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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이틀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 들녘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1. 경찰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담긴 진중한 이야기
요코하마 히데요는 역시나 경찰소설에 강하다는 것이 다시한번 증명되는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사건의 전개를 위해서 경찰이라는 조직을 주요 무대로 하고는 있지만 비단 경찰이 아니어도 다양한 조직에 일반적으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설득력 있게 조직간의 대립, 조직내 한 구성원으로써의 개인의 의무와 입장, 그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갈등상황 등을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조직의 이해관계, 개개인의 욕망과 입장차에서 오는 갈등, 조직에 대한 충성과 개인 또는 가정 사이에서 겪는 고뇌 등을 이 만큼 적절하고 절묘한 배합비율로 섞어 줄수가 있나 싶을 만큼 훌륭합니다. 이런 류의 갈등을 잘 묘사하는 작품은 사실 상당히 많고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조금은 더 섬세하달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고 할지... 비유하자면 마치 장인이 내린 커피를 마셨을 때의 느낌과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맛있는 커피와 별반 차이는 없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더욱 맛있는 커피맛의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잘 따지고 보면 이 작품은 여러 등장 인물들의 속사정을 이야기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각각 서로 다른 조직에서 각각의 목적달성을 위해, 또는 조직의 일방적인 지시에 반하는 소극적인 반항을 위해 행동하는 캐릭터들의 속사정 말입니다. 그리하여 당신도 이런건 아닙니까? 라고 묻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당신이라면 이런 조직 상황속에서 어떻게 행동하시렵니까? 하고 묻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 있으면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지고 루즈해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이야기를 끌고 가는 하나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존재하고(이 작품에서는 역시 '사라진 이틀'이 되겠습니다.) 그 의문을 둘러싼 각 조직의 이해관계가 뒤엉키는 구조를 만들어갑니다. 이런 구조속에서 갈등을 고조시키며 전체 스토리를 탄력있게 가져가는 효과를 얻습니다. 64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언론과 경찰의 입장차를 이용한 기자회견 장면 등이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이 작품에서는 더불어 검찰과의 오묘한 역학관계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각 조직에 속해 있는 주요 인물들의 작용과 반작용, 갈등과 연민 등이 전체 이야기의 중요한 기둥이 되고 있습니다.
#2. 진실을 파헤치는, 그러나 진실에 관심없는 자들의 각축전...
이 작품은 총 여섯명의 서로 다른 조직과 직업군에 속한 인물들의 시점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감춰진 의문을 찾아 나가는데 있어 독자들에게 입체적인 시각을 제공하기에 매우 유용합니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여러명의 참여자가 원탁에 둘러앉아 한사람씩 증언을 하는 듯한 형식입니다. 하나의 대상을 놓고 각자의 시각에서 보이는데로 묘사하는 내용을 모으고 융합하면 입체적인 형상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증언이 보태질 때마다 실체에 가까와 가는데 다음 증언자가 앞의 증언자의 증언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다른 증언을 해버리면 듣는 사람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혼란을 거듭하며 의문이 증폭되기도 하고 일부는 풀리기도 하며 점점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죠.
예를들면 이런 방식은 가쿠타 미츠요의 '공중정원' 같은 작품에서 전형적으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공중정원'은 물론 한 가족에 얽힌 이야기로 한정되지만 각 구성원의 시각이 순차적으로 드러나며 화자의 변경에 따라 몰랐던 진실에 다가가는 방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결국 드러나는 진실이 무엇이냐? 일것입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작품속에서 사라진 이틀에 대한 진실에는 정작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들 중 누구도 사라진 이틀의 진짜 진실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입장과 이유에 따라 진실을 캐내거나 애써 덮어두려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캐내는 쪽도, 덮어두려는 쪽도 진실이 무엇이냐는 중요치 않더라는 것입니다. 진실이 무엇이냐 보다는 그 진실을 어떻게 이용해서 나와 내가 속한 조직이 유리하게 만드느냐에 목적이 있는 것이죠. 때로는 조직의 이익에 반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원하는 인물도 존재합니다.
각각 조직의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추기 위해서 또는 각색하기 위해서 알아내려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누가 진실에 먼저 다가가 그것을 유리하게 이용하는가의 싸움입니다.
#3. 당신에게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조직간의 이해관계와 갈등과는 상관없이 이 작품의 전반에 깔려있는 또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당신에게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 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살아가야할 이유가 되는 대상이 있느냐 입니다. 쉽게는 가족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이거나 존경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경우는 원치 않는 수치나 굴욕도 참아내게 됩니다. 하기 싫어도 그 사람을 위해서 묵묵히 해내게 됩니다. 버팀목이 될 만한 가족이나 연결고리가 전혀 없어 보이는 카지가 목숨을 버리려다 사는 이유도 바로 지키고 싶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인생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고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성공한 검사 하세는 정작 지키고 싶은 사람이 없어 빚좋은 개살구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사세는 불편한 소파에서 몸을 뒤척였다. 방 두 칸에 취사공간이 있는 관사에서 사세가 사용하는 공간은 아주 좁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산다. 그런 당연한 사실이 서글펐다. ..(중략).. 수마가 덮쳐왔다. 알 수 없었다. 나 자신은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가, 그리고 카지 소이치로는." p120~121
직장인 검찰에 몸담은 상태에서의 그는 법정에서 피의자에게 준엄하게 다스릴 것을 요구하는 권위있는 모습으로 역할을 수행하지만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올 때면 그저 외로운 존재일 뿐입니다. 술로 세월을 털어보내는 존재일 뿐인 것입니다.
문제의 '사라진 이틀'을 만들어낸 존재인 카지는 독특한 이유로 51세까지만 살기로 결심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이 책의 극단적인 말미에나 등장합니다. 그리고 저는 내내 의문점이었던 그 이유가 너무나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소설의 결정적인 문제는 바로 이 대목에서 발생합니다. 그토록 많이 이들과 조직이 안달이 나서 캐내던 그 사라진 이틀의 진실이 사실은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누구나 공감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차이에서 발생하는 부분도 있고, 개개인의 관심사의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결국에는 이런 결말에 감동하기에는 마지막까지 벌려놓은 것이 너무 과했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에서 의문해소 또는 반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이야기의 전개나 등장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등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그러거나 말거나 이긴 했지만 반전이라면 반전인 그 결말, 즉 사라진 이틀의 진실은 끝까지 읽어온 흐름에서 따져보면 맥빠지는 결착이었습니다. 호불호가 갈린다면 바로 이지점이 아닐까 합니다.
너무 몰입해서 읽어내려간 이 작품은 결말에서 개인적인 실망스러움이 일부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평받아 마땅한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은 후에 머리속을 계속 맴도는 문장이 있습니다.
내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수치를 겪어도 감내할만큼, 당신에게는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