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적게
도미니크 로로 지음, 이주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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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나의 기대를 이렇게 저버리다니...

 

   솔직히 남들은 다 좋다는데 저혼자 이 책을 막 심하게 까는게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듭니다. 제목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 실망이 컸습니다. 이를테면 다들 재미지고 좋았다는 영화 설국열차를 보고 매우, 굉장히, 아주, 심하게 커다란 실망을 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설국열차는 적어도 제 기준에선 아주 졸작이었죠. 영화리뷰는 안하는 제가 뭐라도 좀 한마디 쓸까 하는 충동이 제법 많이 든 영화였습니다.(영화 리뷰 안한다고 책리뷰에다 우회상장하는 거 맞음) 할말이 무척 많은 영화였는데 가장 크게 실망한 부분은 뭐랄까? 현실을 비판하거나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면 뒷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심정만 대변하려고 하지 말고 앞쪽 칸에 타고 있던 사람들로 대변되는 상류층 사람들이 실제로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뼈저리게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지에 대한 고찰도 있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분이었습죠. 영화에서는 파마나하고 사우나나 하고 약에 취해있는 골빈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의 직진성에 대한 설정 탓에 잘가다가 마지막 문을 앞두고 뜬금없이 주인공과 송강호가 마주 앉아서 옛날 이야기나 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게 그 상황에 할 이야기들입니까? 그 영화는 시간의 직진성 설정 때문에 회상신이 없죠. 그러다보니 할 수 없이 시점이 과거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저 마음도 안맞고 심지어 언어도 다르게 쓰는 두 사람이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황당하게도 주저 앉아서 수다스럽게 '옛이야기 들어보아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설명 안하고 넘어가면 이야기가 설득력이 없어지거든...여튼 중요한 것은 제가 설국열차에 실망한 이유는 영화 자체가 재미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한껏 기대했던 부분을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 [지극히 적게]도 마찬가지 이유로 좀 읽다보니 매우 매우 심하게 실망한 책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생소한 프랑스식 에세이가 어떨지 무척이나 설레고 기대를 했었단 말이지요. 막상 읽다보니 프랑스는 개뿔, 왜 일본이 들어가 있는거냔 말입니다.

 

 

#2. 큰 범주에서 본다면 일본식 자기계발서가 아닐까요?

 

   이 책은 도미니크 로로 라는 독특한 느낌의 이름을 가진 여자분이 쓰신 책입니다. 이미 비스무리한 책으로 유명세를 얻으신 분인 듯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은 한마디로 "미니멀리즘 전도서"입니다. 미니멀리즘은 사전적 의미로 "되도록 소수의 단순한 요소로 최대 효과를 이루려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책도 이런 미니멀리즘 정신에 정확히 부합하는 내용들로 꽉꽉 채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일본식 디테일한 자기계발서 기법이 가미되어 있고, 선불교의 사상도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일본에서 오래 거주하셨고 일본 선불교에 정통했기 때문이겠지요.

 

   이를테면 이런 느낌입니다.

 

Q : 이 책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A : 아, 불필요하고 번잡한 것들을 다 걷어내고 가장 유용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A : 그렇습니다. 덜어낼수록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Q : 그 밖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요?

A : 네, 가볍게 소유하고 소식하며 운동하는 습관을 갖자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A : 네, 샴푸만 쓰고 올리브 오일로 두피 마사지를 하고 좋은 빗, 립스틱, 향수 등등을 좋은 것 하나만 쓰자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A : 네, 말을 아끼고 진실한 친구 몇명만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A : 복잡한 감정에서 벗어나고 머리를 가볍게 하자는 것입니다.

Q : 네 그러니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는 것이군요.

 

 

#3.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에서 오는 식상함

 

   제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미니멀리즘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이 책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들은(미용분야에 관련된 일부분 내용을 제외하고) 분명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실제로 강연, 인터뷰, 책 혹은 설교 등에서 들어보았던 내용들이 많습니다.(거의 다라고 말하고 싶다) 심지어 맺음말에 등장하는 부분조차 어디선가 들어본 낯익은 이야기입니다.

