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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수사 ㅣ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1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1. 처음 접하는 사사키 조의 경찰소설, 진짜 경찰소설 맞네 맞아!
사사키 조의 소설은 처음입니다. 이웃 카르페디엠님이 추천해주셨습니다. 한번씩 지나가는 말로 훅 던지고 가시는데 궁금해서 안 읽어볼 수가 없습니다.(아니 사실은 안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해야하나... 훗...참, 말나온김에 무책임하게 'XX가 재밌더라'라고 슥 던지는 이웃님들...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사게 된다는...) 여튼 경찰소설이라고 해서 반갑기도 하고, 내가 왜 자꾸 경찰소설을 읽게 된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경찰소설을 선호한다고 하기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저는 뭐 평화주의자니까는...
사사키 조의 경찰소설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는데 이 작품 제복수사만 딱 놓고 본다면 참으로 특색있는 스타일입니다. 일단 요코야마 히데오나 혼다 테츠야 처럼 경찰조직 내부나 조직 안팍의 갈등과 대립에 즌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경찰 1인의 활약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이 시골 주재소에 홀로 부임해서 동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경찰, 아니 경관이 달랑 주인공 하나뿐인데 갈등이고 뭐고 할 것도 없지요. 저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에 '경시청을 배경으로 쓸걸 후회했다'라는 글을 올렸던 것이 역자 후기에 실려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보니 이해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인구 6000명의 마을에 사건이라고 해봐야 뭐 얼마나 발생하겠습니까? 애초에 설정 자체가 너무 협소한 것이죠. '6000명 중에 대다수가 살인마다!!!' 이래 버리면 현실성이 떨어지니 말입니다. 작가가 리얼리티를 추구했다고 하니 참으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품은 훌륭합니다. 설정과 배경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현실성있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내었으니 말입니다. 누구나 경시청 살인수사과의 이야기만 쓰면 경찰소설이 식상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2. '전원일기'로 시작했다가 '이끼'로 끝나는 무서운 지역사회 이야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범죄율 0인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그야말로 주재경관이 등장하는 '전원일기'라 해도 될 정도로 분쟁이 일어나도 동네사람들끼리 다 알고 지내는 처지에 좋은게 좋은 것으로 적당히 조율이 가능한 정도의 분위기입니다. 사실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주민이 꽤나 되니 다 알고 지내는 것도 무리일 수 있지만 이런 마을은 통상 몇몇 유력자들에 의해 운영되기 마련이므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작은 로컬 사회라고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
작고 결속력이 강할 수록 외부에 배타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마을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원래부터 마을 정착민이 아닌 별장족이나 변두리에 머무르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사실 이런거라도 있어야 사건이 성립되고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이 와중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 이론입니다. 마을에 전과가 있는 목수가 등장하자 마을 유력자들이 하는 주장입니다.
"오시로라는 남자가 오고 나서 이 마을에 평지풍파가 끊이질 않더군요. 경관님도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아시죠? 마을이 황폐해지는 건 처음 유리창 한 장부터입니다." p193
"깨진 유리창 이론"은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발표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라고 합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내용의 이론인데, 폐쇄적인 마을에서 외부인을 배척하기에 딱 좋은 이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깨진 유리창 하나에 모든 문제의 원인을 투영시켜버리는 못쓸 이론이라고 생각됩니다.
늘 그렇지만 문제는 항상 내부에 있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마을을 특정 유력자가 오랫동안 좌지우지 하다보면 특정인의 필요에 따라 기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고 그것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과 부정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이 마을도 예외가 아닌데 결국 사건은 마을 깊숙히 숨겨둔 비밀에 의해 생겨나고 뭍혀집니다. 우리의 15년 강력계 경력의 눈치백단 주인공 주재경관 "카와쿠보"는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파헤치고 우여곡절 끝에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니 섬득했던 영화 '이끼'가 떠올랐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해보이는 조그만 마을(물론 이끼에서는 멀쩡해보이지도 않기는 합니다만...)에 어찌 그리도 비밀이 많은지 말입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특정인을 중심으로 종교집단 같은 영향력이 형성되고 비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정당화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기나 저기나 요기나 조기나 인간 사는 곳엔 늘 이런 모양새가 나타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3. 왜 제복경관을 주인공으로... 수사 못해 참으로 답답했나보다.
이 작품의 전반에 제복경관이라 수사권이 없다는 이야기가 여러번 등장합니다.
"제복 경관이니까요. 전 수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전 주재 경관으로서 이 지역의 자질구레한 정보까지 조금이라도 많이 머리에 담아 두려는 것 뿐입니다."p110
"그 때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주재 경관님. 잠시." 카와쿠보가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저희 선생님 차가 나가야 하는데, 교통정리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p129
"[어이] 쿠도의 어조가 급변했다. [제복 경관이 지금 내 수사에 대해 비난하는 거야?]"p206
이런 류의 표현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동네 주재 제복경관은 수사권이 없어 수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죠. 위 언급한 것처럼 교통정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15년간 강력계에 근무했던 주인공 카와쿠보는 보는 눈이 있으니 제복경관 역할에 만족할리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니까요. 그래서 마을에 숨겨진 문제들을 슬금슬금 파헤칩니다. 그리고 직접 수사는 할 수 없으니 슬쩍 돌려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그래서 제목이 "제복수사"인가 봅니다.
이건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지겹도록 나오는 은퇴한 특수부대원 설정이나 사건에 연루되 해직된 특수조직의 요원 설정과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실력이 출중한데 한직이나 평범한 곳에 조용히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리는 설정말이죠. 이런 설정으로 경찰 조직의 경직된 인력관리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여튼 작가가 이런 한정된 설정을 해두고 사건을 직접 수사도 못하고 지역사회라 주재경관이 함부러 나서지도 못하는 상황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과물이 훌륭하니 좋은 작가라고 일단 생각하고 다른 작품을 읽어보기로(사 모아 보기로) 합니다.
네개의 에피소드가 묶여있는 이 작품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상당히 현실적으로 처절할 정도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 놀랍습니다. 카와쿠보 경관은 다음 작품 폭설권에도 등장하니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다음 작품을 기대해봅니다. 왜 '사사키 조'를 추천해 주셨는지 한권 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