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인
쓰카사키 시로 지음, 고재운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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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빌리 밀리건에 주목하라.

 

   이 소설을 굳이 분류하자면 빌리 밀리건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리 밀리건은 1955년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다중인격자입니다. 자그마치 24개의 완전히 분산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죠. 그러니까 이 양반은 한지붕 24 가족인 셈입니다. 이력을 보니 역시나 어린시절 양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받았군요. 그런데 성적 학대를 받기 이전에 이미 인격 분리는 시작되었으니 성적학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없네요.

 

   빌리 밀리건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역시나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잘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강간 및 무장강도로 체포된 그를 대상으로 연기를 펼친다고 생각했던 의사와 수사관들이 갖가지 검사와 취조를 실시했는데 오히려 연기로는 불가능한 각종 능력들을 발휘하면서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격이 바뀌면 갑자기 아랍어와 아프리카어를 유창하게 하고, 다른 인격이 되면 수학, 물리학, 의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잘 하는 식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해가 안되는게 미국에서 자란 사람이 인격이 바뀐다고 갑자기 아랍어를 한다는게 말이 되는건지.... 참... 검사한 사람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이 됩니다.

 

   아마도 어지간한 정신분열 관련 스토리는 빌리 밀리건의 이야기보다 더 허구적이고 드라마틱하지 못할 듯 합니다. 쓰카사키 시로의 [무명인]을 읽다보면 정말 빌리 밀리건 이야기보다는 훨씬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받아들일 만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달랑 한지붕 두가족 이야기거든요. 게다가 그것조차 영구거주도 아니고 임시 거주의 형태입니다.   

  

 

#2. 과학 미스터리는 과연 사랑을 받을 것인가?

 

   [무명인]은 전체 스토리 전개로 보면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소재는 과학입니다. 뇌과학이라고 해야할지 화학 또는 유전자학이라고 해야할지 애매합니다만 과학적 상상을 토대로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덧붙여 만들어진 잘 짜여진 소설입니다. 게다가 장르소설의 미덕인 가독성이 나무랄데 없이 좋습니다. 일단은 이 가독성 만으로도 절반 이상은 먹고 들어갑니다. 이야기를 흡입력있게 끌고 갈 수만 있다면 미스터리는 일단 합격점을 받을 만 한 것이니까요. 뭔가 주인공이 미궁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건의 전말이 어서 밝혀지기를 바란다면 '재미있게' 읽었다고 할 수 있을텐데 [무명인]은 그런 관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문제는 과학적 상상이라는 핵심 소재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고 좋아합니다. 사건이 발생하는 계기는 다소 생뚱 맞을 지언정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설정에는 상당히 흥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초반의 밑밥을 까는 부분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이건 조력자건 다들 이게 뭔 일인지도 모르고 흘러흘러 가는 지점이 이 소설의 반환점을 훌쩍 넘어버리니 궁금해서 읽기는 하는데 너무 미궁속에 허우적 거린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뭐 대단한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질질 끄는건가?' 하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어버렸으니 말입니다.

 

   또 하나 아쉬운 부분은 마지막 결론부였습니다. 전말에 대한 설명과 마무리는 관심이 많은 제 입장에서도 약간은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으니 말입니다. 분명히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뭐지?' 하는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김빠지는 느낌은 뭔지 모르겠습니다. 끝까지 읽고난 느낌은 '과연 이런 류의 과학 미스터리를 우리나라의 독자들이 좋아라하며 읽을 것이며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였습니다. 호불호가 나뉘는데 쉽게 읽기엔 주제가 좀 전문적이라는 생각입니다.  