 

 "영혼의 무게는 약 1그램이라고 한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도록 하자." p.258

 

    제가 너무 아쉬웠던 것은 내용 자체가 좀 너무 식상하고 익숙한 내용들의 나열이라는 점입니다. 뒤통수를 똭 때리는 '아!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맛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좀 건방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시작은 매우 좋아서 '음~~~' 했다가 중언부언 같은 느낌에 '그래서? 그래서?' 하다가 '이게 다야?'하고는 끝나더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챕터마다 담겨있는 내용 자체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자'로 귀결되기는 하지만 각각이 소중한 실천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지혜이자 행복의 첩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류의 내용에 생소하시다면 아주 좋은 잠언서 내지는 지혜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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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 개정증보판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문예춘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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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마음에 착 달라붙는 제목짓기의 힘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는 헤르만 헤세라서 궁금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사실 책의 제목 때문에 흥미가 생겼던 책이었습니다. 소설이 아닌 것은 알겠는데 저는 당연히 몰랐고, 어느분도 이런 제목으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 있었단 사실을 아는 분이 없더군요. 실제로 이 제목은 헤르만 헤세가 붙인 제목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다보면 어딘가에서 이 문장이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처럼 맨 마지막 문장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했습니다만 끝까지 책속에 이 문장이 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이 책 제목에 자꾸 신경이 쓰인 이유는 "밀고"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네이버 책에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그리움"이란 단어를 제목에 사용한 시나 에세이는 무려 6,885건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밀고"라는 단어를 제목에 사용한 시나 에세이는 214건 이었습니다. 그만큼 흔하게 책제목에 쓰이는 단어가 아니란 뜻이지요. 그래서인지 희귀성이 주는 매력인지 몰라도 "밀고"라는 단어의 묘한 뉘앙스 때문에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라는 네이밍은 참으로 탁월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을 마지막까지 읽고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더욱 잘 지어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사실상 입에 착 감기지는 않는 어색한 문장일 수 있지만 적어도 마음에 착 달라붙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이 앞으로 더 사랑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 물론 취향에 따라 제목이 마음에 안 들수도 있습니다. 우리 노여사처럼...(개취는 중요하니까 일단 의견이 다를 경우를 생각해서 도망갈 길을 열어두겠습니다) 

 

 

 

#2. 100년의 시간차를 무색하게 만드는 자연과 세상에 대한 관조로의 초대

 

   헤르만 헤세는 저와 정확히 100년의 나이차가 나는 사람입니다. 100년전의 유럽에 살았던 헤르만 헤세와 100년 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저와 무슨 공통점이 있겠습니까만은 이 책에 실려있는 헤세의 자연과 인간,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 그리고 그것들은 너무나 감성적으로 세세하게 묘사한 글들은 저를 100년전 헤세가 거닐던 푸르른 자연 속으로 초대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그의 옆에 딱딱하고 키낮은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자연에 대한 감상들, 세상을 바라보는 헤세 특유의 따뜻한 시선들을 잔잔히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드는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감각적이고 섬세하고 너무나 소탈한 표현들이 갖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헤르만 헤세가 살아내었던 100년 전의 세상은 평화를 사랑하는 그가 있기엔 참으로 혹독한 시기였던 거 같습니다. 조국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던 때였으니 말입니다. 반전주의자 인지 평화주의자인지 정의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가 자연과 평화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 만약 내가 마음속으로 바라는 것처럼 나라 사이에 경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면 이 세상에는 아마 전쟁도 없고 국경 폐쇄도 사라질 것이다. 경계보다도 더 혐오스럽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것은 마치 전쟁터의 장군들, 혹은 대포들과 같다. (중략) 전쟁이 벌어졌던 수년 동안 우리 같은 방랑자들에게 그런 경계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감옥 같은 것이었던가! 그것들은 악마한테나 가 버리기를!" p.61

   

   또 그는 구름과 정원, 숲, 숲속의 작은 길, 나무, 나비, 계절, 고향 등을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막연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 하나의 대상에 대해 구체적인 상을 가지고 있고 깊은 애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표현들을 대하고 있으면 저 스스로 '아, 나는 무슨 나무토막 감성인가?'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이래서 제가 시를 안 읽습니다. 정신만 멍해지거든요... 킁.

