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 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
조용래 지음 / 모던아카이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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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고기가 땅에 있으면 물만 보면 찾아가듯이 딱 그런 관계였다"
-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가 말하는 최태민과 박근혜

1973년 5월 13일자 대전일보에 〈영세계에서 알리는 말씀〉이라는 내용의 광고가 실렸다고 한다.

"영세계 주인이신 조물주께서 보내신 칙사님이 이 고장에 오시어 수천 년 간 이루지 못하던 불교에서의 깨침과 기독교에서의 성령강림, 천도교에서의 인내천 이 모두를 조물주께서 주신 조화로서 즉각 실천하신다 하오니 모두 참석하시와 칙사님의 조화를 직접 보시라 한다. 난치병으로 고통 받으시는 분은 극시 오시어 상담하시라."

얼핏 보기에도 사이비교의 냄새가 풀풀 나는 사람 낚는 광고이다.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정부가 관여하던 서슬 퍼런 독재 정권 시절에도 이런 광고가 잘도 신문 일면에 나올 수 있었던 모양이다.

영세교 또는 영생교는 1973년 최태민이라는 사람이 불교, 천도교, 기독교 등을 적당히 섞어서 만든 잡탕 종교로, 2000년대 초반 신도들을 암매장한 사건으로 한창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희성의 영생교와는 다르다. 그는 스스로를 "주물주의 칙사"이니 "단군"이니 자처하면서 신통력으로 난치병을 고치겠다는 둥, 대한민국이 곧 세계 주도국이 될 것이라는 둥의 헛소리로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한국판 라스푸틴" 최태민. 하지만 그가 라스푸틴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뒤에는 권력자의 어리석음과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법한일인가. 지금이라면 웃음거리가 될 일이다. 실제로 당시에도 그런 허황된 말에 넘어간 추종자들은 많아야 수십명에 불과했던 것같다. 사람 낚는 사기꾼이야 예나 지금이나 있는 일이고 그런 사기질이 얼마나 오래가겠냐만은 문제는 그 중의 한 사람이 박근혜였다는 사실이다. 한때 날던 새도 떨어뜨렸던 중앙정보부장이었으나 박정희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프랑스로 망명한 후 의문의 죽음을 당한 김형욱의 회고록에는 최태민이 1975년에 박근혜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것도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는 걸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 육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이 우매해 아무 것도 모르고 슬퍼만 한다면서 이런 뜻을 전해 달라고 했다"

당시 박근혜는 23살. 제아무리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았고 정신이 없었던 시절이라고 해도 일면식도 없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사이비 교주의 허황된 소리에 넘어갈 수 있을까. 실로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박근혜는 최태민을 정말로 불러들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보름 전 대한민국 헌장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현직 대통령이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 이런저런 비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찰에 불러다닌 것은 항상 반복되어온 모습이라고 해도 현직 대통령이 임기 도중에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60년 전 이승만의 하야 이래 처음이다. 게다가 이것은 야당의 정치 공세 때문도 아니고 대다수 국민들이 대통령 불신임을 외친 결과이다. 그만큼 대통령의 신임이 땅에 떨어졌다는 얘기이다. 소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조사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미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 조윤선 문광부 장관을 비롯하여 십수명에 달하는 굵직굵직한 정권 실세들이 굴비마냥 엮어서 구속되었다. 명색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과연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는가. 그리고 사건의 뒤에는 최순실이라는 여인이 있다.

