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1 - 사도세자 이선, 교룡으로 지다
최성현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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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력은 누구에게나 달콤하지만 더러운 흔적을 남긴다.

 

   권력(權力)은 권세와 힘을 합친 단어로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타인을 복종시키고 지배하여 좌지우지 하며 달콤해 하는 것은 역사 이래로 변함이 없는 듯 합니다. 이런 권력의 사용은 자기존재의 확인과도 직접 연결되다보니 이 땅에 태어나 뜻을 펼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여겨온 것이 인간이고 그 결과로 빚어진 역사가 우리의 권력 투쟁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승자들의 역사속에 조차 권력을 위한 암투는 끝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 권력이라는 것의 위력은 크고 한없이 강력해서 단 한번도 제대로 나누어 가졌던 역사가 없습니다. 흔히 "The Winner Takes it all"1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필연적으로 반대세력에 대한 피나는 숙청과 처단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반대입장에서 본다면 참으로 억울한 희생의 역사입니다. 최성현 작가의 [역린1 교룡에 지다]에서는 사도세자로 잘 알려진 이선의 억울한 희생에 초점을 맞춥니다. 역사적으로 사도세자 이선이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는 평, 즉 '죽을만 했다'는 의견과 영조와 노론세력의 견제에 억울한 희생양이라는 평, 다시 말하면 아버지 영조의 권력에 대한 병적 집착, 정치적 정적으로써 아들을 대하는 과도한 불안감과 이를 교묘히 이용한 정치세력 노론의 합작의 결과로 빚어진 슬픈 역사라는 시각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역사를 잘 모르고 그저 예전에 사극을 통해서나 접했던 내용이다보니 사극에서 묘사된 내용을 그냥 사실로 받아들인 꼴이 되었는데 제가 보았던 내용은 그저 사도세자가 어리버리하여 결국은 죽임을 당하는 정도의 스탠스였고 그저 그 '뒤주 속에서의 죽음까지가 처절하고 슬프고 아타까웠다' 정도의 기억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쪽이건 이선은 억울한 희생의 역사에 최대 희생양입니다. 뒤주속에서 일주일을 넘게 굶어가며 처절하게 죽어갔으니 참으로 인간적으로 있어서는 안될 역사입니다.

   ​이렇듯 권력은 늘 더러운 흔적을 남깁니다. 감추려 하면 할수록 결국엔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최성현 작가님은 작품속에서 권력을 쫒는 각 세력들의 형편과 입장을 놀랍게도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각자의 입장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그려집니다. 그 더러운 흔적이 [역린]이라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2. ​이기는 자가 선이요, 패배는 악이다.

   권력을 위해 잔인한 학살을 자행하는 인간들의 행보는 참으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이기 그저없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각 세력들, 아니 한사람, 한사람을 잔잔히 들여다보면 단순하게 단정짓기 어려워집니다. 각 사람들마다 생존을 위해, 성공을 위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사정들을 알게되면 그 나름대로 명분이 있고,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각자의 행동에 정당성을 얻기 시작하면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명확히 선과 악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국에는 결국 결과로 말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이 결과는 승자에 의해 덧칠되고 기록되어 집니다. 역사는 사실이라기 보다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승전보인 경우가 많습니다.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꿈을 꾸던 무리가 역도가 되고 악한이 되는 것이 승자의 역사입니다. 이들의 논리대로 따라가다보면 역사적 패자는 무조껀 악의 무리가 되어집니다.

   이쯤되면 역사속에 드러난 사건의 선과 악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에 혼란이 생깁니다. 세자를 살해하려는 살수는 누가봐도 절대 악이겠지만 살수가 어떻게 살수가 되어 그자리에 서 있는지 한 사람의 역사를 돌아보면 또 그럴수 밖에 없었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게다가 워낙 정교하고 힘있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상황이 되면 저도 모르게 '음.. 그래, 그럴수도 있겠군..'하고 생각하고 마는 것입니다.

#3. 데자뷰와 같은 희생자들의 진혼곡...

   도데체 최성현 작가님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이야기가 원래 재미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완전히 몰입하도록 빼어난 구성력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각각 등장하는 캐릭터가 특색있고, 명확해 이해가 쉽고 제각각의 매력이 넘칩니다. 각각의 문장에는 힘이 있고 전통적인 느낌인데도 세련됩니다. '문장이 좋다'니 '문장력이 뛰어나다'라는 식의 평가를 좋아하지 않는 저이지만 문장이 좋습니다. 문장력이 뛰어납니다. 자연스럽게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작가가 어느정도 의도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제각각의 입장과 환경과 필연을 바라보며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느낍니다. 악한 욕망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한없이 잔인해지는 속성을 돌아보게 됩니다.