 

 

 #3. 불노불사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과 자신의 실수를 덮으려는 인간의 이기적인 하모니

 

   [무명인]에서 끝까지 소설을 짜임새 있고 흥미진진하게 끌고 갈 수 있었던 요소는 주인공을 위협에 빠트리는 미지의 세력이 복합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불노불사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주인공의 연구 결과물을 원하는 한 세력은 어떻게든 결과물을 얻어내는 동시에 손해를 일으킬 화근을 없애려 노력합니다. 한편 이 이야기 전체의 발단이 되는 사건을 일으키는 또 한 인간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유지하고 파멸을 막기 위해 소극적으로 주인공을 감시합니다.

 

   참,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불노불사의 개념이 색달라서 좋았습니다. 내 한몸이 건강과 생명을 유지하여 불노불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정신을 건강한 새 몸으로 옮겨버린다는 개념이 신선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마치 불노불사가 가능할 것 처럼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진시황 시대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상황이지 현대에 와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는 합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누구 몸을 가져와서 내 정신을 심는단 말입니까? 이 상황을 상상해보니 끔찍한 불법과 범죄의 향기가 품깁니다.

 

   개인적으론 제 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찾아가서까지 불노불사할 만큼 아름다운 세상이고 삶인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하이렌더 류의 영화, 드라마에서도 잘 나타나지만 인간이 위대하고 행복한 것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유한성에서 기인합니다. 떠나야할 때를 모르고 악착같이 남의 몸이라도 써서 더 살려고 기를 쓰는 인간이 인간 고유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아쉬운 정도가 가장 적당한 정도입니다.

 

   [무명인]을 핑계로 쓸데없는 이야기를 잘도 늘어놓았습니다. 한 인간의 몸에 유입된 또다른 인격에서 출발한 미스터리를 긴장감 넘치게 잘 끌고 나간 이 소설은 게놈 프로젝트 같은 뇌, 또는 인간 유전자, DNA 등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소설입니다. 물론 딱히 지식이 없고 평소에 관심이 없었다 해도 미스터리적 요소를 즐겁게 즐기기에 나쁘지 않은 소설입니다. 과학과 미스터리, 음모, 인간의 이기적인 습성 등이 잘 조화된 신선한 소설입니다만 기본적인 소재는 우리에게 이미 상당히 익숙해져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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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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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슬 안살수가 없는 시리즈가 되어가는 카트 멘쉬크 일러스트레이션 아트북

 

   [이상한 도서관]은  [잠], [빵가게를 습격하다] 이후 세번째 카트 멘쉬크와의 콜라보 일러스트레이션 아트북입니다. [잠]은 짙은 군청색 베이스의 일러스트레이션이었고, [빵가게를 습격하다]는 짙은 초록색 색감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검정색 바탕입니다. 뭔가 베이스 색상의 선택이 묘하다는 생각이지만 이 작품 내용을 생각할 때는 최적의 색감 선택이라고 여겨집니다. 보아하니 여전히 일러스트는 매력적이고 감각적입니다. 게다가 내용과도 매치가 잘 됩니다.  

 

 

#2. 이거이거 호갱님 만들기 돈지랄이 아닐지...

 

   이 일러스트 시리즈를 놓고 유명세를 이용한 울겨먹기라고 매도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음... 매도할 만 하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아닌게 아니라 울겨먹기가 맞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도서관] 이라고 제목을 잡았지만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미 예전에 단편집의 한 작품으로 만난 적이 있는 작품입니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기나긴 이름으로 출간된 단편집에도 "도서관 기담"으로 수록되어 있고, 그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에도 "도서관에서 있었던 기이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이미 소개되었던 작품입니다. 귀찮아서 그렇지 찾아보면 또 얼마나 많은 단편집에 끼워 들어가 있을지 모를일입니다.

 

   단편걸작선의 작품을 찾아 잠시 읽어보니 번역상의 차이가 꽤나 크기는 합니다. 이번 [이상한 도서관]쪽이 훨씬 자연스럽기도 하고 읽기에 조금 가벼워진 느낌입니다. 게다가 적절한 일러스트와 넉넉한 여백을 자랑하는 편집에 힘입은 이번 작품은 가독성은 물론 독자입장에서의 읽는 즐거움에도 기존 썰렁한 단편과는 비교하기 힘든 상당한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선택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책사기를 즐기는 저로써는 절판된 옛 단편집에 수록된 기존 작품과 화려한 일러스트레이션을 덧붙인 이번 작품을 동시에 소장하는 즐거움이 상당히 큽니다.