모던 아카이브에서 주목할만한 신작 도서가 나왔다. 『또 하나의  가족 - 최태민, 임선이, 그리고 박근혜』 이 책의 저자는 놀랍게도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었으며 최태민 왕국에 직접 가담한 바 있었던  故 조순제 씨이다. 조순제 씨는 최태민의 부인이었던 임선이가 전 남편 사이에 낳은 자식이다. 의붓 아버지인 최태민과는 썩 사이가 좋지는 못했으나 박근혜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 최태민이 권력을 이용하여 대한구국선교단을 수립하자 조순제는 단체의 홍보실장을 하였다. 그 이후에도 박근혜가 소유한 영남재단 등에 관여하면서 박근혜의 전위 세력으로 앞장섰으나 최태민과 사이가 나빠지고 최순실을 비롯한 배다른 동생들이 등장하면서 밀려난 채 말년에는 사업 실패 등으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작년 가을 우리 사회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박근혜의 해괴한 관계에 대해서는 "그것이 알고 싶다" "썰전"을 비롯하여 여러 방송에서 다루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바있다.

이 책에서는 조순제가 죽기 직전에 남긴 녹취록을 근거로 한국전쟁 당시 유부남이었던 최태민과 과부 임선이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최태민의 온갖 엽기적인 행적, 최태민과 박근혜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더욱이 명색이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가 지적 수준도 결코 높다 말할 수 없는 최태민에게 그토록 빠지게 된 이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의혹과 최순실을 비롯한 최씨 일가의 부정비리를 낱낱이 폭로한다. 심지어 이른바 박정희 시해 사건을 일으켰던 김재규는 재판 당시 자신이 박정희를 죽인 이유 중에는 최태민의 불법적인 행각를 눈감아 주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최태민은 단순히 한 여성을 농락한 일개 사기꾼이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를 송두리채 흔들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그 후로 박근혜와 최태민은 서로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교주가 되었다.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최태민과 만나는 박근혜는 욕망과 야망, 그리고 어떤 집착과 맹신같은 요소들이 뒤섞여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 p.38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개인 성령이 뭔지 아무리 얘기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최태민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주창하고 떠드는 영세교에 대해서도 무슨 의미를 가진 종요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 p.59

"김경옥이 박근혜에게 링거 주사를 놓는 동안 곁에 있는 최태민이 박근혜의 팔다리를 주무르고 뒤로 돌아가서는 어깨를 주무르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깊은 관계를 알고는 있었지만 눈앞에서 직접 자연스럽고 다정한 모습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 p.74

"지금 네 할머니가 가진 돈은 너를 편히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죽게 할 수 있다. 할머니가 가진 돈에 대해서는 전혀 아쉽게 생각하지 말아라." - p.102

대목마다 실로 충격이다. 여색에 눈이 먼 최태민의 엽기 행각, 여기다 박근혜와 가까워지면서 권력까지 얻게 되었고 그는 이를 이용하여 별의별 추문을 뿌리고 다녔다. 돈이 된다 싶으면 달려들어서 거머리마냥 달라붙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뜯어내었다. 그렇게 축적한 재산이 수천억인지 수조인지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박근혜는 최태민과 나이 차이도 아버지와 딸 뻘이지만 더욱이 박정희의 영애이기도 하다. 그 때만 해도 박정희의 서슬이 퍼런 시절에 누가 감히 넘볼 존재인가. 박정희는 과연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전혀 몰랐는가. 충언을 해야 할 측근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로서는 가족일에 주제넘게 끼어들였다가 눈밖에 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봉건적인 독재 정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최태민이 죽은 뒤 그 역할은 최순실이 맡았고 최순실은 킹 메이커 역할을 맡아서 박근혜를 국회의원에서, 그리고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다. 만약 박근혜에게 대통령으로서의 역량이 있었다면, 최순실이 좀 더 현명한 여자였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훨씬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는데 대한민국의 불행이 있다. 장차관의 인사권부터 재벌들과의 정경유착, 비자금의 형성, 그 과정에서의 불법적인 권력 남용과 협박 등. 대한민국 국가 기강은 완전히 땅에 떨어졌고 민주주의는 30년 이상 후퇴하였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1970년대로 되돌려 놓으려고 했던 것이다.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얻는 것도 어렵지만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민주주의조차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면 소수의 기득 세력들에 의해 금새 중우정치로 전락한다. 서구 선진국들은 민주주의를 얻기 위해서 수백년에 걸쳐서 군주, 귀족들과 같은 기득 세력들과 투쟁을 하였다. 2차대전 이후 많은 나라들이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제도적으로 서구식 민주주의를 수용했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집회와 탄핵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다. 어떤 이들은 "대통령을 끌어낸 것이 자랑스러운 일이냐"라고 함부로 폄하하지만, 대통령은 봉건 군주도 아니고 특권을 누리는 절대 권력자도 아니다. 부끄러워 할  사람은 정치를 잘 못하여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대통령에게 있지, 당당하게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 국민이 아니다. 만약 국민이 무관심으로 일관했더라면 이는 대통령에 대한 면죄부가 되었을 것이며 다음 대통령, 그 다음 대통령도 얼마든지 탈법, 불법을 저질러도 된다는 얘기이다. 국가 수장인 대통령이 대놓고 탈법, 불법을 저지르는데 아랫 사람들에게만 청렴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결국 국가 기강이 전반적으로 땅에 떨어졌을 것이며, 가장 힘 없는 서민들에게 모든 피해가 돌아갔을 것이다. 

