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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1. 정상적이라는 것에 대하여...
무라타 사야카의 "편의점 인간"은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삶이라고 여겨지고 불려왔던 삶의 형태에서 벗어난 사람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정상적인 삶이라고 정의된 형태로 살아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도 그렇거니와 노력한다 해도 "정상인"과 완전히 동일한 옷을 입기는 무척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이라는 말은 어떨 때 쓰는 것일까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대 환영하는 "다수에 의해 선택된 어떤 것"이라는 표현이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10명이 있는데 8~9명이 손을 들면 그것은 "정상적인 것"으로 채택됩니다. 모집단을 늘려가며 다양한 내용에 적용시켜보면 우리가 이 사회에 속해 살면서 해야 할 행동양식이 결정되는 것이고, 다수의 선택에 의한 행동양식에서 벗어나면 교정해주어야 할 "이상한 것"에 속하고 맙니다.
민주주의의 맹점이 "소수자의 권리"를 지켜주기 어렵다는 점인데, 이 소설은 그 소수자들 중에 거의 식스시그마 수준의 결점에 속하는 두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때 대기업 제조공정을 중심으로 식스시그마가 대 유행했는데, 이 운동의 목표는 제조업에 국한 시키면 불량품을 극적으로 줄여보자는 것이겠지요. 최대한 표준화 절차를 거치고 품질을 균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도 극소수의 불량품이 존재하는데 당연히 버려집니다. 그리고 불량품이 생산된 원인을 철저하게 찾아내서 제거하려 하지요.
정상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잡느냐에 따라 정상인으로 분류될 수도 있고, 비정상 부적응자로 분류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통념을 뛰어넘거나 무시하는 나 홀로 인생관을 가진 구성원의 수는 점차 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사회현상은 대다수의 정상인들은 점점 늘어나는 비정상인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관점에서 비정상적인 사람들을 교정, 교화하고자 노력하거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낙인찍고 "지워"버립니다.
#2. 해묵은 사회통념, 무너지는 가치관의 갈등
"정상적"이어야 한다는 해묵은 사회통념에서 기인하는 갈등은 상당히 광범위하기만 합니다. 주로 연애, 결혼, 육아, 직장 등의 문제에서 광범위하게 만나볼 수 있는데, 도대체 누가 정해놓은 것인지도 모를 가이드라인 같은 것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연애, 결혼, 육아직장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가이드는 차치하더라도 성인이 되어서 연애, 결혼, 육아를 하지 않는 사람 자체에 대한 판단은 어이없게 엄격하기만 합니다.
예를 들어 30대 중후반이 넘어가는 남성이 미혼 상태로 직장생활을 한다고 할 때, 직장 내에서 암묵적으로 그 사람을 무언가 "문제가 있는"사람 취급을 합니다. 그리고 "어른"으로 대접해주지 않고 정상적인 직장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되면 모두가 축하해주며, 이제야 안심이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죠. 그나마 집단주의가 많이 희미해진 현대에는 좀 나아진 편이라고 할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제 스스로 '무난히 정상인의 범주에 들어 다행인걸?'하는 생각이 자연히 떠오르는군요.
혼기가 찬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연애도 결혼도 안 하고 있으면 멋있다고 손뼉 치는 경우도 있지만, 이기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왜 일까요? 다수의 여성이 자신의 커리어를 자의든 타의든 포기하고 결혼해서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미혼 커리어 우먼을 보면 뭔가 못마땅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지요. 자연스럽게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인생의 중요한 결혼과 육아의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인생의 반쪽만 사는 것이야"라는 주장을 쏟아내게 됩니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 후루쿠라는 정상적인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정신적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케이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흔히 표현하는 사이코 패스적인 특성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보이는 정서적 반응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죠. 동정이라든가, 공감 같은 것 말입니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딱히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사이코패스들이 그러듯이 주변의 반응을 보아가며 인지적으로 학습을 하며 근근이 맞추어 갈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하여 주변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위해를 가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철저히 안으로 움츠린 스타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후루쿠라에게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이 많이도 등장합니다. 이 소설이 스릴러 장르였다면 그런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제거되어 갔겠죠. 그랬다면 이 소설은 나오키상을 타게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3. 그러나 안식할 쉼터가 필요하다...
이 소설은 다수가 소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핍박하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고통받는 소수의 사람에게 시선이 닿아있습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모습은 어땠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 역시도 이 사회에 자연스럽게 소속되는 것에 무척이나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습니다. 특히 다소 와일드하고 폭력적인 조직의 논리가 저에게는 맞지 않습니다. 저는 직장이라는 것이 각자의 생활을 위한 경제적 활동으로 인식하는데 반해, 다수의 사람들이 '자아실현의 장'으로 여기는 모습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조직에 충성'하거나 '더 높은 위치로의 수직상승'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후루쿠라처럼 의아함을 느끼게 됩니다. 대충은 그들의 논리에 따르는 듯 코스프레를 하지만 저로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회식이나 술자리 문화도 마찬가지인데, 대기업도 경험해보았고 지금의 공기업도 경험해보지만 대체로 술자리를 통해 벌어지는 아부의 향연은 참으로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저의 스탠스 자체는 냉정하게 보면 우습기도 합니다. 사실은 마음에도 없는 상사를 향한 찬사를 늘어놓는 이들이 지혜롭게 자신의 상황에서 잘 처신하는 것인데, 그걸 보며 쓴웃음을 짓는 저는 부적응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그런데 이게 참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분야라 안되는 건 안됩니다. 이제 와서 억지로 될 일도 아니고 말이죠.
저 같은 경우는 '가정'에서 안식을 합니다.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저 역시 제 가족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맞추려고 노력하죠. 구성원을 교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태도가 그곳이 전쟁터냐 쉼터냐를 결정하는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 가까운 가정은 밤마다 고래고래 악을 쓰며 싸웁니다. 그들의 열정과 끝없는 노력은 존중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피해도 막심하고, 스스로도 가정에 돌아와서 저 정도의 에너지를 써가며 매일매일 싸워야 한다는 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들에게는 후루쿠라처럼 편의점 같은 쉼터가 필요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부적응자에게만 쉼터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는 직장 생활을 잘 해나가는 분들이 오히려 저보다 더 힘들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잘 생활하기 위해 저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소비하니까 말입니다. 그들에게도 쉼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 챙길 처지는 아니라 그런가 보다 할 뿐이지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뭐야? 이게 끝이야? 싱겁구만..'이라고 반응하는 분들이 분명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은 아마도 정상인의 범주에 스스로 들어가 있는 분들이겠지요. 저 같은 사람은 이 짧은 글을 읽으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렇다 할 답은 없군요. 생긴 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은퇴하면 편의점이라도 차려야 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