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책 생각
Team BLACK 지음 / 책과강연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앉아서 고민하기만 하기보다 뭐라도 쓴다.
그러다보면 결국 생각이 보인다. 게으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주변에서 생각의 원천을 묻는다. 그런게 있을 리가 있나.
생각날 때까지 생각하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아무나 할 수 있다. 벽에 부딪치는 것만 겁내지 않는다면.  

  - 「기획자의 책 생각」  중에서

인터넷과 SNS이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지만 글쓰기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작가가 된다는 것은 꽤 장벽이 높은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쓰고 싶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우리 여건 상 작가가 될 수 있는 등용문 자체가 아주 좁았기 때문이다. 지금 40대, 50대이면서 로맨틱한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방송국에 자기 사연을 보낸 뒤 라디오 앞에 앉아서 진행자가 내 글을 읽어주기를 학수고대하추억을 가진 사람도 있으리라. 몇 줄에 불과한 글이나마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요즘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글을 쓰고 싶고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굳이 어딘가의 공모전에 출품하지 않아도 SNS를 이용하여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이야기를 얼마든지 풀어내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쓸지는 내 마음 먹기 나름이다. 내 주변에 일어난 일상 이야기, 시나 소설 또는 만화, 영화, 게임, 여행같은 취미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다. SNS 상에서는 학위 하나 없는 일반인이면서도 어지간한 전문가 뺨치는 글을 쓰는 사람도 많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어떠한 구속이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SNS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가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어떤 글이건 제대로 쓰려면 그만한 시간과 공력을 투자해야 하는 법이다. 관련 자료도 모으고 발품도 팔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대충 쓴 글은 우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번이나 고쳐 쓴 끝에 비로소 남들 앞에 내놓게 되지만 그래도 다시 보면 뭔가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반드시 있다. 이리 고치고 저리 손 댄다.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게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누군가의 공감을 얻는 것은 꽤 즐겁고 뿌듯한 일이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어지간히 중독성이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누가 말했던가.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 본 사람은 없다고. 글쓰기 또한 그렇잖은가.

SNS에 연재했던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면 출판할 기회도 생긴다. 더 이상 책은 교수나 프로 작가들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등학생 소설가, 배낭 하나 매고 여기 저기를 여행하는 대학생,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육아 일상을 블로그에 올리는 전업 주부, 고양이를 키우는 20대 직장 여성.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만들어서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 글 대신 만화나 일러스트를 그려서 웹툰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무명 작가의 작품이지만 프로 못지 않은 수준에 내용도 꽤 재미있다. 요즘은 이외수 같은 원로 작가들 또한 원고지 대신 SNS에 올린 글을 책으로 내기도 한다. 요즘은 글쓰기도 탈권위의 시대이다보니 사람들은 딱딱하고 어려운 전문서보다 쉽고 부담없는 책을 찾는 분위기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보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한편으로, 일반인도 쉽게 작가가 될 수 있다보니 여기에 편승하여 허황된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책쓰기가 인생 역전의 기회라는 둥, 누구는 책 쓰기로 수 억 짜리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더라는 둥. 소위 "책 코칭"이라 하여 자기에게 책 쓰기 수업을 받으면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의 밥벌이를 함부로 폄하할 수야 없지만 실제로 책을 써보거나 출판계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실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그런 양반들이 과연 본인들은 책을 팔아서 번 돈이 더 많을까, 멋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박 꿈을 주고 끌어모아서 수업료랍시고 받은 돈이 더 많을까 궁금하다. 책을 몇 십권을 냈다는 둥, 두달 세달만에도 책을 썼다고 온갖 자랑을 하는데 책쓰기를 얼마나 얕보고 있는가 싶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책을 낼 수 있지만, 누구나 남들이 읽어주는 책,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년, 20년, 어쩌면 평생이 걸려야 할 일이다. 부단한 노력, 타고난 재능, 그리고 운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책 코칭 운운하는 양반들의 이력을 보면 작가가 된 지 겨우 몇 년이다. 고작 도서관에서 몇 년 살았다고, 몇 년 글을 썼다고 마치 자신이 공지영, 이외수, 조정래 급의 프로 작가라도 되는 양 으스대면서 내가 했으니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떠든다. 알맹이도 없는 책 몇 권 내고 "세상에서 책쓰기가 제일 쉬웠어요." 하는 꼴이다. 실로 오만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런 양반들에게 비싼 돈을 내고 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책을 쓸까. 언젠가 그런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책의 2/3는 자신의 신변 잡기와 왜 책을 써야 하는가 따위의 아무런 상관도 없는 헛소리로 분량을 채워놓았더라. 정작 본론은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다. 자기 계발서인지, 에세이인지, 광고인지 의문스럽다. 저자 자신은 자기 돈을 내고 자기가 쓴 책을 사보겠는가 묻고 싶다. 실제로 어떤 유명 책 코칭 강사는 허위 광고와 사기죄, 저작권 침해로 고발당한 사례도 있다.

