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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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쓴다는 것...

 

   제가 하루키 슨상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글을 잘 쓰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호불호도 많고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단편, 장편소설은 물론 에세이까지 언제나 그 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습니다. 소설은 소설대로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하루키의 글을 읽는 맛이 있어요. 이를테면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지겨우리만큼 넘쳐나지만 가왕 조용필 사마의 노래를 들으면 '아, 조용필이구나!' 반응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과 같죠.

 

   글이라는 게 누구나 원하는 데로 표현할 수 있지만 잘 다듬어진 음악처럼 특유의 리듬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편안하고 즐겁게 읽기가 의외로 쉽지가 않아요. 저는 대체로 입에서 나오는 데로 뱉듯이 막 쓰는 편인데다가 글이 좀 길고 장황하죠. 생겨먹기를 그렇게 생겨먹은데다가 딱히 프로페셔널도 아니고 해서 이 나이에 뭐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했습니다만 SSG 읽으면 SSG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루키 슨상이 재즈에 심취한 것도 이 양반이 전문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제가 일본어도 모르고 영문으로 책을 읽을 만큼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라 번역본 말고 원문의 문장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번역된 글을 읽어도 무척 편안한데다가 마치 대화를 하는 듯이 무리 없이 읽어지는 것은 그만큼 쉽고 좋은 문장을 구사한다는 의미겠지요. 그리하여 하루키 슨상의 에세이가 항상 그랬듯이 옆집 아저씨의 수다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다가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다만 이번 에세이의 경우는 기존에 접했던 에세이보다는 내용이 조금은 더 무겁기는 했어요.

 

 

#2. 하루키식 에세이 쓰기라는 것...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그러네요. 세상에 모두 모두 부러운 것 투성이입니다. 하루키식 에세이 쓰기처럼 써보자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질투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 양반은 그 양반대로 노래를 잘하고 또 저 양반은 저 양반대로 악기를 잘 다루는 참 좋겠어.. 나야 뭐 생긴 대로 사는 거지.' 정도에서 멈추죠. 누군가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다지 부럽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 또 잘하는 게 있으니까요."

 

   대충 이런 느낌의 글들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엄청 쿨하다고 계속 우기면서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얘기도 중간중간에 끼워 주면서 분명 뭔가 변명 같은데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변명이라고 단정 짓기는 좀 뭐하고 그래도 뭔가 계속 굳이 말하는 거보니 변명 같기도 한 내용으로 계속 채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니까... 문단에서 나를 욕하던데, 상을 못 탄다고 무시하던데,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진짜 괜찮다... 나는 정말 괜찮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니깐.. 오해할까 봐 얘기하는 건데 나는 정말 괜찮아요~~" 이런 내용 말입니다. 계속 읽다 보면 이런 스탠스가 좀 웃기기도 하고 참 독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루키식 에세이는 그래요. 다 읽어본 것도 아니고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제가 느끼기엔 "쿨하지만 쿨하지 못해 미안한 동네 아저씨의 고백" 같은 겁니다. 그래서 자랑 같기도 하지만 아닌 것도 같은 이야기도 많고 말이죠. 엄청 고생했다고 우기면서 또 까이꺼 별거 아닌데 뭐라고 하기도 하고 웃깁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하루키식 에세이의 매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좀 애쓴다는 생각도 들면서 피식피식 웃게 만듭니다. 저 대단한 하루키 슨상이 말이죠.

 

 

#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것.

 

   근래에 참 많이 느끼지만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말 일반화가 불가능한 독특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 내놔도 동질감을 가지긴 힘든, '무리 아닌' 무리가 아닌가 싶어요. 문단에 속해서 어떤 소속감을 누리는 사람들은 개중 독특함이 좀 덜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죠. 서로 서로를 따돌리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고독자이기도 한 묘한 직업이죠.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매력이 있지만 선뜻하기 힘든 직업이기도 합니다.

