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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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스트 라이터 강원국씨

   제가 대통령이 글을 어떻게 썼는지에 딱히 관심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순전히 저자 때문입니다. 강원국씨는 2대에 걸쳐 8년간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연설문을 쓰는 연설비서관으로 지냈습니다. 이분이 다른 매체에서 청와대 시절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는데 에피소드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이분의 태도에 반해버린 것이죠.

   청와대라는 곳은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오죽하면 청와대에 출입하는 전기수리공이 주변 사람에게 자기에게 잘 보이라며 으스대면서 필요한 거 있으면 해줄 수 있다고 떠들었다는 소리가 제 귀에까지 들렸겠습니까? 그런 곳입니다. 얄팍한 사람의 권위의식을 자극하기 아주 좋은 곳이죠.

   제가 이분의 실제 인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글과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분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서 내비치는 태도는 겸손 그 자체였거든요. 저는 약간 과하다 싶은 정도로 겸손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충분히 거들먹거리기 좋은 배경을 가진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극소수만 경험할 수 있는 자리에 오랫동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을 개, 돼지라 칭하는 잡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격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낮춰서 사람들의 공감과 웃음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이따위 시대에선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과 태도는 보았으니, 이 분의 글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책 내용과 직접 상관이 없는 것을 장황하게 쓰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보다는 이 저자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욱 많은 교훈과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의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관음증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흔히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못 했던 희귀한 경험을 전해 듣거나 슬쩍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인 전임 대통령들과 함께 생활하고 호흡하고 그들의 말과 생각을 공유하는 특별한 체험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 분이 연설문을 쓰는 과정에서 겪었던 두 대통령들과의 일상 이야기나 에피소드들은 그야말로 웃음을 절로 자아냅니다. 훌륭한 재료에 좋은 요리가 나오듯이 이는 결국 두 대통령들이 훌륭한 분들이었기에 좋은 에피소드들이 넘쳐나는 것일 테지요. 현 정부의 연설 비서관이 과연 내세울 에피소드나 있으려나 의문입니다.

   사실 이 책은 글쓰기 요령을 전달하는 책이기보다는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두 분 전 대통령 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면이 훨씬 강한 책입니다. 그리하여, 두 대통령이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기에는 해롭습니다.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취향에 맞는 "대통령의 시간" 같은 책을 읽으시면 되시겠습니다.

   저는 두 대통령들의 철학과 평소 생활 방식과 국민들에 대한 생각, 국정 철학 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두 분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는 논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두 분 모두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의지가 깊은 분들이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충분한 책이었습니다.

#3. 그래도 놓치지 않은 글쓰기의 원칙들

   아무래도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보니 중 후반으로 갈수록 글쓰기 요령이나 원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 에피소드로 주의 환기를 충분히 시키고, 글쓰기 노하우에 대한 이야기로 점점 채워가는 형국이지요. 저자 스스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했다가는 지겹다는 원성을 들을 것을 의식하셨는지 중간중간에 계속 두 대통령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합니다. 제발 끝까지 읽어주라~~라고 부탁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글쓰기에 참고할 만한 좋은 팁들이 무척 많이 있었는데, 저 같은 경우는 한눈으로 읽고 한눈으로 흘려버렸습니다. 어차피 앞으로도 제 맘대로 쓸 거니까요. 맘대로 쓰는 게 블로그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인데 그걸 버릴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참, 그러고 보니 다른 글쓰기 책과 차이는 분명히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연설 비서관이시다 보니 일반 글쓰기보다는 연설문을 쓸 때에 준한 유의점이라거나 꿀팁들을 전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읽으면서 '아, 나는 연설문 쓸 일도 없는데 뭘 계속 연설문 쓰는 요령을 이리 설명하시나?'하는 생각이 좀 들었단 것입니다. 이번 생에는 크게 연설할 일은 없을 듯 하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습니다.

