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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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외의 인물에게서 터진 덕력 넘치는 SF 명작

   사실 많은 분들이 그러지 않으셨을까 하는 예상은 듭니다만, 저자의 배경을 잘 모르는 상태로 그저 배우였다는 것만 알고서는 저도 모르게 기대치를 무척이나 낮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써봐야 얼마나 쓰겠어?'하는 생각이랄까요? 자연스럽게 떠 오른 습관적인 편견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신동욱 씨에게 괜스레 미안합니다. 놀랐습니다. 너무 훌륭한 수준이었습니다. 대충 쓴 글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국내 SF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로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국내에서도 SF 소설이 더욱 관심을 받고 인기를 끌었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진지한 SF 거나 SF를 표방한 철학서 같은 우울한 느낌이거나 너무 가벼운 등 전체적인 밸런스가 잘 맞는 SF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언제쯤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좋은 SF가 나올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씁니다. 우주일지"의 경우는 제 개인적인 취향을 매우 극적으로 만족시켜준 SF입니다.

   저자의 출신이나 배경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만 정말 의외의 인물에게서 전문성도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SF 작품이 쓰였다는 데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 때문에 연예활동을 하시느라 아까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2. SF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유머와 위트

   이 작품은 정통 우주 SF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서, 이것이 픽션인지 팩션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만큼 저자가 전문가 못지않은 덕후로 관련 서적 등을 통해 지식을 충분히 쌓아 온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이런 성스러운 덕력이 배우라는 배경이 무색할 만큼의 놀라운 디테일을 갖춘 전문 SF 소설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아닌가 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나름 전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데 정말 무서운 디테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 하면, 관련업계 덕후들에게서 입니다. 어지간히 오랜 시간 일한 전문직 종사자보다 더욱 철저한 과거까지 꿰뚫고 있는 덕후들을 대하면 정말 놀라곤 합니다. '아니, 저런 건 내부 자료나 실물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후덜덜합니다. 앞으로 갈수록 잉여력과 덕력의 중요성은 높아질 것 같아 보입니다.

   "씁니다. 우주일지"가 폭넓은 사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작품 전반에 농염하게 배어 있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입니다. 제가 취향 저격을 당한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고, 독자들이 이 작품을 부담 없이 대할 수 있게 만드는 만능  양념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놓치지 않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유머러스한 표현들은 이 작품이 재미있는 소설이라 느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무척 좋았습니다. DC 시리즈와 마블 시리즈의 극적인 흥행성적 차이를 나은 결정적 요소가 바로 "유머와 위트"라고 보는데, 이 작품도 진지한 묘사와 유머러스한 태도가 너무 잘 어우러져서 수준 높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3. 벗어날 수 없는 "마션"의 굴레

   아무래도 먼저 손드는 놈이 장땡이라고 이미 2015년 여름을 강타했던 "마션"의 위엄 앞에 이 훌륭한 소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이 "마션"을 흉내 냈다거나 아류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표현을 하자면 "씁니다. 우주일지"는 "마션류"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만큼 마션의 충격은 큰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자도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지 후기에서도 "마션" 때문에 "집필했던 원고의 많은 부분을 덜어내거나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니다. 우주일지"는 "마션"과 여러 가지 요소에서 유사성이 발견됩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겹치는 느낌이 있습니다. 우주여행을 하면서 쓴 일지가 소설을 이끌어 간다는 면은 물론 일지가 개인 일기장처럼 감정적인 표현들이 여과 없이 나타난다는 점이나, 우주여행 중에 어려움을 겪고 살아서 지구로 귀향하기 위한 온갖 고행과 위기를 통해 독자의 감정이입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 등등이 너무나 유사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부분이 얼마 전 시끄러웠던 표절 논란과 연속선상에서 볼 수는 없지요. 그건 아예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살짝 변형한 '언어적 유사성'의 결정판이었고, 이 소설의 경우는 오히려 유사성을 따라 하기로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SF 소설의 세부 장르 속에서도 "우주여행류 내 우주 표류 장르 정도로 구분하고 이 세부 장르에 속하는 기본적인 뼈대를 충실히 따랐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아, 몰라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재미있었어. 잘생긴 사람이 글도 잘 써서 짜증 났고.. 그런데도 좋은 소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더 뭔가 억울한 느낌이고... 아 뭔가 배도 아프고.......... 그랬습니다....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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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사과일까? 초등 저학년을 위한 그림동화 3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고향옥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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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지난번에 "이게 정말 천국일까?"를 읽어보니 의외로 너무 재미있어서 이 책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이 양반은 정말 상상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군요. 사람이 기본적으로 선입관이나 편견이 없으면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지만, 이분의 상상력은 뭐랄까? 매우 맑고 깨끗한 느낌입니다.

