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여인 -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
정병태 외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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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주류 작가들의 등용문이자 한풀이의 장, 과학 및 액션 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


   이 책은 벌써 3회를 맞이하는 그 이름도 길고 긴 "과학 및 액션 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의 당선작 작품집에 해당합니다. 이 길고 긴 공모전이 왜 의미가 있는가 하면, 대한민국에서 드럽게 돈 안되고 인기도 없는 비인기 종목을 한대 아우르고 버무리고 집대성한 경연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국내 스포츠계의 봅슬레이, 스키점프, 스켈렉톤 모듬 대회 정도 되는 느낌이랄까요?


   주최한 단체가 국내 과학의 메카 대전의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입니다. 책 한권 읽으면서 이런 단체를 복잡하게 파악하고 싶지는 않지만 SF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대전이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암울했을까 싶을만큼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이기는 합니다. 장르문학 중 그래도 중, 단타는 쳐주는 몇몇 유행장르는 황금가지에서 어느정도 커버를 해주기는 하지만 국내 SF, 액션, 호러 스릴러 등등은 거의 무덤과도 같은 수준이다보니 이 공모전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해서 국내 작가들의 비주류 중의 갑 장르의 작품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짠한 바램으로 읽게되었습니다.



#2. 장르 소설의 미덕은 읽는 재미


   저를 비롯해 사람들이 장르소설을 찾아 읽는 이유가 뭘까요? 인생의 깊은 교훈을 얻거나 실용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아니겠지요. 눈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교훈적인 책은 얼마든지 넘쳐나니까 말입니다. 장르소설의 효용은 뭐니뭐니해도 재미입니다. 거기다 사회비판이나 미래조망, 감정의 카타르시스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사실 이것저것 치덕치덕 처바르면 죽도밥도 안됩니다. 그냥 읽으면 재미진게 쵝오 아니겠습니까?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 "14일의 여인"은 그런 관점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총 여덟 작품 중에 다섯 작품이 공모전 당선작이다보니 소재나 설정 등이 무척 신선했어요. 적어도 작품을 이어가는 기본 설정이 '오,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군.'하고 생각할 만큼 흥미로운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기존 작가님들의 초대작 세편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안정적인 작품성을 보여줘서 앞의 다섯작품과 비교해보면 '역시 프로는 다르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표제작인 대상 "14일의 여인"은 인간들이 멸망한 지구에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에 최대한 가까워지고자 하는 지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설정도 독특하지만 특유의 차분하고 오묘한 분위기가 매력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당선작에 비해 대상을 수상할 정도인가 하는 의문은 조금 들었던 작품입니다. 개인 취향의 문제지만 말입니다.


   최우수상 "출력물"도 역시나 참신한 설정이 돋보였고, 우수상 "볼트17"은 SF와 환타지의 중간 지점 그 어디매 즈음에 있는 작품인데 전반적으로 '헝거게임'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는 작품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제가 선호하는 분위기의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웨딩마치"는 SF 디스토피아 소설에 가까운 작품인데 역시나 설정의 특이함이 끌리는 작품입니다. 인간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들 스스로 안드로이드로 개조되면서 인간성마저 말살되는데 수술을 거부한 주인공의 소수적 입장과 상징적으로 허무한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압도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우수상 마지막 수록작품이었던 "환생"입니다. 이 작품은 우주와 인간존재에 대한 꽤나 깊이 있는 철학적 고찰이 돋보이는데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아이러니하게 연쇄살인마의 입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주의 존재까지 등장하면서 '양들의 침묵+X파일' 같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흡 to the 개만족 스러웠던 작품입니다.


   초대작 세작품은 각각 SF 환타지와 하드보일드 액션, 그리고 미스터리 액션 장르에 해당하는 작품들이었는데 세 작품 모두 당선작과 비교하기 힘들 만한 완성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재미도 있고 특징적인 매력도 살아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특히 전건우 작가님의 "미스밀키와 우유도둑" 작가 특유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좋은 작품이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비주류 통합 무대가 아쉬운 이유


   이 작품을 읽다보니 의미있고 귀중한 이 공모전을 대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비주류를 아우르는 장르소설 공모전이라고 해도 당선작들은 물론 초대작들까지 전체를 봤을 때 도무지 내용적, 장르적 통일성이 부족한 형국이었습니다.


