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
이정민 지음 / 사이드웨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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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미국은 트럼프가 만든 것이 아니라 트럼프를 선택한 나라에 더 가깝다" - 머릿말 중에서.


4년에 걸친 국공내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49년 4월 24일 새벽 난징의 총통부 꼭대기에서 앳띤 공산군 병사들이 붉은 깃발을 내걸었다. 그것은 26년 뒤의 사이공이나 72년 뒤 카불에서 벌어질 모습의 전주곡이기도 했다. 물론 남베트남 최후를 다룬 다큐멘타리라던가 작년에 개봉한 프랑스 영화 <카불 13일 낮, 13일 밤>에서 나오는 것마냥 겁에 질린 사람들이 정복자들의 보복을 피해서 외국 대사관으로 좀비떼처럼 몰려들고 막 떠오르는 헬기에 목숨 걸고 매달리는 참혹한 엑소더스가 그 시절 난징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시청자들에게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공내전이 사실상 잊혀진 전쟁이다보니 외국 기자들이 남긴 단편적인 증언 외에 오늘날 대중 매체들을 통해서 접하는 내용은 거의 전적으로 공산당 공식 사료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초반 북한군이 서울에 입성했을 때 서울 시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북한 쪽 기록으로 얘기하는 꼴이나 다를 바 없다.


상하이에 입성한 공산군 병사들이 건물을 징발하는 대신 길거리에서 노숙하는 광경. 장제스의 국민정부군이 약탈을 일삼았다면 공산군은 "3대 기율, 8항 주의"를 내세워 인민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서사는 오늘날까지도 민심을 얻어 천하를 차지했다는 마오쩌둥의 신화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공산당 정통성을 세우기 위한 프로파간다일 뿐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미국의 국제 전략이 처음으로 쓴맛을 봤다는 사실이다. 국공내전은 2천여년 전의 초한지쟁과 달리 장제스와 마오쩌둥 두 사람만의 대결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유럽에서 점차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미국과 소련도 얽혀 있었다. 특히 미국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처럼 직접 군대를 보내어 싸우지 않았을 뿐 누구의 눈으로도 빼박할 수 없을 만큼 깊숙이 개입했다. '마셜 사절단(Marshall Mission)'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조지 마셜 원수는 군에서 예편한 뒤 트루먼의 특사로 중국에 파견되어 국공의 중재와 갈등 조정을 맡았다. 강직하고 깐깐한 원칙주의자로서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았던 그는 중국인들에게도 처음부터 불청객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불신과 증오만 샀고 자기 경력의 오점으로 남긴 채 1년 만에 진절머리를 내면서 떠나야 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임무였고 마셜 자신도 금방 깨달았지만 트루먼이 무시한 결과였다. 미국의 목적은 중국의 평화가 아니라 중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최소한의 비용만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 마셜의 끊임없는 딜레마였다. 무엇보다도 그가 간과한 점은 당사자들에게는 단순히 누가 더 가지고 덜 가지고의 제로 섬 게임이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흥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셜이 자신의 권위와 미국의 위세를 내세워 알맹이 없는 말 몇 마디만으로 중국인들을 억누를 수 있다고 믿은 것 자체가 오만함이자 무지였다.