조순제는 이미 10여년 전인 2007년 이명박과 박근혜가 한나라당 경선을 벌이고 있을 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면서 이른바 "조순제 녹취록"을 이명박 캠프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경선에서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던 이명박 진영은 경선 이후 박근혜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이를 터뜨리기보다는 그냥 덮는 쪽을 택했다. 오히려 "터뜨려야 한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렸던 사람들이 명예훼손 등으로 구속되었다. 2012년 대선 때에도 최순실 게이트는 세간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는 우리의 정치판이 정책 대결과 개인의 도덕성을 따지기보다는 이념 대결, 진영 대결로 흐르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선거의 승패에 자신들의 사활을 걸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흑색 선전과 선동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심지어 엄중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국정원이 권력과 결탁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책이 매우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또한 조순제라는 사람의 일방적인 얘기일 뿐, 증거가 어디에 있느냐, 현 시국에 편승하여 악의적인 흑색선전은 아니냐, 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어차피 누가 알겠는가. 사람이란 보고 싶은대로 보고 믿고 싶은대로 믿는 동물이다. 사실이라서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었으면 하기에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읽는 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분량이 적은 것이 아쉽다. 녹취록까지 합하여 200여 페이지 정도이다. 또한 조순제가 과거 최태민-박근혜의 주변에 있으면서 자신의 기억을 근거로 쓴 회고록이기에 주관적인 부분이 많고 우리가 궁금해 하는 수많은 의혹을 상세하게 파헤치지는 않는다. 이 책 하나로 모든 궁금증을 풀기에는 한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삼자가 아닌 <최순실 게이트>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사람이 폭로하는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호기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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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미래
알랭 드 보통 외 지음, 전병근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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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에 멍크 디베이트의 공개 토론을 번역한 《감시 국가》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국가 감시의 정당성을 놓고 2014년 5월 2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4명의 세계 정상급 지식인이 끝장 토론을 벌인 내용을 다룬 책이다.

참고로,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s)란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캐나다 오리아 재단이 2008년부터 주최하는 글로벌 토론회이다. 연 2회 국제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거나 중요한 현안을 가지고 2인씩 2개조를 이루어 토론을 벌인 후 청중들을 대상으로 찬반 표결로 승패를 가른다. 이 토론회는 영국 BBC와 미국 CSPAN이 실시간으로 중계할 정도로 전 세계적인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 인류의 미래는 과연 유토피아일 것인가, 디스토피아일 것인가라는 해묵은 주제로 2015년 11월 3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90분 동안 날카로운 토론을 벌였던 《사피엔스의 미래(Do Humankind's Best Days Lie Ahead?)》가 출간되었다. 출판사는 감시 국가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존 F. 케네디의 13일, 0시 1분 전 등을 출간한 모던아카이브(前 모던타임스)이다.

