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권함
남덕현 지음 / 양철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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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권하지는 않는다. 그 슬픔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들을 일러주지. 그 슬픔에서

비껴 갈 방법들을 나열하지. 그래서 이 제목은 참 근사했다. 여태 어느 누구도 권하지

않던 것을 이 사람은 권하는구나... 시작은 딱 이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어디 한번 읽어

볼까? 

별로 슬플것 까지야 없을 것 같은데도 눈물이 나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다음 페이지를 

옮기면 배꼽 빠지게 웃느라 여간 낄낄거리지 않아야 하다니, 참말로 재미난 책이다.

이런 책이라면 당장 몇 십권 정도라도 읽고싶다. 그의 또다른 책, <충청도의 힘>을 빌릴

참이다. "가난"을 운운하는 그로 봐서는 책을 사는 것이 마땅한 도리겠으나 도서관이 

가깝다는 이유로 빌려 읽음이 못내 송구스럽다. 

슬픔을 권하지만 그건 단지 슬픔만은 아닌 듯하다. 슬픔은 슬픔이기도 하고, 삶이기도 하고,

더불어 살아감이기도 하고, 하늘이기도, 비(rain)이기도, 산이기도, 꽃이기도, 개(dog)이기도,

장날 마주한 노인들이기도...... 가족이기도 하더라. 내 보기엔 그렇더라. 모든 것이 슬픔이기도 

해서  나는 그의 슬픔이 좋더라. 비켜가기만을 바라던 그 슬픔이 좋아지더라. 

슬픔을 품은 그의 해학 내지는 해학을 품은 그의 슬픔이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여서 

무척 반가웠다. 

<슬픔을 권함>, 암만 봐도 책과 제목의 궁합이 제격인 듯!!






*글 쓰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이 귀한 걸!
닭 키우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이 귀한 걸!
우리는 책보는 재주가 없는데...... 어쩌지요?
저는 닭 키우는 재주가 없는데...... 어쩌지요?
글 쓰는 거하고 닭 키우는 거 하고 어디 같나요?
다르지요. 책이 알을 낳지는 않지요.
그렇다고 닭이 글을 쓰지는 않지요.
종종 닭이 글을 쓰는 경우도 있지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닭대가리입니다만......

*누군가 앓는다는 소식을 듣자면 서로 살아있다는 사실이 쓸쓸해져 견딜 수가
없습니다.

*새벽부터 비 온다. 밤꽃 냄새 코를 찌르고 멀리서 교회 종소리 울린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있으니 역시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싶으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당최
모르겠구나. 일생이 그러하다.

*희망 고문보다는 차라리 깊은 절망이라도 하게 내버려 두면 오죽 좋겠는가. 어설픈
희망 고문이 넘쳐 나는 이 세상은 경우가 없어도 보통 없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절망할 틈을 주지 않는 이 시대는 얼마나 잔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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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조각들 - 타블로 소설집
타블로 지음 / 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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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침울했을 어느날인지도, 어쩌면 불안했을 어느날인지도, 어쩌면 좀체 갈피를
잡을 수 없었을 우리의 20대 어디쯤의 어느날이 <당신의 조각들>에 있는 단편 하나
쯤에 속하지 않을라나 싶을 정도의 생각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인기가수의 책이라기에 궁금했다. 노래만 잘하는게 아니라니 그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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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기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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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픈 건 싫으네.
너무 슬픈 건 싫으네.
너무 지독할 만큼 애틋한 것도 싫으네.
너무 그러하니 펑펑 쏟아낼거라는 친구의 말이 무색할만큼 눈물은 적었네.
아이나마 건강해져서 그나마 그나마 다행이었네.
안그랬으면 책을 던져 버렸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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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램의 희망 - 삶의 매순간은 신성하다
강인식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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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종이가 너무 두꺼워 잘 펼쳐지지 않아서 읽는 내내 양손에 힘을 주고 있어야

했다. 한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이라면 이 책 읽기를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볼 동화책이니 너무 좋은 재질로 비싸게 책을 만들지 말라고, 싼 값에 모두가

사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당부를 출판사에 했던 권정생작가처럼 이 출판사에도 반드시

그런 당부를 잊지 말고 해야 할것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의 위대함은 단지 장애의 극복이란 것에만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니란 것이다.