   각 작품들은 딱 이 작품은 무슨 장르! 라고 꼬집기는 애매한 부분들이 다소 있지만 그래도 당선작들은 큰 틀에서 SF로 묶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라는 것은 대관절 뭐란 말입니까? 영어로 써놓은 걸 보니 "The science fiction & Action"이네요. 그러면 SF와 액션 장르란 의미인데 한글로 옮기면서 융합이라는 표현은 또 왜 들어갔단 말입니까? 저 융합이라는 표현을 써버리면 이 당선작들은 대체로 의미에 부합하지 못한 작품들이 당선된 꼴이 되거든요.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SF 이기는 한데 액션과 융합된 작품은 딱히 없단 말입니다. 굳이 SF와 액션이 융합된 작품을 찾으라면 "출력물"정도가 되겠네요.


   초대작 역시 기성 작가님들이 이 공모전 당선집에 하나씩 원고부탁을 받고 나름 자신이 선호하는 장르의 작품을 써놓았던 것 중에 하나를 메일로 넣어준 것만 같은 느낌이란 말입니다. 초대작들에서 과학 액션 융합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어요.


   하나하나 개개의 작품이 재미있었던 것과 한권의 책으로서 단편집이 가지는 각 작품들의 통일성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단편집은 다 읽고나니 도데체 내가 무슨 단편집을 읽은 건지 헤깔리게 중구난방이란 말입니다. 원래 취지가 과학 또는 액션 또는 미스터리 또또는 호러 스릴러 등등 모든 장르소설을 아우르는 것이라면 더 이상 눈을 부라리며 따지기는 좀 머슥하지만 적어도 읽고나면 내가 뭘 읽었는지 정도는 고민하지 않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참,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책 자체는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어요. 재미가 없었던 얘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오해할 말을 많이 하는 편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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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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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로움을 잊은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외로워져야 하는 이유.


   김정운 교수는 "나는 가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로 처음 만났습니다. 한국 남성사회의 문제를 냉철하게 지적하면서도 위트있게 가벼움을 잃지 않고 쉽게 쓰여진 이 책은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몇권의 책을 더 읽었는데 그러다보니 결국은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이 들어 어느순간 안읽었는데 이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도 사실은 아주 큰 틀에서는 비슷한 맥락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신선하거나 새로운 내용이 있을 듯도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절반의 성공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외로움을 모르는 세대, 전자기기의 도움으로 애써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한번쯤은 멈춰서서 꼭 고민해봐야할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자 자신이 지난 몇년간 홀로 일본에 머물면서 몸서리치는 외로움과 대면한 다음 쓴 내용이라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식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처절한 외침처럼 들립니다. 이 양반의 글은 늘 그렇지만 자기 학대에 가까운 고백이 많습니다.


   통상 에세이류는 서문에 대부분 그 책에서 하고자 하는 정수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통 서문을 정성들여 읽곤 합니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문에 중요한 문제를 충분히 다루고 있습니다.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바쁘고 정신없을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도 좀 적게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들 삽니다. 그렇게 사는게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꾸 모임을 만듭니다. 착각입니다.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바쁠수록 마음은 공허해집니다. p.6"


   저자는 외로움이 싫고 직면하기도 싫어서 자꾸 만남을 만들거나 온라인 세계에 몰입하며 '관계'로 숨어들면 점점 더 공허해진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단순히 그저 견디고 익숙해지라고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존재'임을 깨닫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무서워 외로운 시간을 피하려고 합니다.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p.8




#2. 외로움을 회피하지 않고 즐거운 인생을 사는 방법


   이 책이 350여 페이지나 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은 결국 사람은 자신의 존재의 실존과 마주 대하기 위해 외로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해야할 적극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고 있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저자가 외로운 가운데 공부를 많이 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지 수많은 사람들의 이론과 주장을 인용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외로움을 직면하면서 즐거운 인생을 살기 위한 해결책은 결국 외로움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어느 수준이상 올라 더 배울게 없거나 시들해지면 또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말입니다. 책을 계속 읽으면서 수많은 책속에 담긴 여러가지를 배워나가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제가 이 책을 통해 외로움의 역설을 배운 것처럼 말입니다.