 

   하루키 슨상의 지적처럼 소설가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일도 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직종은 어디나 경쟁이 드럽게 치열하기 마련이고 소설가도 역시나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궤도 오르기란 드럽고 드럽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잠깐 생각해봤던 작가라는 직업을 애당초 포기했습죠. 저는 포기가 번개처럼 빠르거든요. 어디 가서 내세울 만한 저의 장점입니다.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지 않아요. 게다가 가만 보면 저는 상당히 규칙적이고 예상 가능한 일상을 영위하죠. 큰 틀에서 모양새가 몇 번 변하기는 했지만요. 루틴한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작가들은 하루키 슨상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작가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아요. 감정적으로 섬세하기 때문에 칼같이 규칙적으로 생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출퇴근을 안 해서 작가가 무척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출퇴근이 없는 직업이 정말 지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슨상은 드럽게도 규칙적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 같은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마다 다들 제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글을 쓰고, 퇴고하는 것입니다. 정답도 없고 표준도 없는 소설가라는 직업은 분명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하게 됩니다. 여튼 누가 뭐래도 충실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하루키 슨상이 참으로 부럽군요. 오늘은 뭔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계속하는 기분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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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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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코패스를 다룬 20년전 하드코어 호러 소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은 블로그 이웃님들께 무서운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샤이닝"과 더불어 압도적으로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신 작품으로 한마디로 독자들에게 오랜세월 검증된 무시무시한 작품입니다. 역시 잘 안 읽은 장르를 접할 때는 그 분야의 레퍼런스부터 접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사이코패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언제 얼마나 있었는지 찾아보고 싶지만 매우 귀찮으므로 역시나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기로 합니다. 왜냐면 2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작품에서 사이코패스를 다루는 뉘앙스는 "사이코패스라는 것이 있는데,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그러하다." 뭐 이런 느낌이거든요. 작금에 와서 사이코패스가 작품에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하여 "그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일 독자는 거의 없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나름 최신 트렌드를 공부해서 준비하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는 공포물이 나름 다양한 장르로 성행하는 편인 듯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 분야가 호러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목 댕강 피 철철"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갑자기 훅 나타나서 놀래는 "전설의 고향"류의 호러가 더 잘 통하는 분위기인데, "검은 집"은 전반적으로 "목 댕강 피 철철"쪽에 가깝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는 피 말리고 쫄리는 느낌이야 충분히 좋지만 역시나 잘근잘근 잘라내고 썰고 피도 쪽쪽 뽑는 그런 하드코어 쪽에 주력함으로써 사이코패스의 무시무시함을 알리려는 목적성이 강합니다.

 

   당시 대중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소재이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큰 문제를 다룬 것으로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기도 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사례연구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2, 나는 내가 더 무섭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랄까? 그것은 바로 제 자신이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주인공 신지가 사이코패스를 죽이고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많은 분들이 무시무시하다고 추천해주신 이 작품이 왜 이렇게 안 무섭던지요. 중반까지는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생명보험사기라등가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서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솔직히 호러소설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중반이 지나면서 슬슬 한사람 한사람 죽어나가면서도 후덜덜하거나 막 잔인하다는 느낌보다는 공포영화에서 전형적으로 느끼는 멍청이 주인공 증후군에 대한 속 터짐 증상이 나타나더군요. '아, 미친놈. 편지를 굳이 왜 써? 거기서 아는 척을 왜 하냐고.. 굳이 거길 왜 들어가?' 뭐 이런 거 있죠. 원활하게 호러스러운 분위기와 스토리를 이어나가기 위해 현실세계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만한 짓을 주인공이 척척한다는 겁니다. 그냥 모른척하고 외면하면 되는데 굳이 나서서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죠. 마치 각본을 보고 움직이는 것처럼요. 이부분이 속터져가지고 무서운지 어떤지 그닥..(나도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것인가?) 다만 마지막 결말 부분에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에게 쫓기는 장면에서는 심장이 제법 쫄깃해졌습니다. 주인공이 이긴다는 거 다 알고 보면서도 무서우면 꽤나 무서운가다잉.

 

 

#3. 대단한 필력, 교훈은 적당히...


   작가들이 글을 쓰기 전에 너무 공부를 많이 하면 안 됩니다. 기시 유스케는 초보 작가들이 실수하는 것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살짝 사회파와 계몽주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비틀거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캐릭터들을 통해, 스토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거나 어느 정도 연출된 모습이라 할지라도 독자가 고민할 것들을 던져주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인생의 놀라운 교훈을 얻자고 호러소설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 소설에는 전반적으로 사이코패스를 인정할 것인가? 사회에서 경리해야 하는가? 과연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존재는 누구인가? 등등의 문제들을 놓고 다양하고 심도 있는 고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고민했던 것들을 지문으로 막 쏟아내는 정도의 최악의 실수는 하고 있지 않지만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대화와 논쟁 등을 통해 조금은 지나칠 정도의 교훈을 던져주려 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대단히 필력이 좋아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하고 넘어갔지 안 그랬으면 '뭘 자꾸 가르쳐?'라며 짜증이 꽤나 났을 듯합니다. 