 

 

#3. 수채화를 그린다고 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삽화의 매력

 

   이 책의 책장을 넘겨 가면서 또 한가지 계속 마음에 남았던 것은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삽화였습니다. 삽화가 너무나도 글과 잘 어울려서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림에 대한 이해는 딱히 없으니 기술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그저 느낌과 분위기가 제 옷을 입은 듯하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헤르만 헤세가 수채화를 그리는 장면에 대한 묘사를 읽었습니다. '아, 이양반 그림 그리잖아. 것도 수채화!' 그제서야 저의 살얼음처럼 얇은 배경지식을 한탄했습니다. 아놔. 이 책에 삽입된 삽화는 바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었습니다. 아 그르니 자기 글이랑 이렇게 잘 어울리지 원 참! 그렇습니다. 이 삽화로 인해 이 책의 분위기와 감동은 한층 업그레이드 된 것입니다.

 

 

#4. 그 외에 해야할 말말말...  

 

   애초에 잭 제목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 제목은 편집자가 직접 지으신 것 같습니다. 아님 말고.. 여튼 "지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하여"라는 부재는 사실 좀 뜬금 없을 수 있는 주 제목이 책 잡힐까봐 살떨리는 마음으로 살포시 붙여준 표현이지 않을까 짐작해봅니다. 그렇더라도 부제를 빼고 읽어도 제목은 참 잘 어울립니다.

 

   이 책 자체는 헤르만 헤세가 직접 편집한 하나의 완성된 책이 아닙니다. "나비에 대하여"랄지, 헤르만 헤세 전집 중 일부랄지 뭐 이런저런 글들에서 이 책의 흐름에 맞는 글들을 발췌해서 엮은 글이 하나의 완성된 책이 된 경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전반적인 흐름이 부드럽습니다. 편집자가 고생을 많이 했다는 뜻이겠지요.

 

   딱 두군데서 오탈자가 있었던 것이 옥의 티였기는 합니다. 이런 건 책읽는 소소한 재미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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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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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극단적인 어려움이 닥쳤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모두가 평범하고 젠틀하며 온화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특히 형편에 여유가 있을 때는 더욱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적당히 베풀며 "좋은 사람"의 옷을 입고 다니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어떤 식으로건 위기나 위협이 닥치면 극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매우 견고하고 단단해 보입니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는 튼튼한 우리와도 같은 안정감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더욱 그런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깨지고 무너지기 쉬운 연약한 제도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 소설 [제이컵을 위하여]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앤디 바버"는 직업이 검사입니다. 적절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는 직업군이라 하겠습니다. 그저 "우리 아빠"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내인 로리는 그야말로 사교성 좋고 착하고 좋은 아내이자 엄마입니다. 그리고 아들 제이컵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외골수적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끔찍히도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고 묘사되는 면면을 살펴보아도 제이컵은 그리 매력적이거나 훌륭한 아이는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아이로 인해 평범함을 넘어 부러운 이 가정에 평화가 극단적으로 깨집니다. 깨어지고 헝클어지며 침몰하는 배와 같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부부의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지키는 노력은 안타깝게도 힘을 모으는 방향이 아니라 각자 입장과 기질과 형편에 따라 매우 상반된 태도로 일관합니다.

 

   앤디는 살인 피의자로 재판에 회부된 아들을 보며 무너져내리고 있는 아내 로리에게 가쿠타 미츠요의 [공중정원]에서 등장했던 남편, 그리고 할머니가 부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숨겨왔던 자기 가족의 내력을 밝혀버립니다. '나는 고백했으니 당신이 받아들이라. 받아들이고 안받아들이고는 당신 선택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이런 느낌이 되겠죠. 그리고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병적으로 강인하게 가족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반면 사교적이고 상냥하던 아내 로리는 받아들이기는 너무 힘든 상황앞에 스스로 내면이 무너지며 남편에게 원망의 화살을 끊임없이 날립니다. 당사자 제이콥은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매우 차분한 태도를 보입니다. 한 가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처한 가족 각 구성원의 반응과 태도가 제각각입니다. 과연 누가 옳은 걸까요? 누가 더 적절한 것일까요?  

 

 

#2. 세상에서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은 우리부모가 아닐까?