   작가의 표현대로 영조와 거대일당 노론 사이에서 짓이겨지는 이선의 잔인하도록 슬프고 억울한 죽음의 진혼곡이 왠지 그 당시에 국한된 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은 저만의 착각은 아닐 것입니다. 역사속에 끝없이 억울한 희생자가 생겨났고, 지금도 권력 앞에 힘없이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진혼곡이 끊이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공감을 받는 것은 그런 희생이 우리에게도, 우리주변에도 언제든 닥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직, 간접적으로 겪어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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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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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유정 작가가 들려주는 여행에세이의 신선함을 접하다.

 

   우리는 여행에세이 범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 이책을 접했을 때, 표지가 예쁘다는 생각 외에 '정유정작가님? 아, 작가로 성공하기는 하셨구만... 이런 여행기까지 제안을 받으셨나보네...' 하는 삐딱한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정유정"이라는 브랜드를 이용해서 팔릴만한, 돈되는 여행에세이를 하나 냈나보다 했던 겁니다. 요즘 이런 기획이 가끔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기대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여행의 발단이 출판사의 기획이나 제안은 전혀 아니었으니 오해는 풀렸습니다만, 또 하나 의아했던 것은 '왜 히말라야인가?' 였죠. 딱히 여행을 자주 다니는 걸로 알려진바가 없는 작가님이 뜬금없이 히말라야라니요? 그래서 프롤로그에 나와있는 남편의 반응에 과도한 몰입을 하며 '맞아, 맞아, 두들겨 패든 머리를 밀고 방에 가둬두든 못가게 해야지. 이거이거 거기가 좀 위험하겠어?' 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여행가서 일기 쓴다고 다 여행에세이는 아니다

   여행에세이의 유익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독자가 잘모르는 여행지의 숨은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정보전달이 주 목적인 경우 또는 여행지는 여행지대로 소개하지만 사실 저자가 여러가지 감상을 더해 하고싶은 말을 함으로써 독자들과의 교감을 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식 등이 있겠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설명체로 기술되면서도 중간중간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들어가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 됩니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 상당히 감각적이고 감상적인 글이 되거나 여행지랑 무관하게 무거운 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어느 케이스에도 끼워맞추기 힘든 독특한 여행에세이 였습니다. 히말라야 일대를 17일간이나 도는 안나푸르나 라운딩코스는 책 서두에 제공된 코스지도를 보나 코스별 고도를 기준으로 작성된 단면도를 보나 잘모르는 사람도 숨이 턱막히고 벌써 걱정이 앞서는 어려운 코스임을 예감하게 합니다. 그래도 이책이 정상적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저자가 별탈없이 돌아온 것이므로 천만다행인 것입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일기스럽습니다. 매일매일의 코스와 들린 지점, 식당, 배경, 신체적 정신적 상태등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정도면 주저리주저리 열매 능력자를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가히 질릴만한 수준의 디테일입니다. 그런데 질리지 않습니다. 전혀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여행이 진행될 수록 더욱 흥미진진하고 몰입하게 됩니다. 이런 점이 바로 이 책의 훌륭한 점입니다. 저는 이 에세이 한편만으로도 저자의 글쓰기 능력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3. 평소엔 알 수 없는 작가의 인생궤적과 사람됨을 알게되는 즐거움

 

   소설가가 몇편의 작품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지명도가 올라가고 유명세를 타다보면 자연히 작품자체와는 별개로 작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작품이 좋았다'에서 '작가가 좋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일반독자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방식이라든지 평소의 가치관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의 매체의 인터뷰라던가 에세이 집을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해야합니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 생각보다 엉뚱발랄한 작가의 인간적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도 이 책은 매우 의미있는 책입니다. 정유정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인생스토리와 인생관, 디테일한 성격등이 매우 적나라하게 담겨있습니다. 작가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평소의 갈증을 해소하는 정도가 아니라 깜짝 놀랄만큼 작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자기를 오픈하는데 적극적이고 솔직합니다. 곳곳에 작가의 과거 이야기와 가족사, 삶의 태도 등이 자연스럽게 담겨있습니다. 저는 이 에세이 한편을 통해서 작가에게 가지고 있던 제 마음대로의 이미지가 완전 수정되었습니다. '이 양반 완전 훌륭하구나.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스럽도록 힘든 세월을 견뎌왔구나'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되었습니다. 이 분의 작품의 어떠함과 무관하게 작가자체에 매력을 담뿍 느끼고 말았습니다.