   또한, 내용 전반에 걸쳐 대통령들이 주문한 특별한 지시사항, 지적사항, 요구사항 등이 수시로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벌써 다 잊어버린 느낌이라 휘발성 지식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말입니다.

   그리하여 글쓰기 팁을 얻고 싶은 분들이거나,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들의 숨겨진 일화가 궁금하신 분들이거나, 지난번과 이번 정권의 대통령님들의 연설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 느끼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읽으셔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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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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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에 충실한 스릴러

   저는 데이비드 발다치라는 저자를 처음 만나는데 기본에 충실하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습니다. 장르소설의 미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일단 지루하지 않고 가독성이 뛰어납니다. 문장이 좋고 나쁨이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읽는데 전혀 거슬림은 없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해야겠지요. 사실은 번역이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만 일단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의 전개를 가진 스토리에서 주인공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원맨쇼라고 해야 할 정도로 주인공이 좌충우돌 돌아다니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점에서도 이 작품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자체가 훌륭한 하드웨어를 가졌지만 완벽한 외모는 아니라 거부감은 없는 살찐 아저씨 같은 느낌입니다. 제목처럼 과잉기억 증후군을 후천적으로 얻었고 그 능력을 활용해 사건을 풀어나가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와 달라진 스스로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거짓말 같은 기억력이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게 잘 안배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 인물들도 주인공 못지않게 입체적인 캐릭터와 적절한 비중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한몫 들 하고 있습니다. 사건에도 적당히 개입하고 일부는 해결에 기여를 하며, 한편으로는 함께 고통을 받기 때문에 이 작품이 지나친 원맨쇼로 보이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줍니다.

   분량이 꽤나 긴데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전개는 상당히 훌륭하다는 느낌입니다. 이런저런 생각 없이 쭈욱 읽게 만드는 흡입력이 돋보였습니다. 자고로 스릴러는 독자가 위화감 없이 이야기를 끝까지 궁금증과 일말의 위기감을 느끼면서 읽도록 해준다면 성공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 양날의 검이 되는 소재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소재는 "과잉기억 증후군"이라는 현상입니다. 양상이 다양하게 있다고 설명해주고 있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한번 본 것, 들은 것, 기억한 것은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저장이 효율적으로 되어있는지 오래된 기억도 금방 찾아냅니다. 뇌가 하드디스크 같은 고용량 스토리지인데 읽고 쓰는 속도도 엄청 빠르고 색인 시스템이 좋아서 찾기도 엄청 잘 한다는 설정이죠. 게다가 영구 보관되고 말입니다.

   이런 소재가 작품에 캐릭터에게 활용되어 부여되면 정말 난해한 사건을 부여하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도록 스토리를 설계하기 적합합니다. 주인공의 능력치가 거의 치트키 수준이다 보니 과제도 그만큼 난도가 높을 수밖에 없죠. 그렇지 않으면 독자가 시시하게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하여 사건이 너무 복잡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이어서 그 정도 수준에서 몸빵으로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는 어지간한 독자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고민 없이 읽을 수 있죠. 게다가 주인공의 개고생이 남일 같지 않아 감정이입이 잘 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경우 설정 자체는 오랜 스릴러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주인공의 능력이 신선하기 때문에 이색적인 전개가 가능해서 즐겁게 읽을 수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독자가 생소한 인물적 특성을 계속 이해하고 상상해가면서 읽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중간중간 밝혀지는 과거 이야기나 연구소에서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어렵거나 관심이 없어서 힘들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통상 이런 경우 리뷰의 평점이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죠. 흔히 호불호가 갈린다고 표현하는 것인데 이 작품도 그럴 가능성이 제법 보였습니다.

