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SNS이 우리 주변의 수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지만 글쓰기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작가가 된다는 것은 꽤 장벽이 높은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내가 쓰고 싶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우리 여건 상 작가가 될 수 있는 등용문 자체가 아주 좁았기 때문이다. 지금 40대, 50대이면서 로맨틱한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방송국에 자기 사연을 보낸 뒤 라디오 앞에 앉아서 진행자가 내 글을 읽어주기를 학수고대하던 추억을 가진 사람도 있으리라. 몇 줄에 불과한 글이나마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요즘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글을 쓰고 싶고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굳이 어딘가의 공모전에 출품하지 않아도 SNS를 이용하여 내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이야기를 얼마든지 풀어내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쓸지는 내 마음 먹기 나름이다. 내 주변에 일어난 일상 이야기, 시나 소설 또는 만화, 영화, 게임, 여행같은 취미에 대한 글을 쓸 수도 있다. SNS 상에서는 학위 하나 없는 일반인이면서도 어지간한 전문가 뺨치는 글을 쓰는 사람도 많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어떠한 구속이나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대로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SNS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가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어떤 글이건 제대로 쓰려면 그만한 시간과 공력을 투자해야 하는 법이다. 관련 자료도 모으고 발품도 팔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대충 쓴 글은 우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몇 번이나 고쳐 쓴 끝에 비로소 남들 앞에 내놓게 되지만 그래도 다시 보면 뭔가 이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반드시 있다. 이리 고치고 저리 손 댄다. 여전히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게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누군가의 공감을 얻는 것은 꽤 즐겁고 뿌듯한 일이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어지간히 중독성이 있는 것이 글쓰기이다. 누가 말했던가.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 본 사람은 없다고. 글쓰기 또한 그렇잖은가.
SNS에 연재했던 글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면 출판할 기회도 생긴다. 더 이상 책은 교수나 프로 작가들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등학생 소설가, 배낭 하나 매고 여기 저기를 여행하는 대학생,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육아 일상을 블로그에 올리는 전업 주부, 고양이를 키우는 20대 직장 여성. 누구나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글로 쓰고 책으로 만들어서 남들과 공유할 수 있다. 글 대신 만화나 일러스트를 그려서 웹툰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비록 무명 작가의 작품이지만 프로 못지 않은 수준에 내용도 꽤 재미있다. 요즘은 이외수 같은 원로 작가들 또한 원고지 대신 SNS에 올린 글을 책으로 내기도 한다. 요즘은 글쓰기도 탈권위의 시대이다보니 사람들은 딱딱하고 어려운 전문서보다 쉽고 부담없는 책을 찾는 분위기이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보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한편으로, 일반인도 쉽게 작가가 될 수 있다보니 여기에 편승하여 허황된 소리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책쓰기가 인생 역전의 기회라는 둥, 누구는 책 쓰기로 수 억 짜리 스포츠카를 끌고 다니더라는 둥. 소위 "책 코칭"이라 하여 자기에게 책 쓰기 수업을 받으면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남의 밥벌이를 함부로 폄하할 수야 없지만 실제로 책을 써보거나 출판계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실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소리이다. 그런 양반들이 과연 본인들은 책을 팔아서 번 돈이 더 많을까, 멋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박 꿈을 주고 끌어모아서 수업료랍시고 받은 돈이 더 많을까 궁금하다. 책을 몇 십권을 냈다는 둥, 두달 세달만에도 책을 썼다고 온갖 자랑을 하는데 책쓰기를 얼마나 얕보고 있는가 싶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책을 낼 수 있지만, 누구나 남들이 읽어주는 책,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년, 20년, 어쩌면 평생이 걸려야 할 일이다. 부단한 노력, 타고난 재능, 그리고 운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책 코칭 운운하는 양반들의 이력을 보면 작가가 된 지 겨우 몇 년이다. 고작 도서관에서 몇 년 살았다고, 몇 년 글을 썼다고 마치 자신이 공지영, 이외수, 조정래 급의 프로 작가라도 되는 양 으스대면서 내가 했으니 당신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떠든다. 알맹이도 없는 책 몇 권 내고 "세상에서 책쓰기가 제일 쉬웠어요." 하는 꼴이다. 실로 오만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런 양반들에게 비싼 돈을 내고 수업을 받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책을 쓸까. 언젠가 그런 책을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책의 2/3는 자신의 신변 잡기와 왜 책을 써야 하는가 따위의 아무런 상관도 없는 헛소리로 분량을 채워놓았더라. 정작 본론은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다. 자기 계발서인지, 에세이인지, 광고인지 의문스럽다. 저자 자신은 자기 돈을 내고 자기가 쓴 책을 사보겠는가 묻고 싶다. 실제로 어떤 유명 책 코칭 강사는 허위 광고와 사기죄, 저작권 침해로 고발당한 사례도 있다.
책쓰기를 돈벌이로 여겨서는 안 된다.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배고픈 직종이다. 누구나 아다시피 연예인 지망생은 수십만명이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일을 하면서 나의 꿈을 남과 공유할 기회를 가지는 것, 그게 책쓰기이다. 글쓰기를 배우는 것은 필요하지만 책쓰기를 배우겠답시고 사기꾼들에게 거금을 갖다 주는 사람은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호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