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그리고 열한 발자국
정민경 지음 / 파랑새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1인 출판, 출판 대행, 견적이 딱 나오는 상황

 

   [스물셋, 그리고 열한 발자국] 이라는 제목의 책을 받았습니다. 저자께서 보내주신다 하여 평소 1일 출판이나 소규모 출판사에 과도한 애정을 품고 있는 저는 그냥 사서 읽어볼테니 보내시지 말라 부탁을 드렸는데 고맙게 여기셨던지 굳이 보내주신다 하여 감사히 받았습니다. 이 책이 도착한 날 일단 가장 먼저 표지를 본 순간 '아, 견적이 딱 나오는구나... 불길한 예감이로다...' 하고 생각했더랬죠.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파랑새 미디어'라니... 이거슨 출판대행사가 아니던가.... 저자께서 저자소개란에도 써 주셨지만 자신의 삶의 목표와 열정을 찾기 위해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이 책을 구상했었는데 출판사에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출판대행을 통해 본인이 직접 편집하고 표지도 맡기고 해서 출간을 하신 모양입니다. 상황이 이 쯤 되면 책 홍보야 뭐 더욱 막연한 상황이겠지요.

 

   출판업계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편집자나 마케팅하는 분들에 대해 간접적으로 이래저래 주워듣다보니 대충 상황이 상상이 됩니다. 어느 출판사인지 모르겠으나 편집자 입장에서는 내용이 좋건 나쁘건 이런 기획의 책을 출간하기가 굉장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책이 기회되서 나오려면 대략 다음은 조건이 맞아야 할갭니다.

 

    1) 내용이 정말 눈이 번쩍 띄이게 훌륭하거나,

    2) 저자가 너무 유명해서 마케팅하기 용이하거나,

    3) 사회 이슈 사항이어서 저절로 동반 매출이 일어나거나,

    4) 출판사의 평소 출간물의 성향과도 맞아야하고,

    5) 이미 출간한 여러 출판사의 책들과 중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저런 여건을 생각해보면 이 책을 선듯 출간하겠다고 나선 출판사는 쉽게 찾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자 입장에서는 뜨거운 열정에서 출발해 우여곡절 끝에 책을 출간할 일만 남기고 있는 시점에서 냉정한 세상과 맞닥뜨리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막막하고 좌절할 만한 답안나오는 상황 말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저같은 사람은 이 책을 정독했습니다. 저로써는 성심껏 읽는 행위 자체가 저자를 응원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저자를 응원하는 마음과 무관하게 상품으로써 책의 내용이나 구성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최대한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밖에 없겠죠.

 

 

 

#2. 내 나이 마흔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 스물셋, 그리고 열한 발자국이라니...

 

   이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부터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내가 벌써 마흔이 다 되가는데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인생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그 과정을 담을 이 책을 읽는 것이 적절한가 말입니다. 타켓 계층이 대학생 층이 되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공감이 될까 싶었습니다. 게다가 여러사람의 이야기를 엮은 방식의 책은 제가 그다지 좋아하는 구성도 아니다 보니 더욱 껄쩍지근했습니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분위기다 보니 이래저래 걱정이 안될 수가 없었죠.

 

   결론적으로 읽다보니 상당히 공감이 가고 심지어 재미있었습니다. 저자의 문장력이 좋거나 탁월하지는 않았지만 좋은 책이 가지는 미덕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가독성이 무척 좋았고, 후까시('그럴듯함'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가 전혀 없었습니다. 정말 편안하게 읽으면서 공감하면서 마음을 맞출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분야의 인물들이 본인 경험담 이야기를 할 때는 제가 막 끼어들어서 같이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기대감이 없다가 의외로 좋아서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이거 참 생각지도 않게 좋은 책을 만나 흡족했습니다.

 

 

 

#3. 저자여, 여기저기 만나러 다닐 일이 아닙니다. 당신의 오빠와 상담하세요~~~

 

   또 하나 이 책에서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자에게는 오빠가 있는데 말입니다. 찬찬히 내용을 지켜 볼라치면 사실 상 저자 주변에 가장 훌륭한 인물은 저자의 오빠임이 틀림없습니다. 애초에 인터뷰를 하는 시작점도 그렇고, 이 기획을 책으로 펴 내는 결정적인 계기도 그렇고, 중간 중간 끼어들어 조언을 해주는 부분도 모두 오빠에 의해서 입니다.

