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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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쓴다는 것...

 

   제가 하루키 슨상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글을 잘 쓰기 때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호불호도 많고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단편, 장편소설은 물론 에세이까지 언제나 그 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습니다. 소설은 소설대로 에세이는 에세이대로 하루키의 글을 읽는 맛이 있어요. 이를테면 대한민국에 노래 잘하는 사람은 지겨우리만큼 넘쳐나지만 가왕 조용필 사마의 노래를 들으면 '아, 조용필이구나!' 반응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과 같죠.

 

   글이라는 게 누구나 원하는 데로 표현할 수 있지만 잘 다듬어진 음악처럼 특유의 리듬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편안하고 즐겁게 읽기가 의외로 쉽지가 않아요. 저는 대체로 입에서 나오는 데로 뱉듯이 막 쓰는 편인데다가 글이 좀 길고 장황하죠. 생겨먹기를 그렇게 생겨먹은데다가 딱히 프로페셔널도 아니고 해서 이 나이에 뭐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했습니다만 SSG 읽으면 SSG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하루키 슨상이 재즈에 심취한 것도 이 양반이 전문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제가 일본어도 모르고 영문으로 책을 읽을 만큼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라 번역본 말고 원문의 문장감을 느끼기는 어렵지만 번역된 글을 읽어도 무척 편안한데다가 마치 대화를 하는 듯이 무리 없이 읽어지는 것은 그만큼 쉽고 좋은 문장을 구사한다는 의미겠지요. 그리하여 하루키 슨상의 에세이가 항상 그랬듯이 옆집 아저씨의 수다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다가 편안하게 읽었습니다. 다만 이번 에세이의 경우는 기존에 접했던 에세이보다는 내용이 조금은 더 무겁기는 했어요.

 

 

#2. 하루키식 에세이 쓰기라는 것...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그러네요. 세상에 모두 모두 부러운 것 투성이입니다. 하루키식 에세이 쓰기처럼 써보자면 이렇게 되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질투를 잘 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 양반은 그 양반대로 노래를 잘하고 또 저 양반은 저 양반대로 악기를 잘 다루는 참 좋겠어.. 나야 뭐 생긴 대로 사는 거지.' 정도에서 멈추죠. 누군가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다지 부럽지는 않습니다. 저는 저대로 또 잘하는 게 있으니까요."

 

   대충 이런 느낌의 글들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엄청 쿨하다고 계속 우기면서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얘기도 중간중간에 끼워 주면서 분명 뭔가 변명 같은데 본인이 아니라고 하니 변명이라고 단정 짓기는 좀 뭐하고 그래도 뭔가 계속 굳이 말하는 거보니 변명 같기도 한 내용으로 계속 채우고 있어요.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니까... 문단에서 나를 욕하던데, 상을 못 탄다고 무시하던데,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진짜 괜찮다... 나는 정말 괜찮아..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아. 정말 신경 쓰지 않는다니깐.. 오해할까 봐 얘기하는 건데 나는 정말 괜찮아요~~" 이런 내용 말입니다. 계속 읽다 보면 이런 스탠스가 좀 웃기기도 하고 참 독특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루키식 에세이는 그래요. 다 읽어본 것도 아니고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제가 느끼기엔 "쿨하지만 쿨하지 못해 미안한 동네 아저씨의 고백" 같은 겁니다. 그래서 자랑 같기도 하지만 아닌 것도 같은 이야기도 많고 말이죠. 엄청 고생했다고 우기면서 또 까이꺼 별거 아닌데 뭐라고 하기도 하고 웃깁니다. 그래서 재미있어요. 하루키식 에세이의 매력은 여기에 있습니다. 좀 애쓴다는 생각도 들면서 피식피식 웃게 만듭니다. 저 대단한 하루키 슨상이 말이죠.

 

 

#3.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것.

 

   근래에 참 많이 느끼지만 소설가라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말 일반화가 불가능한 독특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디 내놔도 동질감을 가지긴 힘든, '무리 아닌' 무리가 아닌가 싶어요. 문단에 속해서 어떤 소속감을 누리는 사람들은 개중 독특함이 좀 덜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죠. 서로 서로를 따돌리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고독자이기도 한 묘한 직업이죠.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보다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매력이 있지만 선뜻하기 힘든 직업이기도 합니다.

 

   하루키 슨상의 지적처럼 소설가만큼 진입장벽이 낮은 일도 없기는 합니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직종은 어디나 경쟁이 드럽게 치열하기 마련이고 소설가도 역시나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궤도 오르기란 드럽고 드럽게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잠깐 생각해봤던 작가라는 직업을 애당초 포기했습죠. 저는 포기가 번개처럼 빠르거든요. 어디 가서 내세울 만한 저의 장점입니다.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지 않아요. 게다가 가만 보면 저는 상당히 규칙적이고 예상 가능한 일상을 영위하죠. 큰 틀에서 모양새가 몇 번 변하기는 했지만요. 루틴한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작가들은 하루키 슨상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작가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아요. 감정적으로 섬세하기 때문에 칼같이 규칙적으로 생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출퇴근을 안 해서 작가가 무척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출퇴근이 없는 직업이 정말 지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키 슨상은 드럽게도 규칙적으로 작가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 같은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마다 다들 제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글을 쓰고, 퇴고하는 것입니다. 정답도 없고 표준도 없는 소설가라는 직업은 분명 타고난 자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더욱 견고하게 하게 됩니다. 여튼 누가 뭐래도 충실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하루키 슨상이 참으로 부럽군요. 오늘은 뭔가... 뜬구름 잡는 소리를 계속하는 기분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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