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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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유정 작가가 들려주는 여행에세이의 신선함을 접하다.

 

   우리는 여행에세이 범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처음 이책을 접했을 때, 표지가 예쁘다는 생각 외에 '정유정작가님? 아, 작가로 성공하기는 하셨구만... 이런 여행기까지 제안을 받으셨나보네...' 하는 삐딱한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정유정"이라는 브랜드를 이용해서 팔릴만한, 돈되는 여행에세이를 하나 냈나보다 했던 겁니다. 요즘 이런 기획이 가끔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상하게도 기대감이 전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여행의 발단이 출판사의 기획이나 제안은 전혀 아니었으니 오해는 풀렸습니다만, 또 하나 의아했던 것은 '왜 히말라야인가?' 였죠. 딱히 여행을 자주 다니는 걸로 알려진바가 없는 작가님이 뜬금없이 히말라야라니요? 그래서 프롤로그에 나와있는 남편의 반응에 과도한 몰입을 하며 '맞아, 맞아, 두들겨 패든 머리를 밀고 방에 가둬두든 못가게 해야지. 이거이거 거기가 좀 위험하겠어?' 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여행가서 일기 쓴다고 다 여행에세이는 아니다

   여행에세이의 유익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독자가 잘모르는 여행지의 숨은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정보전달이 주 목적인 경우 또는 여행지는 여행지대로 소개하지만 사실 저자가 여러가지 감상을 더해 하고싶은 말을 함으로써 독자들과의 교감을 하고 영향을 미치는 방식 등이 있겠습니다. 전자의 경우는 설명체로 기술되면서도 중간중간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들어가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는 방식이 됩니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 상당히 감각적이고 감상적인 글이 되거나 여행지랑 무관하게 무거운 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유정 작가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어느 케이스에도 끼워맞추기 힘든 독특한 여행에세이 였습니다. 히말라야 일대를 17일간이나 도는 안나푸르나 라운딩코스는 책 서두에 제공된 코스지도를 보나 코스별 고도를 기준으로 작성된 단면도를 보나 잘모르는 사람도 숨이 턱막히고 벌써 걱정이 앞서는 어려운 코스임을 예감하게 합니다. 그래도 이책이 정상적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저자가 별탈없이 돌아온 것이므로 천만다행인 것입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일기스럽습니다. 매일매일의 코스와 들린 지점, 식당, 배경, 신체적 정신적 상태등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정도면 주저리주저리 열매 능력자를 능가하는 수준입니다. 가히 질릴만한 수준의 디테일입니다. 그런데 질리지 않습니다. 전혀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여행이 진행될 수록 더욱 흥미진진하고 몰입하게 됩니다. 이런 점이 바로 이 책의 훌륭한 점입니다. 저는 이 에세이 한편만으로도 저자의 글쓰기 능력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3. 평소엔 알 수 없는 작가의 인생궤적과 사람됨을 알게되는 즐거움

 

   소설가가 몇편의 작품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지명도가 올라가고 유명세를 타다보면 자연히 작품자체와는 별개로 작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작품이 좋았다'에서 '작가가 좋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일반독자가 작가의 개인적인 삶의 방식이라든지 평소의 가치관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의 매체의 인터뷰라던가 에세이 집을 통해 그 갈증을 해소해야합니다. 이를테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 생각보다 엉뚱발랄한 작가의 인간적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도 이 책은 매우 의미있는 책입니다. 정유정 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인생스토리와 인생관, 디테일한 성격등이 매우 적나라하게 담겨있습니다. 작가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평소의 갈증을 해소하는 정도가 아니라 깜짝 놀랄만큼 작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정도입니다. 그만큼 자기를 오픈하는데 적극적이고 솔직합니다. 곳곳에 작가의 과거 이야기와 가족사, 삶의 태도 등이 자연스럽게 담겨있습니다. 저는 이 에세이 한편을 통해서 작가에게 가지고 있던 제 마음대로의 이미지가 완전 수정되었습니다. '이 양반 완전 훌륭하구나. 그리고 한편으로는 안스럽도록 힘든 세월을 견뎌왔구나'하는 생각을 자연히 하게되었습니다. 이 분의 작품의 어떠함과 무관하게 작가자체에 매력을 담뿍 느끼고 말았습니다.

