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몰락(Der Untergang)>이라는 영화가 있다. 독일 출신 영화 감독인 올리버 히르슈비겔이 2004년에 제작한 이 영화는 히틀러의 여비서였던 트라우들 융에(Traudl Junge)의 관점에서 나치 최후의 14일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적으로 본 명작 중 하나이다. 오직 상업성만을 따지는 할리우드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영화. 전쟁 영화이면서도 전투신은 거의 없지만 영화 내내 극적인 긴장감이 가득하다. 파멸을 앞두고 벼랑 끝에 몰린 인간들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지 절망과 광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패전 직전 히틀러와 나치 일당들의 처지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자기들끼리 미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 듯. 인간이 이판사판에 내몰리면 무슨 짓을 못하겠느냐를 보여주는 셈.


국내에서 정식 상영한 적은 없지만(솔직히 국내 정서에서는 망하기 딱 좋은 영화라) 덕후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잘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짤방 중 하나가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대중계몽 선전부 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막말. 전쟁 말기 베를린 대관구 지휘자로서 사실상 수도 방위와 대중 동원을 총괄하고 있었던 그에게 무장 친위대 소속의 빌헬름 몽케 소장이 괴벨스 휘하의 국민 돌격대가 변변한 무기도 없이 개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하자 괴벨스는 내가 알 바냐는 식으로 대꾸한다. 국민들이 우리를 선택했으니 그 책임도 그들 몫이라는 얘기이다.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자신들에게 권력을 안겨다 준 우민들을 향한 경멸감을 숨기지 않으면서 마지막에는 썩소까지 날리는 그의 뻔뻔한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이지만 아픈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치는 레닌이나 마오쩌둥, 탈레반처럼 총칼이 아니라 1933년에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았으니 말이다. 1년 뒤 힌덴부르크가 죽자 민주주의를 중단하고 히틀러에게 절대 권력을 몰아주는데 압도적인 찬성을 했던 것도 독일 국민들이었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히틀러가 승리할 때에는 그토록 열광했으면서 이제와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괴벨스 말마따나 누구를 원망하겠음.



오늘날까지도 히틀러와 나치가 그토록 욕을 먹는 이유는 단순히 독재 정권이라거나 역사의 운 없는 패배자라서가 아니라 앞으로 두 번 다시 등장해서는 안 될 정신병자들의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나치의 만행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수백만 명의 유태인 대량 절멸이지만 빙산의 일각일 뿐,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을 비롯하여 나치가 하등하다고 규정한 모든 인종, 독일 사회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 장애인, 유전 질환자들도 피해자들이었다. 프랑스 전역에서 포로로 잡힌 프랑스군 출신의 아프리카인들 역시 대량 학살을 당했다.


게다가 나치의 광기는 패전 직전으로 갈수록 도를 더했다. 막판에 오면 히틀러는 자포자기한 나머지 아예 독일의 모든 것을 철저히 파괴하라는 '네로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야전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패전의 책임이 자신의 무능함 탓이 아니라 독일 국민이 열등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독일이라는 나라 자체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일종의 분풀이였다. 심지어 괴멜스가 부인은 물론, 자신의 아이들까지 총통을 위하여 순교하겠다고 말했을 때 히틀러는 말리기는 커녕 그의 비뚤어진 충성심을 칭찬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심성이 의심스러울 정도. 도대체 전생의 뭔 인연이길래 이런 뇌가 고장난 작자들끼리 잘도 모였나 싶다. 정권 잡기 전에는 평범했는데 권력이 그렇게 만든 건지.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독일인들이 뭘 믿고 정신나간 미치광이들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백지위임했는가. 물론 이들도 그 선택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 줄 알았더라면 나치를 찍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1933년의 실수는 나치의 실체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쳐도 무솔리니를 자기들 손으로 쫓아낸 이탈리아인들과 달리 독일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치에 순종했다. 초로의 노인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히틀러의 병사가 되어 열성적으로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소련군은 말할 것도 없고, 영미 연합군이 라인강을 넘어 독일 본토로 들어왔을 때에도 독일인들이 1941년의 일부 러시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독재자를 타도하겠다면서 적군에게 부역하는 일은 없었다. 하물며 참다 못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히틀러를 향해 전쟁을 멈추라고 외치지도 않았다.

