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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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국가보다 부유한 시대,

지주의 1%가 경작지의 43%를 점유하고 있어 자급자족하기에 충분한 식량 생산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의 수가 7000만명인 인도,

소는 배불리 먹고 사람은 굶는 현실,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금융과두지배,

환경 파괴에 대해서는 학교와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고, 전쟁도 보도되지만 기근에 대한

관심은 그만 못하다는 현실...

구호단체가 식량을 아프가니스탄에 살포하였으나 무기를 가진 이가 결국 그 식량을 갖는

현상에서 부시 대통령은 탈레반을 먹여 살린 꼴이라는,

식량 살포를 위해서는 땅에 지뢰가 매설되어 있지 않아야 하고,

구호단체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분배 위원회가 이를 수행해야 한다는 등등,

 

이 지구상에서 정말 평화로운 곳은 어디일까,

정말 평화를 원하기는 하는걸까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현대의 문제는 모자람이 아니라 넘침에 있다는 법정스님 글이 생각난다.

넘치는 이가 모자라는 이에게 줄 수 있는 세계라면 평화로울텐데

넘치는 이는 버리고, 모자라는 이는 죽어가고 있는 세계라니....

 

번역이 좀더 자연스러웠더라면 훨씬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을텐데

나에겐 덜 자연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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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의 묘 (2disc)
다카하다 이사오 감독 / 대원DVD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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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다 이사오 감독의 <추억은 방울방울(1991년)>을 먼저 보았다.

이와 유사한 애니메이션이지 않을라나... 싶었다가 큰 코 다쳤다.

눈물이 눈물이 눈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흐르고, 가슴이 미어지고 미어져서

목이 컥컥하다 못해 뻑뻑하더니 이젠 꺽꺽하니 아플 정도이다.

세이타와 세츠코가 손 잡고 있는 저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믈이 자꾸 난다.

권정생의 <점득이네>가 떠오른다.

전쟁이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쇼와 20년 9월 21일 밤 나는 죽었다." 로 시작한다.

세이타가 세츠코의 보호자로서의 부담이 얼마나 컸으며,

그런 세이타 또한 세츠코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그러면서 세이타도 얼마나 보호 받고 싶은지를 읽을 수 있는 장면들에서는

가슴이 미어지고 미어져서 꺽꺽거리게 된다. 더없이 안타깝고 슬퍼서 어쩌지를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너무 슬픈 애니메이션은 너무 슬퍼서 진짜 정말 너무 너무 슬퍼서 나의 정서는

그야말로 갈가리 찢긴다.

 

암울하고 슬픈 이 애니메이션이 경쾌 발랄 유쾌한 <토토로>와 동시 개봉되었다니

어찌 이런 일이!!

<토토로>를 먼저 보고 <반딧불의 묘>를 본 후 멘붕을 일으켰다는,

그래서 영화관의 배려로 <반딧불의 묘>를 먼저 상영한 후 <토토로>를 상영했다는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들었다.

 

그림은 더없이 사실적이고 그래서 더없이 좋다.

역시 일본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다카하다 이사오도 미야자키 하야오만큼이나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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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국가 바이러스 - 추락하는 대한민국, 반등의 마지막 기회를 잡아라
매일경제 경제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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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를 피력함에 있어서 비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현명한 척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물론 비관적인 관점을 가질 만한 이유가 세상에 널려 있기는 하지만 지속적인

비관주의는 그리 권장하고 싶지 않은 사고방식이다.-엘빈 토플러

 

 

출산율에 대한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인구 수와 국가의 발전이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데, 이 논리는 과거에는 해당되지 않고 현재에만 해당되는 논리인가?

오천만 인구로도 우리는 이만큼 성장하지 않았던가. 중국이 오늘에서야 13억, 세계 최고의

인구가 되었고 그래서 눈부신 성장을 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12억 인구의 인도는 또 어떤가?

6천만의 영국은?

겨우 오천만의 인구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우리 민족의 저력은 온데간데 없고 단지 지금의

저출산이란 결과에만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저자에게 엘빈 토플러의 위의 말을 보낸다

 

오랫동안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방판을 하던 나의 친척은 최근 그 일을 그만두었다. 강매의

관행에서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이 책 p220에서 저자는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를 언급하며 단일 제품 판매로만 1조 원 매출을

달성했으며, 글로벌 시장 공략으로 세계화를 이루겠다는 그들의 선언을 부각시키고 있다.