유학생활, 선진국과 한국의 상아탑과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우리가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지구과학이나 해양과학에 대한 전문용어들을 거르지 않고

설명해서 낯선 학문의 분야를 잠시나마 맛볼 수 있었던 것, 과학자라는, 단어로는

익숙하지만 직업으로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것의 여러 일화들이 난 무척 흥미

로웠고, 더해서 장애의 극복까지로 이어지니 이 책의 위대함은 빈말이 아니다.

장애의 극복이라 쓰면서도 하루하루를 이겨내야만 하는 그 극복이란 얼마나

고단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나는 너무 쉽사리 "장애의 극복"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숙연해진다.

"내가 6개월만에 학교에 복귀했다는 사실이 미국에 있는 병원에게도 알려진 후
다음과 같은 연락을 받았다. 우리가 너를 퇴원시켰을 때는 곧바로 학교와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는데 왜 3개월을 한국 병원에서 더 보냈냐고 하면서, 혹시 그곳에서
우리가 하지 않은 특별한 치료를 받았느냐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언론에는 전신이
마비되는 사고를 당한 지 6개월 만에 복귀한 것이 대단한 화젯거리가 되었지만
실은 3개월 만에 복귀할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우리 한국은 선진국을 따라 갈 여력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재활이란 사회복귀로 그대로 연결되는 미국의 재활병원, 참 부럽다. 어마어마한 

병원비가 문제겠지만 말이다.

전신마비 중증 장애인 판정을 받은지 6개월 만에라도 그가 다시 복귀할 수 있었고, 

주목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언급했듯이 그가 "서울대 교수"인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 이면에는 국가와 사회 공헌에 대한 그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니 우리는 타당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유리한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난 늘 공부 잘했던,

공부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 

0.1g의 희망으로도 용기를 내고, 신문지 크기 만큼의 햇빛만으로도 살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영리한 사람을 부러워 한다. 나는 내가 가진 것 보단 내가 못가진 것에

더 큰 무게를 두는 어리석음에서 오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자꾸자꾸

책을 찾는다. 적어도 내가 어리석다는 것은 알고 있고, 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팽배하기에! 

이상묵 교수, 그가 본인을 큰 행운아라 칭하니 내가 할 수 있는 행동 하나하나에 그리

감사하더라. 비록 부엌일을 엄청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녁 설겆이 만큼은 무리

없이 두 손으로 거뜬히 해내는 내가 감사하고 감사했다.






*대학교육은 경우에 따라서는 답이 없는 학문적인 문제를 가지고 학생을 훈련시키기도
한다. 기술적인 부분은 나중에 사회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울 수밖에 없다.
대학교육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대학은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훈련 시키고 나머지는 사회가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현장에서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대학도 있다. 산업대학이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대학이다.

*공부는 지능지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부에 대한 흥미와 열의가 결국 승패를 좌우
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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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온전한 나를 위한 혜민 스님의 따뜻한 응원
혜민 지음, 이응견 그림 / 수오서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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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와 목소리와 그 책의 내용이 같다고 느껴지는 혜민스님이다.

고달픈 현대인을 위로하고 싶은 그의 따스하고 자상한 마음이 흠씬 묻혀있다.

어떻게든 극복하고 헤쳐 나가라는, 무쏘의 뿔처럼 나아가라는 것이 예전의

위로였다면, 괜찮다고,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것이 요즘의 위로 방법인가 보다.

이것도 어쩌면 유행이라면 이 유행이 지나고 나면 어떤 위로의 방법이 올 것인가

궁금하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사찰에 내거신 분이 법정이라는 글을 본 적 있다. 

이 책의 추천 글은 이해인 수녀님의 것이네. 시대가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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