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 생각수업 -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ㅣ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1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1. "생각"이라는 것

   기본적으로 저는 '자기 계발서 비슷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생각수업"이라는 단어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여럿 있지만, 현 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이야말로 개인 각자 각자가 "생각"이라는 것을 장착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이에 대한 도움, 혹은 조금은 바람직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정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니까 말입니다.

   주로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우리들이 갑자기 생각이라는 것을 잘하게 되기는 힘듭니다. 미디어의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니 생각인지 내 생각인지 피아식별조차 안되는 상태에서는 기본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제 기대보다는 훨씬 의미 있는 책이었습니다. 좋았어요.

   저자가 '생각하는 법'을 테마로 뭔가 일을 해보면 통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저자가 "생각의 힘"을 잘 활용한 실례입니다. 저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입식 교육에 찌든 일본에서 공부하고 은행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기업 유학생으로 유럽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게 되고, "유럽 경영 대학원"의 공부 방식에 충격을 받습니다. '답 고르기'가 아니라 '니 생각을 말해봐' 식의 공부방식에 대해 말이죠. 그리고는 '아, 미국이나 유럽 쪽 대학이나 대학원으로 진학하고자 하는 일본 학생을 대상으로 이런 걸 가르치면 먹히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일본인 특유의 정리정돈하기 실력이 결합하면서 이 책을 비롯한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공부법을 배우면서 그걸로 "돈이 되는 일 +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된 것이죠. 똑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저자고 문제는 우리입니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 책을 통해 그들이 어떤 주제로 각자의 생각이라는 것을 묻고, 생각을 하고 표현하는 수준을 확인하는지를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2. "확고한 가치관과 진정한 교양"을 갖는다는 것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확고한 가치관과 진정한 교양을 갖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논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맞다라는 식으로 무언가를 알려주는 방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계관과 가치관에 있어 매우 기초적인 문제 몇 가지를 제시한 다음, 철학적으로 어떤 고전적인 주장들이 있는지 개괄적으로 나열하고,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기본적인 정보는 제공할 테니 '니가 생각하고 니 생각을 니가 정립하라'는 말입니다. 구체적인 것은 각자 고민해보더라도 최소한 이 정도는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거 아닐까? 정도의 논제를 던져주고 있어요.

   간단히 정리하자면, 나의 생각이란 무엇인지? 국가란 무엇인지?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롯한 경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과학과 예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지? 등입니다. 이런 주제들을 통해 최소한의 가이드를 해주고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가 진정 익혀야 할 힘은 "사물의 본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궁리해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갖는 힘"입니다. 거기에 "그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조리 있게 주장하며 커뮤니케이션을 꾀하는 힘"입니다.  저도 물론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3. 내 생각이 과연 내 생각이 맞는가?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결정한다 = 자유롭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부 혹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스스로 결정한 내 생각이 맞는가?"라고 묻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넷에서 발신된 정보를 보고 마치 그것이 자신의 생각인 양 착각해 폭주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군가가 정보를 조작해 여론을 유도하는 경우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이것은 나의 의사라고 믿는다. 그 결과 사람들의 사고가 점점 획일화되어 간다."

   이러한 상황하에 점점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한 가지 사고방식이나 관점이 맹렬한 기세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침투되어 여론을 형성해 나갈 위험성을 지닌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중략)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시대의 리스크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자유의사를 다시 한 번 의심하고 검증하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라고 권해주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가치관과 교양은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기본 전제조건입니다. 이는 "생각"이라는 것을 통해 얻을 수 있고, 이 책을 통해 "생각"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어 유익합니다.

   참,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앞세우고 있는 "하버드"라는 단어는 아무 의미 없습니다. 세계의 유수 대학 입학 논술 시험에 나올 법한 문제들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기본 틀을 가지고 있어서 "하버드"를 차용했을 뿐, 사실상 이 책의 내용과는 크게 관련 없어요. 굳이 지적하자면 상술의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 자체는 쉽고 유익하기 때문에 욕하기가 어렵네요.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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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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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 책이 책상에 올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쿄 기담집을 그런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것 또한 이 책의 네 번째 단편 내용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읽고 깊은 감상을 쓸 마음은 없습니다.

