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니다, 우주일지
신동욱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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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외의 인물에게서 터진 덕력 넘치는 SF 명작

   사실 많은 분들이 그러지 않으셨을까 하는 예상은 듭니다만, 저자의 배경을 잘 모르는 상태로 그저 배우였다는 것만 알고서는 저도 모르게 기대치를 무척이나 낮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써봐야 얼마나 쓰겠어?'하는 생각이랄까요? 자연스럽게 떠 오른 습관적인 편견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신동욱 씨에게 괜스레 미안합니다. 놀랐습니다. 너무 훌륭한 수준이었습니다. 대충 쓴 글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국내 SF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로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국내에서도 SF 소설이 더욱 관심을 받고 인기를 끌었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진지한 SF 거나 SF를 표방한 철학서 같은 우울한 느낌이거나 너무 가벼운 등 전체적인 밸런스가 잘 맞는 SF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연유로 언제쯤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좋은 SF가 나올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씁니다. 우주일지"의 경우는 제 개인적인 취향을 매우 극적으로 만족시켜준 SF입니다.

   저자의 출신이나 배경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만 정말 의외의 인물에게서 전문성도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SF 작품이 쓰였다는 데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잘생긴 외모 때문에 연예활동을 하시느라 아까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2. SF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유머와 위트

   이 작품은 정통 우주 SF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서, 이것이 픽션인지 팩션인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그만큼 저자가 전문가 못지않은 덕후로 관련 서적 등을 통해 지식을 충분히 쌓아 온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이런 성스러운 덕력이 배우라는 배경이 무색할 만큼의 놀라운 디테일을 갖춘 전문 SF 소설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아닌가 합니다.

   저 같은 경우도 나름 전문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데 정말 무서운 디테일은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 하면, 관련업계 덕후들에게서 입니다. 어지간히 오랜 시간 일한 전문직 종사자보다 더욱 철저한 과거까지 꿰뚫고 있는 덕후들을 대하면 정말 놀라곤 합니다. '아니, 저런 건 내부 자료나 실물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후덜덜합니다. 앞으로 갈수록 잉여력과 덕력의 중요성은 높아질 것 같아 보입니다.

   "씁니다. 우주일지"가 폭넓은 사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작품 전반에 농염하게 배어 있는 특유의 유머와 위트입니다. 제가 취향 저격을 당한 가장 큰 요소이기도 하고, 독자들이 이 작품을 부담 없이 대할 수 있게 만드는 만능  양념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놓치지 않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유머러스한 표현들은 이 작품이 재미있는 소설이라 느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무척 좋았습니다. DC 시리즈와 마블 시리즈의 극적인 흥행성적 차이를 나은 결정적 요소가 바로 "유머와 위트"라고 보는데, 이 작품도 진지한 묘사와 유머러스한 태도가 너무 잘 어우러져서 수준 높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3. 벗어날 수 없는 "마션"의 굴레

   아무래도 먼저 손드는 놈이 장땡이라고 이미 2015년 여름을 강타했던 "마션"의 위엄 앞에 이 훌륭한 소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이 "마션"을 흉내 냈다거나 아류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표현을 하자면 "씁니다. 우주일지"는 "마션류"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만큼 마션의 충격은 큰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자도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지 후기에서도 "마션" 때문에 "집필했던 원고의 많은 부분을 덜어내거나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니다. 우주일지"는 "마션"과 여러 가지 요소에서 유사성이 발견됩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겹치는 느낌이 있습니다. 우주여행을 하면서 쓴 일지가 소설을 이끌어 간다는 면은 물론 일지가 개인 일기장처럼 감정적인 표현들이 여과 없이 나타난다는 점이나, 우주여행 중에 어려움을 겪고 살아서 지구로 귀향하기 위한 온갖 고행과 위기를 통해 독자의 감정이입을 끌어내고 있다는 점. 등등이 너무나 유사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부분이 얼마 전 시끄러웠던 표절 논란과 연속선상에서 볼 수는 없지요. 그건 아예 문장을 그대로 가져와 살짝 변형한 '언어적 유사성'의 결정판이었고, 이 소설의 경우는 오히려 유사성을 따라 하기로 볼 것이 아니라 다양한 SF 소설의 세부 장르 속에서도 "우주여행류 내 우주 표류 장르 정도로 구분하고 이 세부 장르에 속하는 기본적인 뼈대를 충실히 따랐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아, 몰라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재미있었어. 잘생긴 사람이 글도 잘 써서 짜증 났고.. 그런데도 좋은 소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더 뭔가 억울한 느낌이고... 아 뭔가 배도 아프고.......... 그랬습니다....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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