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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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요성'에 대한 인식의 도착 현상을 지적하다.

 

   도정일 선생님은 뭔가 성함이 친숙해서 이상하다 했는데 얼마전에 읽었던 '동물농장' 민음사본 번역자셨네요. 물론 평론가로 유명하시고 책읽기와 도서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오신 이시대의 지성인이시니 모르면 이상하겠지만 말입니다. 도정일 선생님이 오랜기간 동안 각종 매체에 기고하신 귀한 글들을 모은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전혀 돈이 안되는 것들의 가치를 기억하고 진정 우리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이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책입니다.

 

   이 한권의 산문집이 어찌나 묵직하던지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읽었습니다. 그냥 슬슬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한군데도 없다보니 읽고, 생각하고, 공감하고, 조금이나마 소화시키느라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 양반이 이렇게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을 얻을 동안 나는 뭐하고 자빠져 있었나를 생각하느라 자아비판도 많이 했네요. 그럴수 밖에 없게 만드는 지성입니다.

 

   선생은 글에서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는 돈 안되는 것의 고귀함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날이 갈수록 천민자본주의의 지배력이 견고해지고 있고 우리 스스로도 이 자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 사실입니다.

 

"궁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다. 삶의 물질적 조건을 안정시키는 것은 품위 있는 삶의 기초이기 때문이다."p120

 

   선생은 기본적으로 물질의 필요성은 인정해야한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함정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지적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에는 물질적 풍요 이외에는 어떤 가치도 목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히 위험한 인식의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또하나의 거대한 궁핍에 직면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정신의 궁핍, 가치의 궁핍, 의미와 목적의 궁핍이다.."p120

 

   잘먹고 잘사는 것의 중요성이야 누가 부정하겠냐만은 그 상태를 추구하는 행위의 한계는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은 쾌락의 추구에 지나지 않으며 쾌락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허망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같은 범인은 비록 허망하다 해도 추구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후훗)

 

"삶의 목적은 '아름다운 삶'의 영위에 있다. (중략) 어떤 것을 '소유하기'나 '소유하는 자'를 벗어나 존재 그 자체를 중히 여기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중략) 쾌락이 자주 존재의 타락을 강요한다면 즐거움은 존재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존재 확장의 경험이 기쁨이라는 것이다." p.122

 

   이런 사유에서 출발해서 사회의 행복추구, 민주주의 성숙으로의 확장, 아이들의 행복 등으로 문제를 확장해나갑니다.

 

 

 

#2.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을 다루다 돈이 안되는 책이 나오다.

 

   이 책은 참 가치있습니다. 한꼭지 한꼭지가 곱씹을수록 의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돌아보고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지성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균형잡힌 시각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트렌디한 느낌은 없다는 점입니다. 근 20년 전에 기고한 글들도 여럿있는데다 지금에 와서 읽어도 여전히 교훈이 되는 글들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고 편하고 감각적이지는 않습니다. 고민하게 만든다는 자체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질문을 싫어합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불편해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질문말입니다.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 삶에 중요한 것에 대한 질문, 살면서 놓치면 안되는 것들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인 질문은  하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예의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사색하고 그 결과물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과연 이정도의 진지함을 누가 좋아할지 의문이 드는 지점입니다. 이 시대는 잠시도 무거운 것을 참기 힘들어 하니까요. 잠시도 불안함을 못참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읽더라도 쉽게 읽어지는 장르소설이나 여행 에세이 등을 읽게 되죠. 고민거리가 담겨있고 우리에게 당신은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이런 류의 책은 외면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무척이나 돈이 안되는 책이 나왔다는 느낌입니다. 읽는데 오래걸리고 불편하고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3.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는 비평의 중후함을 만나다.

 

   이 책의 여러꼭지를 읽어가면서 감탄한 또 한가지는 비평의 넘볼 수 없는 중후함입니다. 유치한 인신공격도 원색적인 비난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다양한 현상에 대한 비판이 가득합니다. 후반부로 가면 정치적인 신념이 반영된(저는 상식적이라 느꼈지만) 비판의 글이 빈도가 높아집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비난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을 통해서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는 비평의 격조를 느꼈습니다.

 

   앞으로 출간될 "도정일 문학선"의 첫번째 책인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첫번째 책에 걸맞게 교육,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앞으로 발표될 내용들의 커리큘럼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입니다. 평소에 얼마나 다양하게 인문학적 고민들을 지속적으로 해가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넓혀주기 위해서라도 이분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읽고 아는척도 좀하고 지성인 흉내도 좀 내야겠습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효용이 아닐까 합니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이 목록에 이 책도 꼭 넣어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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