   여튼 저는 상당히 흥미롭게 읽은 쪽이었습니다. 사실은 저 같은 경우는 아무 생각 없이 탁월한 하드웨어로 몸빵으로 해결하는 하드보일드 한 스타일을 더 선호하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그런 스타일 외에도 저의 관심을 끄는 부분이 좀 있었거든요. 과잉기억 증후군의 증상 자체보다는 타인과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 상태라든가, 사회 현상이라든가 이런 부분을 조금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3 미국산 범죄 스릴러의 기대 작가

   데이비드 발다치의 소개를 보니 영미권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는 작가로 보입니다만 장르소설의 무덤인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군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범죄소설 작가라는 소개가 무색하게 대한민국에서 듣보잡에 그치고 있는 것만 봐도 역시나 우리나라에서 스릴러 장르는 호러나 SF 못지않게 블랙홀 장르라 하겠습니다.

   이분 앱솔루트 파워 라는 소설을 쓴게 1996년도니 벌써 20년째 성공적으로 작가생활을 해오고 계시는데 국내에 소개가 많이 늦었습니다. 한 두 작품 소개가 되었었는데 그닥 관심을 끌지 못했나 봅니다. 작품도 많고 시리즈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원제 Memory Man)"는 2015년도 작품이니 최근작이고 에이모스 데커 시리즈가 올해 출간 된 "The Last Mile"이 한 작품 더 있군요. 이번 작품의 판매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으면 북로드에서 후속작도 출간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경우는 특정 살인마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벌어지는 지극히 사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데이비드 발다치는 실제로 정치권, 사법제도 등의 비리와 사회현상 등을 고발하는 정통 스릴러를 써왔다고 하니 오히려 다른 작품이 저의 취향을 더욱 저격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른 작품도 꼭 번역되서 출간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뭔가를 잊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도 좀 잊고 싶어요."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도 자기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잊지 못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나는 그 일을 하나하나, 낱낱이 그억해요. 그 일에 관한 건 편생 아무것도 잊지 못할 겁니다.


   역시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크나큰 축복 중 하나다... 나는 너무 많이 망각해서 문제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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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걸작선 12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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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립 K. 딕의 장편과의 만남

   사실은 필립 K. 딕의 장편이 재미가 없기를 바란 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지난번 단편 때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 양반이 나의 사랑 너의 사랑 하인라인 형님을 제치고 세계 3대 SF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받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양반의 이력을 살펴보니 '싫어하면 안되겠다'라는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살아생전에 작품으로 큰 돈을 벌지 못했고, 쌍둥이 여동생이 출생하자마자 죽게 되어 평생을 우울증 및 정신착란 같은 상태에 있었다는 이력 등을 대하니 좀 짠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분도 우주의 기운이 함께해서 넘치는 개시를 작품으로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게다가 나의 사랑 너의 사랑 하인라인 형님에게 돈을 빌린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하인라인 형님이 나름 은인인 셈이니 너그럽게 봐줘야지..'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편 중에 뭘 먼저 읽어볼까 생각하다가 제일 궁금한 건 역시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였습니다. 저는 이런 뭔가 황당무계한 제목을 좋아해요. 엉뚱한 SF 같은 느낌이 확 들지 않습니까?

   일단 읽어보니 딕 형님이 참으로 생각이 많으신 분이란 건 확실했어요. 굳이 분류하자면 소프트 SF 쪽에 가깝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있어 시대와 설정을 미래로 하고 있지만 과학적인 원리 따위는 껍딱을 핥는 수준으로 나오고 그냥 다 "그렇다치고 읽기"로 읽어야 되는 설정들이거든요. 그래도 집필 시기를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의 소재나 주제가 다양하다고 하니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대체로 SF 작가들 중에 작풍으로는 좀 진지한 쪽인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저에게는 무척 좋았습니다. 하인라인 형님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취향에 잘 맞았습니다. 하인라인 형님은 조금 더 테크니컬 한 쪽으로 치중하면서 메시지는 중구난방 오락가락하는 면이 있는 데다가 한편으로는 천진난만 한 느낌이 있는데, 필립 K. 딕은 조금 더 철학적 메시지에 무게중심이 가 있군요. 가독성 면에서 중반에 조금 지루한 면이 있었지만 역시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2. 이 작품에 나타는 중요한 두 가지 철학적 테마들

