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십 트루퍼스 환상문학전집 27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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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는 잊자. 잊어... 없애버릴꺼야...


   로버트 A.하인라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스타십 트루퍼스"는 대부분 원작을 읽지 않고 1997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보고 이 작품의 내용을 오해하곤 하는데, 저도 그중 한명이었습니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 원작을 읽기전에 일부러 동명의 영화를 먼저 찾아서 다시 보고 원작을 읽는 방식을 택했는데,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영화는 뭐 개쓰레기 입니다. 원작이 가진 여러가지 장점을 애써서 무시한 듯한 질 떨어지고 수준낮은 전개에 거지같은 러브코드까지 뭐 하나 동명의 이름을 붙여 만들만한 자격이 없는 영화입니다. 이에 대해 번역자 김상훈씨는 이렇게 평하고 있습니다.


"원서가 출간된 지 40년 가까이 지난 뒤에 영화화된 폴 버호벤의 "스타십 트루퍼스"는(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고나 할까.) 원작과는 동떨어진 황당무계한 할리우드 액션물로서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 영화판이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되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중략) 어린 시절 네덜란드에서 나치 통치를 직접 경험한 버호벤 특유의 '작가주의'가 원작에 대한 오마주라기보다는 위악적인 패러디를 선호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p387 


   읽어보시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지적입니다. 한마디로 영화를 맡은 감독이 개인적인 군대혐오감을 이 영화에 투영했고, 그 결과 원작 전반에 걸쳐 진중하게 펼쳐지는 군대조직과 전쟁에 관한 지적이고 성실한 묘사들을 비웃는 듯한 우스꽝스런 패러디물을 창조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지같은 패러디물은 원작과 동일한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까지 절찬 방영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인라인이 오늘날 사람들이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를 자신의 원작 내용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땅을치며 개탄을 할지 모를 일입니다.



#2.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SF적 요소, 그리고 더 짙은 밀덕스러움의 결합


   이 작품이 SF의 흐름에 한 획을 그은 가장 주요한 요소는 우주전쟁, 우주전함, 외계생물의 등장 등도 있겠지만, 작품속에 등장하는 현실감 넘치는 강하복, 파워드 슈트입니다. 지금에야 왠만한 영화에는 늘 등장하는 외골격 무장복인 파워드 슈트이지만 이 작품이 나올 무렵에는 아마도 깜작 놀랄만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처음 개념을 착안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듯 상당히 어설픈 개념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지식에 근거한 상당히 디테일하고도 가까운 미래에 착용가능한 실용성 있는 기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에 쓰여진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히 과학적인 접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고 실제로 이 작품에 묘사된 기술들이 현실화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SF적 요소를  만약 제외한다면 이 작품은 사실상 밀덕들이 환장할 만한 밀리터리 소설입니다. 주인공 리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하고 훈련병 시절을 지나 실전에 배치되고 이후 말뚝박을 생각으로 장교가 되는 과정까지 세세하게 그리고 있는 밀덕소설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밀덕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비와 무기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거의 나오지 않긴 하지만 대신 이 작품은 군대 조직 자체와 조직이 굴러가는 생리, 그리고 전쟁에 대한 철학적, 현실적 내념 등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용진행 자체가 화자 리코의 기록장 형식으로 되어있어 형식면에서는 "마션"과 어느정도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상당히 익숙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전개일 수 밖에 없었네요.


   한편 이 소설이 단순한 밀덕 소설로 싸우고 때려죽이는 살육전으로 흘러가지 않고 의외의 철학적 깊이를 더해주는 요소가 몇가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광설에 가까운 전쟁관, 가치관, 세계관에 대한 도덕적, 철학적 설파에 있습니다. 주인공이 교육을 받는 입장이다보니 교육을 해주는 사람이 등장해서 주인공을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막 쏟아내는 것이죠. 사실 이런 형식은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 한가지 이긴 한데 그 내용이 맞건 틀리건 저자가 충분히 고민한 내용일 때는 마냥 싫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죠. 우주전쟁 중이라는 것이 소설의 기본적인 설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군국주의적"이라는 평가를 하기는 힘들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좀 장황하고 길게 자주 등장하기는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들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3. SF라는 것에 대해서...


   음.. 이 작품을 읽고보니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SF라는 장르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나의 문제 말입니다. SF는 말그대로 사이언스 픽션이 아닙니까? 픽션 사이언스도, daydream 사이언즈도 아닌 것입니다. 픽션이 무엇입니까? '허구'라는 의미니 여기서는 그냥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니까 과학적인 소설이란 뜻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SF를 "공상과학소설"이라고 번역을 합니다. 이 "공상"아라는 단어가 상당히 궁상맞습니다. 공상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막연하게 그리어 봄'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공상은 부정적인 의미가 다수 담긴 단어입니다.


   이런 용어 선택이 SF를 황당무계한 엉터리 소설같은 뉘앙스를 애초에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국어로 번역을 하면서 벌써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는 거죠. 공상과학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 마다 어떤 놈이 이따위로 정의했는지 첫만남에 전력질주 도약후 날라 쌍 뺨따구를 때린 후 넘어지는 걸 붙잡아 바로 멱살잡이를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SF는 어느 장르보다도 진지한 쪽에 가깝습니다. "스타십 트루퍼스"도 상당히 진지하고 깊이있고 인간과 문명에 대한 통찰이 담긴 소설입니다. 제가 다 읽어보지 못했지만 알려진 바로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밀리터리 소설이라고는 달랑 이 작품 하나 뿐인데 이 양반을 대표작 하나만으로 "군국주의적"이고 "전쟁광"인 작가로 오명을 심어주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달랑 하나뿐인 밀리터리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가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소설이라고 말한다면 제대로 안 읽은 것이라고 지적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저는 사실 군대를 졸라 싫어하는 사람 중에 대표를 뽑자면 기를 쓰고 "저요~~저요~~"하고 손들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미있고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물론 '군대에 다시 가야겠다'거나 '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 싸워야지.' 같은 감동은 없었습니다만 소설의 미덕인 재미면에서는 크게 감동할 만한 작품입니다.


   한편으로는 취향에 안맞는 사람이라면 끝까지 읽기 드럽게 힘든 작품이기도 합니다. 군대 얘기니까요. 미래의 군대긴 하지만 환경만 다를뿐 군대는 어느시대나 어느곳이나 군대일 뿐입니다. 나는 왜 재미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네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아, 다시 생각해도 영화는 정말 쌍욕이 나옵니다. 하인라인 횽님을 그렇게 욕보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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