   사과 하나로 이 정도까지 다양하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재미진 상상을 해내고 그것을 재밌는 그림으로 표현해 내는 것을 보고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더불어 그림으로 스스로의 상상력을 표현하고 발휘하는 재능에 대해서 한없이 부러움을 느낍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데, 그 표현 욕구를 채워주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그림이 아닌가 합니다. 저에게는 전혀 없는 이 재능은 최근에는 정말 가장 부러운 재능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정말 천국일까?"를 먼저 읽어서 그런지 이런저런 사과에 대한 상상 중 혹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사과로 나타나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상상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정말 천국일까?"의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약간 어른인 제가 읽어도 재밌고 피식 웃게 만드는 좋은 책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력의 무한함에 대해 조금은 힌트를 얻게 되지 않을까 기대되는 그런 책이군요. 읽어주는 건 꽤나 귀찮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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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도감
나카무라 루미 지음, 이지수 옮김 / 윌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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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 아저씨..

   물론 저는 아직 아저씨가 아닙니다. 아직은 젊어요. 특별히 제가 아저씨라서 이 책을 읽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직 제가 되어보지 못한 아저씨라는 존재가 궁금해서 읽었을 뿐입니다. 정말이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미안해. 너의 집 앞이야~~~~ (절대 아재개그가 아닙니다...)

   저는 취향상 엉뚱한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적어도 책에 관련해서는 좋아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일본 출판계를 보면 "출간하지 못할 책 따위는 없다"라는 모토로 책을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정말 그야말로 도감이라고 분류해도 딱 좋을 만큼 아저씨들의 각종 유형을 48가지로 나눠 보여주는 아저씨 도감입니다. 그냥 저자가 적당히 분류한 것이 아니라 4년간을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실제로 취재도 하고 사진으로 촬영을 한 다음 그 사진을 그림으로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그 그림에다가 깨알같이 작가의 코멘트나 평가가 붙어있는데 한편으로는 안습이기도 하고, 웃음이 빵 터지기도 하면서 "예비 아저씨"인 저의 희로애락을 자극합니다. 그나저나 아저씨라니.. 참... 뭔가.. 슬프기도 하고...


#2. 아저씨에게 관심을 가진 아가씨..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니 저자의 코멘트가 너무 여성스럽달까? 그래서 저자를 찾아보니 여성이군요. 역시나.. 그래서 전체적으로 취재를 당하는 아저씨들의 반응이 조금은 음흉했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아저씨들은 아니라 약간은 안도하긴 했지만 저로써도 좀 민망한 내용들이 있었네요.

   작가가 아저씨에게 관심을 가진 계기가 후기에 나오는데 흥미롭습니다. 요약하면 어쩌다 어린 시절 아저씨들 틈에 끼어있었는데 푸근하고 편한 게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로 아저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뭐 이런 내용입니다. 어찌나 꼼꼼하게 관찰을 했는지 온갖 종류의 아저씨들이 다 등장합니다. 저자가 멋지다고 분류한 아저씨들조차 별로 멋져 보이지 않았다는 건 안습입니다만, 그저 곱게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게 교훈이라면 교훈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게 이 작가가 한국에서도 살면서 한국 아저씨까지 그려보고 싶다고 인터뷰를 한 부분인데, 절대로 이 양반의 눈에 띄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아 참, 나는 아저씨가 아니지..


#3. 일본의 일본인을 위한 아저씨 도감

   저자가 일본인이고 일본 아저씨를 관찰해서 만든 거니 당연합니다만, 왠지 엄청 재미있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이 책이 전반적으로 지루하게 느껴질 부분이 제법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래서 기대보다는 아주 재미지지는 않았고요.

   일단 일본인이 일본인의 눈으로 본 일본 아저씨들의 도감이다 보니 우리나라 아저씨랑 공통점도 있지만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 한 원인입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많지만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하는 대목이 꽤나 있었어요. 우리나라 아저씨보다는 전반적으로 너무 젠틀하달까. 일본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미혼 여성의 눈으로 본 아저씨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약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웃음 포인트면서도 한편 뭔가 조금은 단편화된 시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이 책은 어디까지나 "도감"형식이다 보니 상당히 많은 아저씨들이 나열식으로 등장합니다. 좀 읽다 보면 자연히 지루해질 수밖에 없어죠. 제가 이런데 전혀 아저씨에 관심 없는 독자들은 너무나 지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형식이나 콘셉트는 엄청 흥미로우나 정작 내용으로 들어가면 얇은 책이고 그림책인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재 취향이라면 좋아하시겠지만서도...