   독자들을 상대로 쉽게 설명해둔 사이코패스에 관한 연구서적이라든가, 심리학 입문서라든가 교양서적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범죄학에 대한 책도 많고요. 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회학을 연구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윤리학을 따지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런 부분이 조금 절제가 되었다면 훨씬 읽기 편하고 받아들이는 자유도가 높았을 것인데 살짝 아쉬웠습니다. 모쪼록 교훈은 적당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꼰대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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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4 : SF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4
김창규.전홍식 지음 / 북바이북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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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F를 즐기기 위한 완벽한 가이드

 

   일단 기본적으로 제목에 "웹소설 작가를 위한"이라는 수식이 붙어서 대상이 무척 한정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어 스스로 책을 많이 안 팔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만 같기는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웹소설 작가는 물론 알아야 할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냥 아무나 읽어도 좋을 내용입니다. 당연히 상세한 내용은 전혀 없고 무척 개괄적인 소개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뭐 하나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 SF의 세계를 짚어주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SF를 설명하는 개괄서라 하면 포함되어 있을 법한 여러분이 상상하는 바로 그 내용이 정말 정직하게 들어있습니다. SF가 무엇인가? 정의부터 SF의 두 개의 축인 과학과 상상, 그리고 너무 많이 들어가면 주객이 전도되는 판타지 요소까지 가볍게 설명해주고 있어요. 게다가 저는 처음 들었던 하드 SF와 소프트 SF의 분류도 흥미로웠습니다.

 

   가이드서라면 빼먹지 말아야 할 SF의 하위분류와 그 분류에 포함될만한 작품들이 꼼꼼하게 잘 설명되어 있고, SF의 역사도 짚어줍니다. 이 과정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각 분류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SF 명작들에 대해 소개가 되고 있어서 읽으면서 계속 '아, 이걸 빠뜨렸구나, 이 작품을 모르고 있었어.' 내지는 '아, 이 작품은 꼭 읽어봐야지.' 하면서 메모해가면서 읽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는 일은 정말 흔치 않거든요. 그냥 재미로 호로록 읽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근데 이 책은 앞으로 책을 읽으면서 SF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이 대거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책들을 체크하는 게 무척 유용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SF 읽기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책이었다고 할까요?

 

 

#2. SF를 사랑하는 사람이 고민해봐야 할 만한 문제들

 

   거뭐.. 이런 거 고민하고 하는 건 원래 업계 유관계자들이 하는 거지만 워낙에 SF 쪽에서는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다 보니 업계에서는 호러 다음으로 외면받기 딱 쉬운 장르라 이 책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한국 SF와 SF 장르의 가능성" 부분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약 2/3지점까지는 앞으로 놓치지 말고 읽어야 할 작품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면 후반 1/3 정도는 SF를 즐기는 독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랄까? 정신교육을 받는 느낌으로 살짝 읽었습니다. 깊이 고민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짧았거든요. 기본적으로 장르소설 쪽에서는 영미나 일본 쪽 장르소설보다는 국내 장르소설을 조금은 무시하는 태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막 최근에 와서야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아끼고 사랑하는 풍토랄까? 그런 것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우리나라니까 사랑해야 하는 건 시대적으로 설득력이 없고, 그만큼 수준이 좋아진 부분이 분명히 있죠. 한편으로는 한국적 장르소설의 특색에 대해서 작가들이 고민하고 잘 잡아나가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좋은 SF는 자연스럽게 재미를 전하며 경이로움과 감동을 준다. SF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마션"같은 소설이 성공한 이유는 이 작품이 편하게 볼 수 있으며, 이야기를 통해 과학적 상상력과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 설정이나 이론에 집착하고, 철학적 고찰이나 논의를 따지기보다 먼저 재미를 생각하는 것이 좋은 SF를 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p.114

 

SF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있지 않도록 대중적인 재미를 겸비한 작품들이 발굴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대합니다.

 

 

#3. 도대체 왜 웹소설 작가를 위한 가이드란 말인가?