나중에 마셜의 비판자들은 그를 가리켜 "중국을 잃었다."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마셜이 좀 더 잘했더라면 중국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장제스를 철저히 지원하던가, 반대로 공산당에게 보다 우호적으로 접근했더라면 냉전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며 베트남전쟁의 15년 악몽 또한 없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Decisive Encounters: The Chinese Civil War, 1945-1950>의 저자인 오드 아르네 웨스타드(Odd Arne Westad)는 "미국의 전능함에 대한 믿음이 만들어낸 신화"라고 반박한다. 맞는 말이지만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전능하지 않기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능한 존재라고 믿고 충분한 고민 없이 남의 일에 어줍잖게 끼어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었다. 원래 미국은 국공의 게임판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마셜 사절단은 중국인들의 요청이 아니라 태평양전쟁 말기 장제스와 스틸웰의 갈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자신의 본분을 잊고 사실상 중국의 총독이 되기를 원했던 스틸웰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장제스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의 가장 강력한 위협이었던 공산당에 눈을 돌렸고 옌안에 '딕시 사절단'을 파견하여 미국이 국공 문제에 발을 들이도록 끌여들었다. 스틸웰의 뒤를 이은 마셜 또한 미국의 원조를 무기삼아 장제스의 손발만 묶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여겼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장제스의 승리를 돕지도, 마오쩌둥이 스탈린에게 접근하는 것도 막지 못한 채 빈손으로 떠남으로서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욕만 먹은 꼴이 되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처음부터 나서지 않는 쪽이 더 나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국공내전은 미국 입장에서 어떤 교훈을 얻기에 수업료가 너무 적었다. 실패한 쪽은 자신들이 아니라 장제스였고 애초에 중국은 미국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나라였다. 바꾸어 말해서 더 작은 나라에서는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착각이었다. 한반도에서는 마오쩌둥에게 통렬한 일격을 허용했지만 간신히 체면치레라도 했다면 베트남전쟁은 미국의 완패였다. 미국인들은 비로소 자신들이 전능한 존재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세계 패권국가로서 전능함에 대한 미련을 순순히 내려놓지는 못했다.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하고 미국의 방식으로 그 나라들을 바꾸겠다며 헛된 애를 쓰다가 쓸데없이 힘만 뺀 채 더 큰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경쟁자들에게는 도전의 기회를 준 꼴이었다. 푸틴은 기다렸다는듯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얼마 전에는 베네수엘라 독재자 마두로를 포획하는 성공에 고무된 트럼프가 성급하게 이란을 쳤다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수렁에 빠뜨렸다. 미국인들에게 전능함이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라는 얘기이다.



지지난달 사이드웨이 출판사에서 나온 신작 도서 <미국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 흔들리는 제국의 초상>은 80년에 걸친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같은 트럼프 시대 미국의 민낯을 신랄하게 파헤친 책이다. 저자는 KBS의 24년 차 베테랑 여성 기자로서 지난 수년 동안 워싱턴 특파원을 지내면서 바이든 시절 아프간 철수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가자전쟁, 트럼프 집권 등 굵직굵직한 미국의 국제 현안을 체험하고 이와 관련된 주요 인사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쓴 것이 바로 이 책인 셈.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의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그것도 8년 전에는 힐러리가 선거인단에서는 졌어도 총 득표에서는 이겼던 반면 이번에는 민주당의 완패였다. 트럼프를 가리켜 미국 대통령 치고는 그나마 말이 통하는 상대라고 여기는 푸틴이나 '이스라엘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네타냐후를 제외하고 전 세계 80억 인류 중 대다수에게는 그야말로 기막힌 광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앞서 1기 때에도 딱히 치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을 뿐더러 말년에는 의회와의 갈등으로 사실상 식물 대통령 신세였다. 게다가 말만 번드르할 뿐,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는데다 2020년 대선에서는 극렬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의회를 습격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했으며 심지어 무늬만 공화당이지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의 성격 탓에 공화당 내부에서도 극혐인지라 부시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 중에서 그를 위해 어느 한 사람 유세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리 민주당이 인기가 없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것은 차악 대신 최악을 고른 꼴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미국에 대한 몰이해라고 일축한다. 트럼프의 당선은 단순히 위대한 미국을 들먹이는 그의 뻔뻔한 거짓말과 극우 매체들의 선동에 어리석게 넘어간 미국인들의 충동이나 변덕의 결과가 아니며, 트럼프가 집권하자마자 동맹국들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터뜨리고 여기저기서 좌충우돌식으로 일을 벌이는 것 역시 나름대로는 지지층의 여론을 고려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무뇌아가 아니라는 것. 그게 그 양반의 머릿속 계산이나 대다수 미국인들이 바라는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는 별개의 얘기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우리 눈앞에 직면한 미국의 변화를 트럼프 개인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과연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건 한 명의 '돌연변이' 리더일까.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국가의 합리적 이성, 그리고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미국 사회의 선택이 그것이다. 트럼프는 거칠지만 단지 즉흥성에만 기대고 있는 건 아니다. 트럼프는 정치인이다. 여론을 읽고 지지층의 요구에 반응하며 움직인다. 재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쥐고 싶어 하는 성향상 더욱 그러하다. - p.11