 

   조금 과정되게 표현하면 저자의 오빠가 이 전체 프로젝트의 감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필드에서 뛰어다니지만 이 치열한 경기의 시작도 중간 중간에 막힐 때마다 작전지시도, 심지어 진행이 더딜때 인터뷰이의 선정까지도 오빠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슬쩍슬쩍 저자를 자기의 의도대로 이끄는 실력을 보면 단순히 조언자를 넘어 내공이 뛰어난 지휘자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이 보일 때마다 저는 속으로 '아, 이양반아! 다른 사람을 찾을 궁리 말고 오빠를 인터뷰 하란 말이야~~~'하는 생각을 저도 모르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 우리 형이 저렇게 조언을 잘 해주었으면 내가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텐데....'라고 슬쩍 핑계를 대 봅니다.  

 

 

  

#4.  11명이나 되는 일상속의 고수들, 의외로 얻어걸리는 교훈과 공감이 있다.

 

   저자가 한사람 한사람 만나 인터뷰를 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참으로 희한한 조합입니다. 애초에 조합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다양한 인물들입니다. 시작이 피자헛 점장이라니 이거 시작부터 의외였습니다. 솔직히 '피자헛 점장 이라니, 너무 조촐한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말입니다. 훌륭한 사람입니다. 제가 뭐라고 할 수준이 아닙니다. 고미국수 사장님, 영화감독 미술교사, 미용실 원장, 백화점 다니시는 이모님, 남성 패션잡지 편집장, 소방관, 역무원, 은행 행원, 스님, 간호사까지 인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 사람 한사람의 다양한 생각과 삶의 태도가 나름 다들 정말 훌륭합니다. 이런 형국이다 보니 나이를 막론하고 누가 읽어도 어디서건 얻어 걸리는 교훈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참 여러번 밝힌바 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싫어합니다. 한번 사는 인생 멋진 위치에 도달하는 것도 좋지만 순간 순간의 일상을 얼마나 행복하게 보내는가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다보니 거 까이꺼 즐겁게 대충대충~~~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나마 뭘 하면 좀 성실하게 하는 편이라 먹고는 살고 있습니다. 지금의 제 삶에 딱히 불만이 없고 행복하다고 느끼다 보니 치열한 삶에 대한 'cheer up' 자체가 저에게 잘 안 먹힙니다.

 

   그러다보니 이 책의 11명의 인터뷰 중에 저는 '크레커유어워드로브 편집장 장석종'씨의 인터뷰가 가장 공감되고 와닿고 즐거웠습니다. 연신 '그렇지, 그렇지, 인생은 그런거지~~~'하며 읽었습니다. 저 분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무척 유쾌할 듯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인지는 궁금하시면 사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와는 전혀 다르게 다른 분의 인터뷰가 훨씬 공감되고 와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취향과 인생관이라는 것이 살아온 경험에 의하면 그다지 일반적이지는 않은 듯해서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는 이 분의 인터뷰 때문에 이 책의 가치랄까? 평가가 한층 더 높아진 것도 같습니다.

 

   여튼 11명 중 어느 분의 인터뷰가 독자의 마음에 쏙 와닿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시고 뭐 이런책이 다 있어? 하며 화를 낼 확률은 무척 낮을 듯 합니다. 어쩌면 꽤나 예상되는 내용이고, 뾰족한 결론도 없는 개인의 성장기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런 분들이 나름의 상황과 형편에서 열심히 개념을 가지고 살아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도 힘이되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그것 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차고도 넘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덧붙임

 

   정말 표지 디자인에 얼마를 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너무 심했습니다. 요즘 같이 감각적인 시대에 제가 해도 저보다 예쁘게 했을 것 같은 이 표지는 답이 안나옵니다. 이 좋은 내용에 이런 표지는 정말 정말 안타깝습니다. 피니스 아프리카에에 부탁해서 표지갈이를 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럴 만한 입장은 못되지만서도.... 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명인
쓰카사키 시로 지음, 고재운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1. 빌리 밀리건에 주목하라.