 

 

#4. 재화의 가치는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각종재화의 가격이라는 것은 실제가치 즉, 그 재화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유용성이 있느냐에 달려있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책의 가치는 얼마나 바른 정보를 제공하느냐도 있지만 독자가 책을 읽는 동안 얼마나 즐거움을 제공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렇듯 모든책이 정보제공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정보제공의 역할은 인터넷이 차지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 정보제공의 역할도 톡톡히 하지만 놀랍도록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거기에 감동도 잘 버무려져서 뭐하나 나무랄데 없습니다. 읽으면서 작위적인 재미를 위한 요소나 감동코드를 위한 안배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전혀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습니다. 재미와 감동이 묘하게 적절한 비율로 섞여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능력에 감탄합니다.

 

   예를 들면 시작부터 지속된 생리적 현상인 변비 트러블을 솔직하게 적고 있는데, 읽고 있는 저는 살면서 변비를 겪은적이 없는 쾌변남인데도 불구하고 자꾸 저의 배가 더부룩하고 터질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지나니 이젠 소변을 참고 참아 방광이 터져나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와우.. 조금도 작위적 느낌이 없지만 마치 소설속 설정처럼 극적입니다. 이 별 것 아닌 상황이 여행기 전체의 극적 긴장감과 몰입을 돕는 엄청난 역할을 담당합니다. 거기에 무경험자의 안나푸르나 좌충우돌기에 순간순간 자신의 인생스토리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됩니다.

 

   좋은 책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 책은 감동과 재미가 넘치도록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좋은 책입니다. 말로 더 이상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읽어보세요... (단, 모든 책은 개인의 취향이 제 1조건임을 전제합니다... 라고 일단 빠져나갈 길을...) 여튼 저는 깜짝 놀랄 만큼 재미지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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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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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는 사람만 아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속살을 들추다!

 

   어쩌면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를 일반인들(장르물을 딱히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하드보일드나 미스터리 애호가들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닐까 합니다. 아니, 실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할이 매우매우 중요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표적으로 하루키가 챈들러를 언급했다고 알려진 것은 그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라는 희한한 이름의 에세이집입니다. 읽지는 않아도 남들 사는건 다 사는 저는 물론 문학동네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5권 세트를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습니다. 하루키가 말하는 챈들러 스타일이 뭔지 내용은 알고 있었으나 다시 한번 꺼내 들쳐봤습니다.

 

"아무튼 나는 그것을 챈들러 방식이라고 부른다. 우선 책상 하나를 딱 정하라고 챈들러는 말한다. (중략) 그리고 매일 일정시간 - 예를 들어 두시간이면 두시간 - 그 책상 앞에 앉아서 보내는 것이다. (중략) 그러다 보면 당장은 한 줄도 쓸 수 없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글이 써지는 사이클이 돌아온다. 초조하게 굴면서 불필요한 일을 해봐야 얻어지는 건 없다. 이것이 챈들러의 방식이다. 나는 이런 방식을 비교적 좋아한다. 건전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p42~43

 

   하루키는 챈들러의 이러한 방식을 매우 건전하게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이 책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에 기록된 챈들러의 편지속 이 대목은 사실 성실한 느낌보다는 상당히 제멋대로거나 쿨한 그러거나 말거나 식 뉘앙스를 풍기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챈들러 본인은 조금은 삐딱하면서 전형적인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뽐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챈들러가 쓴 편지들을 읽고 있노라면 이 양반은 남들 눈치 안보고 하고싶은 말 하고 하고싶은데로 하겠다고 강력하게 결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챈들러는 글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라고 강조하는데 작품 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도 개인의 퍼스날리티가 차별화 될 수 있는 특징있는 스타일을 창조해 내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하여 작품 외적으로도 작가 자신이 관심받고 사랑받는 브랜드가 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개성이 편지라는 형식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최대 미덕이자 장점입니다. 뭔가 정제되지 않는 날 것이 담긴 느낌, 그것으로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써의 레이먼드 챈들러의 속살을 들여다본 느낌이 남습니다. 챈들러 본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말입니다. 뭐가 되었건 캐릭터가 살아야 매력이 있고 오랫동안 기억되며 사랑받게 되는데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이자 실존 인물이 편지를 통해 그려내는 그 스타일은 곱씹을수록 매력적입니다. 

 

 

#2. 레이먼드 챈들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아는 사람에게는 깊은 감회를...