이 책은 제일 먼저 한국에 대한 2기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을 다루고 있다. 우리로서는 가장 관심사이다. 그 중에서도 미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는 트럼프식 안보 실리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며 저서인 <거부전략>은 2023년에 국내에도 출간되었더라. 나중에 읽어봐야 할 듯. 그는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은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아니라 중국을 겨냥한 것이며 북한에 대한 방어는 우리가 알아서 할 몫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한미동맹이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중국 견제를 위한 수단으로 우리가 미국에 기여해야 한다는 얘기이다. 심지어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핵무장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 요근래 우리도 북핵에 맞서 핵무기를 만들자는 국내 핵무장론자들 입장에서는 고무될 얘기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양반 개인의 생각일 뿐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닐 뿐더러 NPT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문제이므로 트럼프가 승인하고 말고 할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서 걸러들을 필요는 있다. 정말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더 이상 한미동맹에서 '공짜점심'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 입장에서 제아무리 동맹이라도 자기네들에게 이용가치가 없으면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남베트남이나 아프간 등지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그들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앞으로는 가식과 위신으로 숨기지 않을 것이며 한국은 미국에 과연 쓸만한 동맹인지 스스로 증명해 보라는 게 콜비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북한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과 큰 충돌에 휘말릴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북한은 남한만큼은 아니더라도 매우 가공할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방어, 특히 재래식 군사력 단계에서 1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 p.36


"아시아에서 핵 비확산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한국과 대만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막았지만 북한과 중국에서는 실패했죠. 특히 미국의 중요한 동맹국인 한국이 확장억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 비확산 정책을 고집하는 건 우스운 거죠. 더 나은 옵션을 찾을 수 없다면 '우호적인 핵확산'에 직면할 준비를 해야 해요. 동맹이 깨져서는 안 되니까요. 이스라엘의 경우 핵 보유가 나쁜 게 아니라 안보를 안정시키는 요소로 간주된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 같은 논리를 적용하는 게 왜 안되나요?" - p.42


미국은 더 이상 동맹을 지켜주는 패권국이 아니다. 오히려 동맹의 지원이 패권 유지의 필수 조건이 된 나라이다. 팔목을 비틀어서라도 동맹을 곁에 두어야 하지만 그들이 기댈만한 지원은 제공할 수 없는 나라, 약해지는 패권을 되살리려 시간을 벌어 힘을 비축하는 대신 위험은 동맹과 우방에 외주를 주는 나라. 그간 세계의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외양도, 내면도 작아진 미국을 우리는 앞으로 상대해야 한다. - p.52


본문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프간과 우크라이나에서 드러난 팍스아메리카나의 현실과 세계 최강 미국이 어쩌다가 그렇게 몰리게 되었는지, 그 빈틈을 사정없이 파고드는 중국의 거센 도전 속에서 여전히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미국의 딜레마, 그리고 그런 딜레마가 미국인들로 하여금 트럼프를 선택하게 되었고 설사 트럼프가 아니라 누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건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을 바꾼 것이 아니라 트럼프 집권 이전부터 이미 미국은 바뀌고 있었다는 얘기.