그럼 "인류의 미래"를 놓고 토론에 참여한 4명의 석학은 과연 누구일까.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쪽에는 하버드대 교수로 타임지가 200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한 스티븐 핑커 교수,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저널리스트이자 영국 상원의원이기도 한 매트 리들리이다.

반대편에 있는 쪽은 스위스 출신 작가이자 대중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 그리고 워싱턴포스트 뉴욕 지부장이자 2005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의 한 사람인 말콤 글래드웰이다. 네명 모두 오늘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정상급 지식인들이며, 국내에서도 이들의 책과 강연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토론 시작 전 실시된 "인류의 미래는 밝은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찬성이 71%, 반대가 29%였다. 그리고 90분 동안 열띤 토론을 펼치는 네명의 패널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가에 따라서 청중의 의견 또한 달라지는 것이다.

가장 먼저 토론의 문을 연 스티븐 핑커는 "낙관론"을 제시하는 쪽이다. 그는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는 점, 오랫동안 인간에게 치명적이었던 질병을 상당수 극복했다는 점, 물질적 번영과 전쟁의 감소 등 10가지 이유를 들어서 "앞으로의 미래 또한 밝다"고 단언한다.

다음 차례는 "비관론"을 제시하는 알랭 드 보통이다. 그는 스위스같은 가장 선진적인 나라조차 빈곤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전쟁과 질병의 위험 또한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인류는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비관적인 결과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세번째는 다시 "낙관론"쪽의 매트 리들리이다. 그는 일부 학자들은 항상 "곧 위험이 닥친다"라며 떠들지만 지나고 보면 과장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또한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인류를 파멸로 내몰 것"이라던 멜서스의 경고와 달리 부의 불평등 해소, 경제적 번영, 환경 파괴의 개선 등 우리 주변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결국 진짜 문제는 "과거에 대해서는 좋은 추억만 떠올리면서 미래에 대해서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네번째는 "비관론"의 말콤 글래드웰이다. 그는 과거가 미래를 얘기해주지는 않는다고 단언한다. 또한 기술 발전이 테러 등 악용될 수 있다는 점, 환경은 개선되고 있지만 동시에 지구 온난화로 자연재해의 파괴력이 한층 더 높아진 점을 꼽아서 "과연 우리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들의 주장은 모두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다. 이들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얘기하는 것이지만 애초에 미래 예측이란 관점의 문제이므로 답이 나올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질 것"이건 "나빠질 것"이건 두리뭉실하면서 추상적인 대답일 뿐이다. 이것을 어떤 기준에서 어떻게 계량화할 수 있는가.

보다 미시적으로 말한다면 나아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나빠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가령 100년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지금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와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풍요를 모든 사람이 누릴 수도 없을 뿐더러, 또한 결코 공짜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는 단 한가지도 거저 얻는 것이 없다. 한층 치열해진 생존 경쟁, 빈부 격차, 각박해진 삶, 단절되고 소외되는 인간 관계, 우리 인생에 대한 불확실성 등. 우리의 풍요로운 삶이 비록 빈곤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아프리카의 부족 사회보다 반드시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시적인 삶으로 돌아간들 행복해질 것인가.

이는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라는 가치관의 문제이지 정답은 없다. 또한 우리의 미래는 너무나 예측불허이다. 상상도 못하는 재난재해가 덮치거나 핵전쟁이 일어난다거나 또는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결론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날선 논쟁이 오가지만 우리나라처럼 격한 감정과 막말이 오가는 수준 낮은 토론회가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조리있게 얘기하면서 상대의 논리상 허점을 신랄하게 파고 든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어느 쪽이 옳은지 결론내리기가 쉽지 않다. 역시 최고의 논객들답다. 또한 말콤은 반대편의 리들리와 핑커를 "폴리아나 부부"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의 직업이 상원의원과 대학 교수라는 점을 들어서 "확실히 이 두분의 미래는 밝다"라고 말한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인신공격이라며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 유머러스하게 넘긴다. 이런 여유로움이 서구의 높은 토론 수준을 보여준다.