   첫 번째, 가독성은 참 좋습니다. 무척 흥미롭게 잘 읽었으니까요.

   두 번째, 기담이라는 것에 대해 오해를 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기이한 이야기여야 하는데 그다지 기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루키의 다양한 소설에 비하면 무척 평범했습니다. TV피플 같은 게 훨씬 기이한 게 아닌가 싶네요. 왠지 무서운 이야기일까 봐 여태껏 읽기를 꺼렸다는 것을 생각하니 괜히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세 번째, 짧은 단편들이고 특유의 쿨한 서사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와 닿는 것이 있네요. 이런 식으로 하는 듯 마는 듯 힘을 주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은 역시나 대단합니다.

   네 번째, 책의 두 번째 단편 "하나레이 만"은 분위기가 무척 좋은 소설이었고, 제가 무지하게 좋아하는 느낌의 소설이었는데 역시나 이 작품만은 에쿠니 가오리 작품의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가오리가 여자 하루키라고 불린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정말 비슷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요.

   다섯 번째, 하루키는 정말 글을 잘 쓰는군요... 국내 독자들에게 호불호가 생기는 이유는 아마도... 무심한 듯 던지는 대화나 서사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뭔가 우리랑 좀 동떨어진 느낌이 분명 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뭔가 선명하지 않은 메시지랄까, 이런저런 흐지부지 함이 좋게 말하면 쿨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 이게 뭐란 말이야?'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튼 저는 좋은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 있는 편입니다.

   참, 저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학사상사 버전으로 읽었고, 역자는 임홍빈씨인데 개인적으론 좋았습니다. 그렇다고 비채에서 나온 신간을 읽어보고 비교해 볼 정도의 애정은 없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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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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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서너 가지 정도 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단편집을 다른 분들보다 좋아하고 선호하는 편이고, 저자에 제가 애정 하는 87분서 시리즈의 에반 헌터, 매튜 스커드 시리즈의 로렌스 블록이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입니다. 또한 서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역자가 이리나 씨라는 점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게 되기는 했지만, 사실은 읽기 전에 걱정이 좀 앞섰습니다. 이런 형태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뭔가 의기투합해서 단편집을 낸 책들을 읽고 크게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도 역시나 좋은 취지와 아름다운 제작 스토리에 비해 정작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죠. 객관적으로 재미가 없다고 평가될 작품들이냐를 떠나 제가 취향에 좀 안 맞거나 재미있게 읽기 어려울 수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식의 기획인 경우 유명 작가들이 나름 다른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자기 작품의 유명 등장인물을 살짝 비틀어서 독자에게 재미를 더하는 방식이 많고, 이 책의 경우는 현존하는 서점과 서점 주인이 등장하다 보니 서점도 모르고, 서점 주인도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의 원래 의도만큼 재미를 느끼기는 사실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을 읽어보니 기우였습니다. 읽으면서 허리를 접을 만큼 재미가 있거나, 눈물이 앞을 가려 효..라고 할 만큼 너무나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단편집답게 소소하면서도 이외로 허를 찌르는 미스터리 특유의 재미만큼은 잘 살아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몇 개 안 읽었지만 유사한 기획 단편집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되었습니다.