 

   놀랍게도 부모는 대부분 자기 자식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나보다 더 잘 알 사람이 어디있냐? 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건 대부분 초등학교 정도 이전에 한해서만 사실일 거 같습니다. 당신은 혹시 청년으로 자란 어느 시점에 당신의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는 이래저래한 아이야'라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경험이 없으십니까? 저는 대학시절 아버지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이에게 설명하며 자신만만해 하던 모습이 정말 황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 말고 누구 다른 사람이야기하나?' 싶을 정도로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아주 유년기 시절 나의 단적인 모습으로 나를 단정지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런 것이지요. 이런 성향은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에 근거하는 것 같습니다. '내 아이는 이런 아이였으면, 내 아이는 이렇게 행동했으면..'하는 바램이 투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보면 직장일이 바빠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하고 놀아 주거나 대화를 깊이 나누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몰 이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앤디는 아들 제이콥이 한없이 착한 아이라고 확신을 넘어 맹종합니다. '내 아이는 이렇다. 이래야 한다'라는 믿음. 앤디는 그저 '내 아들이니까 살인을 했을리 없다'라는 믿음을 끝까지 이어갑니다. 반면 아내 로리는 어린 시절부터 보였던 아이의 성향을 되새기며 점차 '우리 아이 짓일 가능성이 있다'쪽으로 기울어갑니다. 이런 간극이 점점 부부를 갈라놓습니다. 누구의 시각이 맞는 것일까요? 누가 아이 제이컵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 여튼 세월이 흘러도 아이를 가장 오해하고 모르는 사람은 부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우리 일상을 깨며 극적으로 등장하는 삶의 잔인성을 마주하다.

 

   우리 일상이란 것은 늘 평범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하고 별반 특성이 없는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탓에 일상은 우리에게 적절한 안정감과 평안함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상성을 깨고 우리의 삶의 모양새를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것이 짧고 극적인 불행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좀더 극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설정이지만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질병이 찾아온다거나, 직장을 잃는다거나, 아이가 심하게 아프다거나 하는 상황이 바로 그런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일상을 깨는 불행한 일이 닥치면 우리 인생자체에 대한 잔인성, 냉정하고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지인과 주변 인물들의 태도에서 오는 잔인성, 각종 SNS나 미디어를 통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마음껏 재단하는 익명의 잔인성 등에 마주 대하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를 탓하고 공격하는 이기적인 잔인성 또한 만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약자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잔인합니다. 또한 무언가 약점이 드러난 사람에게 더욱 가열차게 잔인함을 드러냅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짓는 사람'에서 처럼 사람들은 무언가 불확실하고 간단히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빨리 범인으로 몰아붙이고 공동의 처치를 해버리면 마음의 무거움을 덜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겪고 있던 그렇지 않던 이러한 다양한 삶의 잔인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속에 극적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이런 잔인성의 피해자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 일으킵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이런 잔인한 현실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4. 1Q84의 세계로 들어서면 되돌아 갈 길이 없다?

 

   우리의 삶을 뒤흔들었던 잔인한 일들이 해결되면 우리는 그 불행이 오기 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그 무거운 짐이 빨리 없어지기만을 바랍니다. 그것만 해결되면 모든 일이 잘 될것만 같은 희망을 가져보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 물질처럼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각자 구성원의 마음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변해버린 현실의 한계가 강고한 벽처럼 막아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 두개의 달이 뜬 세상으로 건너가버린 것처럼 겉보기에 똑같은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불행을 경험하기 전과 그 이후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경계가 되고 맙니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는 일단의 사건이 해결 된 이후 상처를 봉합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심지어 상처를 잊고자 떠난 여행지에서 또 한번 비슷한 불운과 조우하게 되는 그들의 모습은 읽는 이를 멘붕으로 빠뜨립니다. 이 쯤되면 이것이 불운인지 필연인지 어지럽기만 합니다. 이 상황을 대하는 부부의 태도는 다시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역시나 의연하게 아들을 옹호하고 믿으려는 믿음의 태도를 보이는(그가 실제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앤디와 원래의 의심을 확신으로 굳히며 더욱 극한 선택을 하게 되는 로리... 저는 누가 맞는지, 누가 옳은건지 아직까지도 결론을 못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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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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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잔잔하고 차분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긴장감이 넘치는 명작

 