토론이 끝난 뒤 최종 투표 결과는 찬성 73%, 반대 27%였다. 찬성쪽이 2% 늘어났기는 했지만, 시작 전과 큰 변화는 없다. 그만큼 양측의 논리가 팽팽하여 서로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이다.

세계적 석학들의 토론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책이다. 만약 책이 아니라 TV를 통해 직접 생방송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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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 카툰으로 만나는 진짜 정치인 버니 샌더스
테드 롤 지음, 박수민 옮김 / 모던타임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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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부터 시작되어 7월 말에 끝나는 2016년 미국의 대통령 예비 경선이 벌써 두달이 지났습니다. 우리에게는 미국 경선 그 자체보다 왠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헛소리가 더 주목을 받는 상황이지만, 최종적으로 누가 승자가 되건 우리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민주당에는 현재 두명의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또 한사람 버니 샌더스가 치열한 경선을 펼치고 있습니다. 당초에는 인지도 면에서 월등히 우세한데다 흑인과 여성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힐러리 쪽이 "신승"을 거두리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버니 샌더스가 점점 지지도를 높이며 맹렬하게 추격하는 중입니다. 더욱이 지난주에는 워싱턴과 하와이, 알래스카에서 샌더스가 7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며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아직은 힐러리가 우세하지만 이런 추세로는 7월까지 누가 승자가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버니 샌더스는 누구이며 왜 미국 사회에 강렬한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가. 솔직히 국내에서는 힐러리야 남편 덕분에라도 모를 리 없지만, 샌더스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한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태반일 것입니다.

1941년생으로 올해 75살인 버니 샌더스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자, 미 상원의 "유일한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입니다. 말로는 제아무리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미국도 실상 우리만큼이나 보수적이며 "사회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킵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중국이나 북한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라 북유럽 식 복지제도입니다.

미국의 많은 정치가들이 총기 회사, 군수 업체, 월가 등 거대 기업들의 후원을 받으면서 이들에게 발목을 잡힌 채 이익의 대변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놓고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했던 부시는 둘째치더라도, 그나마 개혁에 앞장서리라고 여겼던 오바마 역시 막상 정권을 잡자 부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을 받고 있죠. 주류 정치인들 치고 대기업들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없다보니 그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마불사라 하여 거대 기업은 이들과 결탁한 정치가, 관료들의 비호 아래 온갖 특혜를 보장받는 반면, 정작 보통의  소시민들은 대출 한번 제대로 받기 어려워 파산으로 내몰립니다. 미국을 상징하는 "아메리카 드림"이 없어진지는 오래이며 경제 불황으로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와 부동산 폭락으로 자산의 태반은 허공에 사라진데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에 걸맞지 않게 복지 시스템이 매우 빈약합니다. 노후 보장은 고사하고 많은 사람들이 변변한 의료 혜택조차 받기 어렵죠. 막대한 재정 적자를 핑계로 국민 행정 서비스 예산은 축소하면서 테러를 빌미로 거대한 군사비 지출은 줄이지 않은 채 군수 업체들의 이익을 보장합니다. 이것이 세계 최강 민주국가의 모습입니다.

