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사회의 구조적인 착취에 대해 순응하고 눈을 감은 채 어쩔 수 없지라 하며 받아들이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아이들이 겪게 될 착취는 훨씬 더 강력하고 개인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악랄한 것으로 진화해 있을 겁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게 될 세상이 무척이나 무시무시합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확고한 착취구조는 말하자면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아보세~"를 외쳐가며 중동까지 가서 열심히 나라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업적이자 그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그 공을 누구에게 돌립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찬양한단 말입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들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들이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했던 설명과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 아닙니까? 이 나라가 이 정도로 발전한 것은 그 누구의 공도 아니라 바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적으로 열심히 일한 우리 부모님 세대 개개인의 공이란 말입니다. 이 업적을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습니까?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또다시 누구에게 갖다 바치려고 자신의 투표권을 사용하고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생각 없이 포기하는 우리의 권리가 우리 다음 세대를 더욱 힘든 세상 속에 내던집니다. 결혼도 안한 저자는 앞으로 생길지 안 생길지 확실하지도 않은 자기 아이를 걱정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까지 걱정하는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3. 개인의 선택으로도 바뀌지 않는 세상, 느슨한 연대의 필요성
심사위원을 포함해 아마도 이 소설이 전반부와 후반부의 톤이 다르다는 지적을 꽤나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이 소설 전체를 두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해본다면 꼭 그렇지마는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후반부로 가서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방향을 모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소설의 전반부까지는 고아에 아무 힘없고, 배경도 없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에 빗대어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집중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천부적 소질을 깨닫고, 담임을 만나는 상황으로 국면이 전환되죠. 이는 개인이 자기계발을 하고, 좋은 스승과 교육기관을 만나 개인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과정을 은유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스펙을 쌓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라고 목놓아 말하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죠. 그리고 실제로 주인공은 자신의 실력을 쌓아 세계에서 최고가 됩니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가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소설에서 그의 인생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친 가족과 같은 믿고 의지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만이 그에게 유일한 위안이죠. 그 와중에 사회의 관심과 편견에 시달리고 순응하지 못하는 주인공은 폭발하고, 모든 것을 잃습니다.
이 후반부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또 목놓아 부르짖고 싶었던 것일까요? 저자가 그 치밀하고 성실하고 디테일한 설명을 쏟아붓던 전반부와 전혀 다르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개인의 인생사를 논하고 싶었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 양반 한 놈만 패는 스타일이 아니던가요?
복서로 흥망을 거듭하는 후반부 이야기는 결국 한 개인이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한다 하더라도 큰 틀에서 짜인 사회구조를 바꿀 수도 그 구조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바뀌려면 개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만큼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즉, 부정과 부패, 부조리를 목도하고 목소리 높여 욕하고 비난하지만 막상 그 개인을 그 위치에 데려다 놓으면 주어진 상황에서 결국 똑같이 부정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경험칙이 작용한 거라 볼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하여 구조적 변화, 저자가 가볍게 언급한 협동조합 등의 새로운 가능성. 저자가 정확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느슨한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넌지시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 "느슨한 연대냐?" 이 책에서 해결책, 대안에 대해서까지 자세히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쫀득한 연대를 만들어놓으면 또 그 속에서 누군가가 헤게모니를 잡고 연대를 좌지우지하는 병폐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일방적으로 타인을 구속하지 않는 느슨한 연대가 막연하지만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