 

   이 소설을 굳이 분류하자면 빌리 밀리건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리 밀리건은 1955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다중인격자입니다. 자그마치 24개의 완전히 분산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러니까 이 양반은 한지붕 24 가족인 셈입니다. 이력을 보니 역시나 어린시절 양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받았군요. 그런데 성적 학대를 받기 이전에 이미 인격 분리는 시작되었으니 성적학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네요.

 

   빌리 밀리건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역시나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간 및 무장강도로 체포된 그를 대상으로 연기를 펼친다고 생각했던 의사와 수사관들이 갖가지 검사와 취조를 실시했는데 오히려 연기로는 불가능한 각종 능력들을 발휘하면서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격이 바뀌면 갑자기 아랍어와 아프리카어를 유창하게 하고, 다른 인격이 되면 수학, 물리학, 의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잘 하는 식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해가 안되는게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 인격이 바뀐다고 갑자기 아랍어를 한다는게 말이 되는건지.... 참... 검사한 사람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됩니다.

 

   아마도 어지간한 정신분열 관련 스토리는 빌리 밀리건의 이야기보다 더 허구적이고 드라마틱하지 못할 듯 합니다. 쓰카사키 시로의 [무명인]을 읽다보면 정말 빌리 밀리건 이야기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받아들일 만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달랑 한지붕 두가족 이야기거든요. 게다가 그것조차 영구거주도 아니고 임시 거주의 형태입니다.   

  

 

#2. 과학 미스터리는 과연 사랑을 받을 것인가?

 

   [무명인]은 전체 스토리 전개로 보면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소재는 과학입니다. 뇌과학이라고 해야할지 화학 또는 유전자학이라고 해야할지 애매합니다만 과학적 상상을 토대로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덧붙여 만들어진 잘 짜여진 소설입니다. 게다가 장르소설의 미덕인 가독성이 나무랄데 없이 좋습니다. 일단은 이 가독성 만으로도 절반 이상은 먹고 들어갑니다. 이야기를 흡입력있게 끌고 갈 수만 있다면 미스터리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 한 것이니까요. 뭔가 주인공이 미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건의 전말이 어서 밝혀지기를 바란다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 [무명인]은 그런 관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문제는 과학적 상상이라는 핵심 소재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고 좋아합니다. 사건이 발생하는 계기는 다소 생뚱 맞을 지언정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정에는 상당히 흥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반의 밑밥을 까는 부분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이건 조력자건 다들 이게 뭔 일인지도 모르고 흘러흘러 가는 지점이 이 소설의 반환점을 훌쩍 넘어버리니 궁금해서 읽기는 하는데 너무 미궁속에 허우적 거린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뭐 대단한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질질 끄는건가?'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또 하나 아쉬운 부분은 마지막 결론부였습니다. 전말에 대한 설명과 마무리는 관심이 많은 제 입장에서도 약간은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뭐지?' 하는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빠지는 느낌은 뭔지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읽고난 느낌은 '과연 이런 류의 과학 미스터리를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좋아라하며 읽을 것이며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였습니다. 호불호가 나뉘는데 쉽게 읽기엔 주제가 좀 전문적이라는 생각입니다.  

 

 

 #3. 불노불사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과 자신의 실수를 덮으려는 인간의 이기적인 하모니

 

   [무명인]에서 끝까지 소설을 짜임새 있고 흥미진진하게 끌고 갈 수 있었던 요소는 주인공을 위협에 빠트리는 미지의 세력이 복합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불노불사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주인공의 연구 결과물을 원하는 한 세력은 어떻게든 결과물을 얻어내는 동시에 손해를 일으킬 화근을 없애려 노력합니다. 한편 이 이야기 전체의 발단이 되는 사건을 일으키는 또 한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유지하고 파멸을 막기 위해 소극적으로 주인공을 감시합니다.

