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서너 가지 정도 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단편집을 다른 분들보다 좋아하고 선호하는 편이고, 저자에 제가 애정 하는 87분서 시리즈의 에반 헌터, 매튜 스커드 시리즈의 로렌스 블록이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입니다. 또한 서점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관심이 가기 마련이고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역자가 이리나 씨라는 점을 들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게 되기는 했지만, 사실은 읽기 전에 걱정이 좀 앞섰습니다. 이런 형태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뭔가 의기투합해서 단편집을 낸 책들을 읽고 크게 좋은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책도 역시나 좋은 취지와 아름다운 제작 스토리에 비해 정작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 재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죠. 객관적으로 재미가 없다고 평가될 작품들이냐를 떠나 제가 취향에 좀 안 맞거나 재미있게 읽기 어려울 수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이런 식의 기획인 경우 유명 작가들이 나름 다른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자기 작품의 유명 등장인물을 살짝 비틀어서 독자에게 재미를 더하는 방식이 많고, 이 책의 경우는 현존하는 서점과 서점 주인이 등장하다 보니 서점도 모르고, 서점 주인도 전혀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의 원래 의도만큼 재미를 느끼기는 사실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을 읽어보니 기우였습니다. 읽으면서 허리를 접을 만큼 재미가 있거나, 눈물이 앞을 가려 효..라고 할 만큼 너무나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는 않았지만, 단편집답게 소소하면서도 이외로 허를 찌르는 미스터리 특유의 재미만큼은 잘 살아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몇 개 안 읽었지만 유사한 기획 단편집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되었습니다.
사실 위에 설명한 걱정 외에도 위험부담이 한가지 더 있었는데, 제 기억으로는 북스피어 마포 김 사장님의 취향은 저와 상당히 안 맞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가지 변수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역자인 이리나 씨에 대한 믿음이랄까? 안목에 대한 신뢰랄까? 그런 것이 있어 위험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었더랬지요. 책 한 권 읽으면서 뭐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지 스스로도 웃기기는 하지만 책 한 권 완독하기가 더럽게 어려운 현실 속에 살아가는 중년탐정.. 아니 중년 독자는 책장에 쌓인 수많은 책들,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사들이 근래의 신간들, 게다가 이 또한 지나치다 싶을 만큼 구매한 이북들 중에서 독서의 우선순위를 정하기가 쉽지가 않기 때문에 한 권 한 권 읽기가 끝나면 다음 책을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작품들이 한결같이 좋고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상당히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제 마음을 끈 작품을 꼽아 보자면 토마스 H. 쿡의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이었는데, 이 짧은 단편에 감동도 있고 실제로 교훈도 있고 등장인물의 사연도 살아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토마스 쿡이 상당히 훌륭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지막 역자 후기에 역자도 저와 같은 작품이 좋았다고 적어두셔서 역시 취향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나랑 비슷하면 훌륭하다는 생각이 참 훌륭해...
크리스마스가 한참 지나 읽기를 끝내다 보니 이건 내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리뷰를 쓸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며칠 이상 지속되지 않는 휘발성 기억 시스템을 가진 저로서는 무리무리무리 데쓰!! 우리나라도 점점 특징적인 전문, 소규모 서점이 엄청 늘어나는 추세에 있는데, 책방 주인은 물론이고 출판사와 작가, 역자들까지 다 함께 힘을 모아 서로서로 지켜주는 "느슨한 연대(계속 써먹을 예정임)"를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