직원에게 강매 하는 기업의 성공을 높이사겠다는 저자에게 결과만 바라보는 잣대가 아닌가

의의를 제기하고 싶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한국사회에선 영화 <명량>의 흥행과 함께 이순신 신드럼

이 불었다. 결국 세월호로 상징되는 이 복잡한 세상의 위험들을 누군가 단칼에 끊어주는

리더가 출현해 주길 지금도 세상은 갈망한다. 하지만 우리가 당면한 난제들을 단칼에 해결해

줄 이순신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이순신이라고 주장하는 자, 대한민국을 망치는

B급 바이러스를 단숨에 물리치겠노라 호언하는 그를 경계해야 한다.(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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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더스 코리아
엄경영 외 지음 / 집사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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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2006년도의 책이었으나 나에겐 상당히 유익했다.

일부분은 최근 읽은 <이상한 정상가족-김희경>과 겹쳐져서 이해가 한층 쉬웠다.

<부의 미래-엘빈 토플러>에서와 같이 "가치경제"의 중요성을 말하는 부분에서는 적극 공감할

수 있었으며, 노인 공경의 미덕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는, 노인이라도 젊은이를 보조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일한 만큼의 급여를 주면 된다는 말에서,

 

 "우리의 제도가 현재의 형태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그 제도가 담고 있거나 추구하는 가치관과

규범도 존속될 수 없다. 일부 가치관을 내버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가치관을 추구해야 한다. (...)

어째서 산업사회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나 흔했던 대규모 다세대적인 가족의 가치관과 같기를

기대하는가?" 라고 한 엘빈 토플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인이 많아서 사회에 부담이 된다지만 노인도 일을 하면 문제가 안된다.(p363)"

"우리는 복지를 늘려야 하지만 정부가 이를 전담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며 기업이 할 일도

아니다. 고용없는 성장으로 실업은 늘어만 간다. 사회적 기업은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실현가능한 대안이다.(p256)" 에 박수를 쳤다.

 

"노인이 대학을 바꾼다.(p257)에서는 다소 억지스런 모습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모른다. 순발력이 극에 달한 청년들과 대학에서 같이 공부한다는 것을

결정하기란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지 싶다. 그 엄청난 등록금은 또 어떻게 감당하란

말인가!!

 

"자녀 문제로 직장 일을 단기이든 장기이든 중단해야 할 경우 자녀 문제는 당연히 여성에게

책임이 돌아간다. 가사와 자녀 양육은 가정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식이 없다.

남녀 할 것 없이 "남자가 집안 일을 얼마나 돕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 남자는 가사를

도와야 할 것이 아니라 해야 한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p276)"

"최근에는 양육이 직장생활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말도 자주 들린다. 가정이 소중하며

육아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한국 남성들이 가사에 거의 동참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다.(p277)" 여기선 기립박수를!!!

 

 

 

 

 

 

 

 

"저출산의 원인을 결혼 파업으로 본다면 요즘 유행하는 '출산장려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부유한 농촌 여성의 출산축하금으로 20만원을 지급하는 데 왜 도시 하층 근로자의

세금이 쓰여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p278)"

 

"바람직하기는, 자녀를 낳을 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두 자녀를 갖기에는 '늙어'

버려 출산을 하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돕는 일이다. 출산을 하고도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함은 물론이다. 답은 남자들에게 있다. 여자들이 결혼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사회가, 그리고 남자가 변해야 할 시점이다.(p280)"

 

"가장이 '큰 소리'치던 시대는 지났다며 비감에 젖은 톤으로 현실을 개탄한다. 그러나 버림

받은 아버지 또는 가장은 그가 가정의 일에 철저히 무관심했던 결과다. (...) 늙고 갈데가

없으니 가정을 찾는다. 아내의 반응은 '너무 늦었다'일 밖에.

