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 소비사회가 잠식하는 인간적인 삶에 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나현영 옮김 / 현암사 / 2016년 2월
평점 :

#1.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또 다른 저서, 의외의 복병은 편집자 리카르도 마체오.
책으로 접한 적은 없지만 그동안
풍문으로 들어왔던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사회라던가 사회적 불평등 구조 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여왔던 사회학자입니다. 이 양반이
1925년 생이예요. 이정도면 꼰대도 이런 꼰대가 없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고집과 아집에 물샐틈 없을 수 있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책 전반에 담긴 폭넓은 시각과 균형잡힌 태도는 그 절반도 못 산 신생꼰대인 제가 보기에는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나이가 많기도 하지만 여전히
활발한 저작활동과
인터뷰, 강연 등으로 바쁘디 바쁜 저자와 출판사의 편집자인 리카르도 마체오의 문답집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총 20가지의 연관성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체로 바우만 슨상이 늘 다루던 사회구조적 문제, 불평등의 문제, 사회 변화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서 한결같이 논하고 있죠.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사실 바우만 슨상이 아니라 출판사 편집자인 리카르도 마체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양반이 저자에 대해서 얼마나
연구를 했는지 모르지만 항상 마체오가 서두를 띄면서
방향을 잡고, 바우만은 거기에 대한 추가적인 첨언이나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형식인데 이 서두가 심상치 않아요. 전반적인 정리를 미리 다
해버립니다. 누가 주인공인지 헤깔릴만큼 서두와 문제제기, 정리가 좋아요.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바우만은 이름만 걸치는건가 싶을 정도로
질문자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만큼 바우만의 이론과 견해가 노출이 많이 된 탓도 있겠죠.
한편 제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책의
원제는 심플합니다. "On Education :
Conversation with Ricardo Mazzeo"예요. 이 단순한 제목이 국내에
출간되면서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로 둔갑합니다.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원제에도 그렇고, 책의 전반적인 내용
비중에도 리카르도
마체오가 전면에 부각되는데 그럴만큼 비중이 큽니다. 그런데 국내로 오면서 영향력이 있고
저서가 많은 바우만이 전면에 나서죠. 이 부분은 당연한 선택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 사실 제가 좀 짜증 났던건 그 다음입니다.
이 책이 소비사회에
대해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는건 맞습니다. 기본 전제에 가깝죠. 하지만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는
않아요. '소비지상주의의 덫에 빠진
이사회가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혁명에
가까운 옳바른 방향으로의 변화를 맞으려면 오로지 교육말고는 답이 없다'라고 유일한 대안으로 결론적으로 말할 뿐입니다. 교육이
어떤지에 대한 논의는 핵심이 아니예요. 출판사에서 국내 독자가 좀더 관심을
가질만한 단어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들어간 듯 합니다.
#2.
유동하는
불확실성의 사회를 지탱하는 위태로운 방향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익히 잘 아는 내용이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자본가와 권력가들에 다분히 종속되어 보이는 언론에 의해 전달되는 의도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을 수용합니다. 적극적인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개인 커뮤니케이션 수단(SNS)의 발달로 인해 정보의 왜곡이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정보 역시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또 다른
의미로 왜곡된 정보가 전달되는 형편입니다.