 

 

 

#3. 의외로 묵직하고 애매모호한 이야기

 

   [이상한 도서관]의 내용 자체로 놓고 보면 상당히 기이한 이야기가 분명합니다. 주인공 남자아이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뭔가 알수 없는 착취구조를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에게 딱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어~~어~~'하는 사이에 목숨까지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짧은 이야기지만 기묘한 내용과 밑도 끝도 없는 전개가 황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의외로 전형적입니다. 사실 좀더 파격적인 마무리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단편은 하루키의 초기작에서 무척이나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정체성을 찾지 못한 남성과 뜬금없는 양사나이, 그리고 여지없이 등장하는 "상실"의 매타포가 이어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굳이 복잡하게 의미를 해석해서 '이런 의미일 것이다.'라고 그럴듯하게 감상을 늘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만큼 긴 이야기도 아니고, 첨 읽는 참신한 내용도 아니고 말이죠. 이 책은 그냥... 예뻐서 사주는 그런 책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볼 만한 건덕지가 꽤나 있는 그런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카트 멘쉬크가 언제까지 하루키센세의 단편을 가지고 일러스트 작업을 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시리즈가 나와주어야 여지껏 모아온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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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는 영혼 - 내면의 자유를 위한 놓아 보내기 연습
마이클 싱어 지음, 이균형 옮김, 성해영 감수 / 라이팅하우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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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드레이지' 거리의 무법자들이여, 분노를 조절하라

  

 

 

 

 

 

   얼마전에 MBC 다큐스페셜 "로드레이지 도로 위의 분노" 편을 보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차만 타면 난폭해지고 공격성이 나타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일부러 차에 몽둥이나 골프채, 가스총까지 소지하고 다니는 적극적인 운전자들이 많더군요. 타인이 거슬리게 운전하면 한시간씩 쫒아가서 멱살잡이를 하며 기어코 사과를 받아내고 만다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참으로 성실하고도 정열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성질을 내는구나. 정성이 참 지랄이다.'

 

   여러가지 배경이 있지만 다 큰 어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서와 감정이 전혀 컨트롤이 안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그 이면에 억눌린 분노도 있고 막연한 억울함도 있고 피해의식도 있겠습니다만 결국은 자기 스스로 분노조절이 전혀 안되는 것이 혼자만의 공간인 자동차 안에서 나타나는 것이죠.

 

   마이클 A.싱어의 [상처받지 않는 영혼]은 이런 우리 내면의 정돈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원인을 따져보고 벗어나기 위한 단계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제목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상당히 영적입니다. 동,서양적 이념과 특성이 적절히 뒤섞여 있고 다양한 종교적 시각이 혼재해 있습니다. 혼재라는 표현은 부정적이니 정돈되어 있다라고 표현하는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에서도 위와 같은 교통상황에서 우리의 반응에 대한 한가지 예가 나옵니다.

 

"예컨데 신호등 앞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빨리 가라고 경적을 울린다. 이런 작은 일들이 일어날 때도 당신은 속에서 에너지가 움직이는 것을 감지한다. 그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어깨에 힘을 빼고 가슴 주위를 이완하라. 에너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저 힘을 빼고 놓아 보내라. 약이 오르는 느낌을 놓아 보내고 뒤로 떨어져 나오는 이 놀이를 즐겨라." p116

 