왜 미국 국민들은 이런 부당한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하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민주 국가 시민으로서의 의식이 없는가. 이는 미국 사회 자체가 갈수록 보수화되고 있는데다 정치에 대한 불신감을 큰 탓도 있습니다. 어차피 누가 되건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죠. 하지만 근래에 와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문제 인식을 가지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주로 대기업과 슈퍼팩(억만장자로 이루어진 정치 헌금 단체)에 의존하는 여타 정치인들과 달리, 버니 샌더스는 이들의 후원을 거부하고 온라인을 통한 소액 기부를 받고 있으며 3월 한달만도 4400만 달러를 모금하였습니다. 슈퍼팩에 의존하는 힐러리가 현재까지 모금한 정치자금이 1억6천만 달러인 반면, 샌더스는 소액 기부금만으로도 힐러리를 능가하는 1억8400만 달러에 달합니다.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것이죠. 단순하게 말할 부분은 아니지만 힐러리가 여성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정치 색깔에서 다른 주류 정치인들과 다를 것이 없는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민주당 경선은 어떤 면에서느 부자와 서민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번 대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싸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경선과 관련하여, 국내에도 이미 버니 샌더스를 다룬 책들이 여러권 나와 있지만 모던 타임스에서 나온 신간《버니》만큼 그에 대해 재미있고 알기 쉽게 다룬 책도 없을 듯 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화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딱딱하고 난해하기 쉬운 주제를 풍자 만화로 그려내면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저자인 테드 롤은 미국의 이름 있는 시사만화가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풍자 뉴스 사이트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입부는 냉전 시대를 돌아보면서 왜 미국 사회가 갈수록 부자들을 위한 나라가 되어 가는지, 그리고 개혁을 외치는 좌파 정치인들이 설 곳이 없는지를 설명합니다. 그 와중에 버니 샌더스라는 진보 정치인이 어떻게 등장하였으며 그의 정치 철학과 목소리를 통해 미국 사회의 대안으로 부각되었는가를 다룹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버니 샌더스가 왜 미국 사회에서 새로운 돌풍을 불러오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힐러리는 여성이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주류 정치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보수 정치인이며 그녀가 집권한다면 오바마나 그 이전과 별다를 것이 없겠지요. 하지만 오늘날 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미국이 흔들릴 경우 전 세계에도 엄청난 여파를 줍니다. 또한 미국 경제의 불황은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이어지죠.

물론 버니 샌더스가 실제로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들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 하기 때문이죠. 또한 그는 비주류 정치인인데다 나이도 너무 많습니다. 설령 실제로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끌어온다는 보장 또한 없습니다. 대통령은 절대 권력자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누가 이기건 상관없이, 그의 돌풍은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기에만 급급한 많은 정치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는 사실 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며." 저처럼 그동안 버니 샌더스는 커녕, 미국 대선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사람조차 1시간만에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하면서 또한 그를 지지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양키 스타일의 그림체에 풍자 만화라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필히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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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1 - 조선 패밀리의 탄생 조선왕조실톡 1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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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미있게 본 책이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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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 클래식 브라운 시리즈 1
김경준 지음 / 생각정거장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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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 법가가 있다면, 서양에는 마키아벨리가 있다."

​정치는 일체의 도덕 ·종교에서 독립된 존재이므로 일정한 정치목적을 위한 수단이 도덕 ·종교에 반(反)하더라도 목적달성이라는 결과에 따라서 수단의 반(反)도덕성 ·반(反)종교성은 정당화된다는 정치적 사고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는 이 말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는 어떠한 방책도 허용된다는 뜻으로 이해되어 왔다.  - 네이버 지식백과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란, 간단히 말해서 ​국가의 유지와 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허용할 수 있다는 국가 지상주의 사상입니다. 대표적으로 진시황, 나폴레옹, 마오쩌둥, 피엘 카스트로같은 패권과 혁명을 추구했던 독재자들이 마키아벨리즘을 충실히 이행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부국강병이라는 목적을 추구했지만 국민들의 철저한 희생을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즉, 이들이 말하는 국가란 어디까지나 나를 위한 국가이지, 대다수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이런 소수를 위한 정치 사상은 독재국가만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국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국가 안보를 명목으로 감시 시스템을 구축 운영하고 있다는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Joseph Snowden)의 폭로는 말로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국가 역시 모두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지배하는 소수 엘리트들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권위의식과 소위 갑질 문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근본적으로 부와 권력을 쥔 소수는 자신들이 다수의 일반 국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라는 명목으로 어떠한 수단을 써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법가 사상이나 마키아벨리즘의 실체란 이런 것이며, 이점이 바로 백성이 곧 하늘이며, 덕과 인을 수단으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추구했던 유교적인 왕도 정치와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저서​《군주론[II principe]》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권모 술수 중심의 정치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부도덕하다"라며 윤리적인 비난에 직면했으며 교회는 금서로 지정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프리드리히 대왕을 비롯해 많은 군주들이 군주론을 읽고 통치의 교훈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군주론은 냉혹한 정치 현실을 드러냈고 , 마키아벨리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실상 인간의 본성에 부도덕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정치란 어차피 위선"이라는, 누구나 다 알지만 솔직하게 인정하기는 껄끄러운 사실을 지적했을 뿐이죠.