   사실 위에 설명한 걱정 외에도 위험부담이 한가지 더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북스피어 마포 김 사장님의 취향은 저와 상당히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변수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역자인 이리나 씨에 대한 믿음이랄까? 안목에 대한 신뢰랄까? 그런 것이 있어 위험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었더랬지요. 책 한 권 읽으면서 뭐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지 스스로도 웃기기는 하지만 책 한 권 완독하기가 더럽게 어려운 현실 속에 살아가는 중년탐정.. 아니 중년 독자는 책장에 쌓인 수많은 책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사들이 근래의 신간들, 게다가 이 또한 지나치다 싶을 만큼 구매한 이북들 중에서 독서의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에 한 권 한 권 읽기가 끝나면 다음 책을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작품들이 한결같이 좋고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제 마음을 끈 작품을 꼽아 보자면 토마스 H. 쿡의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이었는데, 이 짧은 단편에 감동도 있고 실제로 교훈도 있고 등장인물의 사연도 살아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토마스 쿡이 상당히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역자 후기에 역자도 저와 같은 작품이 좋았다고 적어두셔서 역시 취향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랑 비슷하면 훌륭하다는 생각이 참 훌륭해...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나 읽기를 끝내다 보니 이건 내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리뷰를 쓸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며칠 이상 지속되지 않는 휘발성 기억 시스템을 가진 저로서는 무리무리무리 데쓰!! 우리나라도 점점 특징적인 전문, 소규모 서점이 엄청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 책방 주인은 물론이고 출판사와 작가, 역자들까지 다 함께 힘을 모아 서로서로 지켜주는 "느슨한 연대(계속 써먹을 예정임)"를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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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나일까? ㅣ 초등 저학년을 위한 그림동화 6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김소연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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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이게 정말~~" 시리즈가 초등 저학년용 그림동화인데 어쩐지 딱 저랑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초등학생처럼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네, 진짜 그런 거였네. 어쩐지.. 뭔가 살기가 힘들다 했어..

   이 시리즈 중 핵심이 아닐까 싶은 책이 이번 책 "이게 정말 나일까?"인데, 이거 초등 저학년이 내용을 알고 고민하며 읽기엔 좀 어렵지 않으려나? 싶게 철학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그 나이에 맞게 받아들이도록 재미있고 기발한 부분이 충분히 가미되어 있지만 말입니다.

   스토리는 내가 편하려고 로봇을 하나 구해서 나를 대신해 내일을 하도록 로봇에서 "나는 어떤지?"를 설명해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내 역할을 대신 맡길 정도로 나를 자세히 설명하자고 보니 보통 일이 아닌 것이죠.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나를 설명해서 나를 대신하도록 한다는 일이 생각보다 막막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딱 떨어지는 특징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는데 엄마 앞에서 로봇이 한마디를 하자마자 "넌 누구니?"라는 반응. 바로 실패!!! 이런 내용인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자신을 돌아보고 정의해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예의 저자의 놀라운 상상력과 표현력이 빛을 발합니다.

   짧고 간단한 책인데 내용도 알차고 그림도 재미집니다. 스윽 훑어보기 적당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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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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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밀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에 대한 이야기

   도선우 작가의 등단작 "스파링"은 일종의 이중구조 같은 구조의 이야기입니다. 외연을 형성하고 있는 주인공 장태주의 불우한 성장기와 성공, 그리고 몰락에 관한 이야기만 보면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스토리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 와중에 이런 진부한 스토리텔링이 심지어 재미있어서 대단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의 진가는 장태주의 독백과 은인 "담임"의 목소리 등으로 전달되는 내연의 메시지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연의 이야기는 기실 저자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가치관이자 세계관의 정수가 담긴 엑기스와도 같습니다.

   저자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인간들이 무리를 지은 세상을 굴리고 있는 철벽과 같은 힘의 논리에 대해 설명합니다. 참으로 징하고 성실하고 디테일하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어요. 이게 소설인가? 사회인문학서인가? 싶을 정도로 우직하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책을 꼼꼼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책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 하더라도 저자 도선우의 또 다른 분신 블로거 "까칠한 비토씨"의 리뷰를 꾸준히 접하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익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이 소설에 담긴 사회학적 관점에서의 정의와 불의에 대한 개념은 어쩌면 "까칠한 비토씨"의 2000개의 리뷰를 통해 산발적으로 주장해오던 그만의 철학이 정제되고 집약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2. 가진 자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에 속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

   도선우 작가는 책을 통해 가진 자가 짜놓은 촘촘한 착취 구조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개개인이 별생각 없이 그 착취 구조에 동참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개인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차근차근 들려줍니다.