   만약 위 다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이 책을 읽었다면 한시간 두시간 정성껏 화를 내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때리거나 맞거나 사고를 내지도 않고 기분 잡칠 일도 없이 그저 힘을 빼고 그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예와 더불어 [상처받지 않는 영혼]은 때때로 방치되고 있는 우리의 내면 문제에 대해 실용적으로, 일상적으로 접근하고 도움을 주기에 매우 유익한 책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책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저런 것을 하고 싶은데 살기에 바빠서 할 시간이 없다고들 합니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의 가르침이 멋진 점은, 그것이 시간과는 상관없는,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나날의 생활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가갈 것인지를 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나날이 경험하는 기쁨과 사랑과 만족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이 능력은 모든 사람이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책임성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 주니까요."p10~11

 

 

 

#2. 유체이탈화법은 진정 자기자신을 위해 필요한 스킬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유체이탈화법'은 자기가 잘못한 일이거나, 혹은 본인이 속한 조직에서 벌어진 잘못된 일을 마치 본인은 전혀 몰랐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인 양 말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데 매우 일상적으로 취하는 태도입니다. 재미있게도 이런 유체이탈화법의 기본 태도는 정작 자기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관찰하는데 사용하면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가 아닌 것, 내 뒤에 또다른 내가 유체이탈한 듯이 내가 하는 행동과 생각과 말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이를테면 지금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제 한발짝 뒤에서 또다른 내가 관찰하는 것입니다. '아, 나는 지금 이 책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구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피곤함을 무릅쓰고 쓰고 있구나.' 뭐 이런 식으로 관찰하는 것이죠. 그리고 화를 낼 때, 엉뚱한 행동을 할 때 마다 '아, 내가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반응하는 구나'하고 스스로를 이해하고 이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또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하고 인지를 하는 것이지요. 이 방법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고 바라보는데 매우 유익합니다.

 

   또 다른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상처투성이인 영혼에서 [상처받지 않는 영혼]으로 나아가는 첫걸음 이라고 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은 다양한 성격유형 분석 툴 중에서도 매우 영적인 특성이 있는 '에니어그램'에서 각각 개인의 기질을 넘어 성숙하는 첫단계라고 말하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와 매우 유사합니다. 에니어그램에서도 한걸음 뒤에서 자기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자기 기질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이해하고 극복하고 성숙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해주는데 이 책에서도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마음의 소리를 들으라고 말합니다.

 

 

#3. 삐그덕 거리는 육체를 돌보는 것처럼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것, 행복한 인생의 지름길 

 

   육체의 건강을 위해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하고 나쁜 음식 섭취를 피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정신을 위해서도 유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치더라도 아직까지도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무언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상당히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언젠가부터 서양에서 동양적인 정신세계를 높이 평가하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모든 인간은 원래 이상한 것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에서는 우리의 잠든 의식을 일깨우고, 마음에 쌓이는 에너지를 경험하며, 자신의 마음에 상태와 고통을 직면함은 물론 한계와 벽을 허물고 그 너머로 가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까지 제시합니다. 찬찬히 읽으며 저자의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앞으로 소중한 나의 건강한 자아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로드맵이 그려집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이나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면의 실타레를 풀어나갈 길이 보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기자신을 잘 살펴보고 에너지의 흐름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걱정하고 노심초사하는 태도에서 부드럽게 빠져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저 힘을 빼고 이완하는 것 말이죠. 그러면 저절로 나의 참 자아는 마음의 뒤에 슬그머니 떨어져 남게 됩니다. 그러니까 걱정과 염려가 가득한 마음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그 마음을 인식하는 주체인 것이지요. 이 것을 이해하면 나는 나의 생각을 지켜볼 수 있게 되고 마침내는 그 안에 고요히 앉아서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실제적인 삶을 지혜롭게 살아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의 실질적인 장면과 선택 가운데 중도의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다고 말합니다. 역시나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것은 어느 대목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되나 봅니다.

 

   지금도 수많은 경쟁에 내몰리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현대인들이 이제는 좀더 적극적으로 내면을 이해하고 내면의 자유를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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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수사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1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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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접하는 사사키 조의 경찰소설, 진짜 경찰소설 맞네 맞아!

