4가지 정도의 시리즈를 병행해서 써 온 모양인데, 번역된 게 있어야 그 차이를 알지요. 겨우 켈러? 시리즈 중 한 권이 엘릭시르에서 출간된 정도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알코올 중독자 매튜 스커더의 매력에 흠뻑 빠졌기 때문에 이 시리즈만 한 권 한 권 읽어도 만족할 듯합니다.

   매튜 스커더 시리즈가 총 18권이나 출간되었네요. 이 중에 황금가지에서 6권을 출간해 주었고, 앞으로 얼마나 더 출간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시리즈를 손을 댔으면 빠짐없이 출간을 해주시길 바랄 따름입니다. 독자가 출판사의 경제논리까지 따질 필요는 없는 거니까요^^ 제가 참고하기 위해 시리즈 목록을 써둡니다.

1. The Sins of the Fathers (1976) : 아버지들의 죄(황금가지, 2012년 8월)
2. Time to Murder and Create (1976) : 살인과 창조의 시간(황금가지 2014년 9월)
3. In the Midst of Death (1976) : 죽음의 한가운데(황금가지 2013년 9월)
4. A Stab in the Dark (1981) : 어둠 속의 일격(황금가지 2014년 9월)
5. Eight Million Ways to Die (1982) : 800만 가지 죽는 방법(황금가지 2005년 2월)
6. When the Sacred Ginmill Closes (1986)
7. Out on the Cutting Edge (1989)
8. A Ticket to the Boneyard (1990)
9. A Dance at the Slaughterhouse (1991)
10. A Walk Among the Tombstones (1992) : 무덤으로 향하다(황금가지 2009년 1월)
11. The Devil Knows You're Dead (1993)
12. A Long Line of Dead Men (1994)
13. Even the Wicked (1997)
14. Everybody Dies (1998)
15. Hope to Die (2001)
16. All the Flowers Are Dying (2005)
17. A Drop of the Hard Stuff (2011)
18. The Night and the Music (2013) (A collection of Matthew Scudder short stories and novelettes, 11 in total)

#2. 하드보일드?

   하드보일드라는 용어는 자주 접했는데 하드보일드가 정확히 뭔지, 늘 헷갈립니다. 하드보일드니 스릴러니 서스펜스니 미스터리니 용어가 너무 많고 근래에는 무척이나 혼용을 하는 양상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다양한 부분이 혼합된 장르가 출간되니 더욱 그래 보이는군요.

   원래 하드보일드는 문학에서 완숙된 달걀의 딱딱함(?)처럼 건조하고 비정한 문체를 말한다고 합니다. 사실 끓는 물속의 계란이 익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뭔가 좀 안 어울리는 용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추리소설 분야로 옮아오면서 셜록 홈스 같은 머리형(?) 탐정의 "계획된 것"과 달리 좌충우돌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로써 하드보일드가 훨씬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드보일드는 추리, 탐정, 서스펜스, 스릴러 등과도 잘 결합하는 특징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리하야 납치와 토막살인, 복수극 중에 선혈이 낭자하는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 스릴러 정도로 분류하면 적절할 듯합니다.


#3. 매튜 스커더가 하드보일드 하게 살아가는 방식

   이 작품을 여성 독자가 읽으면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지만 저로서는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과거 사건이 포함된 스토리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비번 날 강도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여자아이를 희생시키는 사고를 계기로 경찰을 그만둔 과거가 있는 주인공은 이혼남에 뚜렷한 거처도 없이 살아갑니다. 게다가 알코올 중독자라 금주를 위해 여러 가지 모임에 자발적으로 나가죠. 여기까지는 그다지 좋아 보일 일 없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비공인 사설탐정으로 그가 하는 일을 보면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일을 수락하는 조건도 남다릅니다. 사례금 정도도 아니고, 오로지 본인이 내키는지, 자기 마음을 움직이는지가 판단 기준입니다. 이 기준은 피해자가 뭔가 억울해 보이거나 가해자를 처벌하고 싶은 마음 정도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공인이라 꼭 법대로 마무리하지도 않고 스스로 판단해서 옳은 대로 악인을 처분합니다. 그 과정에서 나름의 정의와 인류애를 발동하는데 이 부분이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일처리에 있어서 흥분하지도 않고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도 차분하기만 합니다. 이미 충분히 끓어버린 완숙처럼 단단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면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그러면서도 사건을 능숙하게 처리하는 베테랑이기도 합니다. 영화 툼스톤의 원작이기도 한 이 작품을 읽다 보니 아무래도 리암 니슨의 모습이 오버랩되고, 이 영화 자체는 원작에 충실한 훌륭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테이큰의 리암 니슨을 내세워 홍보해서 역풍을 맞았던 안타까운 기억만 납니다.