 

   음... 제 걱정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레이먼드 챈들러의 솔직한 성격과 당시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깨알 재미가 있더라도 작가 자체를 모르고 이 작가의 작품을 전혀 안 읽어본 나같은 사람이 과연 흥미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예를 들어 TV 연예프로그램 '힐링캠프' 같은데 유명한 작가가 게스트로 나왔다면 팬들은 그것 자체가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가를 모르고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고 작품도 워낙 유명하니 몇개 들어봤는데 정작 작가 자체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는 무지상태인 것이고 주위 분들이 좋아서 껌뻑 넘어가도 공감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런 걱정은 역시나 기우였습니다. 어차피 작품에 대해 논하는 에세이가 아니다 보니 작가로서의 챈들러의 위상과 별개로 그의 생의 이면에 펼쳐지는 일들에 대한 정보와 그에 대한 챈들러의 리액션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가 쏟아내는 날카로움을 대하면서 '역시 작가로 뭔가 이룬 사람들은 사회생활이 대체로 사교적이지 않고 좌충우돌하거나 자기만의 세계가 뚜렸하거나 그런 모양이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챈들러가 직설적이고 여러 다른 작가들을 신랄하게 비난한 듯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데 있어서 만큼은 누구보다도 진지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이 삶의 목적이죠. 나머지는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것일 뿐입니다. 어떻게 실제로 글쓰는 일을 싫어할 수 있습니까? 싫어할 만한 요소가 뭐가 있다고? 차라리 사람은 장작 패는 일이나 집 청소는 좋아하지만, 햇빛이나 밤바람이나 꽃의 흔들림이나 풀잎에 맺힌 이슬이나 새들의 노래는 싫어한다고 말하죠. 어떻게 문단이나 문장이나 대화나 묘사를, 창조적인 무언가로 만들어 내는 마법을 싫어할 수가 있겠습니까? 글쎄, 분명히 그러면서도 성공할 수 있나 보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우울하군요." p124

 

   이 글은 실제로 글 쓰는 과정은 싫어한다고 말한 존 딕슨 카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글쓰기에 대한 진정성을 변호합니다. 그러니까 주요 작가를 내리고 본인은 자연히 들어올리는 이중효과네요. 이 곳 외에도 이책 곳곳에서 글쓰기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는 돈이나 어떤 특권 때문에 글을 쓰는게 아닙니다. 다만 사랑 때문에, 어떤 세계에 대한 이상한 미련 때문에 글을 쓰는 거죠. 사람들이 치밀하게 생각하고 거의 사라진 문화의 언어로 말을 하는 그런 세계 말입니다 나는 그런 세계가 좋습니다." p194

 

   저도 돈 때문에 글을 쓰는건 아니니 비슷하군요. 흐흐.. 분명한 건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작가를 기존에 몰랐던 독자라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을만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워낙에 레이먼드 챈들러와 그 작품을 잘 아는 팬들에게는 깊은 감회와 추억에 잠기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 역자도 편집자도 역할의 경계가 모호한 재미난 책

 

   이 책은 애초에 태생 자체가 독특합니다. 물론 미스터리류는 그런 경우가 종종있지만 역자가 책을 기획하고 출판사에서 제작을 담당한 경우입니다. 그러다보니 저로써는 상당히 희한한 상황을 대하게 되었는데, 이례적으로 역자가 서문을 썼더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편집자, 정확히는 마포 김사장님이 책의 말미에 후기를 써두었습니다. 뭔가 통상적인 상황과 거꾸로라고나 할까... 얼마전에 포스팅한 바도 있지만 이 책의 탄생 비화를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상황도 아니기는 합니다.

 

   역자가 애초에 책을 기획했다는 것은 저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이고 그러니 레이먼드 챈들러를 소개하는 서문을 쓰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저기 흩어진 그의 편지를 분류하고 읽기 좋게 정리하는 작업도 편집부와 공동으로 진행한 듯 합니다.  