 

   참,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불노불사의 개념이 색달라서 좋았습니다. 내 한몸이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여 불노불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정신을 건강한 새 몸으로 옮겨버린다는 개념이 신선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마치 불노불사가 가능할 것 처럼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진시황 시대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지 현대에 와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는 합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누구 몸을 가져와서 내 정신을 심는단 말입니까? 이 상황을 상상해보니 끔찍한 불법과 범죄의 향기가 품깁니다.

 

   개인적으론 제 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찾아가서까지 불노불사할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고 삶인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하이렌더 류의 영화, 드라마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인간이 위대하고 행복한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유한성에서 기인합니다. 떠나야할 때를 모르고 악착같이 남의 몸이라도 써서 더 살려고 기를 쓰는 인간이 인간 고유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쉬운 정도가 가장 적당한 정도입니다.

 

   [무명인]을 핑계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잘도 늘어놓았습니다. 한 인간의 몸에 유입된 또다른 인격에서 출발한 미스터리를 긴장감 넘치게 잘 끌고 나간 이 소설은 게놈 프로젝트 같은 뇌, 또는 인간 유전자, DNA 등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소설입니다. 물론 딱히 지식이 없고 평소에 관심이 없었다 해도 미스터리적 요소를 즐겁게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소설입니다. 과학과 미스터리, 음모, 인간의 이기적인 습성 등이 잘 조화된 신선한 소설입니다만 기본적인 소재는 우리에게 이미 상당히 익숙해져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슬슬 안살수가 없는 시리즈가 되어가는 카트 멘쉬크 일러스트레이션 아트북

 

   [이상한 도서관]은  [잠], [빵가게를 습격하다] 이후 세번째 카트 멘쉬크와의 콜라보 일러스트레이션 아트북입니다. [잠]은 짙은 군청색 베이스의 일러스트레이션이었고, [빵가게를 습격하다]는 짙은 초록색 색감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검정색 바탕입니다. 뭔가 베이스 색상의 선택이 묘하다는 생각이지만 이 작품 내용을 생각할 때는 최적의 색감 선택이라고 여겨집니다. 보아하니 여전히 일러스트는 매력적이고 감각적입니다. 게다가 내용과도 매치가 잘 됩니다.  

 

 

#2. 이거이거 호갱님 만들기 돈지랄이 아닐지...

 

   이 일러스트 시리즈를 놓고 유명세를 이용한 울겨먹기라고 매도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음... 매도할 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울겨먹기가 맞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도서관] 이라고 제목을 잡았지만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미 예전에 단편집의 한 작품으로 만난 적이 있는 작품입니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기나긴 이름으로 출간된 단편집에도 "도서관 기담"으로 수록되어 있고,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에도 "도서관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미 소개되었던 작품입니다. 귀찮아서 그렇지 찾아보면 또 얼마나 많은 단편집에 끼워 들어가 있을지 모를일입니다.

 

   단편걸작선의 작품을 찾아 잠시 읽어보니 번역상의 차이가 꽤나 크기는 합니다. 이번 [이상한 도서관]쪽이 훨씬 자연스럽기도 하고 읽기에 조금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게다가 적절한 일러스트와 넉넉한 여백을 자랑하는 편집에 힘입은 이번 작품은 가독성은 물론 독자입장에서의 읽는 즐거움에도 기존 썰렁한 단편과는 비교하기 힘든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선택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책사기를 즐기는 저로써는 절판된 옛 단편집에 수록된 기존 작품과 화려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덧붙인 이번 작품을 동시에 소장하는 즐거움이 상당히 큽니다.

 

 

 

#3. 의외로 묵직하고 애매모호한 이야기

 