   언젠가부터 TV를 통해 음악을 경연하는 프로그램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함께 붐을 일으켜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마도 경연프로그램은 "나는 가수다"가, 오디션 프로그램은 "슈퍼스타K"가 시발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런 경연 프로그램과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나름의 코드가 있습니다. 오래된 명곡을 감각적으로 잘 편곡하고, 후렴구에 폭팔적인 부분을 추가해서 기-승-전-결 구조로 짜서 관객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두가지의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한가지는 "와, 저 곡을 저렇게 멋들어지게 편곡했구나, 감각적이고 현대적이다"하는 감탄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늘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다른 한가지는 '아.. 역시나 원곡이 최고로구나. 아무리 멋져도 원곡의 그 정취와 감성은 흉내내는 것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곡을 만들어서 크게 히트를 치려면 필수불가결한 두가지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후크"와 "사비"인데, 반복되는 부분으로 쉽게 따라부르고 중독성 있게 해야하고, 후렴에서 빵 터트려서 '와우~' 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세계적으로 오랜시간 동안 사랑 받는 명곡들을 보면 의외로 잔잔하고 부드러운 곡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예전에 소개드린 '사이먼 &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같은 곡이나 갠자스의 [더스트 인더 윈드] 같은 곡이라든가, 심지어 마이클 잭슨의 곡중에도 잔잔한 곡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조비의 [(You want to) Make a Memory]도 생각이 나네요

 

   장황하게 음악에 대해서 말씀드린 이유는 일본 미스터리의 선구자 겪인 세이초옹의 첫 장편소설이라 할 수 있는 [점과 선] 역시나 올타임 명곡들처럼 잔잔하고 담백한 느낌의 명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와서 보면 무언가 좀 심심한 구석이 있고 화끈한 맛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이 1957년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으로 저보다 20년 형님인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더 즐겁게 읽으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로서는 거의 시초인 사회파 추리소설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워낙 다양하고 정교하게 발전을 해왔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어지고 긴장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 [점과 선]은 대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작이자 정수

 

   사실 사회파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라고 말을 하지만 제대로된 사회파 추리소설을 얼마나 읽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거 뭐, 그냥 그런거 같다는 거지 뭘 따져?"라고 해야할 만큼 딱히 읽어본 걸 꼽으라면 궁색해 집니다. 그러나 [점과 선]을 읽고나니까 제가 정말 사회파 미스터리가 잘 맞는다고 확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본격 추리소설이나 하드보일드 등과 비교하면 나름 구분되는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작가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해석된 당시의 시대상과 인간들의 부조리와 모순, 애환들이 잘 녹아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서 독자인 제가 제 나름대로 작가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반응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맞장구를 칠 때도 있고, 나와 무관한 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작가의 시각이 편협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점과 선]에 등장하는 배경은 "oo성 "으로 표현하고 있는 정부기관의 부정와 부패,  그리고 부정과 부패를 부추기는 업체들과의 유착관계가 핵심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세이초옹이 말하고자 하는 문제가 드러납니다. 조직적인 부정과 부패가 제 3자를 통해 드러날 위기에 놓였을 때, 권력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문제인데,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국 힘없는 실무자가 희생되는 사회적 착취구조를 적나라하게 나타내 줍니다.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는지를 고발합니다. 이 때 어떻게든 성공하고픈 하위직 관리의 심리상태나 동기도 한 몫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과학수사가 발달해서 지문이나 머리카락, 또는 CCTV, 모든 이동수단에 따라붙는 전산자료 등으로 범죄자가 어쩔 수 없이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통해 범죄 사실을 밝히기가 수월하지만 그 당시는 그저 탐문하거나 증인의 증언 등에 의존해야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던지라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추리를 해 나가고 확인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역시나 사회파 답게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늘 따라오다니는 것이 "왜?"입니다. 범인은 왜? 피해자는 왜? 이 사람들은 왜? 늘 이런식의 이유가 따라붙게 되죠. 사회파에서 범죄동기와 이유는 매우 중요한 팩터입니다.  

 

 

#5. 수퍼 히어로가 없어서 매력적인 미스터리 

 