"때론 생각이라는 걸 안 하고 살면 그게 제일 편한 것 같지만, 또 막상 자기 생각이라는 걸 하지 않고 살면 명확히 제 세계를 구축하고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에 휩쓸리게 돼. 문제는 그들이 세운 질서가 네가 원하는 질서와 다를 수도 있다는 거야. 너한테 무조건 불리하고, 너한테 무조건 억울한"

   그렇습니다. 일단 도대체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이렇게 점점 이상한 구조인지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 돼지"소리를 안 들으려면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바꾸기 어려워집니다.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세상처럼 말입니다.

"그걸 알고 뒤늦게 상황을 바꿔보려고 해도 그땐 쉽지 않아.
처음에 잘 생각해서 행동했을 때보다 적어도 만 배 이상은 힘이 들겠지."

   문제는 있는데 이걸 해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문제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각자에 입장이 상충되거나 다양하게 전개되어 문제의 핵심을 숨고, 서로 다른 주장끼리의 대립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저마다 각자의 의견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고 누군가 말해버리면 그게 곧 정답이 되고 마는 상황이지. 자,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득을 보고 있는 사람을 누굴까? (중략)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고, 결과도 하나 달라진 게 없는데, 저마다의 의견이 존재한다는 이상한 결론 하나로 결국 문제 자체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어. 마술처럼."

 

   다원주의를 들먹이며, "당신도 옳고 나도 옳고, 당신도 좋은 사람, 나도 좋은 사람, 우리는 좋은 사람. 행복하다 행복해~~" 이런 식으로 본질을 흐려버리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본질은 감추고 계속 착취구조는 유지됩니다. 저자는 일단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합니다. 거의 다리끄댕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수준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읍소해요. 주인공과 '담임'의 대화로 써놓았지만 사실 "제발 이 양반들아, 생각이란 것을 좀 하란 말이야!"라는 한 문장으로 읽히는 대목들이 길게 늘어져 쓰여있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거 쓰다가 거의 울먹였겠는데..' 싶을 정도의 뉘앙스란 말이죠.

"그렇다면 이 문제의 문제는 뭘까? (중략)
맞아, 이 또한 충분히 생각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야. (중략)
너희가 내는 돈이 모여 너희를 강제하는 집단이 유지된다는 거야.(중략)
그러니까 그들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라는 말이야.(중략)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흐르는 만큼 더 확고한 질서가 자리 잡힐 거야. 그러면 과연 그때도 그들이 돈 천 원으로 모든 걸 다 편하게 해결해주겠다고 말할까? (중략)

아마 그렇지 않을 거야. 무언가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그리고 그게 꼭 금액이 올라가는 형식일는지도 알 수 없어. 뭔가 다른 미묘한 방식을 만들어내겠지. 그들은 그러기 위해 너희와는 다르게 끊임없이 생각이라는 걸 할 테니까."

   자, 여기까지만 해도 심각한 사태입니다만, 이 상태가 계속 진행된다면 어떻게 되느냐...제가 이 와중에 맛이 가는 부분은 바로 그다음 부분입니다.

"이미 부당한 질서에 순응한 너희들은 그 새로운 질서에도 곧 순응하게 될 거야. 그때도 그게 물 흐르는 듯이 순리대로 사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그렇지? 그러면 곧 네 보육원 후배들이 그 지역 중학교에 올라갈 즈음이면 천 원으로 끝나지 않는 시대를 살게 될 수도 있어. 자 그럼, 그 아이들이 그런 세상을 살게 되는 데에 너희의 책임이 있을까. 없을까?"