   [이상한 도서관]의 내용 자체로 놓고 보면 상당히 기이한 이야기가 분명합니다. 주인공 남자아이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뭔가 알수 없는 착취구조를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에게 딱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어~~어~~'하는 사이에 목숨까지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기묘한 내용과 밑도 끝도 없는 전개가 황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의외로 전형적입니다. 사실 좀더 파격적인 마무리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단편은 하루키의 초기작에서 무척이나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정체성을 찾지 못한 남성과 뜬금없는 양사나이, 그리고 여지없이 등장하는 "상실"의 매타포가 이어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굳이 복잡하게 의미를 해석해서 '이런 의미일 것이다.'라고 그럴듯하게 감상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만큼 긴 이야기도 아니고, 첨 읽는 참신한 내용도 아니고 말이죠. 이 책은 그냥... 예뻐서 사주는 그런 책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볼 만한 건덕지가 꽤나 있는 그런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카트 멘쉬크가 언제까지 하루키센세의 단편을 가지고 일러스트 작업을 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시리즈가 나와주어야 여지껏 모아온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처받지 않는 영혼 - 내면의 자유를 위한 놓아 보내기 연습
마이클 싱어 지음, 이균형 옮김, 성해영 감수 / 라이팅하우스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로드레이지' 거리의 무법자들이여, 분노를 조절하라

  

 

 

 

 

 

   얼마전에 MBC 다큐스페셜 "로드레이지 도로 위의 분노" 편을 보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차만 타면 난폭해지고 공격성이 나타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일부러 차에 몽둥이나 골프채, 가스총까지 소지하고 다니는 적극적인 운전자들이 많더군요. 타인이 거슬리게 운전하면 한시간씩 쫒아가서 멱살잡이를 하며 기어코 사과를 받아내고 만다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참으로 성실하고도 정열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성질을 내는구나. 정성이 참 지랄이다.'

 

   여러가지 배경이 있지만 다 큰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서와 감정이 전혀 컨트롤이 안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그 이면에 억눌린 분노도 있고 막연한 억울함도 있고 피해의식도 있겠습니다만 결국은 자기 스스로 분노조절이 전혀 안되는 것이 혼자만의 공간인 자동차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죠.

 

   마이클 A.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은 이런 우리 내면의 정돈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원인을 따져보고 벗어나기 위한 단계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상당히 영적입니다. 동,서양적 이념과 특성이 적절히 뒤섞여 있고 다양한 종교적 시각이 혼재해 있습니다. 혼재라는 표현은 부정적이니 정돈되어 있다라고 표현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위와 같은 교통상황에서 우리의 반응에 대한 한가지 예가 나옵니다.

 

"예컨데 신호등 앞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린다. 이런 작은 일들이 일어날 때도 당신은 속에서 에너지가 움직이는 것을 감지한다. 그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어깨에 힘을 빼고 가슴 주위를 이완하라. 에너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저 힘을 빼고 놓아 보내라. 약이 오르는 느낌을 놓아 보내고 뒤로 떨어져 나오는 이 놀이를 즐겨라." p116

 

   만약 위 다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한시간 두시간 정성껏 화를 내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때리거나 맞거나 사고를 내지도 않고 기분 잡칠 일도 없이 그저 힘을 빼고 그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예와 더불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은 때때로 방치되고 있는 우리의 내면 문제에 대해 실용적으로, 일상적으로 접근하고 도움을 주기에 매우 유익한 책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저런 것을 하고 싶은데 살기에 바빠서 할 시간이 없다고들 합니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의 가르침이 멋진 점은, 그것이 시간과는 상관없는,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나날의 생활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가갈 것인지를 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나날이 경험하는 기쁨과 사랑과 만족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이 능력은 모든 사람이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책임성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 주니까요."p10~11

 

 

 

#2. 유체이탈화법은 진정 자기자신을 위해 필요한 스킬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유체이탈화법'은 자기가 잘못한 일이거나, 혹은 본인이 속한 조직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을 마치 본인은 전혀 몰랐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양 말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데 매우 일상적으로 취하는 태도입니다. 재미있게도 이런 유체이탈화법의 기본 태도는 정작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관찰하는데 사용하면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가 아닌 것, 내 뒤에 또다른 내가 유체이탈한 듯이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과 말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제 한발짝 뒤에서 또다른 내가 관찰하는 것입니다. '아, 나는 지금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구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피곤함을 무릅쓰고 쓰고 있구나.' 뭐 이런 식으로 관찰하는 것이죠. 그리고 화를 낼 때, 엉뚱한 행동을 할 때 마다 '아, 내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반응하는 구나'하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또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하고 인지를 하는 것이지요. 이 방법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고 바라보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또 다른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상처투성이인 영혼에서 [상처받지 않는 영혼]으로 나아가는 첫걸음 이라고 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다양한 성격유형 분석 툴 중에서도 매우 영적인 특성이 있는 '에니어그램'에서 각각 개인의 기질을 넘어 성숙하는 첫단계라고 말하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와 매우 유사합니다. 에니어그램에서도 한걸음 뒤에서 자기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자기 기질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이해하고 극복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주는데 이 책에서도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고 말합니다.