나치 정권이 이전의 독일 제국이나 여느 독재 정권들과 다른 점은 단순한 총칼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여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전당 운동을 통해서 독일 국민들을 나치와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독일 국민들은 나치가 벌이는 모든 일에 열광했고 운명 공동체가 되었다.


히틀러의 무모한 전쟁으로 제1차 세계대전 때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었음에도 1918년 카이저를 끌어내렸던 킬 군항의 혁명은 나치 치하에서 되풀이되지 않았다. 그게 히틀러의 선동에 집단 가스라이팅되었기 때문이건, 나치의 탄압이 무서웠기 때문이건, 소련의 보복만은 막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건 말이다. 어쩌면 세계 제일을 자처하던 사람들 입장에서 자신들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대다수 독일인들은 "모든 것은 나치가 나빴기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이유를 대건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침략 전쟁을 초래했으며 약자들을 학살하는데 동조하거나 묵인했다는 사실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오랜만에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신작이 나왔다. 인문학 전문 출판사인 교유서가에서 나온 논픽션 역사서인 <독일인의 전쟁 1939~1945>이다. "전쟁 속의 민족(A Nation Under Arms)"라는 영어 부제처럼 평범했던 독일 국민들이 나치의 침략전쟁 아래에서 민간인으로서, 병사로서 겪어야 했던 전쟁 이야기이다. 저자인 니콜라스 스타가르트(Nicholas Stargardt)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 역사학 교수로 그의 아버지는 독일계 유태인이라고 한다. 아마도 나치 치하에서 홀로코스트를 직접 경험해 보았을지도. 분량만도 1천 페이지에 달하는 대작이다보니 역자 또한 여느 번역서와 달리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평생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 연구에만 매달린 김학이 동아대 사학교 교수가 직접 맡았다고. 국내 몇 안 되는 나치통인 분.


이 책은 에른스트 귀킹이라는 이름의 한 무명 병사가 여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작한다. 1939년 8월 25일 그는 갑작스럽게 귀대 명령을 받고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복귀해야 했다. 다음날 독일은 동원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과연 그 소식을 들은 독일인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1년 전만 해도 히틀러가 연합군을 상대로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무모한 도박을 벌이는 모습에 독일인들은 잔뜩 겁을 먹었다. 이들은 1914년 오만한 정치인과 장군들이 초래한 전쟁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게 했으며 이른바 '순무의 겨울'이라고 불리는 궁핍한 전시 생활과 패전 이후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뮌헨에서 극적인 타협이 실현되자 독일인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연합군을 깔보게 되었고 자만심에 사로잡혔다. 상대의 양보에 우쭐해진 나머지, 싸우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자기 최면에 빠진 것이었다. 자신들은 언제나 베르사유 체제의 부당한 피해자였고 이제는 되갚아 줄 때였다.


문제는 '복수' 한마디로 합리화하기에는 그들이 보여준 만행은 너무 난폭하고 잔혹했다는 점이었다. 독일인들에게는 승자의 아량이나 관용이 없었다. 저항할 수 없는 약자들을 향해 그동안 쌓인 현실의 불만과 울분을 한꺼번에 해소하는 양 무제한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많은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 대신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어떤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고삐 풀린 독일인들의 광란이기도 했다. 나중에는 그것을 부추겼던 히틀러조차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독일인들이 어떤 식으로 인간성과 도덕적 감각을 상실하는지, 폴란드의 승리에서 베를린 함락까지 6년의 시간을 그들이 남긴 수많은 편지와 일기, 다양한 기록을 통해서 재구성한다. 여기에는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오만함과 히틀러에 대한 기대감, 전쟁 초반 놀라운 승리와 열병 같은 흥분이 가라앉은 뒤의 불안감, 탐욕, 광기, 패닉, 그리고 죄책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1914년 8월과 달리 1939년 9월 1일에는 애국 행진이나 대중 집회같은 것이 없었다. 길거리는 무섭도록 조용했다. 예비군들은 집합 장소에 가서 신고를 했고 민간인들은 건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도이체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모든 사람들이 '다가오는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오직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다고 보도했다. 니콜라스 호수 교외에 사는 요헨 클레퍼는 그 기사를 읽고 기이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어떻게 아무런 열광도 없이 착 가라앉은 채 전쟁을 바라볼 수 있는 걸까?" - p.60

