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1. 추리소설의 옷을 입은 순문학 작품


   조영주 작가의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붉은 소파"는 풍문에 "추리소설로 세계문학상을 받은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들었습니다만 전혀 이례적이지 않네요. 개인적인 소감을 정리하자면 "추리소설의 외연을 입은 순문학 소설"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세계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본격 추리소설의 틀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거기에 내용상 사회파에 가까운 특성을 보이고 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용이 전개될수록 추리소설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기본적인 감상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의식이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약간의 생경함을 느끼게 되었고요. 독특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작가만의 개성이 확연히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은 당연히 범인이 누구인가? 범행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동기는 무엇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등의 의문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면 짜릿한 반전에 놀라기도 하고, 사건의 이면에 가려진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 드러나게 되기도 합니다. 범인이 누구냐의 여부나 범행 수법 등에 주목하게 되면 본격 추리소설 쪽으로 분류하게 되고, 범죄의 동기나 사회적 풍조가 강조되면 사회파 추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게 됩니다.


   "붉은 소파"는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범행이 일어났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스토리를 끌고 가는 것도 맞고, 극 초반부터 중요한 단서를 정석적으로 잘 흘려주고 있고 결말 부분의 반전도 좋아서 기술적으로 거의 완벽한 추리소설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읽으면서는 누가 범인인지,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됩니다. 그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적 갈등과 상처, 회복과 구원을 향한 갈망과 집념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문단에서 원하는 순문학적 특성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느낌입니다.



#2. "붉은 소파"에 담긴 결정적 순간


   이 작품에 담긴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상처에 대처하는 집요한 "태도"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기도 하면서 참으로 잔혹한 세계이기도 합니다. 그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결정짓는 것은 개개인의 경험이고 천국과 같은 경험이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지옥 같은 경험은 주로 타인에 의해 강요됩니다. 한편 극복하기 더욱 난해한 것은 가족에게서 비롯된 상처입니다.


   주인공 석주는 전형적인 예술가입니다. 무척 예민하다는 의미입니다. 무난하고 평범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집착하고 집요하게 행동하는데, 사이코패스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딸이 살해당한 지옥 같은 경험이 주인공을 비정상의 일상으로 초대하는데, 그 이면에는 누이의 죽음이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원투펀치 쓰리 강냉이 수준의 충격을 받으면 맛이 가기 마련입니다.


   석주가 그냥 피해자이기만 하면 읽기가 편하겠습니다. 주인공에 공감하고 동정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면 되지요. 그런데 책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누님의 죽음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석주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석주는 스스로 그 사실을 인지합니다. 이제 범인을 쫓는 행적과 스스로의 죄책을 처리하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에 연쇄살인의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자들이 뒤섞여서 무척 복잡한 형국으로 흘러갑니다.


   저자가 어디선가 이야기 구조는 잘 짜는데 캐릭터의 부재 때문에 고전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기억이 있는데 적어도 이 작품만을 놓고 보면 저에게는 캐릭터가 너무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힘들었던 케이스입니다. 저로서는 석주는 물론 재혁도 나영도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국에 대해서도 이입을 하다 보니 정신이 없어서 진도를 빨리 나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붉은 소파"에 앉거나 누운 사진을 매개로 연결되는데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도 예외 없이 다가옵니다. 나의 붉은 소파는 무엇이며, 붉은 소파에서 안식하고 싶은 기억과 고통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 나갈 거냐고 묻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책을 다 읽은 지 이틀째가 지나가는데도 아직도 고민스럽습니다. 사이코패스가 등장하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특별하고 이상한 존재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분리해버리면 속 편하게 털겠는데 분명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사이코 패스적 특징을 한껏 가지고 있는데, 이들의 말과 행동이 남 일 같이 않은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일부분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괴롭고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주인공도 조연도 모두 안쓰럽고 아픕니다.



#3. "붉은 소파"를 넘어서야 할 작가의 과제에 대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품의 메시지와 상관없이 머리가 복잡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영주 작가가 기존에 발표했던 초기작을 생각해보면 셜록 홈스 오마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거나 팩션 소설에 인간의 내면에 담긴 문제를 잘 녹여낸 작품 등이 있는데, 이번 작품은 거기에 좀 더 인간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문제를 다뤄내어 상당히 무거운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독자를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면이 있습니다. 가볍게 추리소설적 특징에 집중해서 읽는 독자에게는 "생각보다는 가독성이 좋지 않고, 막 재미지지는 않았다."라는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한편, 이 작품을 진지하게 접근하는 독자에게는 추리소설적 요소가 방해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마치 예술영화처럼 평론가의 별점은 높은데 정작 일반인들에게는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하는 형국으로 갈 위험성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좋은 작품인데 안 팔릴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저자가 방향을 잘 못 잡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이는 결국 한국 문학계의 한계일 수밖에 없는데, 이른바 "맨 부커상 신드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바와 같이 독자들은 좋은 책을 고르고 고를 여력이 없고 그럴 정성도 없습니다. 그냥 사서 읽을 책을 선택할 때 가능한 권위에 기대려 하는 것이죠. 유행에 민감한 것도 한몫하고 말입니다.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는 것은 자신의 책을 알리고 최소한의 판매 부수를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입니다. 이를테면 저 같은 사람이 블로그서 "A라는 책이 유명 출판사에 유명 저자는 아니지만 내용이 너무 좋아요~~"라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그런가 보다 할 정도지 구매로까지 이어질 확률은 매우 낮은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성공한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적어도 '한번 읽어나 볼까?' 하는 정도까지는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일단 무대에 올라야 노래 한 곡을 완창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개인기라도 선보일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현실에서 이번 작품은 무척 영민한 선택이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 계약하기 위해 보여준 이번 작품이 평단과 상관없는 평범한 독자들에게 마냥 호평을 받을 수 있을지 약간의 의문이 생깁니다. 계속 언급했듯이 상당히 진지하고 깊은 주제의식으로 독자가 후루룩 읽기에는 무척 불편한 작품입니다. 평소 읽던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책장을 넘기다가는 '이거 뭐지?'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차기작을 어떤 작품을 들고 나오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저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신없는 "곡성"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다양한 해석을 쏟아내는 현상을 염두에 두면 성숙한 독자들이 좋은 평가를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조영주 작가의 차별화된 작품 성향이 무척 좋습니다. 더 좋은 작품을 계속 읽고 싶습니다. 장르와 순문학의 경계를 확실히 허물어내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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