 

 

#3. 삐그덕 거리는 육체를 돌보는 것처럼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것, 행복한 인생의 지름길 

 

   육체의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하고 나쁜 음식 섭취를 피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정신을 위해서도 유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치더라도 아직까지도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무언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상당히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언젠가부터 서양에서 동양적인 정신세계를 높이 평가하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모든 인간은 원래 이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에서는 우리의 잠든 의식을 일깨우고, 마음에 쌓이는 에너지를 경험하며, 자신의 마음에 상태와 고통을 직면함은 물론 한계와 벽을 허물고 그 너머로 가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까지 제시합니다. 찬찬히 읽으며 저자의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소중한 나의 건강한 자아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로드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이나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면의 실타레를 풀어나갈 길이 보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잘 살펴보고 에너지의 흐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는 태도에서 부드럽게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저 힘을 빼고 이완하는 것 말이죠. 그러면 저절로 나의 참 자아는 마음의 뒤에 슬그머니 떨어져 남게 됩니다. 그러니까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그 마음을 인식하는 주체인 것이지요. 이 것을 이해하면 나는 나의 생각을 지켜볼 수 있게 되고 마침내는 그 안에 고요히 앉아서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실제적인 삶을 지혜롭게 살아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의 실질적인 장면과 선택 가운데 중도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역시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은 어느 대목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나 봅니다.

 

   지금도 수많은 경쟁에 내몰리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대인들이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내면을 이해하고 내면의 자유를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복 수사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1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1. 처음 접하는 사사키 조의 경찰소설, 진짜 경찰소설 맞네 맞아!

 

   사사키 조의 소설은 처음입니다. 이웃 카르페디엠님이 추천해주셨습니다. 한번씩 지나가는 말로 훅 던지고 가시는데 궁금해서 안 읽어볼 수가 없습니다.(아니 사실은 안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해야하나... 훗...참, 말나온김에 무책임하게 'XX가 재밌더라'라고 슥 던지는 이웃님들...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사게 된다는...) 여튼 경찰소설이라고 해서 반갑기도 하고, 내가 왜 자꾸 경찰소설을 읽게 된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경찰소설을 선호한다고 하기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저는 뭐 평화주의자니까는...

 

   사사키 조의 경찰소설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는데 이 작품 제복수사만 딱 놓고 본다면 참으로 특색있는 스타일입니다. 일단 요코야마 히데오나 혼다 테츠야 처럼 경찰조직 내부나 조직 안팍의 갈등과 대립에 즌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경찰 1인의 활약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이 시골 주재소에 홀로 부임해서 동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경찰, 아니 경관이 달랑 주인공 하나뿐인데 갈등이고 뭐고 할 것도 없지요. 저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에 '경시청을 배경으로 쓸걸 후회했다'라는 글을 올렸던 것이 역자 후기에 실려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보니 이해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인구 6000명의 마을에 사건이라고 해봐야 뭐 얼마나 발생하겠습니까? 애초에 설정 자체가 너무 협소한 것이죠. '6000명 중에 대다수가 살인마다!!!' 이래 버리면 현실성이 떨어지니 말입니다. 작가가 리얼리티를 추구했다고 하니 참으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품은 훌륭합니다. 설정과 배경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현실성있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내었으니 말입니다. 누구나 경시청 살인수사과의 이야기만 쓰면 경찰소설이 식상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2. '전원일기'로 시작했다가 '이끼'로 끝나는 무서운 지역사회 이야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범죄율 0인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그야말로 주재경관이 등장하는 '전원일기'라 해도 될 정도로 분쟁이 일어나도 동네사람들끼리 다 알고 지내는 처지에 좋은게 좋은 것으로 적당히 조율이 가능한 정도의 분위기입니다. 사실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주민이 꽤나 되니  다 알고 지내는 것도 무리일 수 있지만 이런 마을은 통상 몇몇 유력자들에 의해 운영되기 마련이므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작은 로컬 사회라고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

 

   작고 결속력이 강할 수록 외부에 배타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마을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원래부터 마을 정착민이 아닌 별장족이나 변두리에 머무르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사실 이런거라도 있어야 사건이 성립되고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이 와중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 이론입니다. 마을에 전과가 있는 목수가 등장하자 마을 유력자들이 하는 주장입니다. 