책쓰기를 돈벌이로 여겨서는 안 된다.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직종이다. 누구나 아다시피 연예인 지망생은 수십만명이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일을 하면서 나의 꿈을 남과 공유할 기회를 가지는 것, 그게 책쓰기이다. 글쓰기를 배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책쓰기를 배우겠답시고 사기꾼들에게 거금을 갖다 주는 사람은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호구다.

그런 점에서 책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눈 여겨 볼만한 책이 나왔다. 책과 강연 출판사에서 나온 <기획자의 책 생각>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기획 컨설팅만 장장 15년이라고 한다. 실제로 출판계에 뛰어든 것은 1년 남짓이라고 하는데, 그것치고는 책쓰기가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여느 책코칭 서적들마냥 내가 도서관에서 어떻게 인생을 바꾸었으며 당신도 책을 쓰면 대박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둥의 허황된 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크기는 손바닥만한 포켓 사이즈에 겨우 200여 페이지에 불과한 분량인데, 막상 읽어보면 그 정제된 글쓰기에서 책의 깊이와 저자의 오랜 내공이 와닿는다.

기획이란 무엇인가?’ 참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다. ‘아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은 다른 차원이어서 간혹 이런 질문 앞에 사람들은 당황한다. 기획이란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들 중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은 기획된 것이다. 이 책은 지난 1년간 45종의 책을 기획해가며 통찰한 기획자의 생각을 담아냈다. 15년째 콘텐츠기획자로 살아오면서 책을 기획해본 지난 1년간의 경험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내게 있어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낯선 질문은 ‘기획이란 무엇인가’라는 익숙한 질문과 다르지 않았다. 

최근 ‘책을 써서 성공하라’는 카피를 여기저기서 목격한다. 기획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난센스다. 한 해 출간되는 책이 7만 5천여 종에 달한다. 한 달 사이에 6천3백여 종의 책이 서점 평대 위로 쏟아진다. 책에는 저마다의 신간 수명이 있는데 대개는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서가로 사라진다. 인세와 강연 수입을 통해 성공하라는 주장은 출판 통계 자료만 보더라도 그 논리가 얼마나 박약한지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책을 내본 저자들을 만나보면 대게 ‘한번 써봤다’는 식으로 말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단순히 지면 위에 옮겨놓은 수준이다. 사용자를 생각하지 않은 상품에 관심을 가져줄 만큼 시장은 너그럽지 않다. 책은 철저히 기획되어야 한다. 무엇을 쓸 것인지(출발점), 누가 읽을 것인지(도착점)를 잇는 선명한 일직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작가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콘텐츠 크리에이터란 개념으로 책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는 책을 쓰는 직업인이지만, 크리에이터는 작가의 개념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의미의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터의 관점에서 출판을 정의하자면 책을 잘 쓴다는 개념 자체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작가라고 하면 한곳에 머물면서 억척스럽게 원고에만 매달리는 상투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오로지 자신의 글에만 충실하면 됐다. 기획, 마케팅, 영업은 당연히 출판사 고유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책을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작가와 독자가 참여하여 만들어가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작가가 설정한 독자의 캐릭터가 구체적일수록 책은 독자의 삶에 밀착된 내용들로 채워진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상대에 대한 정보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대화는 헛돌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의 욕구를 예리하게 파고들며 공감할 만한 실마리를 풀어내야만 한다. 책을 마치 한 사람과 1대 1로 대화한다는 감각으로 써보라. 이렇게 독자층을 좁혀놓으면 과연 읽을 사람이 있겠냐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읽을 수 있는 두루뭉술한 책을 쓰는 것보다, 독자를 구체화하여 책을 선택할 분명한 이유를 만드는 것이 판매에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개인이 강력한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대외적으로 확대해나간다. 유튜브크리에이터 ‘대도서관’처럼 개인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책을 내는 경우도 있다. 역시 관심이 집중되는 곳에 기회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소셜미디어를 상징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꼽으라면 ‘연결(Link)’이다. 나에게서 타인으로 확장되는 연결을 통해 콘텐츠의 최초 생산자를 중심으로 밀도 높은 브랜드가 만들어지게 된다.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이 모두가 타인과의 연결이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야 할지도 모른다. ‘모든 링크의 합’이라고 말이다.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콘텐츠는 발견되지 못한다. 아무리 콘텐츠가 훌륭해도 발견되지 못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작가의 이름값만으로 100만 부를 팔아치우던 시대는 갔다. 출판시장에 드리워진 불황의 그늘은 여전히 짙기만 하다. ‘Social’이라는 미디어 환경 안에서 자기만의 글 세계를 구축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젊고, 감각적이며, 깊다고 볼 수 없을지는 모르나 최소한 대중의 코드를 읽어내는 ‘feel’만큼은 충만하다. 대중들은 어려운 종이책을 집어 드는 대신, 그들의 몽글몽글한 언어에 기꺼이 손을 내민다.