작년에 개봉한 <수퍼맨 리부트>. 이전의 수퍼맨들이 절대적인 힘으로 희망을 주는 지구 지킴이였다면 여기서는 누명을 쓴 수퍼맨이 미국 정부에 의해 구금되고 다른 초인들은 그걸 알면서도 함께 엮일까봐 눈치만 보는 장면이 나온다. 수퍼맨도 미국에 까불면 혼난다는 트럼프 시대의 메세지를 보여준다랄까. 정작 수퍼맨은 커녕, 이란한테도 쩔쩔 매는 것이 이빨 무뎌진 미국의 현주소지만 말이다.


흔히 미국을 가리켜 국방비가 천조원이 넘는다고 '천조국'이라며 그 넘사벽적인 재력과 무궁무진한 군사력에 감탄한다지만(지금은 2천조가 넘었다.) 상당부분 허상이기도 하다.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 병사들의 복지는 갈수록 형편없고 첨단 무기는 정비 불량에 허덕이고 있으며 탄약도 부족하다. 얼마 전에는 트럼프가 말 안 듣는 이란에 미국의 분노를 보여주려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재고가 바닥났다는 보고에 물러섰다는 기사가 떳더라. 특히 11척의 핵항모로 대표되는 해군력은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투사하는 수단이지만 군함의 태반이 심각하게 노후화된 반면, 신조함의 건조는 지연되는 판국이다. 그동안 제조업과 조선업을 등한시한 결과이다. 이제와서 트럼프가 아무리 '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친들 거의 숨이 끊어진 조선업을 당장 살릴 수는 없다보니 덕분에 우리 조선소들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기도. 얼마 전에 읽은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에서는 냉전이 끝난 뒤 천조국 미국이 국방비를 줄이기는 커녕 천정부지로 늘리고 있음에도 정치인들과 유착한 거대 군산복합체들의 비효율적인 구조와 중복 투자 때문에 미국인들의 세금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지 신랄하게 고발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저자 또한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미국의 힘은 자국의 군사력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뒤에는 유럽의 동맹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 혼자만이 아닌 나토의 작전이었다. 나토의 상호방위조약 의무에 따라 그간 미국의 도움만 받던 유럽 국가들이 처음으로 미국을 도우려 전장에 나섰다. 그런데 '동맹의 전쟁'은 '동맹없는 철수'로 끝났다. 미국의 황급한 철군은 나토 동맹국들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유럽 국가들은 우왕좌왕했다. 수백, 수천명씩 현지에 뒀던 자국민과 현지 조력자들을 대피시킬 탈출계획도 마련하지 못했다. - p.57


우크라이나 전쟁은 갑작스러운 전시 상황에서 미국의 무기 공급망이 버텨낼 수 없음을 중명했다. 미국에는 오랫동안 '두 개의 전쟁은 어려우니까 한꺼번에 치르지 말자'라는 명제가 존재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한개의 전쟁이라도 고스란히 단독으로 치를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 p.81


소련이라는 적이 사라지고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되자 미국의 방위산업은 갈 길을 잃었다. 미국 정부는 1988년부터 총 다섯 차례에 걸쳐 350개 주요 군사 기지와 시설을 꾸준히 폐쇄하고 이에 딸린 정비 시설도 감축했다. 한때 비축했던 무기 제조용 광물과 금속들도 민간에 매각했다. 방위산업 역시 축소의 길로 접어들었다. 냉전 종식 직후인 1992년 미 의회에 제출된 보고서는 주요 방위산업체들이 투자처 부족으로 엄청난 부채를 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키웠던 방산 기업들도 정부 주도로 하나둘 매각되었다. 1990년대 말까지 미국 주요 방산업체 수는 51개에서 5개로 급감했다. - p.147