   다행히 내용 중간중간에 대담이라든가, 취재 현장이라든가, 인터뷰 등을 싣고 있어서 단조로움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은 많이 보입니다. 이 책이 어느 정도 흥미롭게 읽힐지 가늠하기가 좀 어렵네요. 아무튼 독특하고 희한하고 엉뚱한 책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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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누군가 화분을 깼다
안세화 지음 / 피커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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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웹 소설이고 전자책으로만 출간된 모양입니다. 요즘 이북을 많이 읽다 보니 어쩌다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단편임을 감안하면 스케일이 크지는 않지만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저는 사실 책을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책을 읽는 행위는 물론 출판계 동향이나, 플랫폼이라던가 이런저런 환경에 관련된 다양한 부분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책 시장과 구분되는 웹 소설에 대한 관심도 그 일환입니다. 그리하여 "웹 소설 작가를 위한 00소설 쓰기" 이런 것도 읽고 보고, 각 장르 자체에 대한 특성이나 분류도 확인해보고 하는 것이지요.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e 연재 공모전 당선작이라는 설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 어떤 구조의 글을 쓰면 e 연재 공모전이라는데에 당선이 되는 것이지?'라는 궁금증 때문이었죠. 공모전 당선작이라는 것은 그 분야에 심사위원이라는 분들이 '이만하면 상을 줄만큼 해당 장르에 적절한 글이라고 본다'라고 판단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그리하여 이 작품을 접할 때, 과연 웹 소설을 어떤 식으로 썼을까? 하는 기대가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막상 읽어보니 그냥 단편 미스터리와 크게 차이가 없더군요. 가독성도 좋고, 설정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단편임을 감안하면 캐릭터도 잘 잡았고 말이죠. 재미있었습니다.

   심지어 이 작품의 심사평에 "이토록 뛰어난 하드보일드는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까지! 완독 후 손끝이 저릿저릿했다"라고 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심사위원은 하드보일드를 안 읽거나 정말 몇십 년 전에 읽고 전혀 안 읽었거나 뭐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낯 뜨거운 심사평을 쓰는 것은 무리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 작품을 어딜 봐서 하드보일드라고 하시는지 조금 의아했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그 어떤 모험에 가까운 행위를 하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아무리 봐도 코지 미스터리 쪽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결말부의 반전 역시 작가님이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느껴졌습니다만, 그 반전 때문에 작품 끝부분까지 가져갔던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완전히 무너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물론 인간의 여러 가지 특성을 생각하면 반전의 내용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미스터리의 기본 특징에 해당하는 독자와 공평한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좀 무리가 있는 반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전에 힌트가 전혀 없었거든요. 아니면 제가 멍하게 읽어서 작가님이 제공한 힌트를 전혀 알아채지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그랬다면 미리 사과드립니다. 그렇다고 다시 읽어볼 생각은 없어서 말입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웹 소설이라고 해서 한없이 가볍거나 호흡이 짧거나 제가 쉽게 생각했던 선입관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작품을 단품으로 구매를 해서 읽었는데 나중에 보니 당선작 모음이 있고, 그중 한 작품이더군요. 종이책이 아니다 보니 전혀 몰랐습니다. 종이책이라면 분절 판매가 되는 것인데 배송 등의 문제로 용이하지 않을 텐데 이북은 이런 부분에 있어 무척 유연하군요. 이런 게 차이라면 차이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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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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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상적이라는 것에 대하여...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삶이라고 여겨지고 불려왔던 삶의 형태에서 벗어난 사람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정상적인 삶이라고 정의된 형태로 살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도 그렇거니와 노력한다 해도 "정상인"과 완전히 동일한 옷을 입기는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이라는 말은 어떨 때 쓰는 것일까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대 환영하는 "다수에 의해 선택된 어떤 것"이라는 표현이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0명이 있는데 8~9명이 손을 들면 그것은 "정상적인 것"으로 채택됩니다. 모집단을 늘려가며 다양한 내용에 적용시켜보면 우리가 이 사회에 속해 살면서 해야 할 행동양식이 결정되는 것이고, 다수의 선택에 의한 행동양식에서 벗어나면 교정해주어야 할 "이상한 것"에 속하고 맙니다.

   민주주의의 맹점이 "소수자의 권리"를 지켜주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 소설은 그 소수자들 중에 거의 식스시그마 수준의 결점에 속하는 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대기업 제조공정을 중심으로 식스시그마가 대 유행했는데, 이 운동의 목표는 제조업에 국한 시키면 불량품을 극적으로 줄여보자는 것이겠지요. 최대한 표준화 절차를 거치고 품질을 균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도 극소수의 불량품이 존재하는데 당연히 버려집니다. 그리고 불량품이 생산된 원인을 철저하게 찾아내서 제거하려 하지요.