 

 

#4. 재화의 가치는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재화의 가격이라는 것은 실제가치 즉, 그 재화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유용성이 있느냐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책의 가치는 얼마나 바른 정보를 제공하느냐도 있지만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렇듯 모든책이 정보제공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정보제공의 역할은 인터넷이 차지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정보제공의 역할도 톡톡히 하지만 놀랍도록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거기에 감동도 잘 버무려져서 뭐하나 나무랄데 없습니다. 읽으면서 작위적인 재미를 위한 요소나 감동코드를 위한 안배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습니다. 재미와 감동이 묘하게 적절한 비율로 섞여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능력에 감탄합니다.

 

   예를 들면 시작부터 지속된 생리적 현상인 변비 트러블을 솔직하게 적고 있는데, 읽고 있는 저는 살면서 변비를 겪은적이 없는 쾌변남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저의 배가 더부룩하고 터질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지나니 이젠 소변을 참고 참아 방광이 터져나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와우.. 조금도 작위적 느낌이 없지만 마치 소설속 설정처럼 극적입니다. 이 별 것 아닌 상황이 여행기 전체의 극적 긴장감과 몰입을 돕는 엄청난 역할을 담당합니다. 거기에 무경험자의 안나푸르나 좌충우돌기에 순간순간 자신의 인생스토리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됩니다.

 

   좋은 책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 책은 감동과 재미가 넘치도록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말로 더 이상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읽어보세요... (단, 모든 책은 개인의 취향이 제 1조건임을 전제합니다... 라고 일단 빠져나갈 길을...) 여튼 저는 깜짝 놀랄 만큼 재미지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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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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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사람만 아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속살을 들추다!

 

   어쩌면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를 일반인들(장르물을 딱히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하드보일드나 미스터리 애호가들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할이 매우매우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하루키가 챈들러를 언급했다고 알려진 것은 그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에세이집입니다. 읽지는 않아도 남들 사는건 다 사는 저는 물론 문학동네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5권 세트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하루키가 말하는 챈들러 스타일이 뭔지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다시 한번 꺼내 들쳐봤습니다.

 

"아무튼 나는 그것을 챈들러 방식이라고 부른다. 우선 책상 하나를 딱 정하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중략) 그리고 매일 일정시간 - 예를 들어 두시간이면 두시간 - 그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것이다. (중략) 그러다 보면 당장은 한 줄도 쓸 수 없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초조하게 굴면서 불필요한 일을 해봐야 얻어지는 건 없다. 이것이 챈들러의 방식이다. 나는 이런 방식을 비교적 좋아한다. 건전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p42~43

 

   하루키는 챈들러의 이러한 방식을 매우 건전하게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이 책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에 기록된 챈들러의 편지속 이 대목은 사실 성실한 느낌보다는 상당히 제멋대로거나 쿨한 그러거나 말거나 식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챈들러 본인은 조금은 삐딱하면서 전형적인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뽐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챈들러가 쓴 편지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 양반은 남들 눈치 안보고 하고싶은 말 하고 하고싶은데로 하겠다고 강력하게 결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챈들러는 글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라고 강조하는데 작품 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도 개인의 퍼스날리티가 차별화 될 수 있는 특징있는 스타일을 창조해 내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하여 작품 외적으로도 작가 자신이 관심받고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개성이 편지라는 형식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최대 미덕이자 장점입니다. 뭔가 정제되지 않는 날 것이 담긴 느낌, 그것으로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써의 레이먼드 챈들러의 속살을 들여다본 느낌이 남습니다. 챈들러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뭐가 되었건 캐릭터가 살아야 매력이 있고 오랫동안 기억되며 사랑받게 되는데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이자 실존 인물이 편지를 통해 그려내는 그 스타일은 곱씹을수록 매력적입니다. 

 

 

#2. 레이먼드 챈들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아는 사람에게는 깊은 감회를...

 