독일인들에게 애국주의 헌선이나 정의로운 민족 대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정적인 오류는 고도로 분화되고 종종 내적 모순을 일으키는 근대 사회를 상투적인 제스처만으로 산업화 이전의 정겹고 전근대적인 '황금시대'라는 낭만적인 상상물로 바꿀 수 있다는 사고 방식 그 자체였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중앙집권적인 정부와 나치, 나치당 산하의 대중조직, 지방 정부, 교회는 민족적 연대의 결핍분을 상쇄하기 위해서 한층 노력해야 했다. - p.91

한 여대생 자원봉사자는 자신의 활동을 고향집에 전하면서 친위대가 폴란드 촌민들을 헛간에 몰아넣은 작전을 다음과 같이 썼다. "저 짐승들에 대한 동정심요? 아뇨. 나는 저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소름이 돋아요. 그들 존재 자체가 너무나 낯설어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어도 그들에게 닿는 것조차 불가능해요. 내 생애 처음으로 그들이 죽든 살든 알 바 아니어요." - p.204

가족들이 탈영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2차 대전에서 독일군 병사들의 탈영이 대량으로 발생하지 않은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2차 대전 당시 동맹국 군대에서 대량 탈영이 발생한 사례들, 1943년의 이탈리아 병사들, 독일에 병합된 폴란드와 룩셈부르크, 알자스에서 징집된 병사들, 그리고 1943~1944년 보스니아 무장 친위대 병사들의 탈영은 그곳 시민 사회가 탈영병들을 흡수하고 숨겨줌으로서 군 당국을 상대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충성심과 애국심은 나치 정권이 강요하던 외적 요구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독일 시민사회 모든 계층에서 반복되었고 어머니와 아버지, 아내와 연인의 강력한 1차적 호소를 통해서 되풀이되었던 보편적 규범이었다. - p.313

독일인들은 미국이 독일계 혈통들에게 겉옷에 하켄크로이츠를 달도록 강요했다고 상상하기 시작하자 독일에게 유대인들에게 가해진 조치들은 그리 독특하게 보이지 않았다. 독일인들 생각으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복수는 진작부터 진행되어온 것이기도 했다. 1933년 4월 1일 나치가 유대인 상점들을 보이콧하자 미국에게 독일 수출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유대인 학살 작전이 여전히 동부전선에 국한되어 있었던 그 국면에 독일인들은 유대인의 운명에 국제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소련 민간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의미였다. 유대인은 워싱턴과 런던의 중요한 권력자들이고 그 유대인들이 연합국 동맹이 구축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 p.342

남편의 귀가가 늦어지자 그녀는 스스로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이별 선물로 받은 낡은 리볼버 권총을 주머니에 넣고 아이들을 숲속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아이들을 유대인들이 사살된 것으로 알려진 구덩이 앞에 줄지어 세워놓고 뒷머리에 차례로 권총을 발사했다. 이르나는 훗날 기억했다. 두명의 아이를 처리하자 나머지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큰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훌쩍였다. - p.412

1944년 9월에 서부전선의 독일군이 심각한 공황 상태에 사로잡혔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한 달만에 독일군은 전혀 다른 군대가 되어 있었다. 연합군 사령관들은 붕괴 직전에 몰려 있다고 믿었던 적군이 오히려 갈수록 강력하게 저항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아이젠하워는 1944년 11월에 연합군 최고 사령부에 사령관 회의를 소집해서는 어째서 독일군의 저항 의지를 깨뜨리지 못하는지 물었다. 그는 서부전선 독일군 전쟁 포로 절반 이상이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지키고 있으며 소련군이 기진맥진한 패잔병의 무리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 p.638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준 투지는 실로 경이로울 정도였다. 히틀러는 불과 수년 만에 카이사르나 나폴레옹, 알렉산더 대왕이 평생 일군 것보다도 훨씬 넓은 땅을 정복했으며 거의 모든 유럽을 지배했다. 그의 진정한 실체가 무엇이었건간에 독일인들이 한때나마 살아있는 신처럼 떠받들었던 것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의 그 지리한 싸움을 기억하는 사람들로서는 말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나폴레옹처럼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이 아니라 치졸한 복수와 편협한 인종주의를 앞세운 파괴, 광기, 방종을 남겼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말이다. 심지어 나폴레옹은 죽은 뒤에도 경외의 대상으로 남았지만 히틀러는 인류 문명의 야만성을 보여준 악마이자 두번 다시 등장해서 안 될 독재자로 낙인찍혔다. 무엇보다도 그는 단순히 파멸적인 전쟁을 일으킨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간성을 마비시키고 끝없는 증오심을 심어주었으며 마음껏 폭력을 행사하라며 부추김으로서 독일 전체를 나치의 집단 공범으로 만들었다. 일부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허용한 무제한의 자유 속에서 방종을 즐겼고 유태인에게, 전쟁 포로들에게, 마지막에는 같은 독일인들을 상대로 살인 게임을 벌였다. 그리고 대다수 독일인들은 침묵하거나 방관했다.