   정상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잡느냐에 따라 정상인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 비정상 부적응자로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통념을 뛰어넘거나 무시하는 나 홀로 인생관을 가진 구성원의 수는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회현상은 대다수의 정상인들은 점점 늘어나는 비정상인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관점에서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교정, 교화하고자 노력하거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낙인찍고 "지워"버립니다. 
 

#2. 해묵은 사회통념, 무너지는 가치관의 갈등

   "정상적"이어야 한다는 해묵은 사회통념에서 기인하는 갈등은 상당히 광범위하기만 합니다. 주로 연애, 결혼, 육아,  직장 등의 문제에서 광범위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 도대체 누가 정해놓은 것인지도 모를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연애, 결혼, 육아직장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는 차치하더라도 성인이 되어서 연애, 결혼, 육아를 하지 않는 사람 자체에 대한 판단은 어이없게 엄격하기만 합니다.

   예를 들어 30대 중후반이 넘어가는 남성이 미혼 상태로 직장생활을 한다고 할 때, 직장 내에서 암묵적으로 그 사람을 무언가 "문제가 있는"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어른"으로 대접해주지 않고 정상적인 직장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되면 모두가 축하해주며, 이제야 안심이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죠. 그나마 집단주의가 많이 희미해진 현대에는 좀 나아진 편이라고 할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제 스스로 '무난히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 다행인걸?'하는 생각이 자연히 떠오르는군요.

   혼기가 찬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연애도 결혼도 안 하고 있으면 멋있다고 손뼉 치는 경우도 있지만, 이기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 일까요? 다수의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자의든 타의든 포기하고 결혼해서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미혼 커리어 우먼을 보면 뭔가 못마땅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자연스럽게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인생의 중요한 결혼과 육아의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인생의 반쪽만 사는 것이야"라는 주장을 쏟아내게 됩니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후루쿠라는 정상적인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정신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케이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흔히 표현하는 사이코 패스적인 특성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정서적 반응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죠. 동정이라든가, 공감 같은 것 말입니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딱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사이코패스들이 그러듯이 주변의 반응을 보아가며 인지적으로 학습을 하며 근근이 맞추어 갈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하여 주변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위해를 가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철저히 안으로 움츠린 스타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후루쿠라에게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이 많이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이 스릴러 장르였다면 그런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제거되어 갔겠죠. 그랬다면 이 소설은 나오키상을 타게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3. 그러나 안식할 쉼터가 필요하다... 

      이 소설은 다수가 소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핍박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고통받는 소수의 사람에게 시선이 닿아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모습은 어땠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 역시도 이 사회에 자연스럽게 소속되는 것에 무척이나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다소 와일드하고 폭력적인 조직의 논리가 저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저는 직장이라는 것이 각자의 생활을 위한 경제적 활동으로 인식하는데 반해, 다수의 사람들이 '자아실현의 장'으로 여기는 모습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직에 충성'하거나 '더 높은 위치로의 수직상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후루쿠라처럼 의아함을 느끼게 됩니다. 대충은 그들의 논리에 따르는 듯 코스프레를 하지만 저로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회식이나 술자리 문화도 마찬가지인데, 대기업도 경험해보았고 지금의 공기업도 경험해보지만 대체로 술자리를 통해 벌어지는 아부의 향연은 참으로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저의 스탠스 자체는 냉정하게 보면 우습기도 합니다. 사실은 마음에도 없는 상사를 향한 찬사를 늘어놓는 이들이 지혜롭게 자신의 상황에서 잘 처신하는 것인데, 그걸 보며 쓴웃음을 짓는 저는 부적응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 이게 참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분야라 안되는 건 안됩니다. 이제 와서 억지로 될 일도 아니고 말이죠.

   저 같은 경우는 '가정'에서 안식을 합니다.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 역시 제 가족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맞추려고 노력하죠. 구성원을 교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태도가 그곳이 전쟁터냐 쉼터냐를 결정하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 가까운 가정은 밤마다 고래고래 악을 쓰며 싸웁니다. 그들의 열정과 끝없는 노력은 존중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피해도 막심하고, 스스로도 가정에 돌아와서 저 정도의 에너지를 써가며 매일매일 싸워야 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들에게는 후루쿠라처럼 편의점 같은 쉼터가 필요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부적응자에게만 쉼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직장 생활을 잘 해나가는 분들이 오히려 저보다 더 힘들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잘 생활하기 위해 저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소비하니까 말입니다. 그들에게도 쉼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 챙길 처지는 아니라 그런가 보다 할 뿐이지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뭐야? 이게 끝이야? 싱겁구만..'이라고 반응하는 분들이 분명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마도 정상인의 범주에 스스로 들어가 있는 분들이겠지요. 저 같은 사람은 이 짧은 글을 읽으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렇다 할 답은 없군요. 생긴 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은퇴하면 편의점이라도 차려야 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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