 

   거의 책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웹소설 작가를 위한 가이드라는 책의 컨셉에 이 내용이 부합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냥 누구나, 특히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 교양에 가까운 내용들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무협"편과 마찬가지로 거의 말미에 달랑 15페이지에 걸쳐서 "SF 쓰는 법"이 나와 있었어요. 근데 이게 뭐 딱히 그렇게까지 작가 지망생만 읽어야 될 내용인지 헷갈려요. 여튼 "무협"편에 비하면 좀더 작법에 비중이 있는 내용이었기는 합니다. 책 전체 내용에 비하면 거의 일할 이하라고 해야 할 정도로 작가를 위한 작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라리 그 뒤에 있는 부록 "SF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작품들"이 더 유익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참, 이거 제대로 봤나 모르겠지만 "무협"편과 "SF"편의 서문이 똑같더라고요. 아마도 시리즈 6권 모두 서문이 똑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돌려 막기의 전형이 아닌가 했습니다. ㅋㅋㅋ

 

   여튼 웹소설 작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도 SF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시면 좋을 책입니다. 내용 중에 등장하는 SF계의 레퍼런스와 같은 작품들을 하나씩 골라 읽어보는 것도 매우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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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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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추리소설의 옷을 입은 순문학 작품


   조영주 작가의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붉은 소파"는 풍문에 "추리소설로 세계문학상을 받은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들었습니다만 전혀 이례적이지 않네요. 개인적인 소감을 정리하자면 "추리소설의 외연을 입은 순문학 소설"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세계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의 틀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내용상 사회파에 가까운 특성을 보이고 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용이 전개될수록 추리소설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기본적인 감상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의식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약간의 생경함을 느끼게 되었고요. 독특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작가만의 개성이 확연히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당연히 범인이 누구인가? 범행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동기는 무엇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등의 의문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면 짜릿한 반전에 놀라기도 하고, 사건의 이면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 드러나게 되기도 합니다. 범인이 누구냐의 여부나 범행 수법 등에 주목하게 되면 본격 추리소설 쪽으로 분류하게 되고, 범죄의 동기나 사회적 풍조가 강조되면 사회파 추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게 됩니다.


   "붉은 소파"는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범행이 일어났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스토리를 끌고 가는 것도 맞고, 극 초반부터 중요한 단서를 정석적으로 잘 흘려주고 있고 결말 부분의 반전도 좋아서 기술적으로 거의 완벽한 추리소설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읽으면서는 누가 범인인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그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갈등과 상처, 회복과 구원을 향한 갈망과 집념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문단에서 원하는 순문학적 특성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느낌입니다.



#2. "붉은 소파"에 담긴 결정적 순간


   이 작품에 담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상처에 대처하는 집요한 "태도"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기도 하면서 참으로 잔혹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그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결정짓는 것은 개개인의 경험이고 천국과 같은 경험이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지옥 같은 경험은 주로 타인에 의해 강요됩니다. 한편 극복하기 더욱 난해한 것은 가족에게서 비롯된 상처입니다.


   주인공 석주는 전형적인 예술가입니다. 무척 예민하다는 의미입니다. 무난하고 평범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집착하고 집요하게 행동하는데, 사이코패스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딸이 살해당한 지옥 같은 경험이 주인공을 비정상의 일상으로 초대하는데, 그 이면에는 누이의 죽음이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원투펀치 쓰리 강냉이 수준의 충격을 받으면 맛이 가기 마련입니다.


   석주가 그냥 피해자이기만 하면 읽기가 편하겠습니다. 주인공에 공감하고 동정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면 되지요. 그런데 책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누님의 죽음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석주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석주는 스스로 그 사실을 인지합니다. 이제 범인을 쫓는 행적과 스스로의 죄책을 처리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 연쇄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자들이 뒤섞여서 무척 복잡한 형국으로 흘러갑니다.


   저자가 어디선가 이야기 구조는 잘 짜는데 캐릭터의 부재 때문에 고전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기억이 있는데 적어도 이 작품만을 놓고 보면 저에게는 캐릭터가 너무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힘들었던 케이스입니다. 저로서는 석주는 물론 재혁도 나영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국에 대해서도 이입을 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진도를 빨리 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붉은 소파"에 앉거나 누운 사진을 매개로 연결되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예외 없이 다가옵니다. 나의 붉은 소파는 무엇이며, 붉은 소파에서 안식하고 싶은 기억과 고통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 나갈 거냐고 묻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책을 다 읽은 지 이틀째가 지나가는데도 아직도 고민스럽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특별하고 이상한 존재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분리해버리면 속 편하게 털겠는데 분명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사이코 패스적 특징을 한껏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말과 행동이 남 일 같이 않은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일부분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괴롭고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주인공도 조연도 모두 안쓰럽고 아픕니다.