 

"이 책에서는 챈들러의 편지들을 발췌, 편집하여 주제별로 정리하고, 각 편지마다 제목을 붙여 놓았다. 편지의 특성상 일정한 주제로 전개되지도 않고 제목이 있을 리도 없지만 굳이 그렇게 정리한 이유는 우선, 개괄적인 내용을 목차에 드러내어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함이다. (중략) 두 번째 이유는 독서의 편의를 위해서이고, 마지막으로는 나중에 해당 편지의 내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p12~13

 

   저자의 편지들을 '작품론', '작가들', '할리우드', '필립 말로', '일상' 등으로 크게 분류하고 각 편지마다 적절한 제목을 붙여준 작업은 매우 의미있고 유용한 작업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저처럼 기본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에게는 더욱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이 책을 펴낸 북스피어의 마포 김사장님은 편집 후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챈들러와 하루키의 오랜 팬으로서 만드는 동안 많이 신났고 때때로 짜릿했습니다. 저는 그랬어요. 이런 게 편집자로서의 소소한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 김홍민 드림" p255

 

   저는 이 책을 무척 쉽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만드는 사람이 신나하며 짜릿해하며 만든 책이라고 합니다. 역자가 정성을 다해 번역한 책인 듯 합니다. 번역자가, 편집자가 즐겁고 재미있게 만든 책이 재미가 없을리가 없겠지요. 세상모든 이치가 그런게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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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사라지는 세계라.... 엄청난 디스토피아군요... 이럴때는 사람들에게 향수와 희망을 심어주는 책을 남기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나중에라도 책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이미 책을 잊은지 아니 못 읽은지 오래일테니 너무 어렵거나 길거나 읽기 어려워서도 안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왕자` 또는 `갈매기의 꿈` 두권중 한권이 딱 맞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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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 도정일 산문집 도정일 문학선 1
도정일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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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풍요성'에 대한 인식의 도착 현상을 지적하다.

 

   도정일 선생님은 뭔가 성함이 친숙해서 이상하다 했는데 얼마전에 읽었던 '동물농장' 민음사본 번역자셨네요. 물론 평론가로 유명하시고 책읽기와 도서관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오신 이시대의 지성인이시니 모르면 이상하겠지만 말입니다. 도정일 선생님이 오랜기간 동안 각종 매체에 기고하신 귀한 글들을 모은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전혀 돈이 안되는 것들의 가치를 기억하고 진정 우리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이 쓰잘데없어 보이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책입니다.

 

   이 한권의 산문집이 어찌나 묵직하던지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읽었습니다. 그냥 슬슬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한군데도 없다보니 읽고, 생각하고, 공감하고, 조금이나마 소화시키느라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 양반이 이렇게 깊이 있는 지식과 통찰을 얻을 동안 나는 뭐하고 자빠져 있었나를 생각하느라 자아비판도 많이 했네요. 그럴수 밖에 없게 만드는 지성입니다.

 

   선생은 글에서 다양한 사회적 현상에서 볼 수 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을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는 돈 안되는 것의 고귀함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날이 갈수록 천민자본주의의 지배력이 견고해지고 있고 우리 스스로도 이 자본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 사실입니다.

 

"궁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다. 삶의 물질적 조건을 안정시키는 것은 품위 있는 삶의 기초이기 때문이다."p120

 

   선생은 기본적으로 물질의 필요성은 인정해야한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함정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지적합니다.       

 

"말하자면 인간의 삶에는 물질적 풍요 이외에는 어떤 가치도 목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히 위험한 인식의 함정이다. 이 함정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또하나의 거대한 궁핍에 직면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정신의 궁핍, 가치의 궁핍, 의미와 목적의 궁핍이다.."p120

 

   잘먹고 잘사는 것의 중요성이야 누가 부정하겠냐만은 그 상태를 추구하는 행위의 한계는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은 쾌락의 추구에 지나지 않으며 쾌락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허망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저같은 범인은 비록 허망하다 해도 추구해보고 싶기는 합니다. 후훗)

 

"삶의 목적은 '아름다운 삶'의 영위에 있다. (중략) 어떤 것을 '소유하기'나 '소유하는 자'를 벗어나 존재 그 자체를 중히 여기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중략) 쾌락이 자주 존재의 타락을 강요한다면 즐거움은 존재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존재 확장의 경험이 기쁨이라는 것이다." p.122

 

   이런 사유에서 출발해서 사회의 행복추구, 민주주의 성숙으로의 확장, 아이들의 행복 등으로 문제를 확장해나갑니다.

 

 

 

#2.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을 다루다 돈이 안되는 책이 나오다.