   음... 제 걱정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레이먼드 챈들러의 솔직한 성격과 당시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깨알 재미가 있더라도 작가 자체를 모르고 이 작가의 작품을 전혀 안 읽어본 나같은 사람이 과연 흥미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예를 들어 TV 연예프로그램 '힐링캠프' 같은데 유명한 작가가 게스트로 나왔다면 팬들은 그것 자체가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가를 모르고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고 작품도 워낙 유명하니 몇개 들어봤는데 정작 작가 자체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무지상태인 것이고 주위 분들이 좋아서 껌뻑 넘어가도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런 걱정은 역시나 기우였습니다. 어차피 작품에 대해 논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보니 작가로서의 챈들러의 위상과 별개로 그의 생의 이면에 펼쳐지는 일들에 대한 정보와 그에 대한 챈들러의 리액션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가 쏟아내는 날카로움을 대하면서 '역시 작가로 뭔가 이룬 사람들은 사회생활이 대체로 사교적이지 않고 좌충우돌하거나 자기만의 세계가 뚜렸하거나 그런 모양이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챈들러가 직설적이고 여러 다른 작가들을 신랄하게 비난한 듯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데 있어서 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지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이 삶의 목적이죠. 나머지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실제로 글쓰는 일을 싫어할 수 있습니까? 싫어할 만한 요소가 뭐가 있다고? 차라리 사람은 장작 패는 일이나 집 청소는 좋아하지만, 햇빛이나 밤바람이나 꽃의 흔들림이나 풀잎에 맺힌 이슬이나 새들의 노래는 싫어한다고 말하죠. 어떻게 문단이나 문장이나 대화나 묘사를, 창조적인 무언가로 만들어 내는 마법을 싫어할 수가 있겠습니까? 글쎄, 분명히 그러면서도 성공할 수 있나 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우울하군요." p124

 

   이 글은 실제로 글 쓰는 과정은 싫어한다고 말한 존 딕슨 카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글쓰기에 대한 진정성을 변호합니다. 그러니까 주요 작가를 내리고 본인은 자연히 들어올리는 이중효과네요. 이 곳 외에도 이책 곳곳에서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돈이나 어떤 특권 때문에 글을 쓰는게 아닙니다. 다만 사랑 때문에, 어떤 세계에 대한 이상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는 거죠. 사람들이 치밀하게 생각하고 거의 사라진 문화의 언어로 말을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습니다." p194

 

   저도 돈 때문에 글을 쓰는건 아니니 비슷하군요. 흐흐.. 분명한 건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를 기존에 몰랐던 독자라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을만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워낙에 레이먼드 챈들러와 그 작품을 잘 아는 팬들에게는 깊은 감회와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 역자도 편집자도 역할의 경계가 모호한 재미난 책

 

   이 책은 애초에 태생 자체가 독특합니다. 물론 미스터리류는 그런 경우가 종종있지만 역자가 책을 기획하고 출판사에서 제작을 담당한 경우입니다. 그러다보니 저로써는 상당히 희한한 상황을 대하게 되었는데, 이례적으로 역자가 서문을 썼더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편집자, 정확히는 마포 김사장님이 책의 말미에 후기를 써두었습니다. 뭔가 통상적인 상황과 거꾸로라고나 할까... 얼마전에 포스팅한 바도 있지만 이 책의 탄생 비화를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상황도 아니기는 합니다.

 

   역자가 애초에 책을 기획했다는 것은 저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고 그러니 레이먼드 챈들러를 소개하는 서문을 쓰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그의 편지를 분류하고 읽기 좋게 정리하는 작업도 편집부와 공동으로 진행한 듯 합니다.  

 

"이 책에서는 챈들러의 편지들을 발췌, 편집하여 주제별로 정리하고, 각 편지마다 제목을 붙여 놓았다. 편지의 특성상 일정한 주제로 전개되지도 않고 제목이 있을 리도 없지만 굳이 그렇게 정리한 이유는 우선, 개괄적인 내용을 목차에 드러내어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함이다. (중략) 두 번째 이유는 독서의 편의를 위해서이고, 마지막으로는 나중에 해당 편지의 내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p12~13

 

   저자의 편지들을 '작품론', '작가들', '할리우드', '필립 말로', '일상' 등으로 크게 분류하고 각 편지마다 적절한 제목을 붙여준 작업은 매우 의미있고 유용한 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저처럼 기본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더욱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 책을 펴낸 북스피어의 마포 김사장님은 편집 후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챈들러와 하루키의 오랜 팬으로서 만드는 동안 많이 신났고 때때로 짜릿했습니다. 저는 그랬어요. 이런 게 편집자로서의 소소한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 김홍민 드림" p255

 

   저는 이 책을 무척 쉽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만드는 사람이 신나하며 짜릿해하며 만든 책이라고 합니다. 역자가 정성을 다해 번역한 책인 듯 합니다. 번역자가, 편집자가 즐겁고 재미있게 만든 책이 재미가 없을리가 없겠지요. 세상모든 이치가 그런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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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라지는 세계라.... 엄청난 디스토피아군요... 이럴때는 사람들에게 향수와 희망을 심어주는 책을 남기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나중에라도 책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이미 책을 잊은지 아니 못 읽은지 오래일테니 너무 어렵거나 길거나 읽기 어려워서도 안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왕자` 또는 `갈매기의 꿈` 두권중 한권이 딱 맞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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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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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요성'에 대한 인식의 도착 현상을 지적하다.