 

"오시로라는 남자가 오고 나서 이 마을에 평지풍파가 끊이질 않더군요. 경관님도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아시죠? 마을이 황폐해지는 건 처음 유리창 한 장부터입니다." p193

 

   "깨진 유리창 이론"은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발표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라고 합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내용의 이론인데, 폐쇄적인 마을에서 외부인을 배척하기에 딱 좋은 이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깨진 유리창 하나에 모든 문제의 원인을 투영시켜버리는 못쓸 이론이라고 생각됩니다.

 

   늘 그렇지만 문제는 항상 내부에 있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마을을 특정 유력자가 오랫동안 좌지우지 하다보면 특정인의 필요에 따라 기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고 그것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과 부정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이 마을도 예외가 아닌데 결국 사건은 마을 깊숙히 숨겨둔 비밀에 의해 생겨나고 뭍혀집니다. 우리의 15년 강력계 경력의 눈치백단 주인공 주재경관 "카와쿠보"는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파헤치고 우여곡절 끝에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니 섬득했던 영화 '이끼'가 떠올랐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해보이는 조그만 마을(물론 이끼에서는 멀쩡해보이지도 않기는 합니다만...)에 어찌 그리도 비밀이 많은지 말입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특정인을 중심으로 종교집단 같은 영향력이 형성되고 비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정당화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기나 저기나 요기나 조기나 인간 사는 곳엔 늘 이런 모양새가 나타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3. 왜 제복경관을 주인공으로... 수사 못해 참으로 답답했나보다.

 

   이 작품의 전반에 제복경관이라 수사권이 없다는 이야기가 여러번 등장합니다.

 

"제복 경관이니까요. 전 수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전 주재 경관으로서 이 지역의 자질구레한 정보까지 조금이라도 많이 머리에 담아 두려는 것 뿐입니다."p110

 

"그 때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주재 경관님. 잠시." 카와쿠보가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저희 선생님 차가 나가야 하는데, 교통정리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p129

 

"[어이] 쿠도의 어조가 급변했다. [제복 경관이 지금 내 수사에 대해 비난하는 거야?]"p206

 

   이런 류의 표현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동네 주재 제복경관은 수사권이 없어 수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죠. 위 언급한 것처럼 교통정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15년간 강력계에 근무했던 주인공 카와쿠보는 보는 눈이 있으니 제복경관 역할에 만족할리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니까요. 그래서 마을에 숨겨진 문제들을 슬금슬금 파헤칩니다. 그리고 직접 수사는 할 수 없으니 슬쩍 돌려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그래서 제목이 "제복수사"인가 봅니다.

 

   이건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지겹도록 나오는 은퇴한 특수부대원 설정이나 사건에 연루되 해직된 특수조직의 요원 설정과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실력이 출중한데 한직이나 평범한 곳에 조용히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리는 설정말이죠. 이런 설정으로 경찰 조직의 경직된 인력관리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여튼 작가가 이런 한정된 설정을 해두고 사건을 직접 수사도 못하고 지역사회라 주재경관이 함부러 나서지도 못하는 상황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과물이 훌륭하니 좋은 작가라고 일단 생각하고 다른 작품을 읽어보기로(사 모아 보기로) 합니다.

 

   네개의 에피소드가 묶여있는 이 작품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상당히 현실적으로 처절할 정도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 놀랍습니다. 카와쿠보 경관은 다음 작품 폭설권에도 등장하니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다음 작품을 기대해봅니다. 왜 '사사키 조'를 추천해 주셨는지 한권 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