#3. "붉은 소파"를 넘어서야 할 작가의 과제에 대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품의 메시지와 상관없이 머리가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영주 작가가 기존에 발표했던 초기작을 생각해보면 셜록 홈스 오마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거나 팩션 소설에 인간의 내면에 담긴 문제를 잘 녹여낸 작품 등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거기에 좀 더 인간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문제를 다뤄내어 상당히 무거운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독자를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가볍게 추리소설적 특징에 집중해서 읽는 독자에게는 "생각보다는 가독성이 좋지 않고, 막 재미지지는 않았다."라는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한편, 이 작품을 진지하게 접근하는 독자에게는 추리소설적 요소가 방해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치 예술영화처럼 평론가의 별점은 높은데 정작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하는 형국으로 갈 위험성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작품인데 안 팔릴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저자가 방향을 잘 못 잡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이는 결국 한국 문학계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데, 이른바 "맨 부커상 신드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독자들은 좋은 책을 고르고 고를 여력이 없고 그럴 정성도 없습니다. 그냥 사서 읽을 책을 선택할 때 가능한 권위에 기대려 하는 것이죠. 유행에 민감한 것도 한몫하고 말입니다.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자신의 책을 알리고 최소한의 판매 부수를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입니다. 이를테면 저 같은 사람이 블로그서 "A라는 책이 유명 출판사에 유명 저자는 아니지만 내용이 너무 좋아요~~"라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그런가 보다 할 정도지 구매로까지 이어질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적어도 '한번 읽어나 볼까?' 하는 정도까지는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일단 무대에 올라야 노래 한 곡을 완창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개인기라도 선보일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현실에서 이번 작품은 무척 영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 계약하기 위해 보여준 이번 작품이 평단과 상관없는 평범한 독자들에게 마냥 호평을 받을 수 있을지 약간의 의문이 생깁니다. 계속 언급했듯이 상당히 진지하고 깊은 주제의식으로 독자가 후루룩 읽기에는 무척 불편한 작품입니다. 평소 읽던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책장을 넘기다가는 '이거 뭐지?'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차기작을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오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저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신없는 "곡성"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다양한 해석을 쏟아내는 현상을 염두에 두면 성숙한 독자들이 좋은 평가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영주 작가의 차별화된 작품 성향이 무척 좋습니다. 더 좋은 작품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장르와 순문학의 경계를 확실히 허물어내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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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술래 - 과자장수가 골목에서 만난 바삭 와삭 와락 왈칵하는 이야기
박명균 지음 / 헤르츠나인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1. 여러가지로 놀라게 만드는 에세이


   이 에세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동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함께한 작지만 재미있고, 시시한 시작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거였다. (중략) 그냥 얼마만큼 왔나 시작을 한 번 뒤돌아본다. 꽤 온 듯하다. 그 시시한 시작에 비하면, 바다까지 갈 생각이다. 지금은 바다에 꽤 가까워져 있는 편이다. 바다 냄새가 난다." p136~137


   작가의 말처럼 전반부 100여 페이지는 정말 시작을 말합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시간과 장소, 인물들, 일어났던 일들, 그리고 그 당시의 공기와 냄새까지 깜짝 놀랄 만큼 디테일하게 기억해내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터 두뇌인가 싶을 만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시의 정취와 감상들, 잊지 말아야 할 추억을 꼼꼼하게 곱씹어 줍니다.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저자 박명균이란 분을 잘 알게 된 듯한 착각이 들어요. 그만큼 무척 솔직한 생활밀착형 글들이 담겨있습니다. 흔하다면 흔한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와 고생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흐르고 있어요. 사실 초반에는 이게 양날의 검과 같아서 애매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딱히 애정도 없는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하나하나까지 제가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1/4지점까지는 묘한 향수와 애잔한 마음, 감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면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을 만큼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공감반, 거리감 반 정도의 느낌?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이 친해지는 최소한의 시간도 없이 본인 살아온 이야기며 속 깊은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느낌이 좀 있었거든요. 부담스럽게 말입니다.