 

   도정일 선생님은 뭔가 성함이 친숙해서 이상하다 했는데 얼마전에 읽었던 '동물농장' 민음사본 번역자셨네요. 물론 평론가로 유명하시고 책읽기와 도서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오신 이시대의 지성인이시니 모르면 이상하겠지만 말입니다. 도정일 선생님이 오랜기간 동안 각종 매체에 기고하신 귀한 글들을 모은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전혀 돈이 안되는 것들의 가치를 기억하고 진정 우리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이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책입니다.

 

   이 한권의 산문집이 어찌나 묵직하던지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읽었습니다. 그냥 슬슬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한군데도 없다보니 읽고, 생각하고, 공감하고, 조금이나마 소화시키느라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 양반이 이렇게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을 얻을 동안 나는 뭐하고 자빠져 있었나를 생각하느라 자아비판도 많이 했네요. 그럴수 밖에 없게 만드는 지성입니다.

 

   선생은 글에서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는 돈 안되는 것의 고귀함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날이 갈수록 천민자본주의의 지배력이 견고해지고 있고 우리 스스로도 이 자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 사실입니다.

 

"궁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다. 삶의 물질적 조건을 안정시키는 것은 품위 있는 삶의 기초이기 때문이다."p120

 

   선생은 기본적으로 물질의 필요성은 인정해야한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함정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지적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에는 물질적 풍요 이외에는 어떤 가치도 목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히 위험한 인식의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또하나의 거대한 궁핍에 직면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정신의 궁핍, 가치의 궁핍, 의미와 목적의 궁핍이다.."p120

 

   잘먹고 잘사는 것의 중요성이야 누가 부정하겠냐만은 그 상태를 추구하는 행위의 한계는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은 쾌락의 추구에 지나지 않으며 쾌락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허망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같은 범인은 비록 허망하다 해도 추구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후훗)

 

"삶의 목적은 '아름다운 삶'의 영위에 있다. (중략) 어떤 것을 '소유하기'나 '소유하는 자'를 벗어나 존재 그 자체를 중히 여기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중략) 쾌락이 자주 존재의 타락을 강요한다면 즐거움은 존재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존재 확장의 경험이 기쁨이라는 것이다." p.122

 

   이런 사유에서 출발해서 사회의 행복추구, 민주주의 성숙으로의 확장, 아이들의 행복 등으로 문제를 확장해나갑니다.

 

 

 

#2.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을 다루다 돈이 안되는 책이 나오다.

 

   이 책은 참 가치있습니다. 한꼭지 한꼭지가 곱씹을수록 의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돌아보고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지성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균형잡힌 시각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트렌디한 느낌은 없다는 점입니다. 근 20년 전에 기고한 글들도 여럿있는데다 지금에 와서 읽어도 여전히 교훈이 되는 글들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고 편하고 감각적이지는 않습니다. 고민하게 만든다는 자체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질문을 싫어합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불편해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질문말입니다.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 삶에 중요한 것에 대한 질문, 살면서 놓치면 안되는 것들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인 질문은  하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예의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사색하고 그 결과물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과연 이정도의 진지함을 누가 좋아할지 의문이 드는 지점입니다. 이 시대는 잠시도 무거운 것을 참기 힘들어 하니까요. 잠시도 불안함을 못참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읽더라도 쉽게 읽어지는 장르소설이나 여행 에세이 등을 읽게 되죠. 고민거리가 담겨있고 우리에게 당신은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이런 류의 책은 외면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무척이나 돈이 안되는 책이 나왔다는 느낌입니다. 읽는데 오래걸리고 불편하고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3.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는 비평의 중후함을 만나다.

 

   이 책의 여러꼭지를 읽어가면서 감탄한 또 한가지는 비평의 넘볼 수 없는 중후함입니다. 유치한 인신공격도 원색적인 비난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다양한 현상에 대한 비판이 가득합니다. 후반부로 가면 정치적인 신념이 반영된(저는 상식적이라 느꼈지만) 비판의 글이 빈도가 높아집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비난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을 통해서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는 비평의 격조를 느꼈습니다.

 

   앞으로 출간될 "도정일 문학선"의 첫번째 책인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첫번째 책에 걸맞게 교육,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앞으로 발표될 내용들의 커리큘럼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입니다. 평소에 얼마나 다양하게 인문학적 고민들을 지속적으로 해가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넓혀주기 위해서라도 이분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읽고 아는척도 좀하고 지성인 흉내도 좀 내야겠습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효용이 아닐까 합니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이 목록에 이 책도 꼭 넣어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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