 

생각정거장 출판사 신작도서인 《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은 핵심만 알기 쉽게 간추린 요약서라 할 수 있습니다. 군주론은 손자의 손자병법,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함께 군주의 통치 철학을 다룬 정치 사상서이자,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 인문학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막상 이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왠지 난해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앞서는데다 실제로도 장황하고 산만합니다. "군주론"이라는 거창한 제목과는 달리, 관직에서 쫓겨났던 마키아벨리가 재취업을 위해 자신을 어필할 목적으로 쓴 일종의 자기 소개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취업 이력서가 아니라 평생을 외교 일선에서 몸바쳤고 뛰어난 학식을 갖춘 당대 최고의 엘리트로서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모두 담은 평생의 역작이기도 합니다.

"군주가 자신의 군사들을 통솔하고 많은 병사들을 지휘할 때, 잔인하다는 평판에 괘념치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군대를 단결시키고 그들의 위무를 다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군주는 신의를 지키는 것이 불리할 때 혹은 약속을 맺은 이유가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약속을 지키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사악하고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군주 역시 그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올바른 행동에서 가급적 벗어나진 말아야겠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라면 악행도 취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군주론에서 몇몇 대표적인 대목을 보더라도 왜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도덕과 윤리에 어긋난다고 그토록 비난받을 수 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군주론에는 불편한 진실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지켜야 할 덕목 또한 함께 언급하고 있습니다.

"군주에게 최고의 요새는 시민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군주가 요새를 구축한다고 해도 시민들이 그를 미워하면 요새는 군주를 구할 수 없습니다."

"군주는 자신이 재능있는 자들의 후원자로서 탁월한 기술이 있다면 어느 분야든 예우해준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어느 분야에서든 마음놓고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사실 그는 군주에게 부도덕하기를 요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부도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약소국인 피렌체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가피함을 피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관료였던 그가 피렌체의 실권자였던 메디치가의 입맛에 맞는 말을 일부러 고른 면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는 이미 미운털이 박히었기에 로렌초 메디치는 이 책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실의에 빠진 그는 1527년에 죽었고, 군주론은 그가 죽은지 몇년이 지난 뒤에야 정식으로 출간되어 세상에 나옵니다.

군주론을 읽다보면 손자병법이 떠오릅니다.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에 자신을 어필할 목적으로 군주론을 썼듯, 손무 역시 오나라의 합려에게 어필할 목적으로 손자병법을 썼다는 점, 단순히 군대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가르치는 병법서라기보다 군주로서 국가와 신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 철학을 가르치는데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군주론을 다룬 책은 시중에 많이 있지만,《단숨에 이해하는 군주론》은 제목대로 군주론을 정말 쉽게 풀이한 책입니다. 포켓 사이즈에 불과한데다 분량도 180여 페이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자의 필력 또한 훌륭하여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작정하고 읽으면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책입니다.

군주론은 단순한 고전 인문학이 아니라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6세기 유럽의 정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히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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