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여인 -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
정병태 외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1. 비주류 작가들의 등용문이자 한풀이의 장, 과학 및 액션 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


   이 책은 벌써 3회를 맞이하는 그 이름도 길고 긴 "과학 및 액션 소재 장르문학 단편소설 공모전"의 당선작 작품집에 해당합니다. 이 길고 긴 공모전이 왜 의미가 있는가 하면, 대한민국에서 드럽게 돈 안되고 인기도 없는 비인기 종목을 한대 아우르고 버무리고 집대성한 경연장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국내 스포츠계의 봅슬레이, 스키점프, 스켈렉톤 모듬 대회 정도 되는 느낌이랄까요?


   주최한 단체가 국내 과학의 메카 대전의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입니다. 책 한권 읽으면서 이런 단체를 복잡하게 파악하고 싶지는 않지만 SF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대전이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암울했을까 싶을만큼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이기는 합니다. 장르문학 중 그래도 중, 단타는 쳐주는 몇몇 유행장르는 황금가지에서 어느정도 커버를 해주기는 하지만 국내 SF, 액션, 호러 스릴러 등등은 거의 무덤과도 같은 수준이다보니 이 공모전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명맥을 유지해서 국내 작가들의 비주류 중의 갑 장르의 작품을 계속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짠한 바램으로 읽게되었습니다.



#2. 장르 소설의 미덕은 읽는 재미


   저를 비롯해 사람들이 장르소설을 찾아 읽는 이유가 뭘까요? 인생의 깊은 교훈을 얻거나 실용적인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아니겠지요. 눈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교훈적인 책은 얼마든지 넘쳐나니까 말입니다. 장르소설의 효용은 뭐니뭐니해도 재미입니다. 거기다 사회비판이나 미래조망, 감정의 카타르시스까지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사실 이것저것 치덕치덕 처바르면 죽도밥도 안됩니다. 그냥 읽으면 재미진게 쵝오 아니겠습니까?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단편선 "14일의 여인"은 그런 관점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총 여덟 작품 중에 다섯 작품이 공모전 당선작이다보니 소재나 설정 등이 무척 신선했어요. 적어도 작품을 이어가는 기본 설정이 '오,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군.'하고 생각할 만큼 흥미로운 작품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기존 작가님들의 초대작 세편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안정적인 작품성을 보여줘서 앞의 다섯작품과 비교해보면 '역시 프로는 다르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표제작인 대상 "14일의 여인"은 인간들이 멸망한 지구에 안드로이드들이 인간에 최대한 가까워지고자 하는 지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는데 설정도 독특하지만 특유의 차분하고 오묘한 분위기가 매력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당선작에 비해 대상을 수상할 정도인가 하는 의문은 조금 들었던 작품입니다. 개인 취향의 문제지만 말입니다.


   최우수상 "출력물"도 역시나 참신한 설정이 돋보였고, 우수상 "볼트17"은 SF와 환타지의 중간 지점 그 어디매 즈음에 있는 작품인데 전반적으로 '헝거게임'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는 작품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제가 선호하는 분위기의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웨딩마치"는 SF 디스토피아 소설에 가까운 작품인데 역시나 설정의 특이함이 끌리는 작품입니다. 인간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들 스스로 안드로이드로 개조되면서 인간성마저 말살되는데 수술을 거부한 주인공의 소수적 입장과 상징적으로 허무한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압도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우수상 마지막 수록작품이었던 "환생"입니다. 이 작품은 우주와 인간존재에 대한 꽤나 깊이 있는 철학적 고찰이 돋보이는데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아이러니하게 연쇄살인마의 입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주의 존재까지 등장하면서 '양들의 침묵+X파일' 같은 독특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흡 to the 개만족 스러웠던 작품입니다.


   초대작 세작품은 각각 SF 환타지와 하드보일드 액션, 그리고 미스터리 액션 장르에 해당하는 작품들이었는데 세 작품 모두 당선작과 비교하기 힘들 만한 완성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재미도 있고 특징적인 매력도 살아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특히 전건우 작가님의 "미스밀키와 우유도둑" 작가 특유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좋은 작품이어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 비주류 통합 무대가 아쉬운 이유


   이 작품을 읽다보니 의미있고 귀중한 이 공모전을 대하면서도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비주류를 아우르는 장르소설 공모전이라고 해도 당선작들은 물론 초대작들까지 전체를 봤을 때 도무지 내용적, 장르적 통일성이 부족한 형국이었습니다.


   각 작품들은 딱 이 작품은 무슨 장르! 라고 꼬집기는 애매한 부분들이 다소 있지만 그래도 당선작들은 큰 틀에서 SF로 묶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과학액션 융합스토리' 라는 것은 대관절 뭐란 말입니까? 영어로 써놓은 걸 보니 "The science fiction & Action"이네요. 그러면 SF와 액션 장르란 의미인데 한글로 옮기면서 융합이라는 표현은 또 왜 들어갔단 말입니까? 저 융합이라는 표현을 써버리면 이 당선작들은 대체로 의미에 부합하지 못한 작품들이 당선된 꼴이 되거든요.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SF 이기는 한데 액션과 융합된 작품은 딱히 없단 말입니다. 굳이 SF와 액션이 융합된 작품을 찾으라면 "출력물"정도가 되겠네요.


   초대작 역시 기성 작가님들이 이 공모전 당선집에 하나씩 원고부탁을 받고 나름 자신이 선호하는 장르의 작품을 써놓았던 것 중에 하나를 메일로 넣어준 것만 같은 느낌이란 말입니다. 초대작들에서 과학 액션 융합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어요.


   하나하나 개개의 작품이 재미있었던 것과 한권의 책으로서 단편집이 가지는 각 작품들의 통일성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 단편집은 다 읽고나니 도데체 내가 무슨 단편집을 읽은 건지 헤깔리게 중구난방이란 말입니다. 원래 취지가 과학 또는 액션 또는 미스터리 또또는 호러 스릴러 등등 모든 장르소설을 아우르는 것이라면 더 이상 눈을 부라리며 따지기는 좀 머슥하지만 적어도 읽고나면 내가 뭘 읽었는지 정도는 고민하지 않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참,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책 자체는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어요. 재미가 없었던 얘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는 오해할 말을 많이 하는 편잉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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