 

   사사키 조의 소설은 처음입니다. 이웃 카르페디엠님이 추천해주셨습니다. 한번씩 지나가는 말로 훅 던지고 가시는데 궁금해서 안 읽어볼 수가 없습니다.(아니 사실은 안 살 수가 없습니다..라고 해야하나... 훗...참, 말나온김에 무책임하게 'XX가 재밌더라'라고 슥 던지는 이웃님들... 삼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사게 된다는...) 여튼 경찰소설이라고 해서 반갑기도 하고, 내가 왜 자꾸 경찰소설을 읽게 된거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경찰소설을 선호한다고 하기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저는 뭐 평화주의자니까는...

 

   사사키 조의 경찰소설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는데 이 작품 제복수사만 딱 놓고 본다면 참으로 특색있는 스타일입니다. 일단 요코야마 히데오나 혼다 테츠야 처럼 경찰조직 내부나 조직 안팍의 갈등과 대립에 즌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경찰 1인의 활약을 그린 소설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이 시골 주재소에 홀로 부임해서 동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경찰, 아니 경관이 달랑 주인공 하나뿐인데 갈등이고 뭐고 할 것도 없지요. 저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에 '경시청을 배경으로 쓸걸 후회했다'라는 글을 올렸던 것이 역자 후기에 실려있는데 이 작품을 읽고 보니 이해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인구 6000명의 마을에 사건이라고 해봐야 뭐 얼마나 발생하겠습니까? 애초에 설정 자체가 너무 협소한 것이죠. '6000명 중에 대다수가 살인마다!!!' 이래 버리면 현실성이 떨어지니 말입니다. 작가가 리얼리티를 추구했다고 하니 참으로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작품은 훌륭합니다. 설정과 배경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현실성있게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 내었으니 말입니다. 누구나 경시청 살인수사과의 이야기만 쓰면 경찰소설이 식상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2. '전원일기'로 시작했다가 '이끼'로 끝나는 무서운 지역사회 이야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범죄율 0인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그야말로 주재경관이 등장하는 '전원일기'라 해도 될 정도로 분쟁이 일어나도 동네사람들끼리 다 알고 지내는 처지에 좋은게 좋은 것으로 적당히 조율이 가능한 정도의 분위기입니다. 사실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주민이 꽤나 되니  다 알고 지내는 것도 무리일 수 있지만 이런 마을은 통상 몇몇 유력자들에 의해 운영되기 마련이므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작은 로컬 사회라고 보는 것이 적당합니다.

 

   작고 결속력이 강할 수록 외부에 배타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마을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원래부터 마을 정착민이 아닌 별장족이나 변두리에 머무르는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이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사실 이런거라도 있어야 사건이 성립되고 이야기가 전개되다보니...) 이 와중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깨진 유리창 이론입니다. 마을에 전과가 있는 목수가 등장하자 마을 유력자들이 하는 주장입니다. 

 

"오시로라는 남자가 오고 나서 이 마을에 평지풍파가 끊이질 않더군요. 경관님도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고 아시죠? 마을이 황폐해지는 건 처음 유리창 한 장부터입니다." p193

 

   "깨진 유리창 이론"은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발표한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이라고 합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된다는 내용의 이론인데, 폐쇄적인 마을에서 외부인을 배척하기에 딱 좋은 이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깨진 유리창 하나에 모든 문제의 원인을 투영시켜버리는 못쓸 이론이라고 생각됩니다.

