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미스터리의 미덕은 모두 담긴 잘 만든 소설...

   일단 다작 '게이고'옹은 독자가 읽는 것보다 더 빨리 작품을 쓰는데 작품이 좋으니 참으로 뭐라하기 어려운 대단한 작가임은 분명합니다. 책 읽는 속도가 드럽게 느린 저같은 사람이야 걸러걸러 어쩌다 한권씩이나 읽게 되지만 남들이 욕하는 작품일지라도 저는 뭐 재미있었으니 이번 작품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임팩트 넘치는 프롤로그의 두 이야기, 첫번째는 '응? 뭐지?' 싶을 정도로 훅 들어오는 독한 이야기에다가 다음으로 '이건 또 뭘까?' 싶을 만큼 잔잔한 두번째 이야기, 이런 상반된 프롤로그가 일단 흥미를 자극했습니다. 이후에 펼쳐지는 본 사건까지 이야기의 전개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했고, 결말이 궁금해 애타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정확한 입장과 의도를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교차등장으로 이어지는 미궁과 같은 전개 방식도 혼란속에 읽는 즐거움을 더 했습니다. 흥미로운 소재(이 부분은 좀 애매하도다...나는 꽃에 관심이 없어효...)로 대를 거슬러 과거까지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구조와 마지막 모든 의문이 풀릴 때의 짜릿함까지 더하면 참으로 미스터리의 미덕은 모두 담겨있다고 해야 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2. 미궁속에서 함께 헤매게 만드는 전개방식의 힘..

    [몽환화]는 전체의 히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는 인물과 전혀 맥락을 모르고 비밀을 풀어가는 인물들이 뒤엉켜 있습니다. 당연히 이야기의 전개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이야기의 진상을 찾아가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소타와 리노 콤비는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딱히 수사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를 풀어나갑니다. 저같은 경우는 특히 소타에게 이입이 잘 되었는데, 독자입장에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멀찍하게 떨어서 이야기를 관조하는 느낌이 되면 그리 흥미진진하게 읽기는 어렵게 되는걸 생각해보면 이번 작품은 전체적인 설정도 묘사도 캐릭터 창조도 잘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끝까지 읽고 나서 생각해보자면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은 넓은 그물안에서 뭔지도 모르고 헤매는 물고기 같은 느낌이었다면 마지막에는 건져져서 배위에서 선장에게 그물망 전체에 대해서 설명을 들은 느낌이랄까? 그런 식의 전개의 마무리입니다. 뭔가 꽃이랑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꽃 가지고 딱히 거대한 음모를 꾸밀만한 건덕지가 있나? 하는 생각 때문에 예측이 안되어서 더욱 궁금해하며 읽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작가의 안배를 생각할 때 작가의 작품들이 가독성이 넘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습니다.  
 
 

#3. 지극히 일본적인, 그러나 전인류적인 교훈을 담은 소설... 그러나 그러나...

   [몽환화]에는 이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이 나옵니다. 대를 이은 "결자해지"의 삶 같은 개념 말입니다. 매듭은 묶은 사람이 풀어야 하는데 당대에서 풀지못하면 그아들이, 그도 안되면 그 아들의 아들이 대를 이어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일본에서는 가업을 이어 가계의 전통을 전승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조의 업, 실수도 대를 이어 빚을 진 심정으로 갚아나가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상당히 생소한 느낌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의 집안이 대대로 사회의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분을 부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응당 해야할 일임을 몽환화에 얽힌 두 가족사를 통해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주인공의 전공과 진로선택 에피소드를 통해 일본의 윈자력 발전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부분과 신중한 사고 뒷처리의 필요성을 부각시켜 주의를 환기하고 결국은 누군가가 원자력을 이용한 발전뿐 아니라 폐기물처리나 원전폐쇄등의 문제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부채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 사회파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회파 소설의 백미라느니 정통 사회파 소설이라느니 하는 수식은 붙이기 어렵겠습니다. 몽환화를 둘러싼 대를 이은 문제수습과 원자력 문제가 그렇게 착 달라붙지는 않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이 꼭 원자력관련 전공자일 필요는 이야기 전개 어디에도 없습니다. 딱히 그 지식을 활용하는 장면도 없습니다. 주인공이 원자력관련 지식을 활용해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었던 특정한 장면이라도 있었다연 훨씬 자연스럽고 명분도 있지않았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주인공의 전공이 원자력 공학이라는 설정만으로 전체 에피소드에 접붙여 원자력 문제를 환기시키기에는 생각할 수록 생뚱맞고 억지스러운 느낌이 남습니다. 스토리와 사회문제의 연결 자체가 아주 깔끔하게 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흔들리는 칼날에서도 지나치게 작가의 생각과 주장이 고스란히 감정적으로 드러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상당히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물론 세련된 방식으로 연결하지만 따져보면 별개로 노는 문제입니다.
   또한 대를 이은 죄의 보은 개념은 지극히 일본적인 것인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인 제 손에 와서는 뭔가 받아들이기 어색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게 했습니다. 사회에 지은죄를 대를 이어 갚는다? 제 기억에 그런 생각을 하고 주장을 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전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작가가 이 작품에서 담은 이러한 숭고한 주장이 원자력 사고 이후 일본에 경종을 울렸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를 침략한 과거의 역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는 작금의 일본의 행태를 생각하면 선대의 빛을 받아들이고 이어가는 용기는 자국내에서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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