   또 하나 저자가 권해주는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느리게 사는 것"입니다. 사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이 이야기는 어찌되었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역시나 생각해 봄 직한 내용인 것입니다. 저자가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가 일본에 가 살아보니 저절로 깨닫게 된 내용이란 것이죠. 몸으로 체험하고 깨달은 바를 전해줄 때는 진지하게 들어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거였다. 지는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중략) 그러나 아무도 날 찾지 않는 교토의 한 귀퉁이에서 내 삶은 비로소 정상 속도를 되찾은 것이다.

혼자 지내려니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위한 청소, 설거지, 빨래, 장보기와 같은 '기초 생활 시간'이 너무 길다.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빨리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다. 느리게 걷고, 천천히 말하며, 기분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한 거다. 행복은 추상적 사유를 통한 자기 설득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감각적 경험이기 때문이다."p.330 




#3. 좋은 내용의 좋은 책이지만 절반의 성공인 이유


   우리의 삶에서 외로움을 외면하지 말고 직면해야 하는 이유와 더 나아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좋은 생각꺼리를 제공하는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보암직한 건전하고도 아름다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자가 독일에서도 오랜 기간 공부했고, 일본에서도 몇년째 공부하고 있다보니 독일, 일본, 한국의 삼국을 비교하고 차이를 설명하며 우리 국민이 경계하거나 더 힘써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무척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인 내용이 적절함에도 불구하고이 책의 제목이나 주제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일상 이야기가 제법 포함되어 있어서 뭔가 산만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징적이게도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일반적인 용어 정리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이럴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물론 정확히 뜻을 몰랐던 용어들도 꽤 있어서 저에게 꽤 유익하기도 했고, 그 챕터에 등장했던 용어를 곧바로 정리해주기 때문에 내용도 잘 이해되고 동시에 용어도 배우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지면 떼우기 같은 느낌도 있고, 너무 상식적인 용어를 정리해 놓은 경우도 있어서 많은 독자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일만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몇몇 부분에서는 언젠가 부터 느꼈던 바로 그 문제, 저자가 여러번 주장한 내용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의 유명저서 중 "남자의 물건"의 경우도 저자가 일본에 있으면서 썼던 책이라 일본 생활이 외롭고 힘들다는 내용이 상당히 있었는데 이 책에서도 일본에서 혼자 공부하는게 힘들다는 자꾸 대하니 좀 찌질해 보이는 면이 자꾸 강조되서 책의 좋은 주장을 희석시킨다는 느낌이있었습니다.


   어쩌면 저자의 성격 문제라 어떤 책을 써도 이런 부분은 계속 안고 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책 한권으로 깨닫게 되는 통찰이 있다면 충분히 사서 읽어볼 만 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외로움을 피하지 말고 참아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태도는 무척 필요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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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떠난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오늘 하루
하재욱 지음 / 나무의철학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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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하재욱 작가가 전하는 일상의 소중함

 

하재욱 작가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늘 일상의 소중함을 전하는 작가님입니다. 3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일상의 느낌을 솔직한 마음으로 그려온 그는 그 성실함 만으로도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직접 보여주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하루 시리즈 중 [안녕 하루], [고마워 하루]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오늘 하루]는 출판사가 바뀐 영향인지 제목도 보통 부재로 달던 걸 통으로 제목으로 사용해서 [어제 떠난 사람들이 간절히 원했던 오늘 하루]라고 출간되었네요.

 

저 같은 경우 별 특별할 것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직장인이라 그런지 '일상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저 '일상이 소중하다, 아름답다' 정도의 관념에 머무르지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일도, 그럴 방법도 없습니다. 그냥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막연히 느낄 뿐이죠.

 

그런 관점에서 하재욱 작가가 그리는 수백 가지의 "다양한 일상"은 대단한 면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엄청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상황인데, 그림과 글로 풀어내는 재주가 범상치 않거든요. 이번 책에서는 유난히 그 일상을 풀어내는데 있어 전에 없던 위트와 반전 같은 것들이 잘 살아있어서 상당히 맛깔 나는 데가 있습니다. "무릎을 탁 치며!" 감탄을 하게 된다니까요. 사실 놀랐다고 한 번도 무릎을 실제로 쳐본 적은 없지만...