   한 작품에 크게 두 가지의 철학적 문제를 던지고 있는데, 첫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떤 특질로 인간을 인간이라 규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작품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인데, 안드로이드의 모습과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인간의 특징을 대비해서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작품 속 안드로이드는 겉모습만 보면 인간과 구별을 못할 만큼 정교하고 완벽한데, 정신적인 부분에서 인간과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타인의 입장이나 감정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죠.

   중간에 등장하는 애완용 고양이 주인 부인이 병원으로 고양이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죽게 되자, 남편이 가슴 아파할 것을 걱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과 극명히 비교되는 장면은 안드로이드가 거미의 다리를 일부러 자르고 움직일 수 있는지 관찰을 하다가 죽자 그냥 싱거워하는 장면입니다. 거미의 아픔이나 목숨 따위에는 안중도 없죠.

   당시 작가의 생각처럼 안드로이드가 아무리 정교해도 인간의 공감능력은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으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어떤 것'의 차이를 가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타인에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도 못하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의 존재에 대해서는 작가가 어떻게 반응할지 무척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두 번째는 작품 전반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현실이란 무엇이고, 가상세계란 무엇인가?'입니다. 작품 속에서 머셔 교라는 종교, 집단적 체험을 하게 되는데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상세계로 접속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그런데, 작품의 말미에 주인공 데커드가 접속 장치의 도움도 없이 머셔 교 체험 현상을 경험하게 돼요. 그러니까 현실 속에 가상세계가 곧바로 구현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가상세계는 데커드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인이 사실은 애초에 가상세계 속에서 또 다른 가상세계로 들어가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일지? 뭐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것이죠.

   작품을 읽어보면 상당히 진지하게 이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부수적인 설정과 생각할 부분들이 있어요.

#3.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 양의 꿈을 꾸는가?"

   대체로 좋은 원작을 영화화 한 경우는 원작의 장점과 메시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 합니다. 영화의 장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한데, 모든 메시지를 영상과 등장인물의 대화 장면 등으로 표현을 해야 하죠. 그리고 대중적으로 성공하는 영화를 만들려면 지나치게 진지하기만 해서는 안되니까요.

   그리하여 위에서 언급한 이 책의 주요한 메시지들 중에서 오히려 데커드의 직업인 안드로이드 사냥꾼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자연스레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 그중에서도 인간과 안드로이드도 서로 사랑할 수 있는가? 쪽으로 흘러가면서 예쁜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러브스토리 쪽으로 가닥이 잡힙니다. 다행히 말미에 남성형 안드로이드와의 대립을 통해,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를 보여줌으로써 나름 메시지가 묵직한 영화로 자리 잡고,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명맥을 이어오게 된 것이죠.

   사실 원작 소설에 비하면 영화가 가지는 메시지는 무척이나 궁색하기까지 합니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만 보면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 다수 있어요. 혹시나 블레이드 러너를 찾아보시거나 다시 보실 분들이 계시다면 꼭 원작을 읽어보시고 영화를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훨씬 풍성한 내용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는 제작 연도를 생각할 때,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선보인 영상미만큼은 참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과거에는 2000년대만 되어도 자동차들이 다들 날아다닐 거라는 상상을 많이들 했는데, 이게 참 안타까운 게 대부분의 SF 작가들의 상상력 속에는 자원의 유한성이나 기술의 독점 등에 대한 충분히 현실적인 고려가 없어요. 본인의 천진난만함 만큼이나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아름답고 넉넉하게 나누며 살 거라는 생각들을 하셨던가 봅니다. 지금에 와서 느끼는 우리의 세상은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이 인간들을 바이러스와 가장 가까운 존재로 묘사한 것과 무척이나 유사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 있는 동안 내가 알게 된 것을 공유하고 싶다.
내가 당신 종을 분류하려고 했을 때 알게 되었다.
당신들은 사실은 포유류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 행성 위의 모든 포유류는 그 주변 환경과 본능적으로 자연적 평형을 발전시키지만, 당신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

당신들은 한 지역으로 가서, 거기서 증식하고 또 증식하여 모든 자연 자원들을 소비한다. 당신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또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것이다.