2023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원래는 평범했던 인간이 외부의 위협과 생존을 핑계로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받았을 때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상황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지 원래 악마였던 인간이 그 상황을 의도적으로 이용하여 자신의 숨겨진 본성을 드러내는지는 쉽게 얘기할 부분은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런 짓을 저질러도 보복이나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탈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특히 나 혼자보다 남들과 함께 저지를 때 인간은 덜 죄책감을 받는다. 이것이 집단 광기의 무서움이다.


일탈의 시간은 1945년 4월 30일 베를린의 총통 벙커에서 히틀러의 자살과 함께 끝났다. 그때까지 악귀처럼 싸우던 독일인들은 그 순간 히틀러가 걸어놓은 집단 최면에서 풀려난 것마냥 모든 저항의 의지를 잃었다. 정신이 번쩍 든 그들은 자신들이 여태껏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앞으로 돌아올 응분의 결과를 두려워 하면서도 반성과 죄책감 대신 "전쟁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며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 역시 똑같이 고통을 겪은 양 피해자 코스프레로 전쟁 범죄를 물타기했다. 자신들이 승자일 때에는 패배자들에게 온갖 횡포를 부렸음에도 남들은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뻔뻔함이자 이중성이었다.


1945년 11월 20일 뉘른베르크에서 전범재판이 열리자 국제 여론의 전례없는 관심이 쏟아졌다. 그 날 세 아이를 둔 한 어머니가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남편에게 이렇게 썼다. "죄는 언제나 양쪽 모두에 있는 법입니다. 승자의 권리를 앞세워 한 민족 전체를 죄악시하고 그들의 모든 자유를 빼앗을 권리는 없어요.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는 전쟁과 수용소에서 일어난 모든 악행과 우리 이름으로 자행된 수치스러운 행동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많은 이들은 결코 죄가 없습니다. " - p.771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전쟁이 끝난 뒤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였는지를 설명한다. 그들은 모든 잘못을 히틀러와 나치 지도자들 탓으로 떠넘겼다. 자신들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 오히려 나치의 압제 속에서 함께 고통받았다고 합리화했다. 이들에게 국가 사회주의 시절은 잠깐의 악몽에 지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었다.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기보다 앞날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히틀러에 복종하여 침략전쟁의 선봉에 섰던 독일군은 전쟁범죄를 모조리 무장친위대에게 돌림으로서 자신들의 명예를 '세탁'했다. 여기에는 미-소 냉전이 격화되면서 미국이 뉘렌베르크에서 몇몇 거물들을 상징적으로 처단한 것 이외에 대다수 나치 부역자들에게 면죄부와 함께 새로운 체제로 복권시킨 덕분이기도 했다. 물론 미국에 충성하는 조건으로 말이다. 전범 재판은 사법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변질되었다. 그 밖에 그들 입장에서 불리하거나 불편한 역사는 집단 망각하는 쪽을 선택했다.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그나마 독일은 일본처럼 역사의 승자 행세를 하면서 분별없는 소리로 주변국들의 감정을 자극하지는 않으니 조금쯤 낫다고 할까.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히틀러가 없었더라면, 미대에 합격하여 평범한 미술 교사로 인생을 마쳤다면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광기어린 전쟁 범죄는 벌어지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한다면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라는 희대의 악마를 재수없게 만난 죄밖에 없을 것이다. 반대로 히틀러가 없었어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거라고 한다면 그 역시 시류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간 역사의 피해자라는 얘기가 된다. 진실은 아마도 그 중간 쯤이 아닐까 싶다. 과연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일까. 이책도 여기까지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라도 빨리 읽어볼 욕심에 출판사 북 펀드에 응모하여 책을 받자말자 퇴근 후 탐독했다. 1천여 페이지의 만만찮은 분량임에도 일주일 만에 다 읽었다. 그만큼 내용이 흥미롭고 술술 읽힌다. 제2차 세계대전 덕후라면 필히 읽어볼 책이다. 올해 최고의 역사서 중 하나로 꼽을 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