 

 

#2. 깔끔해진 편집, 화면, 글씨체

 

출판사가 바뀌면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훨씬 깔끔해진 편집입니다. 표지 디자인이 세련되고 깨끗해 보이는군요. 내지 디자인도 전체적인 퀄리티가 좋아졌어요. 작가님이 팟캐스트 "퇴근하고 뭐 할래?"에 출연하셔서 밝힌 바와 같이, 편집자가 책 전체 흐름에 맞게 수백 장의 그림을 재배열하는 과정을 거쳐서 정돈된 책이 되었습니다. 그 과정 중에 작가님이 그림에 항상 표시하던 날짜를 삭제하는 작업도 추가되고, 통상 채색은 안 하고 올리던 페이스북 원본을 일일이 다시 스캔해서 채색을 다시 다 하는 고된 과정을 거쳐서 기존 두 권의 책보다는 훨씬 힘들게 출간된 책이라고 합니다. 작업한 원본 그림은 이 책에 사용된 그림보다 세배는 많다고 하니 챕터마다 테마에 맞는 그림만 엄선해서 만들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런 만큼 그림도 깔끔하고 편집 상태도 무척 좋습니다. 역시 정성을 들이는 만큼 질은 좋아집니다.

 

또 하나 눈에 확 띄는 것은 글씨체입니다. 이것도 개취라 좋다 나쁘다가 의미는 없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글씨체가 깔끔하고 문단, 문장 배열도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하나의 그림이 두 페이지에 걸쳐 책을 펼치면 전체 페이지에 한 그림씩 들어가기 때문에 가독성도 좋아졌군요.

 

#3.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삶에 대해...

 

이 책의 핵심은 이 고달픈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 직장인의 삶과 애환입니다. 직장, 가족, 자신인데 재밌게도 저자의 경우는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주로 술로 보냅니다. 크리스천인데 주() 님보다 주() 님을 더욱 잘 섬기는 분입니다. 저같이 건조하게 사는 삶과는 다른 작가의 삶에는 그게 낙이기도 하고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술을 좀 줄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사실 최근엔 페북을 안 하니 자세히 모르지만 술과 관련된 그림이 참으로 많기도 합니다.

대부분 작품 활동을 출퇴근 지하철에서 하는 것도 정말 직장인스럽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니 집에서 그림을 집중해서 그리기 힘들 것이고, 직장에서 한가로이 개인 그림 활동을 하기도 무리일 것이니 지하철에서 출퇴근 시간만이 오롯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인 것이죠. 제가 주로 출퇴근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거랑 비슷하죠. 아니면 잠을 줄여서 밤에 책을 보거나 다른 영상물을 보는 것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이 시대의 직장인의 삶이 서글프다면 서글플 수도 있겠지만 작가처럼 뭔가 예술로 승화시키거나 어떤 방식으로라도 표현해 낸다면 의외로 상당히 의미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도 있는 게 또 우리의 인생이지요. 직딩 중년 아저씨들이 일과 가정, 그리고 뭐가 되었건 소소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애정을 쏟으면서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무척 좋고요. 운동도 좋고 말입니다. 평범한 일상이 돋보일 수 있는 조금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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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 소비사회가 잠식하는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나현영 옮김 / 현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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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또 다른 저서, 의외의 복병은 편집자 리카르도 마체오.

 

   책으로 접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풍문으로 들어왔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사회라던가 사회적 불평등 구조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왔던 사회학자입니다. 이 양반이 1925년 생이예요. 이정도면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고집과 아집에 물샐틈 없을 수 있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책 전반에 담긴 폭넓은 시각과 균형잡힌 태도는 그 절반도 못 산 신생꼰대인 제가 보기에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많기도 하지만 여전히 활발한 저작활동과 인터뷰, 강연 등으로 바쁘디 바쁜 저자와 출판사의 편집자인 리카르도 마체오의 문답집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총 20가지의 연관성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체로 바우만 슨상이 늘 다루던 사회구조적 문제, 불평등의 문제, 사회 변화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서 한결같이 논하고 있죠.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사실 바우만 슨상이 아니라 출판사 편집자인 리카르도 마체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양반이 저자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를 했는지 모르지만 항상 마체오가 서두를 띄면서 방향을 잡고, 바우만은 거기에 대한 추가적인 첨언이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인데 이 서두가 심상치 않아요. 전반적인 정리를 미리 다 해버립니다. 누가 주인공인지 헤깔릴만큼 서두와 문제제기, 정리가 좋아요.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바우만은 이름만 걸치는건가 싶을 정도로 질문자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만큼 바우만의 이론과 견해가 노출이 많이 된 탓도 있겠죠.