지구 상에서 똑같은 패턴을 따르는 또 다른 유기체가 있다. 바이러스다. 인간들은 질병이고, 지구의 암이다. 당신들은 전염병이며 우리는 치료제이다.

-영화 매트릭스 중에서 스미스 요원의 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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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술
조제프 앙투안 투생 디누아르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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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향적 사고의 무서움

   300년 전 태어난 천주교 사제가 전하는 침묵의 기술은 깊은 종교적 사색의 결과로 무언가 신비스러운 절술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나 봅니다. 이 책도 대표적으로 제목에 낚인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중, 후반을 근근이 짜증을 내가며 읽고 나니 너무나 뻔한  원칙을 나열하는 초반부가 오히려 좋았다고 해야 할 지경입니다. 이 책은 종교적 편향과 선민의식이 가득한 피해야 할 글쓰기의 표본 같은 그런 책입니다. 아마도 그런 교보재로 활용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출간하신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편향적 사고는 인간 사회를 편가르고 사람 위에 사람을 두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타인을 괴롭히는 무서운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런 형국이 정말 무서운 것은 자신의 삐뚤어진 사고로 말미암아 타인을 억압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거나 심지어 권리로 여길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입니다. 내가 옆 사람을 막 발로 밟으면서 '나는 원래 옆 사람을 막 밝아도 되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나에게 밝혀도 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한다고 합시다. 이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는 것이죠.

   발음하기도 힘든 조제프 뭐시기 사제님도 이런 심각한 편향적 사고를 가진 분입니다.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이 양반의 글은 온통 스스로의 선민의식이 가득하여 일반적인 사람들을 바보로 규정합니다. 스스로 생각도 할 줄 모르고 가만두면 우매한 짓을 하는 존재라고 당연히 쓰고 있어요. 잘나신 분들이 국민을 "개, 돼지"라고 부르던 대목이 자연히 떠올랐습니다. 일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렇더라도 누가 이 양반에게 자국의 국민을 그렇게 규정할 권리를 주었답니까?

   그런가 하면 이 글은 상당히 나이가 드셨을 때 쓰신 모양인데 글 곳곳에 젊은이들을 방탕하고 오만하며, 절제를 못해 온갖 사고만 저지르는 존재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꼰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또 하나 무시무시한 것은 바로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신봉과 그 외 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입니다. 본인이 가진 신앙적 진리를 비판하거나, 따르지 않거나, 다른 종교에 대해 표현하는 것을 아주 불온한 악으로 규정을 합니다. 최소한의 합리적 사고도 못하고 있어요. 서가에 꽂힌 책을 가지고 써놓은 글에서 저는 경악을 하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자상한 성격을 가진 어느 분이 흥미진진한 역사 서적으로 빼곡히 들어찬 서가의 한쪽 선반을 가리키며 내게 "여기가 바로 이 세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경건한 내용의 종교 서적들이 정렬된 다른 쪽 선반을 가리키더니 "이곳은 천국이지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가리킨 곳은 이교적이거나 불온한 내용이 담긴 책들로 채워져 열쇠로 잠그기까지 한 선반인데 "이곳이 바로 지옥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p144

   이 책 전반에 비슷한 내용을 말하고 있는데, 기독교 서적이 꽂힌 서가는 천국이고, 다른 종교 서적이 꽂혀 있으면 지옥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본인의 생각인데 "자상한 성격을 가진 어느 분"이 그렇게 말했다며 다른 사람 핑계를 대요. 내용도 놀랍지만 태도도 한심합니다. 전반적으로 참고 읽기 힘들었네요.