남녀 갈등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빠르게 변하는 한국 여성에 비해서 변하지 않는 남성들'

사이의 인식차이가 심각하고 진단한다. 여성들은 서구의 남녀 관계와 역할 분담을 합리적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남성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수행하던 역할이 당연히 여성의 모델로

여긴다. 호주제 폐지의 선봉에 섰던 곽배희 가정법률상담소장은 인터뷰에서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흐름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성들에 비해 의식변화와 학습 진도가 늦은" 남성들이

"당혹스러움과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지적한다.(p286)"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반대되는 증상으로 '알레레드닉 증후군(Allerednic Syndrome)이란

게 있다. 알레레드닉은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왕자의 이름이다. 알레레드닉 왕자는

공주와 결혼한 후 공주를 하녀로 만들어 버린다. 알레레드닉 증후군에 걸린 현대 남자들은

똑똑하고 성공한 여성과 결혼한 뒤 그 아내의 발에서 유리구두를 벗긴 후 강제로 부엌 일과

육아에만 전념하게 만들려고 한다.

현대판 신데렐라는 드물지만 알레레드닉은 도처에 있다. 한국에는 더 많다.(p290)"

 

"남자는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달라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내게

해준 게 무엇인가"라는 말과 함께 이혼을 요구받지 않기 위해. 부성애 결핍이 아니고서는

남편들은 외도를 감행하기에 앞서 자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남편들은 이혼을 과거만큼

쉽게 결정할 수 없다. 또 이혼한다하더라도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가족 친화적' 또는 '여성 친화적'인 남성이 대세가 되면 자연스럽게 여성의 사회활동은

탄력을 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21세기 한국이 겪게 될 일련의 혼란을 극복하는데 필수적이다.

(p296)"

 

"자매애(Sisterhood/Sorority)는 미래에 새롭게 추구되는 가치이다. (...) 형제애(Brotherhood/

Fraternity)의 밑바탕에는 적대감과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형제의 관계는 상호

경쟁의 관계였으며 서로 죽이기를 불사했다. 신화와 역사에는 형제간, 부자간 존속살인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카인은 아벨을, 솔로몬은 압살롬을 죽였다. 세조는 형의 아들을 죽여

형의 혈통을 끊었고, 경종이 승하한 후 영조가 독살했다는 설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남성의 공동체에서는 형제들끼리도 피흘리고 죽이기까지 경쟁한다.

자매애는 박애와 이해, 협력의 관계를 형성한다. 신화와 심리학에는 '형제 살해(fraticide)나

'존속 살해(parricide)' 심지어 '모친 살해(matricide)'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자매 살해'라는 용어는 없다.(p298)"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녀의 성역할 분담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여성이

가정과 직장을 동시에 유지할 수 있도록 하면 저출산은 상당 부분 해결된다. 정말이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열쇠는 남성들이 쥐고 있다. 세계적으로 선진국이면서도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에서는 남성들이 양육에서 맡는 역할이 크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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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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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세상에서 기업 경영진이나 경제학자들은 아마추어라는

용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자기 자신과 가족 또는 공동체를

위해 무보수로 일하는 아마추어들이 과학과 기술 분야를 포함하여 다양하고 광범위한

분야에서 놀라운 위업을 이루었다.

 

*지역과 국가, 세계의 환경 규약, 금융과 무역에 관련된 규정, 질병 통제와 테러 예방 조치,

물과 자원에 관련한 협약들이 정교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이 외에도 서로 관련성을

갖고 있는 기능과 절차, 법규 등이 끝없이 이어진다. 여기에 자신들의 제안이나 요구를

제출하는 수만여 개의 NGO들이 복잡성 위에 새로운 복잡성을 추가한다.

 

*우리의 제도가 현재의 형태대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그 제도가 담고 있거나 추구하는

가치관과 규범도 존속될 수 없다. 일부 가치관을 내버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가치관을

추구해야 한다. 어떤 이는 가치관을 악(vice) 혹은 미덕(virtue)으로 규정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의 다양한 가족체계가 산업시대의 일률적인 핵가족 체계가 담았던

것과 같은 가치관을 심어 주거나 나타내기를 기대하는가?

또는 어째서 산업사회 이전의 농경사회에서나 흔했던 대규모 다세대적인 가족의 가치관과

같기를 기대하는가?

