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고스트 라이터 강원국씨

   제가 대통령이 글을 어떻게 썼는지에 딱히 관심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저자 때문입니다. 강원국씨는 2대에 걸쳐 8년간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연설문을 쓰는 연설비서관으로 지냈습니다. 이분이 다른 매체에서 청와대 시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는데 에피소드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분의 태도에 반해버린 것이죠.

   청와대라는 곳은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오죽하면 청와대에 출입하는 전기수리공이 주변 사람에게 자기에게 잘 보이라며 으스대면서 필요한 거 있으면 해줄 수 있다고 떠들었다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렸겠습니까? 그런 곳입니다. 얄팍한 사람의 권위의식을 자극하기 아주 좋은 곳이죠.

   제가 이분의 실제 인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글과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분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내비치는 태도는 겸손 그 자체였거든요. 저는 약간 과하다 싶은 정도로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충분히 거들먹거리기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극소수만 경험할 수 있는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을 개, 돼지라 칭하는 잡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격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낮춰서 사람들의 공감과 웃음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이따위 시대에선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과 태도는 보았으니, 이 분의 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책 내용과 직접 상관이 없는 것을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보다는 이 저자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욱 많은 교훈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관음증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흔히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 했던 희귀한 경험을 전해 듣거나 슬쩍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인 전임 대통령들과 함께 생활하고 호흡하고 그들의 말과 생각을 공유하는 특별한 체험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연설문을 쓰는 과정에서 겪었던 두 대통령들과의 일상 이야기나 에피소드들은 그야말로 웃음을 절로 자아냅니다. 훌륭한 재료에 좋은 요리가 나오듯이 이는 결국 두 대통령들이 훌륭한 분들이었기에 좋은 에피소드들이 넘쳐나는 것일 테지요. 현 정부의 연설 비서관이 과연 내세울 에피소드나 있으려나 의문입니다.

   사실 이 책은 글쓰기 요령을 전달하는 책이기보다는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두 분 전 대통령 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면이 훨씬 강한 책입니다. 그리하여, 두 대통령이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기에는 해롭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취향에 맞는 "대통령의 시간" 같은 책을 읽으시면 되시겠습니다.

   저는 두 대통령들의 철학과 평소 생활 방식과 국민들에 대한 생각, 국정 철학 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두 분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는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두 분 모두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의지가 깊은 분들이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3. 그래도 놓치지 않은 글쓰기의 원칙들

   아무래도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보니 중 후반으로 갈수록 글쓰기 요령이나 원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에피소드로 주의 환기를 충분히 시키고, 글쓰기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로 점점 채워가는 형국이지요. 저자 스스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다가는 지겹다는 원성을 들을 것을 의식하셨는지 중간중간에 계속 두 대통령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합니다. 제발 끝까지 읽어주라~~라고 부탁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글쓰기에 참고할 만한 좋은 팁들이 무척 많이 있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한눈으로 읽고 한눈으로 흘려버렸습니다. 어차피 앞으로도 제 맘대로 쓸 거니까요. 맘대로 쓰는 게 블로그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인데 그걸 버릴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다른 글쓰기 책과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연설 비서관이시다 보니 일반 글쓰기보다는 연설문을 쓸 때에 준한 유의점이라거나 꿀팁들을 전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읽으면서 '아, 나는 연설문 쓸 일도 없는데 뭘 계속 연설문 쓰는 요령을 이리 설명하시나?'하는 생각이 좀 들었단 것입니다. 이번 생에는 크게 연설할 일은 없을 듯 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습니다.

   또한, 내용 전반에 걸쳐 대통령들이 주문한 특별한 지시사항, 지적사항, 요구사항 등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벌써 다 잊어버린 느낌이라 휘발성 지식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말입니다.

   그리하여 글쓰기 팁을 얻고 싶은 분들이거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들의 숨겨진 일화가 궁금하신 분들이거나, 지난번과 이번 정권의 대통령님들의 연설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 느끼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읽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