#2. 의미는 있으나 식상할 수밖에 없는 금언들...

   그래도 새겨 들을 만한 금언들이 주로 글의 초반에 좀 나옵니다. 주로 침묵하는 태도에 대한 좋은 글들이 좀 있죠. 후반부에 나오는 글쓰기에 대한 내용은 가히 메가톤 급 쓰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내용을 쓰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 좋은 글이고 그 외에는 쓸데없는 글이다. 좀 안 썼으면 좋겠다. 뭐 이런 내용이에요.

#3. 의미도 없고 식상할 수밖에 없는 망언들..

   말도 되지도 않는 꼰대력 극강의 글들이 많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럴듯한데 조금만 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안 하느니만 못한 글도 제법 있습니다. 하나만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우리는 잘못된 글을 쓰거나, 이따금 너무 많은 글을 쓰거나, 때로는 충분히 글을 쓰지 않는다" p137

   그럴듯하죠? 이거 뭔 소립니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무 의미 없는 소리인데다 어디다 가져다 붙여도 되는 논리예요. 이를테면 이런 거죠. "우리는 잘못된 음식을 먹거나, 이따금 너무 많은 음식을 먹거나, 때로는 충분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런 식이죠. 뭘 붙여도 돼요. "우리는 잘못된 방식으로 잠을 자거나, 이따금 너무 많이 자거나, 때로는 충분히 자지 않는다." 아무거나 넣으면 끝이 없어요. 이게 뭐 의미 있는 내용입니까?

   아 생각할수록 짜증 나는데 자꾸 꼰대력이 상승하는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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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3 : 미스터리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3
김봉석.이상민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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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바이북에서 나온 웹 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는 가끔 하나씩 읽어주는 시리즈입니다. 웹 소설 작가가 되고 싶어서도 아니고 이 책을 읽는다고 웹 소설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각 장르별로 정의부터 역사, 종류 등등 정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관심분야에 따라 SF, 무협에 이어 미스터리 편을 읽었습니다. 그전 편들도 다 그랬지만 유독 미스터리 편은 내용이 충실한 듯합니다. 아마도 저자 봉석이 형님이 그만큼 장르소설 쪽에 지식이 풍부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에는 기본적으로 미스터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과 미스터리의 장르 소개, 그리고 미스터리의 역사와 흐름을 충실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미스터리와 현실세계의 관계, 그리고 한국 미스터리의 가능성까지 논하고 있는 책입니다.

   미스터리에 대한 간략한 정리가 저는 굉장히 좋았고, 저자가 생각하는 각 장르별, 역사별 의미 있는 작품들을 체크하는 것도 무척 좋았습니다. 그래 봐야 언제 읽겠냐 싶은 생각도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주요한 작품들을 머리에 담고 있는 건 좋은 것 같습니다. 구매에도 참고하고 말이죠.

   이 시리즈는 보통 봉석이 형님을 비롯한 장르에 잔뼈가 굵으신 분들이 그 장르에 대해 소개하고 정리하는데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하고 실제 작가가 마지막 장 즈음에 작법에 대한 짧은 글을 추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번 미스터리 편은 이상민 작가님이 작법론을 맡았습니다. 저는 사실 잘 모르는 작가님이시네요. 조금 찾아보니 굉장히 다방면으로 글을 쓰시는 분이시고 활동도 왕성하게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법 부분이 어쩔 수없이 일반론으로 흐르기는 하지만 상당히 충실하고 좋았습니다. 제가 만약 실제로 웹 소설을 쓰려고 준비하는 입장이라면 어쨌든 분명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르 가이드마다 소개되는 작품들은 잘 분류해두고 기억해두었다가 기회가 될 때마다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름 의미가 있고 읽는 재미도 읽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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