   저야 뭐 이번 생에서 매튜처럼 하드보일드 하게 살아볼 기회는 없을 듯하지만 소설의 대리만족이라는 관점에서는 무척 훌륭하게 작동했던 작품입니다. 가끔씩 매튜 스커더를 만나면서 소심한 저의 삶에 대리만족을 느끼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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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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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스트 라이터 강원국씨

   제가 대통령이 글을 어떻게 썼는지에 딱히 관심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저자 때문입니다. 강원국씨는 2대에 걸쳐 8년간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연설문을 쓰는 연설비서관으로 지냈습니다. 이분이 다른 매체에서 청와대 시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는데 에피소드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분의 태도에 반해버린 것이죠.

   청와대라는 곳은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오죽하면 청와대에 출입하는 전기수리공이 주변 사람에게 자기에게 잘 보이라며 으스대면서 필요한 거 있으면 해줄 수 있다고 떠들었다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렸겠습니까? 그런 곳입니다. 얄팍한 사람의 권위의식을 자극하기 아주 좋은 곳이죠.

   제가 이분의 실제 인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글과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분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내비치는 태도는 겸손 그 자체였거든요. 저는 약간 과하다 싶은 정도로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충분히 거들먹거리기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극소수만 경험할 수 있는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을 개, 돼지라 칭하는 잡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격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낮춰서 사람들의 공감과 웃음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이따위 시대에선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과 태도는 보았으니, 이 분의 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책 내용과 직접 상관이 없는 것을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보다는 이 저자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욱 많은 교훈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관음증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흔히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 했던 희귀한 경험을 전해 듣거나 슬쩍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인 전임 대통령들과 함께 생활하고 호흡하고 그들의 말과 생각을 공유하는 특별한 체험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연설문을 쓰는 과정에서 겪었던 두 대통령들과의 일상 이야기나 에피소드들은 그야말로 웃음을 절로 자아냅니다. 훌륭한 재료에 좋은 요리가 나오듯이 이는 결국 두 대통령들이 훌륭한 분들이었기에 좋은 에피소드들이 넘쳐나는 것일 테지요. 현 정부의 연설 비서관이 과연 내세울 에피소드나 있으려나 의문입니다.

   사실 이 책은 글쓰기 요령을 전달하는 책이기보다는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두 분 전 대통령 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면이 훨씬 강한 책입니다. 그리하여, 두 대통령이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기에는 해롭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취향에 맞는 "대통령의 시간" 같은 책을 읽으시면 되시겠습니다.

   저는 두 대통령들의 철학과 평소 생활 방식과 국민들에 대한 생각, 국정 철학 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두 분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는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두 분 모두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의지가 깊은 분들이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3. 그래도 놓치지 않은 글쓰기의 원칙들

   아무래도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보니 중 후반으로 갈수록 글쓰기 요령이나 원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에피소드로 주의 환기를 충분히 시키고, 글쓰기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로 점점 채워가는 형국이지요. 저자 스스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다가는 지겹다는 원성을 들을 것을 의식하셨는지 중간중간에 계속 두 대통령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합니다. 제발 끝까지 읽어주라~~라고 부탁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글쓰기에 참고할 만한 좋은 팁들이 무척 많이 있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한눈으로 읽고 한눈으로 흘려버렸습니다. 어차피 앞으로도 제 맘대로 쓸 거니까요. 맘대로 쓰는 게 블로그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인데 그걸 버릴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다른 글쓰기 책과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연설 비서관이시다 보니 일반 글쓰기보다는 연설문을 쓸 때에 준한 유의점이라거나 꿀팁들을 전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읽으면서 '아, 나는 연설문 쓸 일도 없는데 뭘 계속 연설문 쓰는 요령을 이리 설명하시나?'하는 생각이 좀 들었단 것입니다. 이번 생에는 크게 연설할 일은 없을 듯 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습니다.

   또한, 내용 전반에 걸쳐 대통령들이 주문한 특별한 지시사항, 지적사항, 요구사항 등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벌써 다 잊어버린 느낌이라 휘발성 지식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말입니다.