 

*모든 선진국에서 생산된 재화가 전체 소비자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스탠퍼드 대학의 로버트 홀 경제학 교수의 지적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면 가격이 비싸지고 있는 서비스에 대한 지출은 증가하고 있다. 이런 서비스에는 보건,

교육,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금융 서비스처럼 무형성이 높은 분야가 포함된다.

단일 무형성과 이중 무형성이라는 2가지 종류의 무형성이 사회의 자산 기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커질 것이다. 이를 확신하는 이유는, 무형자산의 증식에는 사실상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공급이 유한하다는

전제야말로 자본주의 경제학의 근간이며, 수요와 공급의 법칙보다 더 신성시되는 자본주의

법칙은 없다. 하지만 2가지 종류의 무형자산이 사실상 무한히 공급될 수 있다면 무한한

무형의 경제가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 있을까? 경제의 자산 기반이 어느 정도나 무형화될 수

있으며 동시에 자본주의적일 수 있을까?

 

*록그룹 그레이트폴 데드의 멤버였으며 현재는 지적재산권의 추가적 확대를 저지하는

운동을 이끌고 있는 존 페리 발로우(John Perry Barlow)는 "평소에는 똑똑하다는 소릴

듣는 사람들이 내 말(horse)을 훔치는 것과 내 노래를 훔치는 것이 똑같은 일이라고 생각

한다."고 지적한다. 자산으로서 말은 가시적인 형체의 유형성과 경쟁성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노래는 그렇지 않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같은 말을 탈 수는 없다.

반면 발로우는 "노래는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자유롭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인들이 생계를 위해 저작권료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발로우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저작권으로 대표되는 재산권을 연장하려는 것이 거대

기업의 사악한 전략이라고 간주한다. (...) 무형자산을 어떻게 측정하건, 무형자산을 보호

하건 보호하지 않건 간에 이런 일은 자본주의 역사상 전례가 없다. 그 어떤 것도 이렇게

자산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혁명적 무형성으로의 변화는

현재 진행 중인 자본주의의 극단적 변신의 첫 시작에 불과하다. 자본주의가 버텨내지 못할

수도 있는 변신 말이다.

 

*많은 미국인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며 1950년대 초의, 소위 '옛날 좋은 시절'을 그리워한다.

당시 미국은 제2물결 속에 있는 국가였고, 제3물결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좋은

시절이었다던 시기에 미국이 보여 준 등뼈가 휠 정도의 고된 노동과 인종차별, 성차별 등의

경제 사회적 특징은 쉽게 잊어버린 채 합법적으로 현재를 평가 절하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며

그것에 저항한다. 자신의 직장과 지위, 특권 혹은 영향력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 내부에서도 중국이나 일본, 유럽과 다름없이 신구 사이에 물결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오늘날 대다수는 아니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현재의 학교가 자신에게 내일이 아니라

어제를 준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에 반항하는데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형태는 학업을 포기하는 것이다. (...) 다른 형태의 반항은 교실

내부에서 일어난다. 월리스와 룬트는 '공장같은 학교'라는 근본 가정에 대한 공격과 함께

의무교육이 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 교사들은 대중매체의 폭력성

이라는 전염병에 대항할 수 없다. 그들은 학생들이 소위 스타들을 숭배하는 것을 막기에

무기력하다. 학생들이 추종하는 스타들 중에는 금지된 약물을 쓰고, 배우자에게 거짓말을

하며, 음주와 구타, 강간 혐의로 피소되는 등의 부도덕한 이들도 있다. (...) 젊은이들은

언제나 스스로 배운다. 또한 잘못된 내용을 배우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에는 대중매체라는

의심스러운 도구의 도움까지 받고 있다. 그들이 펼쳐놓은 책 뒤에 게임기와 휴대전화가

숨겨져 있으며 교사들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동안 현란한 문자 메시지

가 오간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교실에 감금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눈과 귀, 마음은 그곳을

탈출해 사이버 세계를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온라인에서

사용 가능한 자료와 저오, 지식의 극히 일부분조차 학교가 제공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한 세계에서는 자신이 감금된 죄수이지만 다른 세상에서는 자유인이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논리를 피력함에 있어서 비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거은 현명한 척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물론 비관적인 관점을 가질 만한 이유가 세상에 널려 있기는 하지만 지속적인

비관주의는 그리 권장하고 싶지 않은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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