 

   한편 제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책의 원제는 심플합니다. "On Education : Conversation with Ricardo Mazzeo"예요. 이 단순한 제목이 국내에 출간되면서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로 둔갑합니다.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원제에도 그렇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 비중에도 리카르도 마체오가 전면에 부각되는데 그럴만큼 비중이 큽니다. 그런데 국내로 오면서 영향력이 있고 저서가 많은 바우만이 전면에 나서죠. 이 부분은 당연한 선택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 사실 제가 좀 짜증 났던건 그 다음입니다. 이 책이 소비사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는건 맞습니다. 기본 전제에 가깝죠. 하지만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아요. '소비지상주의의 덫에 빠진 이사회가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혁명에 가까운 옳바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맞으려면 오로지 교육말고는 답이 없다'라고 유일한 대안으로 결론적으로 말할 뿐입니다. 교육이 어떤지에 대한 논의는 핵심이 아니예요. 출판사에서 국내 독자가 좀더 관심을 가질만한 단어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들어간 듯 합니다.

 

 

 

#2. 유동하는 불확실성의 사회를 지탱하는 위태로운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익히 잘 아는 내용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와 권력가들에 다분히 종속되어 보이는 언론에 의해 전달되는 의도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을 수용합니다. 적극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개인 커뮤니케이션 수단(SNS)의 발달로 인해 정보의 왜곡이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정보 역시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또 다른 의미로 왜곡된 정보가 전달되는 형편입니다.

 

   사회적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해석하는데 있어 왜곡된 프레임의 영향은 막대하고도 위력적인데 이 책 전반에 있어 마체오와 바우만은 잘못된 해석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보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았을 때 어떤 부분에 주의해야 하는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지적이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물건을 갖다 버린 자리에 더 매력적인 물건을 채워 넣으며 우리는 가장 살아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소비자의 즐거움이 충만하다는 것은 삶이 충만함을 의미하죠. 이런 표현들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쇼핑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p144 

 

   반면 부의 불평등한 소유에 의해 극단적으로  소비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흐름은 존재가 흔들리는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오늘날의 못 가진지, 즉 결함 있는 소비자들에게 쇼핑할 수 없음은 충족되지 못한 - 별 볼 일 없으며 무용지물인 - 삶임을 나타내는 거슬리고 욱신거리는 낙인이에요. 쇼핑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쾌락의 부재뿐 아니라 인간 존엄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삶의 의미의 부재, 더 나아가 인간성 및 자기 자신과 주변의 타인을 존중할 또 다른 이유들의 부재죠." p144 

 

   이렇게 소비의 삶을 향유하며 삶을 만끽하는 "가진자"들은 별 볼 일 없는 "못 가진자"들과의 분리를 원합니다. "못 가진자"들의 침입이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죠. 저자는 이런 빈부격차에 따른 분리와 격리하려는 태도를 "빗장 공동체"라고 지적합니다. 빗장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외부에서 안으로의 침입을 철저히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죠. 이로 인해 소통이 더욱 단절되고 분리가 심화되는 한편, 빗장 밖에 존재들은 퇴치하고 치워버려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 빈부격차 뿐 아니라 유럽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이민자 문제에도 유사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3. 현대의 소비사회가 우리를 속이는 전략에 대해...