   이런 거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사회의 구조적인 착취에 대해 순응하고 눈을 감은 채 어쩔 수 없지라 하며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아이들이 겪게 될 착취는 훨씬 더 강력하고 개인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악랄한 것으로 진화해 있을 겁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이 무척이나 무시무시합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확고한 착취구조는 말하자면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아보세~"를 외쳐가며 중동까지 가서 열심히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업적이자 그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그 공을 누구에게 돌립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찬양한단 말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했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아닙니까? 이 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한 것은 그 누구의 공도 아니라 바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적으로 열심히 일한 우리 부모님 세대 개개인의 공이란 말입니다. 이 업적을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습니까?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또다시 누구에게 갖다 바치려고 자신의 투표권을 사용하고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생각 없이 포기하는 우리의 권리가 우리 다음 세대를 더욱 힘든 세상 속에 내던집니다. 결혼도 안한 저자는 앞으로 생길지 안 생길지 확실하지도 않은 자기 아이를 걱정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까지 걱정하는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3. 개인의 선택으로도 바뀌지 않는 세상, 느슨한 연대의 필요성

   심사위원을 포함해 아마도 이 소설이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이 다르다는 지적을 꽤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소설 전체를 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해본다면 꼭 그렇지마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후반부로 가서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방향을 모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설의 전반부까지는 고아에 아무 힘없고, 배경도 없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에 빗대어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집중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천부적 소질을 깨닫고, 담임을 만나는 상황으로 국면이 전환되죠. 이는 개인이 자기계발을 하고, 좋은 스승과 교육기관을 만나 개인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은유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스펙을 쌓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고 목놓아 말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죠. 그리고 실제로 주인공은 자신의 실력을 쌓아 세계에서 최고가 됩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소설에서 그의 인생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친 가족과 같은 믿고 의지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만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죠. 그 와중에 사회의 관심과 편견에 시달리고 순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폭발하고, 모든 것을 잃습니다.

   이 후반부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또 목놓아 부르짖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자가 그 치밀하고 성실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쏟아붓던 전반부와 전혀 다르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개인의 인생사를 논하고 싶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양반 한 놈만 패는 스타일이 아니던가요?

   복서로 흥망을 거듭하는 후반부 이야기는 결국 한 개인이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 짜인 사회구조를 바꿀 수도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바뀌려면 개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부정과 부패, 부조리를 목도하고 목소리 높여 욕하고 비난하지만 막상 그 개인을 그 위치에 데려다 놓으면 주어진 상황에서 결국 똑같이 부정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경험칙이 작용한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하여 구조적 변화, 저자가 가볍게 언급한 협동조합 등의 새로운 가능성. 저자가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넌지시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느슨한 연대냐?" 이 책에서 해결책, 대안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쫀득한 연대를 만들어놓으면 또 그 속에서 누군가가 헤게모니를 잡고 연대를 좌지우지하는 병폐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일방적으로 타인을 구속하지 않는 느슨한 연대가 막연하지만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님 말고..


#4. 스파링이 끝났으면 실전 경기를...

   도선우 작가의 데뷔작 "스파링"은 실제로 작가가 소설가로 세상에 나서는 스파링 같은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파링만 하다가 실전에 못 나가고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산다는 게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요. 여튼, 스파링만 드럽게 많이 한 것 같으니까 아마도 더욱 강력해진 실력으로 경기를 치러 나가겠지요. 이번 작품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압축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 느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작품들을 통해 이 책에 담긴 액기스와 같은 저자의 생각들이 좀 더 디테일하게 차근차근 풀어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외연에 다양한 모양을 입히겠지요.

   또한 이번 책에서 다 담아내지 못한 내용들이 꽤나 있어 보이는데, 이를테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제점 같은 것은 "신자유대교"라는 지나치게 대놓고 지은 듯한 상징물"로 드러내주고 있지만 더 나아간 사고의 결과물은 실려 있지 않아요. 아마도 일종의 속편 같은 이야기로 다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일 최근에 저자가 관심을 많이 기울이던 부분 중에 한 부분이 "차세대 인공지능과 인간"이런 부분인데 이런 문제는 SF 같은 형식으로 담아도 좋을 주제입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해 나가고 가진 생각들을 잘 펼쳐 낼지 여부는 결국 독자들이 얼마나 저자의 책을 선택해주느냐의 문제일 텐데, 이미 너무 노장이라 어떨지... 다행히 소설이라는 것은 몸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더 좋은 작품을 써내는 작가가 여럿 있어 걱정은 안됩니다만,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들기 마련이어서 헬스는 계속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충분히 꼰대력을 드러낼 나이가 되셨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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