   그 지점을 넘어서기 시작하니까 놀랄 만큼 공감되는, 저자의 희로애락이 담긴 담담한 글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음.. 압도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권위에는 조금 반발하고 불편해하는 편입니다. 인간의 평등 원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형편과 환경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악착같이 최선을 다하며 글까지 쓰는 저자의 삶을 대하니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감동이 있었어요. 그런 형국이다 보니 글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는데 다 읽고 가만 생각해봐도 좋은 글입니다.



#2. 솔직하고 담백한 일상 글, 그러나 짜임새 있는 글들


   초반에 몇 장 읽으면서는 출판사에서 왜 이런 "팔리지도 않을 글"과 "듣보잡 저자"를 내세워서 책을 출간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법 들었는데, 어느덧 편집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출간했을지 충분히 수긍이 가더군요. '음.. 책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들 만 했겠는걸..'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글들이었으니까요.


"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무난한 일상과 간간이 빛나는 기쁨이었지만, 내 삶을 만드는 건 아프게 울었던 일들이었다.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그리고 같이 우는 것이 내겐 삶의 보상이었다. 내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순간들은 항상 아프게 울었던 일이었는데, 그 안에 항상 보상이 있었다. 그 보상들은 내 가슴에 보관되었다. 어쩌면 내가 안아준 가슴들은 내 가슴이었는지도 모른다." p.138


   이 책이 단순히 일상 잡글만 담긴 건 아닙니다. 나름 짜임새가 좋아요. 초반 어린 시절의 향수와 시작을 이야기한다면 중반에는 작가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 과자 장수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작가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도 곁들여지는데 이 이야기들이 또 진국입니다. 작가의 관찰력도 돋보이고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도 확인할 수 있어요.


   말미에 이르러서는 이 나라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합니다. 본인이 직접 당한 이야기, 주변 소시민들이 겪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 직접적인 주장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구조적으로 가난이 이어지는지,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인지 아주 설득력 있게 들려줍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본인이 온몸으로, 인생으로 겪은 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고 있어요. 저 역시 모양새는 전혀 다르게 살았지만 비슷하게 느껴오던 것들이죠. 흙수저들끼리 통했다고나 할까.. 그런 동질감으로 불끈하게 만드는 애잔함이 있어요.


"처음부터 하지 않으면 되는데 창고 임대기간이 있고, 기존에 하던 통신판매는 되지 않고, 당장 때려치우기엔 뭔가 이유가 없어서 방법을 찾고 찾아가면서 이렇게 돼버린 거다. 얼렁뚱땅하는 사람이 아니라, 치밀한 사람이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모든 노력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물이 손해인 셈이다. 그 손해를 보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는 것이 열받는 거다."p306 


   위 발췌한 부분은 거래처이던 권 사장이라는 분이 통신판매를 하다가 치열한 가격경쟁에 활로를 찾다가 대기업 판매대행에 끼어들었고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손해만 보고 기존에 하던 일마저 털어먹고 사업을 포기하는 것을 바라보며 쓴 글의 일부분입니다. 대기업이 입점 업체는 손해가 나건 말건 수수료만 챙기고 나가떨어지면 다른 판매업자를 찾고 그것도 아니면 공급처와 직거래를 해버리는 형태에 대해, 그 과정에서 삶이 망가지는 소상인들에 대한 한 단면을 그리고 있어요.


   이런 것뿐 아니라 과자 공급자인 본인이 주변 거래처인 구멍가게와 슈퍼, 문방구들이 대기업 체인에 밀려 없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느낀 소회들이 가감 없이 적혀있어요. 가난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말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더 단단히 계급화되어가는지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자를 팔며, 운전을 하며 시간을 내어 삶을 기록하고 글을 이어갑니다. 세상을 사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 뻔한 진리를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일단 가지고 봐야 말발도 먹히는 거지.'하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던 것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글입니다.


   아무래도 세대나 성별에 따라 개취가 많이 작용할 만한 내용이기는 합니다. 젊은 세대들의 노곤함은 전혀 다른 지점에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책이 유명 저자들의 책만큼 많이 팔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요. 대부분 이 책을 살 돈으로 한강 작가의 화제작을 사겠지요. 바로 여기에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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