트럼프의 영토 집착은 그린란드에만 그치지 않았다. 파나마 운하나 그린란드처럼 거점 영토가 아닌 북쪽의 엄연한 주권 국가 캐나다도 건드렸다.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부르며 캐나다 총리를 면전에서 '주지사'로 부르는 결례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잊을 만하면 소셜 미디어에 성조기가 캐나다 영토를 뒤덮은 그래픽 등을 올리면서 캐나다 국민들의 신경을 긁었다. 2026년 1월 캐나다군은 가상의 자국 침공 시나리오를 상정해 게릴라전까지 포함한 대응 방안을 모의실험했다. - p.178


미국이 자국에 직접적인 이익이 되는 영역에만 집중하면서 곳곳에 외교적 공백이 생겨났다. 중국은 그 틈을 파고들어 경제와 산업, 투자와 시장 접근을 앞세운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세계의 생산기지이자 거대한 시장을 동시에 갖춘 중국으로서는 자국 기업의 해외시장을 넓히는 동시에 자원기지를 선점하고 외교적 영향력도 키울 수 있는 효율적 전략이었다. 미국이 비워 둔 공간은 곧 중국이 새로운 파트너를 확보하는 외교 무대로 바뀌고 있다. - p.222


미국이 찾은 답 중의 하나가 동맹이다. 미국은 그간 자신들이 만든 질서의 혜택을 누려왔으니 이제 그 비용도 함께 부담하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책임 분담'이라는 명목 아래 군사비 증액과 역할 확대를 강압적으로 동맹에 청구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독주와 독단이 빚어낸 비용까지 청구서에 얹힌다는 점이다. 미국의 일방통행과 전략적 오판이 빚어낸 지정학적 리스크마저 동맹의 몫으로 넘겨진다. - p.288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 미국인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 위기감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는 트럼프라는 협잡꾼을 선택하게 된 이유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오늘의 미국이 리즈 시절이라는 루스벨트 때보다 더 약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인구와 경제력, 군사력은 물론이고 대다수 일반 국민들 또한 자신들의 할아버지 때보다 훨씬 풍요로운 물질의 이기를 누리고 있다. 하물며 팍스아메리카나가 아무리 종말을 맞이한들 과거 로마제국이 그러했듯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대영제국처럼 갈가리 찢겨나가게 되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미국이 정체된 반면 우리같은 신흥국가들이 빠르게 쳐올라오면서 한때 위대했을 자신들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두려움이다. 특히 광대한 영토와 세계 최대의 인구,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미국을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을 가진 나라이다. 게다가 중국이 구소련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먹여 살려야 할 짐짝같은 위성국들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중국 지도자들은 쿠바나 이란, 북한의 김정은에 비하여 훨씬 뛰어난 식견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으며 더 이상 마오쩌둥 시절의 국가적 자폭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실험에 매달리지 않는다. 미국으로서는 가장 무서운 적수일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상황이 트럼프 탓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큰소리친 것마냥 미국을 제대로 위대하게 만들고 있는걸까.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극소수의 엘리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누리는 반면,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으며 하류층들은 극빈층으로 전락했다. 현실의 희망이 사라지면서 청소년들은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정작 트럼프는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덮어둔 채 시대착오적인 자기 우상화와 이민자 추방에 열을 올리고 중국, 러시아같은 힘 있는 강대국은 존중하면서 우리처럼 만만한 동맹국들만 군기잡기로 미국의 권위를 세우겠다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게 지지층을 얼마나 만족시킬지는 모르겠지만 국론 분열과 이미지 실추는 물론, 동맹국들의 분노를 자아내어 트럼프 자신에게도 그리 도움될 것같지는 않다. 하물며 그가 동맹국 지도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면서 미국에 충성과 복종을 요구한들 순순히 따를 리도 없다. 링컨과 아이젠하워를 배출한 공화당에서 하필이면 이런 인간을 대통령으로 세웠는지 세상은 요지경이다.

