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술래 - 과자장수가 골목에서 만난 바삭 와삭 와락 왈칵하는 이야기
박명균 지음 / 헤르츠나인 / 2016년 5월
평점 :
품절


 

 

 

 

 

#1. 여러가지로 놀라게 만드는 에세이


   이 에세이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동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함께한 작지만 재미있고, 시시한 시작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거였다. (중략) 그냥 얼마만큼 왔나 시작을 한 번 뒤돌아본다. 꽤 온 듯하다. 그 시시한 시작에 비하면, 바다까지 갈 생각이다. 지금은 바다에 꽤 가까워져 있는 편이다. 바다 냄새가 난다." p136~137


   작가의 말처럼 전반부 100여 페이지는 정말 시작을 말합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시간과 장소, 인물들, 일어났던 일들, 그리고 그 당시의 공기와 냄새까지 깜짝 놀랄 만큼 디테일하게 기억해내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슈퍼컴퓨터 두뇌인가 싶을 만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리고 당시의 정취와 감상들, 잊지 말아야 할 추억을 꼼꼼하게 곱씹어 줍니다.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저자 박명균이란 분을 잘 알게 된 듯한 착각이 들어요. 그만큼 무척 솔직한 생활밀착형 글들이 담겨있습니다. 흔하다면 흔한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와 고생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흐르고 있어요. 사실 초반에는 이게 양날의 검과 같아서 애매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딱히 애정도 없는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하나하나까지 제가 읽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게 1/4지점까지는 묘한 향수와 애잔한 마음, 감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면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싶을 만큼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공감반, 거리감 반 정도의 느낌? 마치 처음 만난 사람이 친해지는 최소한의 시간도 없이 본인 살아온 이야기며 속 깊은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느낌이 좀 있었거든요. 부담스럽게 말입니다.


   그 지점을 넘어서기 시작하니까 놀랄 만큼 공감되는, 저자의 희로애락이 담긴 담담한 글이 저를 압도했습니다. 음.. 압도당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권위에는 조금 반발하고 불편해하는 편입니다. 인간의 평등 원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형편과 환경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악착같이 최선을 다하며 글까지 쓰는 저자의 삶을 대하니 그 자체만으로 상당한 감동이 있었어요. 그런 형국이다 보니 글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는데 다 읽고 가만 생각해봐도 좋은 글입니다.



#2. 솔직하고 담백한 일상 글, 그러나 짜임새 있는 글들


   초반에 몇 장 읽으면서는 출판사에서 왜 이런 "팔리지도 않을 글"과 "듣보잡 저자"를 내세워서 책을 출간했을까? 하는 의문이 제법 들었는데, 어느덧 편집자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출간했을지 충분히 수긍이 가더군요. '음.. 책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 들 만 했겠는걸..'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글들이었으니까요.


"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무난한 일상과 간간이 빛나는 기쁨이었지만, 내 삶을 만드는 건 아프게 울었던 일들이었다. 사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그리고 같이 우는 것이 내겐 삶의 보상이었다. 내 가슴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순간들은 항상 아프게 울었던 일이었는데, 그 안에 항상 보상이 있었다. 그 보상들은 내 가슴에 보관되었다. 어쩌면 내가 안아준 가슴들은 내 가슴이었는지도 모른다." p.138


   이 책이 단순히 일상 잡글만 담긴 건 아닙니다. 나름 짜임새가 좋아요. 초반 어린 시절의 향수와 시작을 이야기한다면 중반에는 작가가 한 가정의 가장으로 과자 장수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작가 주변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도 곁들여지는데 이 이야기들이 또 진국입니다. 작가의 관찰력도 돋보이고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도 확인할 수 있어요.


   말미에 이르러서는 이 나라의 구조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합니다. 본인이 직접 당한 이야기, 주변 소시민들이 겪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어 직접적인 주장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구조적으로 가난이 이어지는지, 개인의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인지 아주 설득력 있게 들려줍니다. 책으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본인이 온몸으로, 인생으로 겪은 일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한계와 모순을 드러내고 있어요. 저 역시 모양새는 전혀 다르게 살았지만 비슷하게 느껴오던 것들이죠. 흙수저들끼리 통했다고나 할까.. 그런 동질감으로 불끈하게 만드는 애잔함이 있어요.


"처음부터 하지 않으면 되는데 창고 임대기간이 있고, 기존에 하던 통신판매는 되지 않고, 당장 때려치우기엔 뭔가 이유가 없어서 방법을 찾고 찾아가면서 이렇게 돼버린 거다. 얼렁뚱땅하는 사람이 아니라, 치밀한 사람이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모든 노력을 통해서 얻어낸 결과물이 손해인 셈이다. 그 손해를 보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는 것이 열받는 거다."p306 


   위 발췌한 부분은 거래처이던 권 사장이라는 분이 통신판매를 하다가 치열한 가격경쟁에 활로를 찾다가 대기업 판매대행에 끼어들었고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손해만 보고 기존에 하던 일마저 털어먹고 사업을 포기하는 것을 바라보며 쓴 글의 일부분입니다. 대기업이 입점 업체는 손해가 나건 말건 수수료만 챙기고 나가떨어지면 다른 판매업자를 찾고 그것도 아니면 공급처와 직거래를 해버리는 형태에 대해, 그 과정에서 삶이 망가지는 소상인들에 대한 한 단면을 그리고 있어요.


   이런 것뿐 아니라 과자 공급자인 본인이 주변 거래처인 구멍가게와 슈퍼, 문방구들이 대기업 체인에 밀려 없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느낀 소회들이 가감 없이 적혀있어요. 가난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말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더 단단히 계급화되어가는지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과자를 팔며, 운전을 하며 시간을 내어 삶을 기록하고 글을 이어갑니다. 세상을 사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 뻔한 진리를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일단 가지고 봐야 말발도 먹히는 거지.'하고 나도 모르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던 것을 한 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글입니다.


   아무래도 세대나 성별에 따라 개취가 많이 작용할 만한 내용이기는 합니다. 젊은 세대들의 노곤함은 전혀 다른 지점에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 책이 유명 저자들의 책만큼 많이 팔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요. 대부분 이 책을 살 돈으로 한강 작가의 화제작을 사겠지요. 바로 여기에 안타까움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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