 

   늘 그렇지만 문제는 항상 내부에 있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마을을 특정 유력자가 오랫동안 좌지우지 하다보면 특정인의 필요에 따라 기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하고 그것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과 부정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이 마을도 예외가 아닌데 결국 사건은 마을 깊숙히 숨겨둔 비밀에 의해 생겨나고 뭍혀집니다. 우리의 15년 강력계 경력의 눈치백단 주인공 주재경관 "카와쿠보"는 조심스럽게 이 문제를 파헤치고 우여곡절 끝에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니 섬득했던 영화 '이끼'가 떠올랐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해보이는 조그만 마을(물론 이끼에서는 멀쩡해보이지도 않기는 합니다만...)에 어찌 그리도 비밀이 많은지 말입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특정인을 중심으로 종교집단 같은 영향력이 형성되고 비정상적인 인간관계가 정당화되는 기현상이 발생하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기나 저기나 요기나 조기나 인간 사는 곳엔 늘 이런 모양새가 나타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3. 왜 제복경관을 주인공으로... 수사 못해 참으로 답답했나보다.

 

   이 작품의 전반에 제복경관이라 수사권이 없다는 이야기가 여러번 등장합니다.

 

"제복 경관이니까요. 전 수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전 주재 경관으로서 이 지역의 자질구레한 정보까지 조금이라도 많이 머리에 담아 두려는 것 뿐입니다."p110

 

"그 때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주재 경관님. 잠시." 카와쿠보가 다가가자, 그가 말했다. "저희 선생님 차가 나가야 하는데, 교통정리를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p129

 

"[어이] 쿠도의 어조가 급변했다. [제복 경관이 지금 내 수사에 대해 비난하는 거야?]"p206

 

   이런 류의 표현이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동네 주재 제복경관은 수사권이 없어 수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죠. 위 언급한 것처럼 교통정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15년간 강력계에 근무했던 주인공 카와쿠보는 보는 눈이 있으니 제복경관 역할에 만족할리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니까요. 그래서 마을에 숨겨진 문제들을 슬금슬금 파헤칩니다. 그리고 직접 수사는 할 수 없으니 슬쩍 돌려서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그래서 제목이 "제복수사"인가 봅니다.

 

   이건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지겹도록 나오는 은퇴한 특수부대원 설정이나 사건에 연루되 해직된 특수조직의 요원 설정과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실력이 출중한데 한직이나 평범한 곳에 조용히 있다가 어쩔 수 없이 사건에 휘말리는 설정말이죠. 이런 설정으로 경찰 조직의 경직된 인력관리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여튼 작가가 이런 한정된 설정을 해두고 사건을 직접 수사도 못하고 지역사회라 주재경관이 함부러 나서지도 못하는 상황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과물이 훌륭하니 좋은 작가라고 일단 생각하고 다른 작품을 읽어보기로(사 모아 보기로) 합니다.

 

   네개의 에피소드가 묶여있는 이 작품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주제로 이어져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상당히 현실적으로 처절할 정도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 놀랍습니다. 카와쿠보 경관은 다음 작품 폭설권에도 등장하니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다음 작품을 기대해봅니다. 왜 '사사키 조'를 추천해 주셨는지 한권 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되고도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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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미스터리의 미덕은 모두 담긴 잘 만든 소설...

   일단 다작 '게이고'옹은 독자가 읽는 것보다 더 빨리 작품을 쓰는데 작품이 좋으니 참으로 뭐라하기 어려운 대단한 작가임은 분명합니다. 책 읽는 속도가 드럽게 느린 저같은 사람이야 걸러걸러 어쩌다 한권씩이나 읽게 되지만 남들이 욕하는 작품일지라도 저는 뭐 재미있었으니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임팩트 넘치는 프롤로그의 두 이야기, 첫번째는 '응? 뭐지?' 싶을 정도로 훅 들어오는 독한 이야기에다가 다음으로 '이건 또 뭘까?' 싶을 만큼 잔잔한 두번째 이야기, 이런 상반된 프롤로그가 일단 흥미를 자극했습니다. 이후에 펼쳐지는 본 사건까지 이야기의 전개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했고, 결말이 궁금해 애타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정확한 입장과 의도를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교차등장으로 이어지는 미궁과 같은 전개 방식도 혼란속에 읽는 즐거움을 더 했습니다. 흥미로운 소재(이 부분은 좀 애매하도다...나는 꽃에 관심이 없어효...)로 대를 거슬러 과거까지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구조와 마지막 모든 의문이 풀릴 때의 짜릿함까지 더하면 참으로 미스터리의 미덕은 모두 담겨있다고 해야 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2. 미궁속에서 함께 헤매게 만드는 전개방식의 힘..

