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총의 과학 - 리볼버, 피스톨의 구조와 원리가 단숨에 이해되는 권총 메커니즘 해설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가노 요시노리 지음, 신찬 옮김 / 보누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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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란 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서 나오는 법이지."

(The assault doesn't come from the gun. It comes from the person)


벌써 10여년도 더 전이지만, 우연히 사격장에서 클레이 사격과 권총 사격을 할 기회가 있었다. 여러 종류의 권총이 있었는데 콜드 권총을 골랐던 것같다. 38구경같은 리볼버보다는 자동권총이 멋있어 보였다랄까. 군대에서도 해 본 적 없는 권총 사격인데 괜히 똥폼 잡는 대신 소심한 성격에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고 천천히 그리고 신중히 쏘았다. 생각보다 반동이 제법 있더라. 군대 사격장에서 쓸 때와 다른 커다란 권총용 과녁인데도 과녁에 들어온 것은 대략 절반 정도였다. 처음 쏴본 것이기는 하지만 역시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고전 만화 시티헌터에서는 심지어 날아오는 총탄을 총탄으로 맞추던데 말이다. 스티븐 시걸이냐!

수많은 소년들에게 권총에 대한 로망을 심어준 만화 <시티헌터> 사에바 료가 쓰는 권총은 명품으로 이름난 콜트 파이슨 357. 강력한 위력과 명중률을 자랑한다는데 만화에서는 헬기도 떨어뜨리던가. 스티븐 시걸 맞네.

요금이 비싸서 몇 발 쏴보지는 못했지만 군대 사격과는 또 다른 스릴과 재미가 있더라. 대한민국 남자라면 대부분 군대에서 사격할 기회가 있다. 그것도 무려 공짜로! 하지만 제아무리 민간인 시절 총기에 관심 많은 밀덕이라고 해도 군 사격날을 무슨 소풍이라도 가는 양 신나서 기다리는 인간은 없으리라. 고참들 사이에서 잔뜩 긴장한 채 내 차례가 오기만 기다려야 하니 뭔 로망 따위가 있겠나. 하물며 성적이 신통찮거나 그 놈의 탄피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그 날은 다 같이 끝장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제대하고 예비군 훈련 때 사격 역시 현역 때와 크게 다를 것 없는 기분이더라. 내 나이보다 훨씬 오래된 M1 칼빈이 혹시라도 폭발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앞선 것도 있지만 군대 사격은 아무래도 의무이기 때문일까. 역시 뭐든간에 돈 주고 해야 제 맛이다. 딸래미가 좀 더 크면 사격장에 데려가 볼까 싶다. 분단 국가에서 여자도 권총 정도는 쏠 줄 알아야.

예전에 레드리버 출판사에서 나온 <글록>이라는 책을 서평한 기억이 난다. 글록이라는 권총을 통해서 미국 사회의 총기에 대한 숭배 문화의 민낯을 파헤친 책이었다. 우리가 미국을 바라볼 때 가장 이해되지 않는 문화가 총기 문화가 아닐까 싶다. 잊을 만 하면 총기 사고가 터지고 어린 아이가 총기 오발로 죽었다거나 살인마가 도심지 한복판이나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하여 무고한 시민과 학생 수십명이 살해되었다는 뉴스가 나오지만 정작 미국인들은 무덤덤한 느낌이다. 911테러 때 미국 전체가 분기탱천하여 광기에 휩싸였던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총기 사고가 날 때마다 총기 반대론자들은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매번 그 때뿐이다.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라는 수정헌법 2조 때문이라지만 우리로서는 그 법 만든 게 몇 백년 전인데 명색이 21세기에 아직도 안 바꾸고 그런 캐캐묵은 얘기를 들먹이나 싶다.

반대로 총기 찬성론자들은 미국은 워낙 넓어서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이 많아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총기 협회의 유명한 슬로건이 "총을 가진 악한사람을 막을수 있는건. 총을 가진 선한자 뿐이다"라던가.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여태껏 미국에서 총든 살인마가 무고한 시민들을 쏘아 죽였다는 뉴스는 여러번 들었어도 그 살인마가 무장한 시민들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미국에 그렇게 많은 총이 있다하니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권총이든 기관단총이든 하나씩 가방이나 핸드백에 넣고 다니다가 살인마가 살인을 저지르기도 전에 사방에서 총알 세례를 먹여줄 것같은데 말이다. 그 총들은 다 어디 가 있대.