사회적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을
해석하는데 있어 왜곡된 프레임의 영향은 막대하고도
위력적인데 이 책 전반에 있어 마체오와 바우만은 잘못된 해석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보다 균형잡힌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았을 때 어떤 부분에
주의해야 하는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지적이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물건을 갖다 버린 자리에 더 매력적인 물건을 채워 넣으며 우리는 가장 살아 있는 것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소비자의 즐거움이 충만하다는 것은 삶이 충만함을 의미하죠. 이런 표현들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쇼핑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p144
반면 부의 불평등한 소유에 의해 극단적으로
소비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흐름은 존재가 흔들리는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오늘날의 못
가진지, 즉 결함 있는 소비자들에게 쇼핑할 수 없음은 충족되지 못한 - 별 볼 일 없으며 무용지물인 - 삶임을 나타내는 거슬리고 욱신거리는
낙인이에요. 쇼핑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쾌락의 부재뿐 아니라 인간 존엄의 부재를 의미합니다. 삶의 의미의 부재, 더 나아가 인간성 및 자기 자신과
주변의 타인을 존중할 또 다른 이유들의 부재죠." p144
이렇게 소비의 삶을 향유하며 삶을
만끽하는 "가진자"들은 별 볼 일 없는 "못 가진자"들과의 분리를 원합니다. "못
가진자"들의 침입이
불편하고 불안한 것이죠. 저자는 이런 빈부격차에 따른 분리와 격리하려는 태도를 "빗장 공동체"라고 지적합니다. 빗장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외부에서 안으로의 침입을 철저히 통제하려 한다는 것이죠. 이로 인해 소통이 더욱 단절되고 분리가 심화되는 한편, 빗장 밖에 존재들은 퇴치하고
치워버려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 빈부격차 뿐 아니라 유럽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이민자 문제에도 유사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3. 현대의 소비사회가 우리를 속이는
전략에 대해...
마체오와 바우만 슨상은 현대의
소비사회의 속성과 폐해를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의 내용과 연계해 설명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 늘 접속해 있는 상태인 현대인들은 고독을 잃어버린
것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직장생활에서의 '업무시간'의 개념도 함께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업무시간'과 '자유,여가시간'이 구분되던 과거와는
달리 온라인으로 회사 온라인망에 늘 접속되어 있는 선택을 한 현대인들은 스스로 가족, 사랑하는 이들과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소비지상주의
시장은 소비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개개인을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그 시간에
열심히 일을 했으므로 그 돈으로 물건을 사서 선물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선물이 비쌀수록 죄책감은 경감되고 용서받기 용이하다는
것이죠. 늦게 들어가는 날 아이 선물을 사서 전해주며 아빠로써 할 일을 다 했다라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과 크게 다를바 없는 이
지적은 상당히 적확하고 뼈아프기까지
합니다.
이 책에서는 전반적인 세계사회의
글로벌화와 로컬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글로컬화라는 표현을 써가며 지적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거기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마음은 없고,
소비를 권하는 사회속에서 정신차리고 있어야 할 부분에 대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볼꺼리를 제공받은데 무척 만족했습니다. 사실 이 책도
책상머리에서 '이렇게 하면 된다, 또는 될껄?'이라고 함부로 단정짓는 책이었으면 엄청 짜증났을텐데, 이런 저런 원인도 알고
나름의 해결책도 있지만 사실 될 가능성이 없다라고 담담하게 전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결국 사회구조를
변화시키는 실제적은 변화는 권력과 부를 쥐고 있는 계층에서 행동해 주어야 하는데 이해관계를 따져봐도 그들이 그렇게 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불가능한 해결책인 것이죠. 교육으로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한다라고 말하지만 국정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정부에게
맡겨두어서 될 일인지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것이죠. 교육으로 변화시키려면 교육을 위한 교재와 교사가 준비되어야 하고 교사가 준비되어도
정부차원의 구조적, 체계적 지원없이는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죠. 이런 부분에 대한 현실적인 지적 때문에 지그문트 바우만 슨상이 비관론자로
평가되기도 하는 모양인데 제가 보는 관점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지나도 긍정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전반적인 붕괴가 일어나고 재건 과정에서의 혁명과 같은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물론
붕괴 후 재건 중에도 기회를 잡은 개개인의 욕망에 의해 한층 더 불평등한 상황으로 이행할 확률이 더더욱 높지만 말입니다.
사회구조는 차치하고라도 소비지상주의
사회 속에 개인으로써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방법 정도 외에는 적극적인 대안은 없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비를
부추기는 거짓부렁에 속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좀더 적극적으로 찾기 위해 미니멀리즘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해봐야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