 

   이 책은 참 가치있습니다. 한꼭지 한꼭지가 곱씹을수록 의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돌아보고 고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지성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균형잡힌 시각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트렌디한 느낌은 없다는 점입니다. 근 20년 전에 기고한 글들도 여럿있는데다 지금에 와서 읽어도 여전히 교훈이 되는 글들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고 편하고 감각적이지는 않습니다. 고민하게 만든다는 자체가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질문을 싫어합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불편해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질문말입니다.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질문, 삶에 중요한 것에 대한 질문, 살면서 놓치면 안되는 것들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철학적인 질문은  하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예의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진지하게 사색하고 그 결과물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과연 이정도의 진지함을 누가 좋아할지 의문이 드는 지점입니다. 이 시대는 잠시도 무거운 것을 참기 힘들어 하니까요. 잠시도 불안함을 못참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습니다. 읽더라도 쉽게 읽어지는 장르소설이나 여행 에세이 등을 읽게 되죠. 고민거리가 담겨있고 우리에게 당신은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이런 류의 책은 외면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무척이나 돈이 안되는 책이 나왔다는 느낌입니다. 읽는데 오래걸리고 불편하고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3.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는 비평의 중후함을 만나다.

 

   이 책의 여러꼭지를 읽어가면서 감탄한 또 한가지는 비평의 넘볼 수 없는 중후함입니다. 유치한 인신공격도 원색적인 비난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다양한 현상에 대한 비판이 가득합니다. 후반부로 가면 정치적인 신념이 반영된(저는 상식적이라 느꼈지만) 비판의 글이 빈도가 높아집니다. 하지만 직접적인 비난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을 통해서 비판하되 비난하지 않는 비평의 격조를 느꼈습니다.

 

   앞으로 출간될 "도정일 문학선"의 첫번째 책인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은 첫번째 책에 걸맞게 교육, 사회, 정치 전반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앞으로 발표될 내용들의 커리큘럼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입니다. 평소에 얼마나 다양하게 인문학적 고민들을 지속적으로 해가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넓혀주기 위해서라도 이분의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 읽고 아는척도 좀하고 지성인 흉내도 좀 내야겠습니다. 그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효용이 아닐까 합니다.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이 목록에 이 책도 꼭 넣어둬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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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틀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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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경찰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담긴 진중한 이야기

 

   요코하마 히데요는 역시나 경찰소설에 강하다는 것이 다시한번 증명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사건의 전개를 위해서 경찰이라는 조직을 주요 무대로 하고는 있지만 비단 경찰이 아니어도 다양한 조직에 일반적으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설득력 있게 조직간의 대립, 조직내 한 구성원으로써의 개인의 의무와 입장, 그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갈등상황 등을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조직의 이해관계, 개개인의 욕망과 입장차에서 오는 갈등, 조직에 대한 충성과 개인 또는 가정 사이에서 겪는 고뇌 등을 이 만큼 적절하고 절묘한 배합비율로 섞어 줄수가 있나 싶을 만큼 훌륭합니다. 이런 류의 갈등을 잘 묘사하는 작품은 사실 상당히 많고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조금은 더 섬세하달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고 할지... 비유하자면 마치 장인이 내린 커피를 마셨을 때의 느낌과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맛있는 커피와 별반 차이는 없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더욱 맛있는 커피맛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잘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은 여러 등장 인물들의 속사정을 이야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각각 서로 다른 조직에서 각각의 목적달성을 위해, 또는 조직의 일방적인 지시에 반하는 소극적인 반항을 위해 행동하는 캐릭터들의 속사정 말입니다. 그리하여 당신도 이런건 아닙니까? 라고 묻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당신이라면 이런 조직 상황속에서 어떻게 행동하시렵니까? 하고 묻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 있으면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지고 루즈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하나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존재하고(이 작품에서는 역시 '사라진 이틀'이 되겠습니다.) 그 의문을 둘러싼 각 조직의 이해관계가 뒤엉키는 구조를 만들어갑니다. 이런 구조속에서 갈등을 고조시키며 전체 스토리를 탄력있게 가져가는 효과를 얻습니다. 64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언론과 경찰의 입장차를 이용한 기자회견 장면 등이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더불어 검찰과의 오묘한 역학관계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각 조직에 속해 있는 주요 인물들의 작용과 반작용, 갈등과 연민 등이 전체 이야기의 중요한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2. 진실을 파헤치는, 그러나 진실에 관심없는 자들의 각축전...