 

   마체오와 바우만 슨상은 현대의 소비사회의 속성과 폐해를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의 내용과 연계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 늘 접속해 있는 상태인 현대인들은 고독을 잃어버린 것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직장생활에서의 '업무시간'의 개념도 함께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업무시간'과 '자유,여가시간'이 구분되던 과거와는 달리 온라인으로 회사 온라인망에 늘 접속되어 있는 선택을 한 현대인들은 스스로 가족, 사랑하는 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소비지상주의 시장은 소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개개인을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그 시간에 열심히 일을 했으므로 그 돈으로 물건을 사서 선물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선물이 비쌀수록 죄책감은 경감되고 용서받기 용이하다는 것이죠. 늦게 들어가는 날 아이 선물을 사서 전해주며 아빠로써 할 일을 다 했다라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는 이 지적은 상당히 적확하고 뼈아프기까지 합니다.

 

   이 책에서는 전반적인 세계사회의 글로벌화와 로컬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글로컬화라는 표현을 써가며 지적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거기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마음은 없고, 소비를 권하는 사회속에서 정신차리고 있어야 할 부분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볼꺼리를 제공받은데 무척 만족했습니다. 사실 이 책도 책상머리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 또는 될껄?'이라고 함부로 단정짓는 책이었으면 엄청 짜증났을텐데, 이런 저런 원인도 알고 나름의 해결책도 있지만 사실 될 가능성이 없다라고 담담하게 전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국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실제적은 변화는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 계층에서 행동해 주어야 하는데 이해관계를 따져봐도 그들이 그렇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불가능한 해결책인 것이죠. 교육으로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한다라고 말하지만 국정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에게 맡겨두어서 될 일인지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것이죠. 교육으로 변화시키려면 교육을 위한 교재와 교사가 준비되어야 하고 교사가 준비되어도 정부차원의 구조적, 체계적 지원없이는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죠. 이런 부분에 대한 현실적인 지적 때문에 지그문트 바우만 슨상이 비관론자로 평가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도 긍정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인 붕괴가 일어나고 재건 과정에서의 혁명과 같은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물론 붕괴 후 재건 중에도 기회를 잡은 개개인의 욕망에 의해 한층 더 불평등한 상황으로 이행할 확률이 더더욱 높지만 말입니다.

 

   사회구조는 차치하고라도 소비지상주의 사회 속에 개인으로써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방법 정도 외에는 적극적인 대안은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비를 부추기는 거짓부렁에 속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좀더 적극적으로 찾기 위해 미니멀리즘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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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십 트루퍼스 환상문학전집 27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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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는 잊자. 잊어... 없애버릴꺼야...


   로버트 A.하인라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스타십 트루퍼스"는 대부분 원작을 읽지 않고 1997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보고 이 작품의 내용을 오해하곤 하는데, 저도 그중 한명이었습니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원작을 읽기전에 일부러 동명의 영화를 먼저 찾아서 다시 보고 원작을 읽는 방식을 택했는데,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영화는 뭐 개쓰레기 입니다. 원작이 가진 여러가지 장점을 애써서 무시한 듯한 질 떨어지고 수준낮은 전개에 거지같은 러브코드까지 뭐 하나 동명의 이름을 붙여 만들만한 자격이 없는 영화입니다. 이에 대해 번역자 김상훈씨는 이렇게 평하고 있습니다.


"원서가 출간된 지 40년 가까이 지난 뒤에 영화화된 폴 버호벤의 "스타십 트루퍼스"는(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원작과는 동떨어진 황당무계한 할리우드 액션물로서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 영화판이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중략) 어린 시절 네덜란드에서 나치 통치를 직접 경험한 버호벤 특유의 '작가주의'가 원작에 대한 오마주라기보다는 위악적인 패러디를 선호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p387 


   읽어보시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지적입니다. 한마디로 영화를 맡은 감독이 개인적인 군대혐오감을 이 영화에 투영했고, 그 결과 원작 전반에 걸쳐 진중하게 펼쳐지는 군대조직과 전쟁에 관한 지적이고 성실한 묘사들을 비웃는 듯한 우스꽝스런 패러디물을 창조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지같은 패러디물은 원작과 동일한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까지 절찬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인라인이 오늘날 사람들이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를 자신의 원작 내용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땅을치며 개탄을 할지 모를 일입니다.