미국이 4개로 분열되어 내전에 빠지는 상황을 가정한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영화 <시빌워>. 여기서 한 군인이 주인공들을 향해 "당신네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냐?"라는 질문은 경쟁국의 추격만이 아니라 갈수록 심화되는 미국 내부의 분열상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트럼프 하는 꼴이 마음에 안 든다고 동맹국들이 당장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국제 질서는 미국이 창조한 것이며 중국이나 러시아같은 더 탐욕스럽고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대신한다고 더 낫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고압적이고 이기적인 행태가 협력보다 반감을 살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저자의 지적처럼 트럼프 이후에도 미국이 바뀌지 않는다면 동맹국들은 미국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려고 할 것이다. 19세기 영국 총리 파머스턴 경의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우군도 없으며 영원한 것은 오직 우리 국익 뿐"이라는 유명한 말마따나 미국의 국익이 자신들의 국익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달라지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변한 미국을 인정하며 그에 따라 우리를 움직였던 동맹의 메커니즘도 수술대에 올릴 때가 왔다." 당연하면서도 쉽지 않은 얘기이다. 왜냐하면 해방 이후 우리는 80여년 동안 미국의 그늘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급변하지만 인간의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대미 외교가 국익이 아니라 국내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우리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되면 누가 미국에 충성할 자격이 있는지를 놓고 서로 싸우고 국익은 커녕 미국을 상대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한미동맹을 흔든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판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바뀌었고 더 이상 과거의 미국이 없음은 분명하다. 제아무리 미국의 바짓가랭이를 붙잡고 애걸한들 한미동맹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에게 가치가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인정하건 말건 말이다. 이제는 우리끼리 충성 경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읽다보니 문득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 p.78에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대표 무기는 대포와 박격포의 중간 형태인 곡사포인데 우크라이나가 여기에 들어가는 155mm 포탄을 경악스러운 속도로 소모하고 있었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뭐가 중간 형태인지는 모르겠으나 곡사포와 박격포 모두 대포의 일종이다. 저자가 착각한 모양. 참고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넘긴 것은 M198 155mm 견인 곡사포를 경량화한 M777 곡사포. 포탄 부족도 문제이지만 수량 자체가 부족한데다 자주포가 아니라 견인식이다보니 방어력과 기동성에서 취약하여 제공권을 쥐고 있는 러시아군의 대포병 사격으로 절반 이상 손실한 모양. p.145에서는 연합군이 공포의 티거 중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것이 M4 셔먼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셔먼은 티거 상대용이 아니라 M3 리 전차를 대체하기 위한 다목적 중형 전차로 개발에 착수한 것은 미국이 참전하기 이전부터이며, 서방 연합군이 티거를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12월 튀니지에서였다. 영화 <퓨리>에 나온 것마냥 셔먼이 물량에서 티거를 압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합군의 수단이 셔먼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 동부전선에서는 티거보다 더 한 괴물도 등장했으니. 아무튼 밀덕의 습성인지 이런 것만 눈에 들어온다는.

전쟁을 가장한 호러였던 독일 영화 <티거>에서 티거의 포탄을 튕겨내는 소련 SU-100 구축전차. 영화 <퓨리>에서 티거가 셔먼의 포탄을 튕겨내어 빵형과 관객들에게 공포를 선사했다면 여기서는 이놈이 그대로 재현한다. 퓨리의 오마주인 셈. 하지만 이보다 한체급 위의 괴물이 ISU-152. 엄밀히 말해서 우리가 아는 티거의 명성은 전차 성능보다도 독일 전차병들의 탁월한 숙련도 덕분인지라.


그럼에도 국제 전문가다운 저자의 치밀한 분석과 날카로운 통찰력은 오늘날 미국의 시대가 어떻게 저물고 있는지 알려준다. 트럼프의 허세 뒤에 감추어진 절박감도 함께 말이다. 단 한번도 전능한 적이 없음에도 스스로 만들어낸 전능함의 환상에 빠져서 힘을 낭비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랄까. 300여 페이지를 하루 만에 읽었다. 미국 싱크탱크 연구원들이 쓴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와 더불어 꼭 읽어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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