   다행히 세이초옹의 추리소설에는 초울트라 슈퍼 우주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가 홈즈를 필두로 영웅 사기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물을 어지간해서는 읽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게 초현실적인 캐릭터가 몰입과 공감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딴나라 세상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요? 어떤 말도 안되는 사건이 일어나도 '에이, 주인공이 알아서 다 풀어낼텐데 뭘..'하고 긴장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이 소설 [점과 선]에는 그런 슈퍼 히어로가 전혀 없습니다. 혼자 힘드로 척척 헤쳐나가는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주인공이 처음부터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주조연 겪인 늙은 형사 도리카이가 먼저 등장해 사건 전체를 이어가는 범인의 트릭에 의문을 제기하고는 뒤이어 등장한 주인공 미하라에게 슬쩍 바통을 넘겨줍니다. 그렇게 등장한 주인공 미하라도 딱히 히어로는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게 성실하게 하나하나 조사를 해가다가 소소하게 하나씩 간과했던 사실을 발견하고 문제를 조금씩 조금씩 풀어갑니다. 그러다가 상사에게도 도움을 받고 다른 서에서도 협조를 받고 처음에 등장했던 주조연 도리카이에게 다시 조언을 얻고 이러저러해서 사건을 해결하고는 다시 두 사람이 손잡고 같이 등장해 독자에게 인사하고 퇴장하는 방식입니다.  

 

   그 흔한 등장인물간의 갈등도 없고 화목하고 협조적으로 트릭 파헤치기에만 몰두하는 직선적인 구조입니다. 그래서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주인공의 성향은 독자에게 쉽게 동일화와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멍한 경우가 많은 저같은 사람이 미하라가 머리를 싸매는 모습에 공감하다가 '아' 하며 뭐라도 하나 알아채면 '그래 그게 뭔데? 뭔데? 뭐???' 이러면서 뭔 내용인지 궁금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조가 재미있네 없네 따질 형편이 못되는 것입니다.  

 

 

#4. 세이초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철도,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세계

 

   세이초의 작품에는 늘 이동수단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철도가 중요한 요소이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각각의 장소들을 공간적으로 이어주는 선과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점과 선]에서는 '4분간의 트릭'이라고 불리는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중요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열차의 출발, 도착시간과 역들을 적절히 잘 이용해서 시 공간을 교차하는 핵심 세계를 형성합니다. 이 트릭을 풀어헤치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혼다 테스야의 '스트로베리 나이트'시리즈에서 점과 선에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같은 10계 주임인 쿠사카와 레이코는 서로 다른 성향으로 수사를 합니다. 여주인공 레이코의 경우는 감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예측하는 감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러나 쿠사카의 경우는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며 사건의 핵심에 다가갑니다. 쿠사카는 늘 감을 앞세운 레이코의 추즉을 들으면 늘 한결같이 지적합니다. "레이코, 그건 너의 예단일 뿐이야.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점과 같은 단서들에 불과해. 그 단서들을 이어주는 선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추측은 위험하다." 쿠사카의 말처럼 각 장소, 시간, 또는 이동수단 등에 부여된 각각의 점과 같은 사소한 단서들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서 관련있는 단서들끼리 정확히 이어야만 선으로 이루어진 실체가 닭인지 돼지인지 코끼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이초의 첫번째 장편 [점과 선]을 읽어가다보면 각각의 점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유추하는 과정중에 실수와 혼란을 겪으면서도 꾸역꾸역 선으로 연결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 과정을 즐기며 이야기속에 서서히 드러나는 이해관계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들을 자연스레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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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70세 노인의 내면을 표현했지만, 작가 김영하가 떠나지 않는 소설

 

   평소에는 잘 읽지 않는 소위 핫 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갑자기 이책을 집어든 이유는 며칠전 아내와 함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나름 감동한 데다가 위대한 개츠비의 책 내용이 궁금한 마음에 그 책을 번역한 김영하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위대한 개츠비 에피소드를 들은 터라 작가 김영하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는데, 정작 김영하 작가의 책은 한권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책 [살인자의 기억법]은 잘 읽힌다는 평이 아주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실망스럽다는 평도 꽤나 있었던거 같습니다. 일단 저에게는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 주인공이 70대 노인이며 전직 킬러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점, 기억장애, 기억퇴행 현상으로 파생되는 문제로 인한 주인공의 내면고백,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었다는 점이 훌륭했습니다.  

 

   1인칭이다보니 주인공의 서술에 따라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공감하는 형식으로 책을 읽으려고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주인공의 캐릭터상 특징이 전반에 걸쳐 잘 설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주인공에 대한 몰입보다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저자인 김영하 작가입니다. 매 장면이나 독백을 대할 때마다 '70세 노인의 심리상태를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실감나게 표현했을까?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내었을까? 아니면 그저 설렁설렁 이까짓꺼 하면서 쉽게 써나갔을가?' 이런 생각들 말이죠. 다 읽은 후에도 계속해서 '저자는 무엇 때문에  이 이야기를 생각하고 써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습니다. 술술 잘 읽었지만 쉽지 않은 소설이었습니다.    