 

   이 작품은 총 여섯명의 서로 다른 조직과 직업군에 속한 인물들의 시점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감춰진 의문을 찾아 나가는데 있어 독자들에게 입체적인 시각을 제공하기에 매우 유용합니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여러명의 참여자가 원탁에 둘러앉아 한사람씩 증언을 하는 듯한 형식입니다. 하나의 대상을 놓고 각자의 시각에서 보이는데로 묘사하는 내용을 모으고 융합하면 입체적인 형상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증언이 보태질 때마다 실체에 가까와 가는데 다음 증언자가 앞의 증언자의 증언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다른 증언을 해버리면 듣는 사람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혼란을 거듭하며 의문이 증폭되기도 하고 일부는 풀리기도 하며 점점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죠. 

 

   예를들면 이런 방식은 가쿠타 미츠요의 '공중정원' 같은 작품에서 전형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중정원'은 물론 한 가족에 얽힌 이야기로 한정되지만 각 구성원의 시각이 순차적으로 드러나며 화자의 변경에 따라 몰랐던 진실에 다가가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결국 드러나는 진실이 무엇이냐? 일것입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작품속에서 사라진 이틀에 대한 진실에는 정작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들 중 누구도 사라진 이틀의 진짜 진실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입장과 이유에 따라 진실을 캐내거나 애써 덮어두려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캐내는 쪽도, 덮어두려는 쪽도 진실이 무엇이냐는 중요치 않더라는 것입니다. 진실이 무엇이냐 보다는 그 진실을 어떻게 이용해서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이 유리하게 만드느냐에 목적이 있는 것이죠. 때로는 조직의 이익에 반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원하는 인물도 존재합니다.

 

   각각 조직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추기 위해서 또는 각색하기 위해서 알아내려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누가 진실에 먼저 다가가 그것을 유리하게 이용하는가의 싸움입니다.

 

 

#3. 당신에게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조직간의 이해관계와 갈등과는 상관없이 이 작품의 전반에 깔려있는 또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당신에게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살아가야할 이유가 되는 대상이 있느냐 입니다. 쉽게는 가족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이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경우는 원치 않는 수치나 굴욕도 참아내게 됩니다. 하기 싫어도 그 사람을 위해서 묵묵히 해내게 됩니다. 버팀목이 될 만한 가족이나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카지가 목숨을 버리려다 사는 이유도 바로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인생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고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성공한 검사 하세는 정작 지키고 싶은 사람이 없어 빚좋은 개살구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사세는 불편한 소파에서 몸을 뒤척였다. 방 두 칸에 취사공간이 있는 관사에서 사세가 사용하는 공간은 아주 좁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산다. 그런 당연한 사실이 서글펐다. ..(중략).. 수마가 덮쳐왔다. 알 수 없었다. 나 자신은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카지 소이치로는." p120~121

 

   직장인 검찰에 몸담은 상태에서의 그는 법정에서 피의자에게 준엄하게 다스릴 것을 요구하는 권위있는 모습으로 역할을 수행하지만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저 외로운 존재일 뿐입니다. 술로 세월을 털어보내는 존재일 뿐인 것입니다.

 

   문제의 '사라진 이틀'을 만들어낸 존재인 카지는 독특한 이유로 51세까지만 살기로 결심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이 책의 극단적인 말미에나 등장합니다. 그리고 저는 내내 의문점이었던 그 이유가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소설의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이 대목에서 발생합니다. 그토록 많이 이들과 조직이 안달이 나서 캐내던 그 사라진 이틀의 진실이 사실은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누구나 공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차이에서 발생하는 부분도 있고, 개개인의 관심사의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결국에는 이런 결말에 감동하기에는 마지막까지 벌려놓은 것이 너무 과했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에서 의문해소 또는 반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나 등장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그러거나 말거나 이긴 했지만 반전이라면 반전인 그 결말, 즉 사라진 이틀의 진실은 끝까지 읽어온 흐름에서 따져보면 맥빠지는 결착이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린다면 바로 이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너무 몰입해서 읽어내려간 이 작품은 결말에서 개인적인 실망스러움이 일부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평받아 마땅한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은 후에 머리속을 계속 맴도는 문장이 있습니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수치를 겪어도 감내할만큼, 당신에게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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