당신의 미래는 더 이상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연결에 의해 결정되고, 연결의 강도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인력이 작용할 때에만 연결이 일어난다. 인력(끌어당김)이란 타인의 관심이 당신을 향하게 하는 힘이다. 

이 책은 책쓰기 요령이나 기획서 쓰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전문적인 개론서와는 거리가 멀다. 다른 사람들의 원고를 봐주고 그것을 어떻게 상품화할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지 기획하는 컨설턴트로서 보고 느끼고 생각했던 것을 쓰고 있다.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마따나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고 해도 제대로 다듬어 옥석으로 만들지 못하면 돌맹이에 지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어떻게 예쁘게 다듬는가에 따라서 남들이 돌맹이라고 여겼던 것을 옥석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돌맹이를 옥석으로 만들기도 어렵지만 돌맹이 중에서 옥석이 간혹 끼어 있는 것이지, 모든 돌맹이가 옥석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돌맹이 중에서 무엇이 옥석인지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기획자이고 돌맹이인 줄 뻔히 알면서도 옥석으로 만들 수 있다고 속인다면 그건 사기꾼이다. 어떻게 해야 내가 돌맹이가 아닌 옥석을 만들 수 있는지, 애초에 무엇이 돌맹이이고 옥석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우리가 알고 싶은 건 그런 것이다.

SNS 상에서 남들이 쓴 글을 읽다보면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이 정도 글은 쉽게 쓸 수 있을 것같다. 하지만 막상 써보려고 하면 막막하다. 당장 첫줄부터 막힌다. 뭘 써야 할지 머리 속에는 있는데, 그걸 꺼내기는 어렵다. 나 또한 장장 20년 째 취미 삼아서 글을 쓰고 있고 역사 서적을 한번 내 본 적이 있는 아마추어 작가이지만 솔직히 일상의 짧은 이야기를 쓰는 것조차 쉽지는 않다. 글을 쓰는 것은 꽤나 스트레스이다. 글을 쓰는 게 부담된다기보다 잘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다. 무작정 생각나는대로 적으면 그건 글이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똑똑한 교수들조차 의외로 글쓰기에는 서툰 경우를 많이 본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그걸 글로 정리하기란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쉽고 친절하여 한 눈에 요점이 파악되는 글, 잘 다듬어지고 감칠맛나면서 때로는 인상적인 글귀로 다 읽은 뒤에도 여전히 뇌리에 남을 수 있는 글, 그런 글이 남들이 읽어보고 싶은 글이다. 그런 글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소위 책 코칭 강사에게 비싼 돈 들여서 속성 과정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쓰고 또 써봐야 한다. 처음에는 머리 속이 정리되지 않아도 쓰다보면 자연스레 정리가 된다. 필력도 늘어난다. 다른 사람들의 글도 많이 읽어봐야 한다. 흔히 작가 지망생들은 유명 작가들의 책을 100번이고 200번이고 그대로 필사하면서 그들의 글쓰는 방법을 익힌다고 한다. 어디에서도 그저 쉽게 얻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저자는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지는 않는다. 분류는 자기 계발서라지만 「기획자의 책 생각」이라는 제목 그대로 기획일을 하는 사람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에 더 가깝다. 하지만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작가 지망생이라면 이 정도는 알았으면 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담고 있다. 읽다보면 와닿는 부분, 공감 가는 부분이 많다. 책은 쓰고 싶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라.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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