 


#2. 시대의 흐름을 잘 캐치한 이야기 서술방식 

 

   이 소설의 서술방식이랄까? 편집이랄까? 여튼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한국 고유의 여백의 미를 잘 살렸다고 해야하려나? 한페이지를 설렁설렁 부분부분 사용하는 기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인칭 시점의 일기 혹은 메모 같은 기록방법으로 진행하는 시도 자체가 신선했습니다. 아날로그 타입으로 생각하자면 메모지, 포스트잇에 적힌 메모들을 한땀 한땀 옮겨적은 듯한 느낌입니다. 디지털 타입으로 생각하자면 SNS, 이를테면 트위터나 페북, 미투데이, 미니홈피 등등에 기록한 짧은 이야기들을 옮겨 적어놓은 듯한 인상입니다. 역시나 이런 정도의 호흡으로 읽어나가는 것은 SNS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것이지요. 아주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방식입니다.  

 

   대단할 거 없다면 없는 방식이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법이니 어쨌거나 서술기법이 독특하고 신선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단순히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부합하는 적절한 기법을 지혜롭게 개발하는 스타일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책을 즐겨읽는 독서가들에게 이 방식이 과연 호응을 얻을 것인가 인데, 글쎄요. 뭐라 딱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안먹히면 뭐 그냥 쓰던데로 또 쓰면 되는 것이니까요^^  

 

 

#3. 무거운 주제, 심각한 이야기, 동의는 하지만 재미없는 이야기의 한계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 김병수의 처절한 모습을 통해 한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균열과 붕괴를 밀도 있게 잘 묘사하는 이 소설은 다소 무겁고 심각한 주제 의식을 간간히 등장하는 유머코드와 버무려 나름 세심하게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결말부에서 그 동안의 진행을 뒤흔들만큼 반전 내지는 혼란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금세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한 치밀한 사전 장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읽는 자의 재미입니다. 읽는 행위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다 읽고나서도 먹먹한 무언가가 남거나 머리속이 뻥터지거나 충격에 휩싸인다면 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읽는 동안 매우 재미지고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 자체의 메세지 보다는 오히려 메시지를 담는 형식, 풀어내는 방법, 작가의 의도 등이 더 부각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이것이 단점인지 장점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읽을 때의 즐거움이라는 관점에서는 아쉬움이 꽤나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살인자의 기억법]이기 때문에 많이 읽혔다기 보다는 [김영하]가 썼기 때문에 이정도로 읽힌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이런 소설도 썼어? 이런 느낌인 것이죠.  

 

 

#4. 제발 해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씁시다. 본인의 지성자랑 한마당이 아니지 말입니다.

 

   점점 저를 까칠하게 하는 것들이 속출합니다. 이 소설을 그저 저의 페이스대로 잘 읽었습니다. 제가 딱히 지성인은 아니지 않겠습니다. 태생이 공돌이다보니 한계가 분명합니다. 김영하 작가의 깊은 고뇌의 산물인 이 작품을 그 의도까지 적확하게 파악하는게 만만치 않겠지요. 그러나 전문 문학평론가의 해설 부분에서 또 한번 (개) 짜증이 났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부분은 [해설]이란 타이틀 보다는 [누가누가 잘읽었나 자랑하기]란 타이틀이 적당할 거 같습니다. 해설이 소설보다 더 어렵고 난해합니다. 이 해설이 작가의 의도와 정확히 부합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럼 이 소설을 접하는 대부분의 독자가 비슷하게 이해하겠냐고 또 한번 묻고 싶습니다. 해설을 이런 식으로 지성자랑 한마당으로 써놓으면 독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만의 독서가 아니라 교과서 읽고 자습서 해설로 공부하기 꼴이 되어버립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모두를 끼워 맞추지 맙시다. 이 책에 실린 해설보다 적어도 백배는 더 일상언어로 쉽게 쓰여져야 합니다. 아니면 [전문가 평론]이라고 타이틀을 달아서 출간하시기 바랍니다.  

 

   매우 많이 아주 짜증스러웠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저의 열등감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지만 과연 이 땅에 그 해설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들지 않을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소설보다 해설이 더 난해한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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