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군벌 전쟁 - 현대 중국을 연 군웅의 천하 쟁탈전 1895~1930
권성욱 지음 / 미지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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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0여년이나 된 일이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삼국지를 읽은 기억이 난다. 후한 말 황건적의 난과 함께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젊은 시절의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나서 도원결의를 맺는다. 비록 적수공권의 몸이지만 대장부 셋이 뭉쳐서 천하를  바꾸어 보겠다는 야망을 품은 채 넓은 세상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들은 금새 천하가 얼마나 넓으며 수많은 기라성같은 영웅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조조, 손견, 여포, 공손찬, 원소 등 가슴에 무궁무진한 야심이 가득찬 영웅들은 각자 넓은 대륙의 한 귀퉁이씩을 차지하고 천하 패권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온갖 모략과 술책이 난무하고 대군과 대군이 맞붙이치면서 수십년이 지났을 때 천하에는 조조와 유비, 손권만이 남았고 위, 촉, 위 삼국 정립의 시대가 시작된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어이없게도 그 어느 쪽도 아닌 사마씨가 되었고 사마염이 세운 진나라가 천하를 호령하게 된다. 비록 소설이지만 온갖 개성 넘치는 영웅들의 대결은 너무나 흥미진진하여 매번 읽을 때마다 도저히 손을 뗄 수 없었다. 대략 열번은 넘게 읽은 듯 하다. 서양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다면 동양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라면 삼국지를 빼놓을 수 없으리라. 

 

삼국지만이 아니라 중국 오천년 역사는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는 역사이다. 삼국지는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역사일 뿐, 중국의 왕조가 바뀔 때마다 각지에서 일어난 군웅들이 서로 천하의 주인이 되겠다면서 항쟁을 벌이는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졌다. 이러한 춘추전국시대는 바로 백여년 전에도 있었다. 청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 초기에 이르는 이른바 '군벌의 시대'였다.

 

 

오랜만에 엄청난 책을 발견했다. 미지북스 출판사에서 나온 20세기 삼국지라 할 만한 <중국 군벌 전쟁>이다. 예전에 국내 최초 중일전쟁 통사인 <중일전쟁 - 용, 사무라이를 꺾다>를 쓴 저자가 5년 만에 낸 책이라고 한다. 당시 전쟁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아주 흥미진진하게 서술하여 네이버 역사 카페 등에서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오기도 했다.

 

처음에 책을 받아든 순간 1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두께에 한번 놀랐다. 그리고 읽으면서 또 한번 놀랐다. 분량은 많은데도 활자가 크고 편집이 잘 되어 있어서 너무 쉽게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또한 저자 특유의 필체로 어찌나 내용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지 일단 한번 책을 펴는 순간 손을 뗄 수 없었다. 청말부터 신해혁명까지 다룬 1부만 해도 왠만한 교양 도서 한권 분량인데 단숨에 읽어 버렸다.

 

 

책 맨 앞에 들어 있는 지도. 신해혁명 당시 주요 사건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맨 위의 투바 공화국은 HOI에서 볼 수 있었던 그 투바가 아니었던가.

 

 

청일전쟁 이후 새로이 편성된 청나라의 신식군대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보는 만주족 복장의 강시 군대가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서구화된 모습이다. 본문을 보면 청나라가 어떻게 신식군대를 편성하게 되었으며 일본군과 비교한 자료까지 상세하게 나온다.

 

 

청조, 이탈리아군을 물리치다. 본문에는 여느 중국사 책에서 보지 못했던 온갖 이야기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저자의 해박하면서 폭 넓은 지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916년 옥좌에 앉으려는 위안스카이를 몰락시키는 차이어의 호국전쟁의 상황도. 공화정이라는 국체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뜻이라고 호국전쟁이라고 한다. 얼마 뒤에는 쑨원이 법통을 지키겠다면서 호법전쟁을 일으킨다. 책에는 중국식 지명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30여장에 달하는 전쟁 지도가 들어 있다. 이것만 봐도 한눈에 이해가 될 정도이다.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주요 전투마다 어느 어느 부대가 참전했다는 식으로 이렇게 부대 편제까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마치 2차대전사를 보는 느낌이다. 이 정도면 삼국지처럼 게임으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은 청일전쟁 직후 위안스카이가 북양군이라는 신식군대를 만드는 것부터,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건국, 위안스카이와 쑨원의 대결, 북양군벌들의 분열, 국공합작, 북벌전쟁과 중원대전에 이르기까지 약 40여년에 걸친 중국 근대사 전체를 아우른다. 여기에는 5.4운동이나 국공합작, 공산당의 창당 등 중국 내에서 있었던 온갖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물론이고, 열강들이 왜 중국을 식민지로 삼지 않았는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중국군의 시베리아 출병, 국민당과 공산당에 이어서 제3의 혁명 정당이자 중국식 민주주의를 외쳤던 중국 청년당의 이야기, 몽골과 티베트의 독립 선언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는 당시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우리 독립 운동가들의 좌절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제스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이외에도 장쭤린, 우페이푸, 펑위샹, 리쭝런, 탕셩즈 등 온갖 기라성 같은 군벌들이 등장하여 천하 패권을 다툰다. 이들의 싸움은 초한지나 삼국지에 나오는 군웅 할거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차이가 있다면 창과 활이 아니라 총과 대포, 항공기와 같은 최신 무기로 싸운다는 점이다.

 

군벌 싸움만이 아니라 외몽골은 독립했는데 왜 내몽골은 독립하지 못했는가, 티베트는 왜 다시 중국의 일부가 되었는가, 만주족을 비롯한 중국 내 소수민족들은 어째서 독립국가를 세우지 못했는가 같은 누구나 한번쯤은 의문을 품었을 만한 질문에 대해서도 저자는 속시원하게 설명한다. 마치 핵사이다같은 느낌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이 또 한가지 있다. 책 말미에는 부록으로 당시 중국군이 사용했던 각종 총기와 대포, 전차, 군함, 항공기는 물론이고 중국군의 편제, 심지어 군벌들의 독가스 전쟁에 대한 이야기까지 있더라. 평소 중국사에 그리 관심 없어도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읽을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 읽는 내내 여지껏 이러한 역사서는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중일전쟁에서도 느꼈지만 저자의 어마어마한 내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근래 최고의 추천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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