미국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테러와의 전쟁"이라며 어마어마한 국민 세금을 쏟아넣지만 정작 테러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죽는 총기에 대한 규제에는 무관심하다. 아랍인이 미국인을 죽이는 것은 나쁘지만 같은 미국인이 죽이는 것은 상관없다는 논리인지도.

미국은 남미처럼 공권력이 약한 나라도 아니고 미국인들에게 리비아나 아프간 사람처럼 유목민족의 전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맹수가 기다리는 사막이 아니라 대부분 도시에서 거주하는 미국인들 입장에서 총기는 자신을 지켜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위협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은 분명하다. 물론 미국인들 역시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총기 규제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정치인들이 총기 업체들의 돈을 먹어서도, 신성 불가침의 수정 헌법 때문도, 미국인들의 흔한 믿음 마냥 총이 평등을 상징하기 때문도 아니라(그런 점도 있겠지만) 누구나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는 로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총은 위험한 살인 도구라고 하지만 디자인이 멋있고 손에 쥐고 있으면 폼이 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잘 생긴 액션 배우가 권총 한 자루로 악의 세상을 평정한다. 이미 그렇게 세뇌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 로망을 포기하겠는가.

국산 K5권총. 이런 권총이라면 나도 하나 소장하고 싶지만 마눌님이 싫어할 것같다. 어차피 집에 놔둘데도 없고.

우리 사회는 미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총기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하지만 우리 역시 마음 한켠에는 총기 로망이 있다. 어릴 때 명절날이 되면 동네 구멍가게에서 딱총 한 자루씩 사서 친구들과 총싸움을 했던 기억은 우리 또래 남자라면 누구나 있으리라. 그 때 맡았던 독특한 흑색화약 냄새는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의 총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여 취미가 모델건 조립인 어덜트들도 제법 있다. 나는 기회가 된다면 권총보다는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이나 미니건을 시원하게 쏘아보았으면 싶다. 돈이 엄청 들겠지만. 유튜브에서는 미국에 실제로 그런 사격장도 있더라. 솔직히 총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총을 팔아먹기에만 급급할 뿐, 제대로 된 관리나 사용법을 가르치는데에는 무관심한 인간들과 미국인들의 안전불감증이 나쁠 뿐.


평소 건프라에 관심 있는 사람을 위한 책이 나왔다. 보누스 출판사의 신작 도서 <권총의 과학>이다. 작년에 나온 <총의 과학>이 장총, 즉 라이플과 서브머신건, 기관총을 다루었다면 이번 책은 피스톨에 대한 것이다. 저자 가노 요시노리는 항공 자위대 출신의 무기 전문가이자 작가로서 지금은 예편했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무기 이외에도 보병 전술이나 항공 전술, 전차 전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썼더라. 진정한 밀덕인 셈.

이 책에서는 권총의 종류부터 구조, 권총과 소총이 어떻게 다른지, 권총탄의 종류, 조준 장치, 취급법, 사격술, 탄도학 등 말그대로 권총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전문가들이나 알아먹을 법한 딱딱하고 지루한 학술 용어의 향유가 아니라 사진과 그림을 통해서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재미있게 풀어 쓴다.

읽다보면 꽤 흥미로운 내용이 많다.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액션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들은 대부분 엉터리라는 것. 예를 들어 고전 서부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말 위에서 쌍권총을 쏠 수 없다는 것이나 자동차 차체는 엄폐물로 쓸 수 없다는 점,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의 영화 <원티드>에서 나오는 것마냥 폼 잡는답시고 총을 옆으로 눕혀서 쏘는 것은 '개지랄'에 불과하다는 것 등등. 결론은 권총으로 상대를 맞추기를 원한다면 최대한 근거리에서 제대로 된 자세로 제대로 쏘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사격시 표적의 겨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탄복이 실제로 총탄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는지, 물속에서 사격을 할 수 있는지, 오래된 탄약은 불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같은 평소 궁금해 할 만한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일본 서적들 중에는 군사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를 밀덕들의 취미에 맞추어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책들이 많다. 때로는 이런 분야를 다루어서 도대체 몇 권이나 팔릴까 싶을 때도 있다. 그만큼 독자층이 두껍다는 얘기일 것이다. 출판 시장이 극도로 편중된 국내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만큼은 일본이 부럽다. 이 책은 평소 사격장을 찾거나 액션 코스프레에 관심 있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군인, 경찰 등 직업적으로 사격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도 한번 읽어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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