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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평점 :

#1. 정유정 작가가 들려주는 여행에세이의 신선함을 접하다.
우리는 여행에세이 범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 이책을 접했을 때, 표지가 예쁘다는 생각 외에 '정유정작가님? 아, 작가로 성공하기는 하셨구만... 이런 여행기까지 제안을 받으셨나보네...' 하는 삐딱한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정유정"이라는 브랜드를 이용해서 팔릴만한, 돈되는 여행에세이를 하나 냈나보다 했던 겁니다. 요즘 이런 기획이 가끔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기대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여행의 발단이 출판사의 기획이나 제안은 전혀 아니었으니 오해는 풀렸습니다만, 또 하나 의아했던 것은 '왜 히말라야인가?' 였죠. 딱히 여행을 자주 다니는 걸로 알려진바가 없는 작가님이 뜬금없이 히말라야라니요? 그래서 프롤로그에 나와있는 남편의 반응에 과도한 몰입을 하며 '맞아, 맞아, 두들겨 패든 머리를 밀고 방에 가둬두든 못가게 해야지. 이거이거 거기가 좀 위험하겠어?' 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여행가서 일기 쓴다고 다 여행에세이는 아니다
여행에세이의 유익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독자가 잘모르는 여행지의 숨은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정보전달이 주 목적인 경우 또는 여행지는 여행지대로 소개하지만 사실 저자가 여러가지 감상을 더해 하고싶은 말을 함으로써 독자들과의 교감을 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식 등이 있겠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설명체로 기술되면서도 중간중간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들어가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 됩니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 상당히 감각적이고 감상적인 글이 되거나 여행지랑 무관하게 무거운 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어느 케이스에도 끼워맞추기 힘든 독특한 여행에세이 였습니다. 히말라야 일대를 17일간이나 도는 안나푸르나 라운딩코스는 책 서두에 제공된 코스지도를 보나 코스별 고도를 기준으로 작성된 단면도를 보나 잘모르는 사람도 숨이 턱막히고 벌써 걱정이 앞서는 어려운 코스임을 예감하게 합니다. 그래도 이책이 정상적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저자가 별탈없이 돌아온 것이므로 천만다행인 것입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일기스럽습니다. 매일매일의 코스와 들린 지점, 식당, 배경, 신체적 정신적 상태등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정도면 주저리주저리 열매 능력자를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가히 질릴만한 수준의 디테일입니다. 그런데 질리지 않습니다. 전혀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여행이 진행될 수록 더욱 흥미진진하고 몰입하게 됩니다. 이런 점이 바로 이 책의 훌륭한 점입니다. 저는 이 에세이 한편만으로도 저자의 글쓰기 능력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3. 평소엔 알 수 없는 작가의 인생궤적과 사람됨을 알게되는 즐거움
소설가가 몇편의 작품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지명도가 올라가고 유명세를 타다보면 자연히 작품자체와는 별개로 작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작품이 좋았다'에서 '작가가 좋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일반독자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방식이라든지 평소의 가치관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의 매체의 인터뷰라던가 에세이 집을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해야합니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 생각보다 엉뚱발랄한 작가의 인간적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도 이 책은 매우 의미있는 책입니다. 정유정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인생스토리와 인생관, 디테일한 성격등이 매우 적나라하게 담겨있습니다. 작가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평소의 갈증을 해소하는 정도가 아니라 깜짝 놀랄만큼 작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자기를 오픈하는데 적극적이고 솔직합니다. 곳곳에 작가의 과거 이야기와 가족사, 삶의 태도 등이 자연스럽게 담겨있습니다. 저는 이 에세이 한편을 통해서 작가에게 가지고 있던 제 마음대로의 이미지가 완전 수정되었습니다. '이 양반 완전 훌륭하구나.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스럽도록 힘든 세월을 견뎌왔구나'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되었습니다. 이 분의 작품의 어떠함과 무관하게 작가자체에 매력을 담뿍 느끼고 말았습니다.
#4. 재화의 가치는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재화의 가격이라는 것은 실제가치 즉, 그 재화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유용성이 있느냐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책의 가치는 얼마나 바른 정보를 제공하느냐도 있지만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렇듯 모든책이 정보제공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정보제공의 역할은 인터넷이 차지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정보제공의 역할도 톡톡히 하지만 놀랍도록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거기에 감동도 잘 버무려져서 뭐하나 나무랄데 없습니다. 읽으면서 작위적인 재미를 위한 요소나 감동코드를 위한 안배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습니다. 재미와 감동이 묘하게 적절한 비율로 섞여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능력에 감탄합니다.
예를 들면 시작부터 지속된 생리적 현상인 변비 트러블을 솔직하게 적고 있는데, 읽고 있는 저는 살면서 변비를 겪은적이 없는 쾌변남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저의 배가 더부룩하고 터질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지나니 이젠 소변을 참고 참아 방광이 터져나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와우.. 조금도 작위적 느낌이 없지만 마치 소설속 설정처럼 극적입니다. 이 별 것 아닌 상황이 여행기 전체의 극적 긴장감과 몰입을 돕는 엄청난 역할을 담당합니다. 거기에 무경험자의 안나푸르나 좌충우돌기에 순간순간 자신의 인생스토리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됩니다.
좋은 책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 책은 감동과 재미가 넘치도록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말로 더 이상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읽어보세요... (단, 모든 책은 개인의 취향이 제 1조건임을 전제합니다... 라고 일단 빠져나갈 길을...) 여튼 저는 깜짝 놀랄 만큼 재미지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