   그리하여 글쓰기 팁을 얻고 싶은 분들이거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들의 숨겨진 일화가 궁금하신 분들이거나, 지난번과 이번 정권의 대통령님들의 연설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 느끼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읽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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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ㅣ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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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에 충실한 스릴러

   저는 데이비드 발다치라는 저자를 처음 만나는데 기본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장르소설의 미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일단 지루하지 않고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문장이 좋고 나쁨이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읽는데 전혀 거슬림은 없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야겠지요. 사실은 번역이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만 일단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의 전개를 가진 스토리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원맨쇼라고 해야 할 정도로 주인공이 좌충우돌 돌아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점에서도 이 작품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자체가 훌륭한 하드웨어를 가졌지만 완벽한 외모는 아니라 거부감은 없는 살찐 아저씨 같은 느낌입니다. 제목처럼 과잉기억 증후군을 후천적으로 얻었고 그 능력을 활용해 사건을 풀어나가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와 달라진 스스로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거짓말 같은 기억력이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게 잘 안배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 인물들도 주인공 못지않게 입체적인 캐릭터와 적절한 비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한몫 들 하고 있습니다. 사건에도 적당히 개입하고 일부는 해결에 기여를 하며, 한편으로는 함께 고통을 받기 때문에 이 작품이 지나친 원맨쇼로 보이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줍니다.

   분량이 꽤나 긴데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전개는 상당히 훌륭하다는 느낌입니다. 이런저런 생각 없이 쭈욱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돋보였습니다. 자고로 스릴러는 독자가 위화감 없이 이야기를 끝까지 궁금증과 일말의 위기감을 느끼면서 읽도록 해준다면 성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 양날의 검이 되는 소재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소재는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현상입니다. 양상이 다양하게 있다고 설명해주고 있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한번 본 것, 들은 것, 기억한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장이 효율적으로 되어있는지 오래된 기억도 금방 찾아냅니다. 뇌가 하드디스크 같은 고용량 스토리지인데 읽고 쓰는 속도도 엄청 빠르고 색인 시스템이 좋아서 찾기도 엄청 잘 한다는 설정이죠. 게다가 영구 보관되고 말입니다.

   이런 소재가 작품에 캐릭터에게 활용되어 부여되면 정말 난해한 사건을 부여하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도록 스토리를 설계하기 적합합니다. 주인공의 능력치가 거의 치트키 수준이다 보니 과제도 그만큼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죠.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시시하게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하여 사건이 너무 복잡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이어서 그 정도 수준에서 몸빵으로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는 어지간한 독자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고민 없이 읽을 수 있죠. 게다가 주인공의 개고생이 남일 같지 않아 감정이입이 잘 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경우 설정 자체는 오랜 스릴러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주인공의 능력이 신선하기 때문에 이색적인 전개가 가능해서 즐겁게 읽을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독자가 생소한 인물적 특성을 계속 이해하고 상상해가면서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중간중간 밝혀지는 과거 이야기나 연구소에서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어렵거나 관심이 없어서 힘들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통상 이런 경우 리뷰의 평점이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죠. 흔히 호불호가 갈린다고 표현하는 것인데 이 작품도 그럴 가능성이 제법 보였습니다.

   여튼 저는 상당히 흥미롭게 읽은 쪽이었습니다. 사실은 저 같은 경우는 아무 생각 없이 탁월한 하드웨어로 몸빵으로 해결하는 하드보일드 한 스타일을 더 선호하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그런 스타일 외에도 저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 좀 있었거든요. 과잉기억 증후군의 증상 자체보다는 타인과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상태라든가, 사회 현상이라든가 이런 부분을 조금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 미국산 범죄 스릴러의 기대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소개를 보니 영미권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로 보입니다만 장르소설의 무덤인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군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범죄소설 작가라는 소개가 무색하게 대한민국에서 듣보잡에 그치고 있는 것만 봐도 역시나 우리나라에서 스릴러 장르는 호러나 SF 못지않게 블랙홀 장르라 하겠습니다.

   이분 앱솔루트 파워 라는 소설을 쓴게 1996년도니 벌써 20년째 성공적으로 작가생활을 해오고 계시는데 국내에 소개가 많이 늦었습니다. 한 두 작품 소개가 되었었는데 그닥 관심을 끌지 못했나 봅니다. 작품도 많고 시리즈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원제 Memory Man)"는 2015년도 작품이니 최근작이고 에이모스 데커 시리즈가 올해 출간 된 "The Last Mile"이 한 작품 더 있군요. 이번 작품의 판매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으면 북로드에서 후속작도 출간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경우는 특정 살인마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벌어지는 지극히 사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데이비드 발다치는 실제로 정치권, 사법제도 등의 비리와 사회현상 등을 고발하는 정통 스릴러를 써왔다고 하니 오히려 다른 작품이 저의 취향을 더욱 저격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른 작품도 꼭 번역되서 출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뭔가를 잊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도 좀 잊고 싶어요."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도 자기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잊지 못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나는 그 일을 하나하나, 낱낱이 그억해요. 그 일에 관한 건 편생 아무것도 잊지 못할 겁니다.


   역시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크나큰 축복 중 하나다... 나는 너무 많이 망각해서 문제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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