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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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코패스를 다룬 20년전 하드코어 호러 소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은 블로그 이웃님들께 무서운 소설을 추천해달라고 부탁드렸을 때 "샤이닝"과 더불어 압도적으로 많은 분들이 추천해주신 작품으로 한마디로 독자들에게 오랜세월 검증된 무시무시한 작품입니다. 역시 잘 안 읽은 장르를 접할 때는 그 분야의 레퍼런스부터 접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사이코패스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 언제 얼마나 있었는지 찾아보고 싶지만 매우 귀찮으므로 역시나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기로 합니다. 왜냐면 20여년 전에 쓰여진 이 작품에서 사이코패스를 다루는 뉘앙스는 "사이코패스라는 것이 있는데,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그러하다." 뭐 이런 느낌이거든요. 작금에 와서 사이코패스가 작품에 전면적으로 등장한다 하여 "그게 뭐야?"라는 반응을 보일 독자는 거의 없겠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작품은 나름 최신 트렌드를 공부해서 준비하는 작가의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에는 공포물이 나름 다양한 장르로 성행하는 편인 듯한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 분야가 호러 자체이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목 댕강 피 철철"류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갑자기 훅 나타나서 놀래는 "전설의 고향"류의 호러가 더 잘 통하는 분위기인데, "검은 집"은 전반적으로 "목 댕강 피 철철"쪽에 가깝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는 피 말리고 쫄리는 느낌이야 충분히 좋지만 역시나 잘근잘근 잘라내고 썰고 피도 쪽쪽 뽑는 그런 하드코어 쪽에 주력함으로써 사이코패스의 무시무시함을 알리려는 목적성이 강합니다.

 

   당시 대중들에게는 익숙하지 않는 소재이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큰 문제를 다룬 것으로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기도 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사례연구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2, 나는 내가 더 무섭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랄까? 그것은 바로 제 자신이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치 주인공 신지가 사이코패스를 죽이고서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많은 분들이 무시무시하다고 추천해주신 이 작품이 왜 이렇게 안 무섭던지요. 중반까지는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생명보험사기라등가 이런저런 문제에 대한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에서 흥미를 느끼기는 했지만 솔직히 호러소설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중반이 지나면서 슬슬 한사람 한사람 죽어나가면서도 후덜덜하거나 막 잔인하다는 느낌보다는 공포영화에서 전형적으로 느끼는 멍청이 주인공 증후군에 대한 속 터짐 증상이 나타나더군요. '아, 미친놈. 편지를 굳이 왜 써? 거기서 아는 척을 왜 하냐고.. 굳이 거길 왜 들어가?' 뭐 이런 거 있죠. 원활하게 호러스러운 분위기와 스토리를 이어나가기 위해 현실세계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만한 짓을 주인공이 척척한다는 겁니다. 그냥 모른척하고 외면하면 되는데 굳이 나서서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죠. 마치 각본을 보고 움직이는 것처럼요. 이부분이 속터져가지고 무서운지 어떤지 그닥..(나도 사이코패스 기질이 있는 것인가?) 다만 마지막 결말 부분에 주인공이 사이코패스에게 쫓기는 장면에서는 심장이 제법 쫄깃해졌습니다. 주인공이 이긴다는 거 다 알고 보면서도 무서우면 꽤나 무서운가다잉.

 

 

#3. 대단한 필력, 교훈은 적당히...


   작가들이 글을 쓰기 전에 너무 공부를 많이 하면 안 됩니다. 기시 유스케는 초보 작가들이 실수하는 것처럼 심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살짝 사회파와 계몽주의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비틀거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캐릭터들을 통해, 스토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거나 어느 정도 연출된 모습이라 할지라도 독자가 고민할 것들을 던져주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인생의 놀라운 교훈을 얻자고 호러소설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말입니다. 


   이 소설에는 전반적으로 사이코패스를 인정할 것인가? 사회에서 경리해야 하는가? 과연 사회에 해악을 미치는 존재는 누구인가? 등등의 문제들을 놓고 다양하고 심도 있는 고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고민했던 것들을 지문으로 막 쏟아내는 정도의 최악의 실수는 하고 있지 않지만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대화와 논쟁 등을 통해 조금은 지나칠 정도의 교훈을 던져주려 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대단히 필력이 좋아서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하고 넘어갔지 안 그랬으면 '뭘 자꾸 가르쳐?'라며 짜증이 꽤나 났을 듯합니다. 


   독자들을 상대로 쉽게 설명해둔 사이코패스에 관한 연구서적이라든가, 심리학 입문서라든가 교양서적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범죄학에 대한 책도 많고요. 누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사이코패스에 대한 사회학을 연구하거나 강의를 듣거나 윤리학을 따지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런 부분이 조금 절제가 되었다면 훨씬 읽기 편하고 받아들이는 자유도가 높았을 것인데 살짝 아쉬웠습니다. 모쪼록 교훈은 적당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꼰대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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