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소재는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현상입니다. 양상이 다양하게 있다고 설명해주고 있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한번 본 것, 들은 것, 기억한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장이 효율적으로 되어있는지 오래된 기억도 금방 찾아냅니다. 뇌가 하드디스크 같은 고용량 스토리지인데 읽고 쓰는 속도도 엄청 빠르고 색인 시스템이 좋아서 찾기도 엄청 잘 한다는 설정이죠. 게다가 영구 보관되고 말입니다.
이런 소재가 작품에 캐릭터에게 활용되어 부여되면 정말 난해한 사건을 부여하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도록 스토리를 설계하기 적합합니다. 주인공의 능력치가 거의 치트키 수준이다 보니 과제도 그만큼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죠.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시시하게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하여 사건이 너무 복잡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이어서 그 정도 수준에서 몸빵으로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는 어지간한 독자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고민 없이 읽을 수 있죠. 게다가 주인공의 개고생이 남일 같지 않아 감정이입이 잘 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경우 설정 자체는 오랜 스릴러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주인공의 능력이 신선하기 때문에 이색적인 전개가 가능해서 즐겁게 읽을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독자가 생소한 인물적 특성을 계속 이해하고 상상해가면서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중간중간 밝혀지는 과거 이야기나 연구소에서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어렵거나 관심이 없어서 힘들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통상 이런 경우 리뷰의 평점이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죠. 흔히 호불호가 갈린다고 표현하는 것인데 이 작품도 그럴 가능성이 제법 보였습니다.
여튼 저는 상당히 흥미롭게 읽은 쪽이었습니다. 사실은 저 같은 경우는 아무 생각 없이 탁월한 하드웨어로 몸빵으로 해결하는 하드보일드 한 스타일을 더 선호하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그런 스타일 외에도 저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 좀 있었거든요. 과잉기억 증후군의 증상 자체보다는 타인과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상태라든가, 사회 현상이라든가 이런 부분을 조금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