#2.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SF적 요소, 그리고 더 짙은 밀덕스러움의 결합


   이 작품이 SF의 흐름에 한 획을 그은 가장 주요한 요소는 우주전쟁, 우주전함, 외계생물의 등장 등도 있겠지만, 작품속에 등장하는 현실감 넘치는 강하복, 파워드 슈트입니다. 지금에야 왠만한 영화에는 늘 등장하는 외골격 무장복인 파워드 슈트이지만 이 작품이 나올 무렵에는 아마도 깜작 놀랄만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처음 개념을 착안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듯 상당히 어설픈 개념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한 상당히 디테일하고도 가까운 미래에 착용가능한 실용성 있는 기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쓰여진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히 과학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고 실제로 이 작품에 묘사된 기술들이 현실화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SF적 요소를  만약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사실상 밀덕들이 환장할 만한 밀리터리 소설입니다. 주인공 리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하고 훈련병 시절을 지나 실전에 배치되고 이후 말뚝박을 생각으로 장교가 되는 과정까지 세세하게 그리고 있는 밀덕소설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밀덕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비와 무기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긴 하지만 대신 이 작품은 군대 조직 자체와 조직이 굴러가는 생리, 그리고 전쟁에 대한 철학적, 현실적 내념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용진행 자체가 화자 리코의 기록장 형식으로 되어있어 형식면에서는 "마션"과 어느정도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상당히 익숙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전개일 수 밖에 없었네요.


   한편 이 소설이 단순한 밀덕 소설로 싸우고 때려죽이는 살육전으로 흘러가지 않고 의외의 철학적 깊이를 더해주는 요소가 몇가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광설에 가까운 전쟁관, 가치관, 세계관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설파에 있습니다. 주인공이 교육을 받는 입장이다보니 교육을 해주는 사람이 등장해서 주인공을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막 쏟아내는 것이죠. 사실 이런 형식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 한가지 이긴 한데 그 내용이 맞건 틀리건 저자가 충분히 고민한 내용일 때는 마냥 싫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죠. 우주전쟁 중이라는 것이 소설의 기본적인 설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군국주의적"이라는 평가를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좀 장황하고 길게 자주 등장하기는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3. SF라는 것에 대해서...


   음.. 이 작품을 읽고보니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SF라는 장르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의 문제 말입니다. SF는 말그대로 사이언스 픽션이 아닙니까? 픽션 사이언스도, daydream 사이언즈도 아닌 것입니다. 픽션이 무엇입니까? '허구'라는 의미니 여기서는 그냥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니까 과학적인 소설이란 뜻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SF를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번역을 합니다. 이 "공상"아라는 단어가 상당히 궁상맞습니다. 공상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막연하게 그리어 봄'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공상은 부정적인 의미가 다수 담긴 단어입니다.


   이런 용어 선택이 SF를 황당무계한 엉터리 소설같은 뉘앙스를 애초에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국어로 번역을 하면서 벌써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는 거죠. 공상과학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 마다 어떤 놈이 이따위로 정의했는지 첫만남에 전력질주 도약후 날라 쌍 뺨따구를 때린 후 넘어지는 걸 붙잡아 바로 멱살잡이를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SF는 어느 장르보다도 진지한 쪽에 가깝습니다. "스타십 트루퍼스"도 상당히 진지하고 깊이있고 인간과 문명에 대한 통찰이 담긴 소설입니다. 제가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알려진 바로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밀리터리 소설이라고는 달랑 이 작품 하나 뿐인데 이 양반을 대표작 하나만으로 "군국주의적"이고 "전쟁광"인 작가로 오명을 심어주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달랑 하나뿐인 밀리터리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가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소설이라고 말한다면 제대로 안 읽은 것이라고 지적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저는 사실 군대를 졸라 싫어하는 사람 중에 대표를 뽑자면 기를 쓰고 "저요~~저요~~"하고 손들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고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물론 '군대에 다시 가야겠다'거나 '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 싸워야지.' 같은 감동은 없었습니다만 소설의 미덕인 재미면에서는 크게 감동할 만한 작품입니다.


   한편으로는 취향에 안맞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읽기 드럽게 힘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군대 얘기니까요. 미래의 군대긴 하지만 환경만 다를뿐 군대는 어느시대나 어느곳이나 군대일 뿐입니다. 나는 왜 재미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네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영화는 정말 쌍욕이 나옵니다. 하인라인 횽님을 그렇게 욕보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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