    [몽환화]는 전체의 히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는 인물과 전혀 맥락을 모르고 비밀을 풀어가는 인물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당연히 이야기의 전개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이야기의 진상을 찾아가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소타와 리노 콤비는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딱히 수사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풀어나갑니다. 저같은 경우는 특히 소타에게 이입이 잘 되었는데, 독자입장에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멀찍하게 떨어서 이야기를 관조하는 느낌이 되면 그리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어렵게 되는걸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은 전체적인 설정도 묘사도 캐릭터 창조도 잘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끝까지 읽고 나서 생각해보자면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은 넓은 그물안에서 뭔지도 모르고 헤매는 물고기 같은 느낌이었다면 마지막에는 건져져서 배위에서 선장에게 그물망 전체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느낌이랄까? 그런 식의 전개의 마무리입니다. 뭔가 꽃이랑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꽃 가지고 딱히 거대한 음모를 꾸밀만한 건덕지가 있나? 하는 생각 때문에 예측이 안되어서 더욱 궁금해하며 읽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작가의 안배를 생각할 때 작가의 작품들이 가독성이 넘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습니다.  
 
 

#3. 지극히 일본적인, 그러나 전인류적인 교훈을 담은 소설... 그러나 그러나...

   [몽환화]에는 이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 나옵니다. 대를 이은 "결자해지"의 삶 같은 개념 말입니다. 매듭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하는데 당대에서 풀지못하면 그아들이, 그도 안되면 그 아들의 아들이 대를 이어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일본에서는 가업을 이어 가계의 전통을 전승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조의 업, 실수도 대를 이어 빚을 진 심정으로 갚아나가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상당히 생소한 느낌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의 집안이 대대로 사회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분을 부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응당 해야할 일임을 몽환화에 얽힌 두 가족사를 통해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주인공의 전공과 진로선택 에피소드를 통해 일본의 윈자력 발전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부분과 신중한 사고 뒷처리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주의를 환기하고 결국은 누군가가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뿐 아니라 폐기물처리나 원전폐쇄등의 문제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부채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 사회파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회파 소설의 백미라느니 정통 사회파 소설이라느니 하는 수식은 붙이기 어렵겠습니다. 몽환화를 둘러싼 대를 이은 문제수습과 원자력 문제가 그렇게 착 달라붙지는 않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이 꼭 원자력관련 전공자일 필요는 이야기 전개 어디에도 없습니다. 딱히 그 지식을 활용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주인공이 원자력관련 지식을 활용해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었던 특정한 장면이라도 있었다연 훨씬 자연스럽고 명분도 있지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주인공의 전공이 원자력 공학이라는 설정만으로 전체 에피소드에 접붙여 원자력 문제를 환기시키기에는 생각할 수록 생뚱맞고 억지스러운 느낌이 남습니다. 스토리와 사회문제의 연결 자체가 아주 깔끔하게 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흔들리는 칼날에서도 지나치게 작가의 생각과 주장이 고스란히 감정적으로 드러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세련된 방식으로 연결하지만 따져보면 별개로 노는 문제입니다.
   또한 대를 이은 죄의 보은 개념은 지극히 일본적인 것인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인 제 손에 와서는 뭔가 받아들이기 어색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게 했습니다. 사회에 지은죄를 대를 이어 갚는다? 제 기억에 그런 생각을 하고 주장을 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작가가 이 작품에서 담은 이러한 숭고한 주장이 원자력 사고 이후 일본에 경종을 울렸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를 침략한 과거의 역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는 작금의 일본의 행태를 생각하면 선대의 빛을 받아들이고 이어가는 용기는 자국내에서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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